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적령기 무림교관-58화 (58/194)

제17장 선택 강요 (3)

콰앙!

“커헉!”

벽을 부수며 튀어나온 주먹에 염광이 비명을 질렀다.

우두둑.

척추가 뒤틀리는 고통에 염광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부지불식간의 습격에 주겸이 섬광처럼 검을 뽑아 들며 벽을 마구잡이로 베었다.

쐐액! 쉬쉬쉭!

벽이 터진 충격을 반동으로 삼아 신형을 반전시킨 후 일으켜낸 쾌검.

실로 기민한 대응이라 할 만했지만, 벽을 뚫고 나온 괴인 또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쳇. 여기도 숨어 있었나?”

땅. 따다다다당.

허공에 생겨난 검은 손바닥이 수십 개로 분화하며 검신을 튕겨냈다.

그제야 주겸은 상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건한 체구에 온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었는데, 옆구리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피막이 도드라지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손에 낀 검은 수투.

이것을 본 주겸이 비명처럼 외쳤다.

“은월비적 곤야평!”

“흥! 노부를 알아보다니, 아해가 제법이구나!”

검은 장갑이 한층 더 어지럽게 움직이자 골목 안이 어지러운 손 그림자로 가득 찼다.

따다다다다당! 핑!

연거푸 이어지는 장세에 은천관 교관들이 일제히 검을 어지럽게 휘저으며 검벽을 일으켰다.

“사파의 괴악한 도적이 이곳은 무슨 일이냐!”

“죽을 놈은 알 것 없다.”

쉬익!

코앞에 쇄도하는 곤야평에 주겸이 전력으로 쾌검을 펼쳤다.

십 보 안의 적이라면 당한 것도 모른 채 죽어간다는 필살의 절초.

“응?”

검에 담긴 기세를 읽은 곤야평이 두 팔에 힘을 주자, 피막이 펼쳐지며 신형이 허공에서 휙 꺾였다.

탓. 타타타탓.

마치 박쥐처럼 허공에서 몇 번이나 방향을 틀어 피해내는 기이한 신법에 주겸이 이를 악물었다.

‘진짜 은월비적이다. 저 기괴한 신법은 부유비공이 분명해.’

상황이 좋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한층 더 위력을 발휘하는 신법은 상성이 최악이었다.

쉬익.

어느새 벽을 차고 날아와 장법을 뿌리는 은월비적에 주겸이 전력으로 공력을 끌어 올렸다.

쩌엉!

“크윽.”

두 걸음이나 밀려났지만 주겸의 안색이 밝아졌다. 생각보다 장력에 담긴 공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 늙은 도적놈이 부상을 입었다. 포위하고 시간을 끌어!”

어지럽게 쏟아지는 손 그림자를 쳐내며, 주겸이 회심의 미소를 띠던 찰나.

푹. 푹푹.

무릎과 발목에 일어난 격통에 주겸이 비명을 질렀다.

“크, 크악!”

척추를 타고 올라 머리끝까지 관통하는 강렬한 통증에 검법의 축이 되는 하체가 휘청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허공에서 선회해 날아온 은월비적 곤야평의 장세가 무자비하게 가슴과 턱을 찍고, 복부와 단전을 걷어찼다.

뻑. 뻑뻑.

“케헤헥!”

허공에 솟구치는 시야 속에서 핏물과 함께 새하얀 이빨 몇 개가 튀어 올랐다.

뻑. 뻐버버벅.

이어지는 장세에 허리와 옆구리를 격타당한 주겸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졌다.

***

“주 교관님!”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고꾸라지는 주겸에 염광이 빽 고함을 질렀다.

이미 초운휘는 안중에도 없었다.

상대는 악명 높은 사파의 고수이자, 가장 고수인 주겸마저 속수무책으로 패퇴시킨 고수.

목숨이 먼저였다.

땅! 따다다다당!

주겸의 목을 벽에 찍어 버리고는, 또 다른 상대를 찾아 장세를 뿌리는 신출귀몰한 모습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어딜!”

다만, 은천관의 교관들 또한 녹록한 이들은 아닌지라, 본능적으로 뭉치며 검진을 펼쳤다.

옆구리에 피가 번지는 비적으로서는 견고한 신무학관의 검진을 뚫어낼 수 없을 터.

이곳에 비적을 묶어두고 시간을 끈다면 소란을 들은 무림맹의 고수들이 달려올 것이라 생각한 조치였다.

“쳇. 합공이라니, 정파의 개들이 부끄럽지도 않더냐?”

잠깐은 꽤 먹혀들었다.

문제는 은월비적 곤야평이 왼손을 기이하게 흔들자 생겨났다.

픽! 피픽!

“크어억!”

어지럽게 신법을 펼치며 손을 휘저으니, 교관 한 사람의 손목에 핏물이 터져 올랐다.

아롱지는 피 분수 속에서 요요하게 반짝이는 실을 본 염광이 비명을 질렀다.

“천잠사?”

“눈썰미가 제법 있구나!”

천잠사라니.

질기기가 강철과 같고, 예리하기가 칼날과 같다는 기물이 아닌가.

귀하기가 비할 데 없어, 같은 무게의 열 배나 되는 금을 주어도 구할 수 없다는 은잠사를 눈 아래로 보는 기물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놀랍게도 탄성이 뛰어난 천잠사를 마치 연검처럼 휘두르자,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피잉-!

놀랍게도 천잠사가 검에 감기자, 검기마저 사그라들며, 검이 뚝 부러졌다.

“울컥.”

검기가 강제로 깨지자 공력이 진탕된 교관 하나가 피를 토했다.

“사 교관!”

검벽을 펼치던 교관 하나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순식간에 들이닥친 은월비적 곤야평의 장영이 그를 덮치고 있었다.

뻑! 퍼퍼펑!

“우웩!”

팔다리가 이상하게 꺾인 채로 동료가 주저앉자, 남은 이들은 경악했다.

‘은월비적의 무공이 이렇게 강했나?’

소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다음은 네놈이다!”

쩌엉!

당황한 교관들 사이로 뛰어든 곤야평이 어지럽게 장법을 펼쳐내자 남은 세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검을 펼쳤다.

땅. 따다다당.

펑. 퍼퍼퍼펑.

검과 손이 어우러지며 골목에는 요란한 콩 볶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윽. 제법이구나.”

부상이 적지 않은지 곤야평은 우세를 몰아치면서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일진일퇴의 공방.

먼저 손이나 검을 멈추는 쪽이 진다.

순식간에 검광과 장영이 어우러지며 백여 초식이 지나갔다.

견고하게 한축을 버티던 교관 하나가 복부를 감싸며 신음을 삼켰다.

“커헉.”

뻑. 뻐버버벅!

순식간에 장영에 갇힌 교관이 실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흔들리더니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동료의 단전에 비죽이 솟아난 물건을 보며 동료의 눈이 돌아갔다.

“이런 비겁한 놈! 암기를 쓰다니! 컥!”

노성을 지르던 교관이 펄쩍 뛰었다. 이내, 그 또한 어지럽게 피를 뿌리다가 고꾸라졌다.

동료가 모두 쓰러지자, 마지막으로 남게 된 은천관 교관 관색은 난감해졌다.

‘젠장. 운도 없군.’

사실 관색은 오늘 따라올 생각이 없었다.

우연히 엿들은 이야기에 초운휘라는 자가 걱정돼서 따라온 것일 뿐.

‘모용 교관과 친분이 있기에 도우려 한 것뿐인데.’

워낙 손속이 지독한 이들이라, 만류하려 했더니, 은월비적과 마주치게 될 줄이야.

‘어쩔 수 없지. 강호인의 인생은 칼날 위에 선 것.’

마음을 정한 관색이 검을 세워 은월비적 곤야평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으아아아! 사람 살려!”

엉금엉금 기어 도망치는 염광은 채 돌아보지도 않고, 어두운 골목 한켠을 지긋이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방심을 유도하려는 건가?’

검을 세운 채 그를 살피기를 잠깐.

“쳇. 좋지 않군.”

어둠을 노려보던 곤야평이 신형을 뽑아 올리며 피막을 펼쳤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을 타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관색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괴인의 작은 변덕이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호각을 꺼낸 그가 전력을 다해 불었다.

삐이이이익-.

무림맹의 긴급 호각이 메아리를 치며 울려 퍼졌다.

***

삐이이이익-.

저 멀리서 들려오는 호각 소리에 염광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헉. 헉. 헉. 뭐야.”

왜 이렇게까지 되는 거지?

사파의 괴수가 무한성에는 어째서 있는 것일까.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하늘처럼 여기던 은천관의 교관들이 속수무책으로 피를 뿌리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따닥. 따닥. 은월비적이 그렇게 강했다고?”

잘근잘근.

두려움에 떨리며 부딪히는 이빨 사이로 밀어 넣은 엄지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염광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건. 악몽이야. 악몽이라고.’

예상에도 없던 일이다.

오늘의 계획은 간단했다. 남궁세가로 향하는 얄미운 놈을 적당히 손봐주는 것.

그것이면 끝이 났을 하루다.

오늘을 위해 자신이 아는 인맥을 동원했고, 돈도 엄청나게 썼다.

분명히 실패할 구석은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으으으. 이건 악몽이야, 악몽.”

하지만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가?

[고작 도망친 게, 여기야?]

절대 이곳에서 들을 것이라 생각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염광이 돌아본 곳에는.

“아, 아무것도 없잖아.”

환청이라도 들은 건가.

싶은 순간 귓가에 예의 목소리가 소곤거렸다.

[이쪽이야. 이쪽.]

“으아아아악!”

벌벌 떨던 염광이 어지럽게 고개를 뒤틀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

“사라져! 사라지란 말이야!”

이 목소리는 뭐야.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악에 받친 염광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제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르는지 쉬지 않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때야 비로소.

골목에서 작은 인형이 생겨났다.

“초, 초 교관?”

하지만 살펴보니,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지독하게 머나먼 존재.

어둠을 후광처럼 두른 채, 붉은 눈을 요요하게 빛내는 것은.

‘흡사, 요괴.’

절대로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초 교관이라 생각한 거지?

그는 적어도 인간일진대.

“으아아아아아아….”

지독하게 두려운.

상상 너머의 상상조차 닿기 힘든 기괴한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옆구리는 괜찮아?]

여, 옆구리는 왜?

더듬더듬 내려다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런. 옆구리가 찢어졌잖아.]

정말이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옆구리가 죽 갈라져 허연 뭔가를 꾸물꾸물 뱉어내고 있었다.

동공에서 빛이 사라진 염광이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옆구리가 찢어졌네.”

들고 있던 칼로 북북 긁어내자, 조금 시원해졌다.

[저런. 팔목은 왜 부러진 거야.]

“그렇네. 팔목이 부러졌어.”

왼손을 수도로 만들어 몇 번을 내리치자 오른 손목이 덜렁거렸다.

[다친 것을 보게. 안쓰럽기도 해라.]

퍽. 퍽. 퍽.

표정이 사라진 염광이 주먹으로 제 얼굴을 쉬지 않고 두들겼다.

입술이 터지고, 눈두덩이 부어올랐지만, 쉬지 않았다.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하는 얼굴에도 염광은 홀린 듯이 입술만 달싹거렸다.

퍽. 퍽. 퍽. 퍽. 퍽.

기계적으로 제 몸을 내리치는 소리가 골목 안에 가득 찼다.

그리고 한참 후에 들이닥친 무림맹의 무사들이 발견한 것은 어린아이가 빚다 버린 만두처럼 엉망이 된 염광의 모습이었다.

***

“후우우우우우.”

긴 숨을 뱉어내는 남궁윤호가 반개하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쓰는 존재를 돌아봤다.

“형. 왜 그런 거야?”

문가에 기대선 남궁용호는 꽤 납득이 안가는 얼굴이었다.

“왜 숙부를 화나게 한 거야? 드디어 가문에 돌아올 기회잖아. 이런 기회는 또 없다구.”

“용호야.”

“정말 형이 이해가 안 가. 그렇게 고생만 하다 좋은 기회를 잡았는데, 왜 자꾸 튕기는 거야? 아, 맞다. 더 좋은 조건을 원해? 내가 이야기해볼까? 형은 몰라도 내 말은 잘 들어 주잖아.”

어떤 조건이면 좋을까.

세가의 고급검법을 익히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때. 가문의 요직을 달라고 할까?

실세가 되고 싶다면, 자금을 담당하는 다리를 달라고 하는 건.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동생을 바라보던 남궁윤호가 남궁용호를 불렀다.

“용호야.”

웃으며 떠들던 남궁용호의 안색이 돌변했다.

“왜 안 받아들이는 거야! 왜!”

“…….”

“정말 숙부의 말대로야? 정말 내 자리가 탐나서 그래? 내가 소가주가 되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러냐고!”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는 남궁용호는 자신이 알던 아이가 아니었다.

울며 사탕을 조르던 아이가, 언제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결국, 남궁용호가 선택한 것은 조소였다.

“오늘 밤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지? 왜? 그 잘난 교관이라는 작자가 오면 달라질 것 같아?”

“…….”

“형은 숙부를 모르는 모양이네. 그 잘난 교관은 못 와. 치밀한 숙부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아?”

처음으로 남궁윤호의 눈꼬리가 들썩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다시 평온한 신색으로 돌아오자, 결국 지친 쪽은 독설을 쏟아내던 남궁용호였다.

그가 경고하듯 말했다.

“숙부가 오래. 이제 결정한 시간이야. 처음으로 가문의 기대에 부응할 기회잖아? 고집 그만 부려.”

쿵.

거세게 닫히는 문을 바라보던 남궁윤호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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