제2장 관도를 찾아라 (1)
여매홍과는 꽤 친해졌다.
벽을 부숴 먹은 날을 계기로 자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알면 알수록 그녀는 건실한 사람이었다.
아는 것도 많았고, 야무진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신무학관에 대해 아는 것은 쥐뿔도 없던 초운휘에게는 정말이지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동천관은 총 열두 개의 전각과 서른 개의 방이 있어요.”
“동천관의 뒤편은 교관 전용 연무장이에요.”
“가장 중심에 있는 대연무장에서는 매주 두 번 한 시진씩 단체 훈련을 한답니다.”
쉬지 않고 반나절을 걸은 끝에 간신히 동천관을 돌 수 있었던 초운휘는 기가 질렸다.
“동천관이 가장 작은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가장 작은 편이죠.”
“이게 작은 편이라고요?”
오다가 본, 눈이 휘둥그레질 누각에 전각들만 다섯 채다.
거기에 그림을 공부하는 화원이나, 시간을 죽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다루만 해도 몇 개나 있었고, 크고 작은 연무장은 세다 포기했는데 말이다.
여매홍이 대답했다.
“은천관은 동천관의 두 배. 금천관은 세 배가 넘는다고 들었어요. 신천관은 뭐…. 비교도 되지 않죠.”
“대체 뭐하러 이렇게 크게 지었대요?”
“대부분은 무공을 익히지만, 모두 무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시서예화 같이 예술을 배우는 곳도 있고, 군략을 배우는 학방도 있죠. 괜히 정파무인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에요.”
“차라리 내 월봉이나 올려주지!”
저기 기와지붕 몇 개만 뜯어가도 몇 배는 더 벌 텐데!
가슴으로 울고 있자니, 여매홍이 물어왔다.
“이제 길은 잃지 않겠네요. 참, 관도들과 안면은 익혔나요?”
“관도들이라니요?”
“담당하게 된 관도들과 통성명을 했느냐고요.”
담당? 관도? 통성명?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매홍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설마…. 아직 관도들을 배정받지 못했나요?”
“관도들은커녕 못생긴 교관들 심부름만 했는 걸요?”
특히 염광이라던가, 염광이라던가, 염광 같은 사람 말이다.
여매홍은 꽤 놀란 듯했다.
“입관한 지 열흘이나 지났는데 담당 관도들을 본 적이 없다고요?”
“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쭐레쭐레 동천관에 들어서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염광이 자잘한 심부름을 던져주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듣던 여매홍이 되물었다.
“그동안 무슨 일을 시켰는데요?”
“연무장 청소나, 뒷마당에 있는 난초들 물주기. 가끔 박살 난 나무 인형을 고치는 일이요.”
“악! 그건 교관이 아니라 시설관리인이 하는 일이잖아요!”
“뭔가 다른가요?”
“다르죠! 우리는 교관이라고요! 관도를 가르치는 교관!”
빽 소리를 지른 그녀가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리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딱히 초 교관님에게 화를 내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응, 알고 있어요.”
덕분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염광이 수작을 부린 모양이군.’
그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볼 때면 흉계를 꾸미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왜 굳이 담당 관도들을 붙여주지 않은 거지?’
의문은 곧 풀렸다.
“뭐요? 매월 관도들끼리 비무를 시킨다고요?”
“맞아요. 교관의 능력은 얼마나 잘 무공을 가르치냐잖아요. 주기적으로 관도들의 성취를 겨루는 것이 가장 좋은 검증 방법이죠.”
꽤 효율적인 방법임은 인정한다.
매월 성취를 비교하면 교관도 관도도 가르침과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겠지.
문제는.
“인사고과 반영이라니!”
실적이 없으면 쫓겨난다는 점이다.
‘실력 가르칠 관도도 없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
쿵쿵쿵쿵.
발을 구르며 들어서는 초운휘를 보며 충현이 울상을 지었다.
“이번엔 또 뭔가?”
“관주님.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어떻게 돼?”
“왜 저에게는 관도들이 배정이 되어 있지 않은 겁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갸웃거린 충현이 염광을 보며 물었다.
“염 교두. 어찌 된 일인가? 업무인계를 하지 않았나?”
염광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어떻게 알아챘지?’
계획은 간단했다.
관도들을 배정하는 것은 교두인 자신의 일.
적당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시간을 보내게 하다, 부진한 실적을 이유로 쫓아내려 하였다.
‘여매홍. 저년 때문이군.’
그녀가 최근 저 관심종자와 함께 다니더니, 이런 사달이 일어났다.
‘뭐, 다 방법이 있지.’
염광은 모르는 척 말을 받았다.
“사실 관도들을 배정하려 했습니다. 문제는 관도들이 초 교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더군요.”
“만난 적도 없는데 언제 봤다고 절 평가 하나요?”
저 입 싼 녀석이.
염광이 재빨리 덧붙였다.
“초 교관을 생각해 나름 괜찮은 인재들을 선별했습니다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이름도 없는 작자에게 배우기는 자존심이 상한다더군요.”
“그런가?”
가끔 있는 일이다.
다른 곳도 아닌 똥천관, 아니 동천관의 교관은 실력이 가장 일천하기로 유명하니까.
실제로 교관의 실력이 눈에 차지 않는다며, 정규 지도를 받기보다 외부 고수를 초빙하거나,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일단은 초 교관도 일을 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제가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보게. 염 교두. 나는 매일 일어나는 사고 사건에 머리가 아파. 내 꿈이 뭔지 알지?”
“이 폭풍 같은 동천관을 벗어나, 은천관에서 편안하게 보내다 퇴직하는 것이지요.”
“잘 알고 있군. 동천관에 부임한 이래로, 내 머리가 반은 빠졌어. 더 이상 내 모근을 괴롭히지 말아 주게나.”
숫제 울먹이는 그를 보며 염광은 고개를 숙였다.
“초 교관은 나를 따라오게.”
***
뒷마당으로 부른 염광은 예의 짝다리를 짚으며 침을 뱉었다.
“그새를 못 참고 주둥이를 놀려?”
이건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한 대 칠까?’
일격필승은 좋은 대화 방법이지.
어둠의 성격이 스멀스멀 빠져나오려는 순간, 염광이 뭔가를 휙 던졌다.
“네가 담당할 관도들이다.”
“전부 다요?”
명부에 적힌 이름은 대략 스무 명. 적지 않은 수였다.
“원래라면 모든 관도들을 담당하는 것이 맞아. 명색이 정파의 요람인 신무학관은 공정한 절차를 중요시하니까.”
굳이 ‘공정한 절차’에 강조를 하며 그가 말했다.
“뭐, 할 수 있다면 말이지.”
***
명부를 받은 초운휘는 관도들을 찾아갔다.
벌써 열흘이 지났다.
앞으로 비무까지는 약 스무날.
하지만 한둘도 아니고, 실력을 확인하고, 지도방침까지 세우려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작부터 생겼다.
“구 소협이요? 안 들어왔는데요?”
“안 들어와?”
“일이 생겼다고 자리를 비웠어요.”
이게 무슨 일이래.
하지만 초운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동천관은 자유시간이 많은 편이니 이런 경우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아, 됐습니다. 전 별로 생각이 없어요. 전 구백철권 양 교관님께 배울 생각입니다.”
“전 조법을 익힙니다. 애초에 가전무공도 아닌 단체 훈련은 관심 없어요.”
“사문의 어르신께서 직접 사사해주시고 계세요. 교관님이 사백님보다 세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을 하는 탓에,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관도 하나 만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의욕이 없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자신을 아주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내가 뭘!’
바닥을 득득 긁고 있는데, 여매홍이 다가왔다.
“관도를 구하는 일은 성공했나요?”
“그게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소문? 무슨 소문 말입니까?”
“염 교두가 관도들을 부추겨 초 교관님의 험담을 하고 다닌 모양이에요.”
그녀에 따르면 염광은 친한 관도들을 부추겨 안 좋은 소문을 만든다는 모양이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뒷돈을 요구하니 조심하라.
남색을 즐기니 가까이 가지 마라.
딱 이런 식이다.
“남색이라니! 누구 혼삿길을 막으려고!”
“화를 내는 지점이 틀렸잖아요!”
틀리다니.
엄청 중요하다.
애초에 신무학관에 들어온 것도 옛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니까 말이다.
‘이런 헛소문이 퍼져나가도록 놓아둘 수 없어.’
어딘가 숨어 있을 연인을 찾기 전에 쫓겨나고 싶지는 않다.
“대체 제게 이러는 이유가 뭘까요?”
“염 교두는 능력이 특출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든 쫓아내고 마는 성격이니까요.”
“후자는 그렇다 쳐도, 전자는요?”
“자신의 경쟁자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이죠, 뭐.”
“왜 제가 마음에 안 들까요?”
“일단 자기보다 젊은 교관들은 대체로 싫어하세요. 특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더욱 싫어하죠.”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군요.”
자기주장이 뭉쳐 팔다리가 돋아난 초운휘가 탄식했다.
“괜찮으세요?”
“이렇게 된 것. 저도 지저분한 방식으로 가볼까요?”
“관두세요. 교관들 사이의 싸움은 즉결처분감이라고요.”
“몰래 가서 몇 대 쥐어박는 것은 괜찮을 것 같은데….”
초운휘의 말에 여매홍이 호호 웃었다.
“아서요. 비록 성격은 뒤틀린 사람이지만, 실력은 진짜배기에요. 절정고수라고요.”
“절정이든 절륜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은 받아 버릴 생각입니다.”
“무림맹에 인맥도 많다고 들었어요. 부딪히면 좋은 꼴을 보기 힘들 거에요.”
여매홍이 말했다.
“일단은 관도부터 구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염 교두가 훼방을 놓는데, 가능할까요?”
“그래서 제가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뒀어요.”
도움을 줄 사람?
싱긋.
그녀의 미소가 유독 화사하게 빛났다.
***
놀랍게도 여매홍이 데리고 온 사람은 은천관의 교관이었다.
딱 봐도 윤기가 좔좔 흐르는 비단 정복을 입은 여인은 흑백이 선명한 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대뜸 말했다.
“이 사람이니?”
“네, 언니.”
“듣던 거랑은 너무 다른데? 성격은 모르겠지만, 외모 쪽은 영….”
“언니!”
얼굴이 붉어진 여매홍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꾹꾹 찌르자 여인이 까르르 웃었다.
“호호호. 이런 날도 있네. 참 소개부터 하죠. 저는 모용선야라고 해요. 은천각의 교관을 맞고 있답니다.”
“동천관 교관 초운휘입니다. 방년 이십 오세. 딱 결혼적령기 무림인이죠.”
“호호호호.”
대답에 한참을 웃던 모용선야가 눈물을 좍좍 뽑으며 말했다.
“네가 말한 것 중에서 한 가지 맞는 것은 있구나.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
“어, 언니.”
“언제나 딱딱한 매홍이를 놀릴 기회가 올 줄이야. 이런 좋은 기회를 주어 감사해요, 소협.”
그녀는 여매홍과 꽤 친해 보였다.
한두 해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 것 같아 보여,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두 분은 아시던 사이입니까?”
“네, 선야 언니와는 신무학관 동기랍니다.”
“언제 이 지겨운 학관을 나가나 했는데, 이렇게 교관이 될 줄은 몰랐지 뭐예요.”
두 사람도 신무학관 출신이었군.
어떻게 여매홍이 신무학관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염 교두는 원래 저랬습니까?”
“맞아요. 저희가 학관을 다닐 때도 유명했죠. 뒷소문이 안 좋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그런데 어떻게 멀쩡하게 교두직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염 교두가 꽤 처신을 잘하거든요. 상급자에게 꼬박꼬박 상납금을 바치니, 선을 넘지 않는다면 굳이 쫓아낼 이유가 없죠.”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강약약강의 인물이라는 평이다.
“어쨌든 덕분에 맨몸으로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쉽지 않아요. 가장 좋은 것은 어떻게든 관도들을 포섭하는 방법이지만….”
염광이 손을 쓴 이상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결국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드는 쪽이 가장 현실적이겠네요. 초 소협. 한번 전설을 써보겠어요?”
“전설이요?”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 있어요. 성공만 한다면 파격적인 인상을 줄 수 있겠죠.”
“언니, 설마.”
“설마가 아니라, 맞아. 어때? 파격적이지만 효과적이지?”
“성공한다면 그렇지만, 그분, 아니,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이기에 그럴까?
의아한 시선에 모용선야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남궁윤호.”
남궁 성씨를 쓴다면, 천하제일가의 자손이라는 뜻 아닌가?
남궁세가의 적자가 동천관을 다닌다고?
“소검룡. 남궁용호의 형이에요.”
심지어 가주의 장남이다.
그녀가 덧붙였다.
“남궁세가의 수치. 동천관의 지박령. 그라면 염광 교두의 손이 미치지 못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