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장 장천파 (7)
화륵!
곁에서 일어난 불꽃에 남궁윤호가 재빨리 뒤로 몸을 튕겼다.
화르르륵! 펑!
간발의 차이였다.
방금 서 있던 자리를 스쳐 간 불줄기가 부서진 집기를 삼키며 폭발한 것이다.
‘이종의 진기?’
그것도 극강의 열양지공이다.
한순간에 사물을 숯덩이로 만드는.
‘어떻게 마인이 극히 까다롭다는 열양의 진기를.’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네놈부터 죽여주마!”
살심이 폭주한 점주가 가장 가까이 있는 남궁윤호부터 공격해 들어온 것이었다.
쉬쉬쉬쉭!
“크윽!”
화르륵!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눕혀 피했지만, 코앞을 스쳐 간 열기가 뜨겁다.
파팟!
몸을 튕겨 일으키며 정권으로 맞섰지만.
지금까지 상대하던 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펑!
손과 손이 부딪힌 순간 불씨가 어지럽게 날리며, 남궁윤호는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크윽.”
힘에서 밀린 것만이 아니다.
주먹을 타고 오른 열기가 진기를 흔들었다.
‘이것이 이종의 진기.’
부딪히는 것만으로 이런 충격이라니.
“큭큭큭.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쉬쉬쉬쉭!
불꽃이 일렁이는 쌍수가 어지럽게 목과 옆구리를 찔러오자, 남궁윤호가 재차 보법을 밟았다.
화륵! 화르륵!
눈앞을 번쩍이는 화염.
뒤이어 그려지는 불꽃의 궤적들.
빠르게 수 싸움을 끝낸 탓에 피해낼 수는 있었지만, 남궁윤호는 낭패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뜨겁다. 막아내는 것도 버거워.’
수 싸움에 앞선다고 승리를 자신할 상대가 아니었다.
빈틈없이 사혈을 찍어오는 어지러운 손그림자를 피해낸다고 해도, 열기에 익은 공기가 호흡을 통해 스며들어 폐를 달구고 있었다.
‘호흡이 쉽지 않아.’
이것이 이종의 진기인가?
호흡이 흔들리자, 진기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 초식이 이어질수록 손발이 어지러워진다.
‘검. 검이 있었다면.’
이 열기를 걱정 없이 맞설 수 있을 텐데.
박도라도 주워 쓸까 고민하던 순간,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검이 없다면 도망치고 말 거야?”
그럼 어쩌라는 말인가.
‘부딪히는 것도 고작인데.’
싶던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조금 전 교관이 펼쳐낸 기괴한 장법이었다.
- 쇄비천수장!
점주는 그리 외쳤지만, 청성파의 무공을 모르는 남궁윤호는 오히려 다른 것을 떠올렸다.
‘신무검법?’
낯선 장법에서 익숙한 궤적이 떠올랐다.
‘내 확신이 맞는 건가?’
알 수 없다.
자신은 고작 동천관의 지박령이니까.
자신은 없지만 지금 확실한 것은 무엇이든 펼쳐내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
“흐흐흐! 숯덩이로 만들어주마!”
화르르륵!
한층 더 뜨거운 열기에 파스슥 앞머리가 타올랐다.
매캐한 냄새와 열기가 들어차는 호흡에 정신이 없는 가운데 남궁윤호는 가상의 검을 그려냈다.
살짝.
그리고는 허공에 만들어낸 가상의 검을 쥐었다.
‘검결지.’
손에 검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뇌수까지 익혀주마!”
화르르륵!
절정의 고수가 마기까지 폭주시켜 가며 만들어낸 열양의 장법은 무척 무서운 것이었지만.
‘검이 있다.’
생각하니 몸이 먼저 반응했다.
쉬익!
가장 익숙한 초식으로.
- 신무검법 제 일초. 일합거도.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간단한 초식이지만.
동천관의 지박령으로 살며 삶에 새겨넣은 초식은 무엇보다 빠르고 강렬하게 손끝에서 살아났다.
우우우웅.
자연스럽게 공력이 호응했다.
사악!
처음이었다.
전면에서 덮쳐오던 불꽃이 갈라진 것은.
“후읍.”
동시에 차가운 공기가 코끝으로 흘러 들어왔다.
들끓는 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한층 더 정신이 맑아졌다.
“뭐야!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흩어지는 불씨를 본 점주는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그가 본 것은 허공을 쥐듯 검결지를 쥔 손이 죽 일직선을 그린 것뿐일 테니까.
“놈! 잔재주를 피우는구나!”
분기탱천한 점주가 한층 더 매섭게 조법을 펼쳐왔다.
화르륵!
화르르륵!
눈을 후비고, 어깨를 찍으며, 재차 옆구리를 파고드는 조법은 실로 쾌속무비하기 짝이 없었다.
파파파팟!
하지만, 이미 상대의 초식을 간파한 남궁윤호는 앞선 수를 읽으며, 엉킨 실타래 같은 공격의 맥을 짚어냈다.
그리고 갈랐다.
“분풍종횡.”
파삭! 파사삭!
살갗을 태우는 불꽃이 흔들리는 낙엽 같은 기운에 흩어졌다.
‘먹힌다.’
창졸간에 떠올린 수가 통하자, 문득 얼마 전 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은자를 떨어트리지 않고, 검법을 펼치는 것에 의미가 있나요?”
“검의 중심(中心)을 잃지 않는 법이야.”
백리설의 물음에 교관은 말했다.
“신법을 익힐 때를 생각해. 검도 마찬가지야.”
‘몸과 검이 마찬가지.’
왜 굳이 그런 말을 했을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계셨구나.’
거기까지 생각하자, 다시 궁금한 것이 있었다.
‘검과 몸이 같다면.’
굳이 검과 몸을 둘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신(身). 몸과.
검(劍). 검이.
합(合). 하나로 어울려.
일(一). 초식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상념이 이어지던 찰나였다.
“쯧. 넌 너무 앞서가.”
퍼억!
눈앞에 악귀처럼 양손을 휘둘러 오던 점주가 확 밀려났다.
“울컥.”
상념이 끊어지자 남궁윤호가 휘청이며 피를 토했다.
“저는 왜….”
“아직 네게 이른 경지야.”
퍽!
뒤통수를 두들긴 교관이 일갈했다.
“인마! 넌 보고만 있을 참이냐?”
“기가 막힌 것은 저도 마찬가지라.”
촤악!
쥘부채를 펼친 제갈탄이 크게 부채를 떨었다.
“크으윽! 이놈드을이이이-.”
머리를 휘저으며 한층 더 농밀한 살기를 피워내는 점주.
살기에 잠식되고 있는지, 제대로 말도 구사하지 못하게 된 그를 향해 제갈탄이 나아갔다.
스스스스-.
팔랑이는 부채 끝에 선연한 반딧불이 내려앉았다.
“굳이 검이 아니어도 되었을 것을.”
저도 부족하기 짝이 없군요.
팔랑. 팔랑.
부채를 흔드는 제갈탄의 주위로 청색의 진기가 반짝이자.
“크아아아악!”
점주가 허공을 향해 제멋대로 불꽃을 쏘아댔다.
펑! 퍼펑!
화르륵! 펑!
무차별적으로 쏘아내는 열양지공에 애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두목!”
“사, 살려 주십시오!”
하지만, 이미 점주는 눈가에 검은 기운을 줄기줄기 흘려내며 폭주하고 있었다.
“마, 마인?”
“점주님이 마인이었어?”
“아아. 우린 다 죽었다.”
흑도의 무인이라도 결코 선을 넘어야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성을 잃고 마공에 빠져 한 마리의 악귀가 되는 것.
어떤 존재도 정사 무림이 금한 마공을 익히고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되자 싸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크허어어엉!”
남은 인간성마저 끊어낸 점주는 한층 야수처럼 흉성을 내질렀다.
화르르륵!
그와 함께 폭주한 마기가, 한층 더 매서운 불꽃을 만들어내며, 열풍을 정신없이 쏘아냈다.
“으아아악!”
“불이다! 불이야!”
화마가 살라 먹기 시작한 장내는 금세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 중에 유일하게 웃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백리설이었다.
“염화무를 펼치기 딱 좋은 환경이네요.”
소곤거리는 그녀는 품이 넓은 소매를 휙 떨쳐냈다.
펑펑펑펑!
검무를 추는 듯 가벼운 손동작에 장내를 잠식한 불꽃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휘리리리릭!
너울너울 팔락이는 소맷자락을 따라 불꽃이 뒤따르고 이지러지기를 계속하며 통제를 잃어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이성을 잃은 점주의 눈동자가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온전히 마기에 잡아먹힌 것.
이를 지켜보던 초운휘가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얘. 안 되겠네.”
넌 인마.
턱턱.
불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뒹구는 잔해를 발끝으로 툭툭 밀어내며 나아간 초운휘가 술병을 주워들었다.
“자라.”
뻐억!
쨍강!
점주가 고꾸라졌다.
***
펑! 펑! 펑! 펑!
화마가 잠식하는 장내에서 싸움의 끝을 안도하기도 전이었다.
“교관님!”
휘리릭!
불꽃을 가르며 부유비공을 펼치며 날아온 모용소혜가 빽 외쳤다.
“관군이 오고 있어요!”
“관군?”
화들짝 놀란 일행이 밖을 살피자 과연 그러했다.
펑펑펑펑!
어둠이 내린 호수의 위로 어지러운 신호탄들이 터지고 있었다.
둥둥둥둥!
그 아래로 무수히 횃불을 밝힌 배들이 전고(戰鼓)를 울리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다! 저쪽이다!”
“물에 뛰어드는 놈들부터 잡아!”
순식간에 불을 피해, 물에 뛰어든 사람들이 횡액을 맞고 있었다.
작정했는지 물에서 건지기 무섭게 곤봉으로 서슴없이 내려치는 관병들.
“모두 체포하라!”
북문위의 깃발이 나부끼자 도박꾼들이 곡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쳤다.
서슬 퍼런 체포 현장을 본 넷은 새파랗게 질렸다.
“관병이 어째서 지금.”
“어서 빠져나가야 해.”
“교관님! 어서!”
교관님?
돌아보던 네 사람은 굳어 버리고 말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헐레벌떡 뭔가를 쓸어 담는데 열중인 초운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교…관…님?”
모용소혜가 다가가자, 초운휘가 다급하게 외쳤다.
“너희도 이거 담아.”
“예?”
“내가 딴 돈이잖아?”
헐레벌떡 자루에 돈을 쓸어 담는 것도 모자라, 이미 전표까지 챙긴 용의주도한 모습에 모두의 표정이 싸해졌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백리설이 물었다.
교관님?
“설마 관병을 부른 것은 교관님이신가요?”
“어.”
“무슨 이유로.”
“흑도 방파 쉐끼들 잡아넣기 위해서지.”
정의구현이야, 정의구현.
본인은 한사코 주장했지만, 네 사람은 확신했다.
‘증거인멸이다.’
‘증거인멸이네.’
‘증거인멸이로군.’
모용소혜가 짜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이건 범죄예요.”
“내가 딴 돈이야. 다들 봤잖아? 정정당당한 승부.”
스스로 정정당당하다고 주장한 순간, 확신했다.
‘속였네.’
‘속였구나.’
‘속인 것이 틀림없어.’
백리설이 아악 제 머리를 헝클였다.
“꺄아악! 그만둬요. 정말 어쩌려고 그래요? 이러다 잡힌다고요!”
“도망갈 방법 정도는 준비해뒀지.”
작정했구나, 이 인간.
깨닫게 되자 남궁윤호가 움직였다.
빈 주머니를 챙겨 열심히 은자를 쑤셔 넣기 시작한 것이다.
“윤호?”
“어쩔 수 없어. 현장에서 걸리면 교관님만 문제가 아니라고!”
현장에서 걸리면 자신들도 모가지다. 단순히 퇴관만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현장에서 체포되면 범죄자 낙인이 찍힐걸?
“같이 죽거나. 혹은 같이 살아야 하는 시점이야.”
“제길!”
시급함을 깨달은 제갈탄도 가세했다.
“언니. 어서 담아요.”
“으윽. 범죄자 부부는 싫어.”
모용소혜와 백리설도 약탈자가 되고 말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세한 것도 울적한 마당에, 초운휘는 참견을 멈추지 않았다.
“소혜야. 그건 내 은자가 아니야.”
“이익!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은자를 어떻게 구분해요?”
“난 알아. 정의로운 사람이거든.”
그렇게 안 봤는데.
“너 남의 돈 챙기며 흥분하는 취미라도 있는 것 아냐?”
그건 도둑질이란다.
범죄라고?
울며 약탈에 가담한 것도 억울한 마당에 매도까지 당하자 모용소혜가 폭발했다.
“교관님! 시끄러워요!”
“엄-머? 지금 하늘 같은 교관님에게 대드는 거니?”
도둑질에 대들기까지.
“우리 율서가 비행 숙녀가 되었어.”
“아니라고요!”
심지어 숙녀라니.
“어린 소녀에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숙녀나. 소녀나.”
“제발 좀.”
닥쳐요!
마지막 한 마디를 참아낸 것은 모용소혜 스스로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속으로 가장 나쁜 욕설을 떠올리는 사이 들려온 교관의 말은 참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예전에 듣자 하니,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대. 분명 악에 물들어 타락해도, 분명 널 좋아하는 남자 하나쯤은 있을 거야.”
“엉엉. 근데 왜 교관님은 악당인데 인기도 없는 건가요?”
“으윽.”
“인기도 없는 데다, 악당인 교관님은 최악이에요.”
“크어억.”
결국, 모용소혜는 울음을 터트렸고, 초운휘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
묘진문의 첫 번째 의뢰.
- 고양이 학대범 수색.
에 대한 의뢰는.
하나의 흑도 문파가 불타고, 수많은 도박꾼들이 곡소리를 내는 가운데.
한 소녀의 울음, 그리고 한 사내의 순정이 짓밟히며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