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적령기 무림교관-122화 (122/194)

제34장 신무강호행 (1)

무한장의 백리선호는 방문객을 받았다.

최근 다시 기력을 회복한 백리정순이 살림을 맡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는, 예상치 못한 이의 방문에 깜작 놀랐다.

“모용주! 자네가 웬일인가?”

모용주와 백리선호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함께 무림맹의 중책을 맡은 것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꽤 친분이 있던 것도 사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가 아는 모용주는 이렇게 말도 없이 찾아올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꽤 바쁘다고 들었는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한성에 있는 모용세가의 지부를 챙기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할 이야기라니?”

“신무강호행에 대한 것일세.”

신무강호행.

신무학관이 주관하는 ‘강호행’을 외부 인사들이 부르는 호칭이다.

“신무강호행이 왜?”

“가만히만 있을 생각인가?”

가만히 있다니?

“뭔가 지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일세.”

“지원이라….”

확실히 가문에서 강호행에 각종 편의를 봐주는 경우도 있긴 하다.

명성 높은 문파일수록 각지에 지인이나 관계 문파들이 있었고, 이들에게 슬쩍 말을 남기는 것이다.

- 본 가의 아이가 강호행 중에 자네 문파를 들른다면 잘 좀 보살펴 주게.

그럼 알아서 눈치껏 강호행이 잘 끝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고는 한다.

공식적으로는 외부의 지원은 불가하다는 것이 방침이지만, 이런 식의 지원은 마땅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알면서도 은근히 방조하는 경향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강호행의 수행이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백리선호는 미간에 주름부터 잡았다.

“지원에 대해서는 알고 있네. 하지만, 굳이 필요하겠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규정 위반 아닌가.”

규칙과 규정을 준수하는 편인 백리선호로서는 영 내키지 않았다.

“초 교관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태평한 대답에 모용주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자네. 우리 소혜의 일을 듣지 못했나?”

“소혜가 왜?”

“초 교관이 내 손녀를 나흘 밤낮으로 부려 먹은 일 말일세.”

“그런 일이 있었던가?”

뒤이어 새벽이슬에 쫄딱 젖은 채 노동에 시달리던 끔찍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방학 때만 해도 그래!”

“음.”

“갑자기 아이들이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던가?”

“엄청나게 놀랐지.”

사람을 풀어 온종일 무한성을 들쑤시고 다녔다.

- 모용 관도라면 초 교관과 함께 소풍을 간다고 했습니다.

문지기가 모용소혜의 거취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몇 날이고 아이를 찾아다닐 뻔했다.

최악은 사달을 일으킨 작자의 반응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소풍을 다녀왔는데요?”

잘못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었다.

한 달 동안 잠수 탄 작자의 대꾸라고 하기에는 영 성의도 없었다.

“살았어. 이제 문명이야.”

“으아아아. 집이에요.”

등 뒤에 감격하는 아이들의 반응도 성질을 돋웠다.

모용주의 절절한 외침이 이어졌다.

“문제는 돌아와서야!”

“무슨 짓을 했는지 소혜에게 이상한 괴벽이 생겼어!”

“연못가의 조약돌로 화살촉을 만드는 취미가 생겼다고!”

“내 귀여운 손녀에게 말일세!”

백리선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확실히 초 교관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람이지.’

본인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관도의 편의부터 내팽개칠 위인이다.

제법 사람을 잘 본다고 자부하는 백리선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장에 쿵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설이를 위해 뭔가를 하긴 해야겠구나.’

몹시 불쌍하게 자라온 백리설이다. 그간의 사정을 아는 그는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졌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나?”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겠나?”

“무한성 인근과 안휘성에 있는 지부들에 연락을 돌리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초 교관이 멋대로 야생으로 가버리면 곤란한 일 아닌가.”

둘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았다.

“으음… 좀 부족한데.”

“아무래도 비공식적인 지원이라 한계가 있군.”

무엇보다 이런 은밀한 일은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또 다른 조력자에 대해 생각이 닿았다.

“남궁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떤가? 남궁 씨의 아이도 있던 것 같던데.”

“무리야. 자네는 남궁가 적손에 대한 일을 잊었는가?”

“아.”

마음이 급해 잊고 있었다.

재능을 이유로 장남을 버리고, 차남을 취한 선택은 한동안 쉬쉬하던 사실이니까.

‘뭐, 재능을 보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남궁세가와의 협력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맞아. 제갈세가.”

“제갈세가의 아이도 있었지.”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은밀히 계략을 베푸는 일이야, 우리보다 제갈가 쪽이 더 매끄럽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렇군. 왜 미리 생각을 못 했지?”

이마를 친 두 사람이, 부산하게 외출을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갈세가의 장원에 닿은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서서히 열리는 문틈 너머로 기다리고 있는 인물을 말이다.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은 관모에 학사의를 차려입은 중년인.

“신무강호행의 일이지요?”

제갈세가의 무한지부를 돌보는 이, 제갈양소였다.

***

동천관 교관실.

그곳에서 충현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여.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알겠나?

전에 없이 강렬한 어조에 파견조 임시 교관들이 일제히 몸을 곧추세우며 “예옙!”이라고 대답했다.

“좋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을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세.”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더 중요해.”

“내가 ‘절대!’라 외치면, ‘안전!’이라 복창하게.”

절대! 안전!

덧붙이자 곁에서 조현 교관이 양 교두에게 소곤거렸다.

“걱정까지 해주고. 웬일이래요?”

“다쳐서 돌아오면 안 그래도 부족한 노동력이 더 부족해질 테니까.”

“역시.”

“어제 학무원에 충원을 요청했다가, 면박만 받고 돌아오신 모양이야.”

“저런-.”

이런저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절대! 다쳐서 돌아오지 말게.”

그렇게 말을 한, 충현은 임시 교관들 하나하나 앞을 스쳐 가며 외출패를 쥐여 주었다.

그러던 중 초운휘 앞에 멈춰 섰다.

“초 교관. 왜 졸고 있나?”

“안 졸았습니다.”

“입가에 침부터 닦고 말하게.”

스으읍.

입가를 훔치는 모습에 임시 교관들이 서로 발치나 천장 등을 바라보며 ‘또 시작이네’를 연발했다.

충현이 깐깐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제대로 들은 것 맞아?”

“진짜 잘 듣고 있었다니까요.”

“내가 뭐라고 했는데.”

“좋은 아침일세? 라고 했죠.”

“전혀 안 듣고 있었잖아!”

와악 화를 낸 충현이 초운휘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왜 내 모근에게 평온을 주지 않는 거야!”

“정말 내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 것 보고 싶어?”

“강호행 직전까지 꼭 이래야 하는 거냐구!”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충현을 떼어내며 양 교두가 외쳤다.

“자네들은 초 교관 데리고 가고!”

“으아아아아아!”

“관주님! 관주님! 고정하세요!”

동천관의 하루일과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제길. 또 벌점이야.”

이건 정말이지 애석하다.

살짝 존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초운휘도 할 말이 있었다.

“벌써 닷새째 이런 것을 만들고 있다고.”

손에 들린 것은 ‘강호행 일정표’.

도무지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며 장철심 상급 교관이 콕 찍어 요구한 것이다.

“제길이라도 있었다면, 시켜 먹었을 텐데.”

강호행 준비로 바쁘다며 두문불출하는 터라, 직접 귀찮은 문서작성까지 해야 했다.

그 결과는?

‘번번이 탈락이지, 뭐.’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꽤 고민해서 상세하게 적어 넣었으니까.

“오늘은 꼭 통과하고 만다.”

필승의 다짐을 하며, 쿵쿵 바닥을 찍었다.

***

“탈락이야.”

팔랑.

당당히 들어선 상급 교관실에서, 돌아온 것은 허공을 유영하는 계획표였다.

‘내 공들여 짠 계획표가.’

울적하게 발치에 내려앉는 계획표를 주워들고 있자니.

“다시 만들어 오게.”

장철심의 한마디가 뒤따랐다.

울컥.

닷새간의 고생이 허공으로 날아가자, 초운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나?”

“알면 이러고 있겠습니까?”

“그것부터 문제였군.”

끙-.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초운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벌써 닷새째.

강호행을 코앞에 둔 마당에 계속해 수정을 요구하는 장철심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애초에 강호행은 임시 교관의 재량에 맡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재량도 정도껏이지.”

“이건 월권행위입니다!”

불퉁한 표정을 지긋이 보던 장철심이 손가락을 튕겼다.

“자네의 계획을 한번 읊어 보게.”

어렵지 않지.

“첫째 날.”

첫째 날. 무한성을 나간다.

참고: 나가기 전 챙겨야 할 것. 만래옥의 주전부리. 호두가 맛있다.

“시작부터 이상하지 않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다시 읽어 보게.”

다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둘째 날. 가도(假道)를 걷는다.

셋째 날. 가도(假道)를 걷는다.

“그나마 가장 멀쩡한 계획이군.”

어중간한 칭찬에 고무되어, 계속해서 계획표를 읽었다.

열흘째. 아마 황강에 도착.

다과점에 들려 전병을 산다. 구워 먹는 전병 맛집.

선물은 올 때 들러 산다.

전병은 눅눅해지면 맛이 없거든.

열 닷새째 날. 영산에 도착?

영산철방에 들린다.

은제품으로 유명한 곳이니, 은비녀를 사면 좋겠다.

XX날. 소호에 도착.

꽃 배를 탄다.

배에서 술 마시며 구경하는 야경이 그렇게 좋다던데.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주르륵 읽어가던 초운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문제가 없는데요?”

“문제가 없어?”

장철심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얼굴이 시뻘게지는 것이 당장에 폭발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자네. 강호행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꽤 긴 장거리 여행 아닐까요?”

“첫 실전 경험이야! 실전 경험!”

콰앙!

책상을 내리친 장철심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개고생을 하며 준비를 하는 것이 탱자탱자 놀러 가라고 하는 줄 아나?”

“강호에 첫발을 내딛는 어린 관도들에게 세상의 날것을 보여주고,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함이야!”

“식견을 쌓을 귀한 기회를 뭐? 맛집? 관광지 탐방에 날린다고?”

에라이-!

책상을 쾅쾅 치는 장철심은 꽤 무서웠지만, 초운휘도 할 말이 있었다.

“원래 애들은 놀면서 크는 겁니다.”

수련만 반복하는 일상이라니.

불쌍하지 않은가 말이다.

“또, 마냥 노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구경이죠.

각자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니까.

“수십, 수백 년 전 만들어진 무공만 죽어라 파서 얻을 것이라고는 고루한 주변머리 아닙니까?”

철전도 셀 줄 모르는 애송이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공비급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깨달음의 단초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장철심이 혀를 찼다.

“이유는 잘 가져다 붙이는군.”

농땡이만 피는 주제에.

하지만, 초운휘는 당당했다.

“제가 조금 방목 파라서요.”

“방목은 어디까지나 방목이야. 정교한 계획과 빈틈없는 과목을 넘어설 수 없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로 장철심이 말했다.

“다시 짜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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