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적령기 무림교관-142화 (142/194)

제37장 장천문 (1)

정면을 노려보는 독고율의 표정은 실로 무서웠다.

외눈이 만들어내는 안광은 마주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렸고, 이것은 적들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았다.

“잡스러운 짓을 하다니.”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마주하고 있던 주변을 포위한 검사들이 흠칫 떨었다.

“너희들은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준엄한 선언에 적들의 동공이 갈팡질팡 흔들렸다.

스스로가 대단한 고수라 자부하고 있음에도.

상당한 인원이 포위하고 있음에도 당장 사신의 칼날이 목에 드리워진 것 같았다.

‘상황이 좋지 않다.’

습격을 이끈 배신조의 우두머리는 생각했다.

‘사기를 올려야 해.’

다행히 먼저 나서는 이가 있었다.

“독안신검. 네가 꽤 명성을 날린다고는 해도-.”

가장 먼저 나선 이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촤악!

손이 흔들린다 싶은 순간, 번개 같은 일격이 터져 나오며 가슴을 베어 버린 탓이다.

“무슨-.”

검광이 번뜩인 것을 본 것이 고작이었다.

촤! 촤착!

그것만으로 세 개의 죽음이 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쾌검!”

검광이 번뜩인 것을 포착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강하다는 습격조의 조장조차 검영(劍影)을 눈으로 뒤따르기 어려웠다.

‘강호의 명성은 헛되이 생겨나지 않는다더니.’

회의 판단은 착오였다.

‘아직 다 크지 않은 호랑이가 아니었어.’

이미 다 자라난 범이다.

등에 날개가 돋아나 하늘과 땅을 유린하는 괴물이다.

쉬익!

착오의 대가는 참담했다.

독안신검이 스쳐 지나가면, 병장기와 함께 동료가 쪼개졌다.

촤악! 채앵!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애써 모아온 정예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개죽음이야. 각성석이고 뭐고,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해야.’

조장은 싸울 생각조차 포기했다.

마음으로부터 절망한 것이다.

등을 돌려 달아나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꾸---웅!

천지가 요동치는 굉음이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땅이…. 흔들리고 있어?’

드드드드.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와지직!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거목의 숲이 크게 흔들리더니, 충격파에 휘말려 잡초처럼 나부꼈다.

뒤이어 나타난 것은 거대한 화염의 용.

화르르르르륵!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화룡이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나타났다.

드드드드드드-.

그와 동시에 광풍에 휘말려 흔들리던 나무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했다.

이를 살라 먹으며 몸집을 키운 화룡이 거대한 용틀임을 했다.

고오오오오오오-.

실로 지상에 천상의 화룡이 강림한 듯한 압도적인 모습.

“염화광도. 빌어먹을.”

한순간에 작은 숲을 잿더미로 만드는 위업을 보니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회에 가장 충성심이 높은 조장이 그럴 정도였으니, 억지로 끌려온 동조자들은 볼 것도 없었다.

‘저 괴물마저 합류하면 정말 끝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쳐야 해.’

‘늦어지면 도망칠 기회도 사라진다.’

인간의 격을 벗어난 압도적인 강자들에게, 자신들은 한낱 소모품도 되지 않음을 직감한 것이다.

“모두 피해!”

하지만, 판단은 너무 늦었다.

콰라라라락!

재차 터져 나온 화염이 포위망의 뒷부분을 강타한 순간.

“크악!”

“아악!”

열기에 녹아 버린 동료들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잿더미로 화했다.

“제길.”

잇소리를 내던 순간, 외눈에 살벌한 안광을 피워내던 독고율이 사라졌다.

그리고 생겨난 것은 아름다운 은빛의 선.

‘어디냐! 어디로….’

재빨리 눈알을 굴리던 사내는 가슴이 불에 덴 듯 뜨거운 것을 깨달았다.

촤아아악!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혈무에 사내는 깨달았다.

‘지랄맞게 빠른 검이군.’

사내가 쓰러지며 떠올린 유언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파삭. 파삭.

새까만 숯이 되어버린 옛적의 숲을 나아가자, 너머에서 비교적 온전한 바위에 앉아 기다리는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 대협.”

염화광도 마길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당한 자들이었네. 염룡출현을 펼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염룡출현.

아까 본 염룡을 일컬음인가?

머릿속에 염화광도에 대한 정보를 하나 넣어두며, 독고율이 물었다.

“마 대협께 본 실력을 끌어낼 정도의 적이라. 이런 자들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글쎄. 확실하지 않지만, 의심이 갈 곳은 하나뿐이지 않나.”

“망천회.”

“맞아. 개중에 묘한 자들도 섞여 있더군.”

훗.

가볍게 웃으며, 마길상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내게 열양지공으로 대적해올 것이라고는 미처 몰랐네.”

“양강 무공의 극의, 염룡의 주인에게 열양지공으로 덤비다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반딧불이 태양에게 덤빈 격이 아닌가.

마길상은 고개를 저었다.

“나쁜 실력은 아니었어.”

그가 까맣게 타버린 제 소맷자락을 가리켜 보였다.

“내게 유의미한 충격을 주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습니까?”

“불은 더 큰불에 잡아 먹히지. 덕분에 쉽게 상대할 수 있었네.”

승리를 하고도 마길상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

“강호에서 보기 드문 실력자들이 한둘이 아니더군. 이런 자들을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아.”

취걸개 장로님께서 고생하신 것도 이해가 가는군.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보다 한층 더.”

“동감일세. 돌아가는 대로 총관주님께 전갈을 넣어야겠군.”

이후의 일 처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총 교두님!”

저 멀리서 교관 하나가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강호행을 떠난 교관들이 보내온 전언입니다.”

교관의 입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마인들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듣고 있던 마길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참으로 공교롭군.”

우리가 습격당한 것과 동시에, 신무강호행에도 손을 뻗치다니.

교관이 포권을 하며 물었다.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이대로 강호행을 강행해야 할지요?”

“어쩐다.”

마길상은 고민에 빠졌다.

안 그래도 늦어진 강호행이다.

공들여 준비했거늘, 시작부터 불측한 일이 이어지니 입맛이 쓰다.

“아쉽지만 멈춰야 하나?”

관도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

뇌까리던 마길상의 시선에 굳은 얼굴을 한 독고율이 들어왔다.

‘맞다. 이 사람이 있었지.’

누구보다 강호행을 열정적으로 준비하던 사람이다.

중요한 결단에 앞서 의견 정도는 들어보는 것이 좋을 터.

“독고 교두.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기껏 시작한 강호행입니다. 흉수가 두려워 꼬리를 만다면 강호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지요.”

“의외의 대답이로군. 누구보다 관도의 안위를 챙기던 자네가 아닌가?”

“강호에 발을 딛은 이상, 안전한 길만 걸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냉혹하지만, 맞는 말이군.”

이런 무정한 면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한 마디가 따라 붙었다.

“강호의 위험이야. 어른으로서 앞장서 막아내면 될 일.”

“하하. 결국 우리가 바빠져야 한다는 것이겠군.”

따뜻한 배려를 읽은 마길상이 마음을 정했다.

“맞아. 이왕 결정된 것, 쉽게 번복할 수는 없지.”

“강호행의 방식을 조금 바꾸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은 복안이 있는가?”

“그것은 말입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마길상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총관주님께 전서구를 띄워주게.”

***

방을 나서던 남궁윤호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봤어?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래.”

“은월비적을 잡았다던 관도 맞지?”

“상급 교관도 당한 괴한을 관도가 잡았다니.”

“관도가 아니라, 조교 아닌가?”

“관도나 조교나.”

방을 나서기 무섭게 따라붙는 시선과 중얼거림들.

관심에 익숙하지 않은 남궁윤호는 영 꺼려지는 것이었다.

‘이대로 다시 방에 들어갈까?’

잠깐 고민을 해야 했을 정도.

‘아니, 그만두자.’

모른 척하면 금방 시들해지겠지.

하지만 정원을 지나 회랑을 지나갈 때도, 관심은 한층 더 증폭하기만 했다.

“어머. 실수.”

“괜찮으세요?”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은근슬쩍 몸을 부딪치거나, 말을 걸어오는 여 관도에 남궁윤호는 한참이나 진땀을 빼야 했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별채에 도착해서였다.

묘진문주가 작은 영웅들을 위해 내어준다며 특별히 개방한 고양이들의 거처.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선객이 있었다.

“이제 오나?”

“탄.”

제갈탄이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육포를 흔들어 거래한, 제갈탄이 고양이를 품에 안고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안색이 좋지 않군.”

“그게 말이지.”

이어지는 말에 제갈탄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한동안 더 시달리게 되어야 할 거야.”

“으음. 좋지 않군.”

“괴인들의 출현이 여기저기에서 난리인 모양이야. 한동안 꽤 많은 이들이 몰려들겠지.”

“이해는 가지만,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군.”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라며, 제갈탄은 어찌 알았는지 무림맹이나 학관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풀어 놓았다.

냐-냥.

“어이쿠.”

어깨를 타고 오른 고양이에 머리 꼭대기를 내어주고 있자니, 제갈탄이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야. 학관에서는 묘진문의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는 모양이니까.”

“묘진문을? 왜?”

“그야 누구보다 마인을 빠르게 처리했으니까.”

심지어 얼마 전 상급 교관을 해하고 달아났던 은월비적이다.

“일전의 패배를, 학관의 동료들이 힘을 합쳐 갚았다. 꽤 괜찮은 이야깃거리 아닌가.”

“그렇기도 하군.”

양팔에 고양이가 매달렸다.

손톱을 세운 채 소매를 긁으며 대롱거리는지라, 팔을 구부려 발 디딜 곳을 만들어 주니, 쪼르륵 양어깨에 올라와 벽돌을 구웠다.

“한동안 시선이 따라다니는 것은 피할 수 없겠군.”

“이 기회에 관심을 즐겨보는 것은 어때?”

“무리야. 나에게는.”

동천관에서 지박령으로 살던 쪽이 내게는 익숙하거든.

꽤앵-.

이상한 소리를 내며, 육포를 먹어 치운 고양이가 제갈탄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아…. 갔군.”

허공에 손을 뻗던 제갈탄이 남궁윤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관심에 익숙하지 않은 것치고는, 너무 인기 만발 아닌가?”

어느새 포위를 시작한 고양이들을 보며 남궁윤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사람에게 관심받는 것도, 고양이에게 환심 사는 일도, 하나같이 익숙해지지 않아.”

제갈탄은 부러운지 입맛만 다셨다.

***

한가로운 잡담 시간은.

“뭐야. 짜증-나!”

한소리 고함에 끝이 나고 말았다.

발을 쿵쿵거리며 들어오던 백리설이 뒤쪽을 힐끔거리며, 씩씩댔다.

“뭐야, 저 생기다 실패한 것들은.”

“언니, 참아요.”

소란스럽게 나타난 이는 화려한 미녀와 앙증맞은 소녀.

백리설과 모용소혜였다.

나타나기 무섭게 거리를 벌리는 고양이들이 마뜩잖은지 백리설이 한층 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또 무슨 일입니까?”

“눈코입 달린 것도 신기한 낯짝을 어디서-.”

한참 동안 분개의 말을 쏟아내는 백리설의 말을 들으면, 아까 자신과 같은 꼴을 꽤 당한 모양이다.

차이가 있다면, 외모까지 화려한데다, 백리세가라는 명문가 출신인지라 다가오는 이성이 꽤 많았다는 점이 최악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알아서 꺼질 것이지.”

“냉랭한 태도가 더 매력적이라고 다가오는 것 같던데.”

모용소혜의 설명에 백리설이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것들. 발가벗고 북해빙궁에나 뛰어가던가.”

독설을 쏟아내던 백리설이 제 입을 막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여자가 이렇게 반응할 때는 한가지 뿐이다.

‘교관님을 찾는 모양이군.’

주변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백리설이 톡 쏘는 어조로 퉁명스레 물어왔다.

“교관님 어디 있어요?”

“글쎄. 저도 잘.”

고개를 돌린 백리설이 ‘멀대 같이 크기만 하고 도통 쓸데는 없네요.’라고 말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조금 상처가 됐다.

“교관님이라면 여매홍 교관님과 함께 있을 텐데.”

“맞아요. 아침에 보니, 여 교관님께 귀를 잡힌 채 끌려가던데.”

“대체 교관님이 왜!”

외간 여자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지 모르겠다는 그녀에게 제갈탄이 설명했다.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강짜를 부리신 모양이라.”

“아.”

짧은 설명이었지만, 백리설은 상황을 납득한 모양이다.

교권이 심각하게 추락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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