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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첫키스……! (25/95)

25. 첫키스……!2021.12.26.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이블린이 고민하던 때.

16550804958919.jpg“눕기나 해.”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어깨를 톡 밀었다.

16550804958924.jpg“!”

이블린은 뒤로 넘어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진 이블린이 후다닥 일어나 앉았다. 그 재빠른 움직임을 보며 웃음을 참은 바스티안이 침대 반대편으로 향했다.

16550804958919.jpg“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

어느새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채 묻는 바스티안은 지극히 평온했다. 이블린은 머쓱해졌다. 이 상황을 의식하는 건 그녀 혼자인 듯했다.

16550804958924.jpg“…….”

이블린은 굼벵이가 기어가듯 느릿느릿 움직이며 이불 속으로 몸을 쏙 숨겼다. 바스티안이 잠들면 바로 일어나 응접실로 가서 잘 생각이었다.

16550804958919.jpg“그러다 떨어져도 난 몰라.”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누운 이블린을 본 바스티안이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16550804958924.jpg‘왜 저렇게 덤덤한 거야?’

이블린은 문득 불쾌해졌다. 그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건지도. 근데 그게 왜 갑자기 억울해지는 걸까.

16550804958924.jpg“폐하, 침대를 하나 더 들이는 게 어떨까요.”

16550804958919.jpg“기각. 신혼인데 따로 잔다고 소문내려고?”

16550804958924.jpg“침실에 아무도 들이지 않으면…….”

16550804958919.jpg“이 넓은 곳을 알리에타 혼자 관리하게 하겠다?”

아, 그건 좀 그렇지.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16550804958919.jpg“그냥 자, 그만 어색해하고.”

16550804958924.jpg“안 어색해요.”

16550804958919.jpg“……그럼 다행이고.”

한 박자 늦게 돌아온 대답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바보 같은 소리만 하게 될 것 같았다. 이블린은 그냥 얌전히 눈을 감기로 했다. 그러자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해져 버렸지만.

16550804958919.jpg“이블린.”

16550804958924.jpg“…….”

16550804958919.jpg“자?”

16550804958924.jpg“……아니요.”

16550804958919.jpg“정 불편하면, 팔베개라도 해줄까?”

16550804958924.jpg“아뇨, 됐습니다.”

무심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무는데 옆에서 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16550804958919.jpg“꽤 설레지 않아? 우리의 역사적인 첫날밤인데.”

아, 슬슬 또 놀림이 시작되는 건가. 이번만큼은 감히 황제를 무시해야겠다고 다짐할 때였다.

16550804958919.jpg“푹 자 둬, 이블린. 내일 귀족회의잖아.”

귀족회의. 이블린이 눈을 떴다. 단어 하나에 간질간질하고 이상하던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권한이 없는 그녀는 회의에 참석할 수도 없는 데다, 호위기사단은 회의실 밖에서 대기하는 게 원칙이었다.

16550804958924.jpg“……제 얘기가 나오겠군요.”

이블린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16550804958919.jpg“그렇겠지.”

16550804958924.jpg“폐하.”

16550804958919.jpg“응.”

16550804958924.jpg“저는 역시, 기사단장직을 내려놓게 될까요?”

16550804958919.jpg“……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머뭇대며 물으니 도리어 질문이 돌아왔다.

16550804958924.jpg“저는…….”

당연히 지키고 싶죠.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저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에게 호의적인 이들조차도, 귀한 황손을 가진 몸이니 조심하는 게 낫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기사단장직을 내려놓게 하려고 짜놓은 판이었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기사단장직을 포기해야 할지도.

16550804958919.jpg“걱정 마, 기사단장직은 유지될 거야.”

바스티안이 안심하라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지켜줄 생각이었다. 이블린이 욕심내는 거니까, 애착을 가진 자리니까.

16550804958924.jpg“……감사합니다, 폐하.”

귀족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데도, 그렇게 말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16550804958919.jpg“정말 고마우면, 칭찬해주든가.”

커다란 손이 이블린의 얼굴 위로 불쑥 나타났다.

16550804958919.jpg“잡아달라고.”

뭐 어쩌라는 건가 싶어 보고 있자니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

16550804958924.jpg“아, 네.”

고마우니까, 손 정도는 뭐……. 이블린은 황제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 옆으로 내렸다. 이불 위에 닿으니 그가 손을 꽉 쥐어 왔다. 맞닿은 손이 뜨거웠다. 차가운 얼굴로, 뜨거운 온도를 지닌 사람.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좋은……사람 같기도 하고. 연결된 부위에서 맥박이 쿵쿵 크게 약동하는 것 같았다.

16550804958924.jpg‘잠자긴 틀렸어.’

이블린은 한숨을 삼켰다. 온 신경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로 쏠렸다. 침대에서 다른 이의 온기가 느껴지는 게 영 어색했다. 갈수록 바스티안의 존재감이 더 선명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블린은 바스티안이 빨리 잠들기를 바라며 조금씩 침대 가장자리 쪽으로 몸을 옮겼다. 좀 더 멀리, 멀리…….

16550804958924.jpg“앗!”

옆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던 이블린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강한 힘이 이블린을 끌어당겼다.

16550804958924.jpg“하아.”

하마터면 침대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안도하며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바스티안의 얼굴이 보였다. 연회 때처럼, 바스티안이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인데도 은은한 달빛 때문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블린은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스티안을 바라봤다. 짙은 눈썹. 곧게 뻗은 콧날. 오묘한 회녹색 눈동자.

16550804958924.jpg‘잘생겼네…….’

역시 시선을 빼앗는 얼굴이었다.

16550804958924.jpg‘음. 뭘까, 이 뜨거운 시선은.’

바스티안은 묘하게 반짝이는 이블린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이블린과 재회한 이후로,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가 이토록 그에게 오래 머무는 건 처음이었다. 어지러이 흐트러진 백금발 사이에 있는 하얀 얼굴이 환한 빛처럼 느껴졌다. 얇은 잠옷 하나만 입고 뽀얀 속살을 드러낸 이블린은 꽤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바스티안은 이블린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새겨넣었다. 상기된 볼, 살짝 벌어진 도톰한 입술. 왠지 눌러보고 싶게 생긴 오뚝한 코. 손끝으로 입술을 건드리자 꽃망울이 피듯 입술 사이가 조금 더 벌어졌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도망쳐야 할 이블린이 가만히 있었다. 서서히 고개를 내린 바스티안이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야 멈췄다.

16550804958919.jpg“피하려면 피해도 돼.”

……어? 이블린의 속눈썹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의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블린이 잠깐 멍하니 있는 사이 바스티안이 빠르게 다가왔다.

1655080495892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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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하고 촉촉한 게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16550805071979.jpg“…….”

묘한 침묵 속에 다시금 시선이 부딪쳤다. 이블린을 빤히 보던 바스티안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말려 올라갔다. 놀란 토끼처럼 동글동글한 이블린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똑똑한 이블린이 이럴 때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눈으로 그를 보는 게 좋았다. 하얀 토끼가 무서운 호랑이님으로 변하기 전에 욕심 좀 내볼까.

16550804958919.jpg“난 분명히 경고했어, 이블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 바스티안이 고개를 내려 말캉한 입술을 베어 물었다. 한참을 달래듯 어르고, 장난치듯 물기도 하자 이블린이 조금씩 몸의 긴장을 푸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한 허락. 잡고 있던 이블린의 손을 풀어준 바스티안이 다시금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것을 끼워 넣었다. 그와 동시에 입술 안쪽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어쩔 줄 몰라 매달리듯 손을 맞잡아오는 움직임이 사랑스럽고. 흠칫 떨리는 입술 사이로 토해내는 달뜬 숨이 애달프고. 미약한 숨의 열기가,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너무 달콤해서 심장이 아팠다. 바스티안은 예감했다. 오늘 밤, 그는 평소와 다른 이유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것을. * * * 종이 위를 움직이던 펜이 멈췄다.

16550804958924.jpg“하아.”

이블린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님들에게 보낼 티파티 초대장을 작성하던 중이었다. 귀족회의 결과만 목 빠지게 기다릴 줄 알았는데, 머릿속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16550804958924.jpg‘내가 왜 그랬을까.’

이블린이 약간 부어오른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나 왜 안 피했지? 얼굴에 홀려서?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바람둥이는 아닌 것 같다는 알리에타의 말에 너무 안심했나?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했다. 손의 온도만큼 뜨거웠던 입술도. 말랑말랑한 푸딩 같기도 하고, 쫀득한 캐러멜을 먹은 것처럼 달콤하고 끈적했던 감각도. 처음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을 때. 다정한 미소로 쿡 웃는 황제를 보는 순간, 어디에서 커다란 바위가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입술을 겹쳤을 때는, 장난처럼 가볍게 닿았던 처음과는 전혀 달랐다. 입술 사이를 벌리고 들어오는 뜨거운 숨결과 부드럽고 농밀하게 헤집던 움직임이 강렬했다.

16550804958919.jpg“숨은 쉬어야지, 이블린.”

  바스티안이 귓가에 속삭였던 말이 떠오르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16550804958924.jpg“하, 진짜 미치겠네.”

16550805072001.jpg“공녀님? 어디 불편하세요?”

밀랍과 편지 봉투를 들고 오던 알리에타가 깜짝 놀라 물었다.

16550804958924.jpg“아니.”

이블린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표정을 걷어냈다.

16550805072001.jpg“역시 어제 잠자리가 불편하셨어요?”

16550804958924.jpg“아니? 괜찮았는데?”

이블린이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스레 이마를 짚으며 묻는 알리에타에 얼굴이 더 불타오르는 듯했다. 있잖아, 유모…… 불편하기는커녕, 나 잠만 잘 잤어……. 자괴감이 몰려왔다.

16550804958919.jpg“그만 잘까?”

  한참이나 이어지던 입맞춤에 혼절하기 직전, 바스티안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정확히는, 품에 안아주었다. 달래듯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는 손길에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꽤 늦은 시각이었다. 게다가 침대 위에는 그녀 혼자뿐이었고. 황제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먼저 나간 듯했다. ……아주 감사하게도.

16550805072001.jpg“아픈 게 아니면 다행이에요, 요즘 워낙 무리하셨잖아요.”

16550804958924.jpg“걱정 마, 요즘은 건강 빼면 시체니까.”

이블린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펜을 쥐었다.

16550804958924.jpg‘그래, 내가 지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입맞춤 정도야, 뭐, 어차피 언젠가는 하게 됐을 일이었을 거다. 그러니까 미리 연습한 것뿐이야.

16550804958924.jpg‘정신 차리자.’

오펜 자작과 티파티를 논의하려 약속을 잡아놓았으니, 그 전에 초대장 작성을 다 끝내야 했다. 이블린이 초대장을 보낼 명단을 다시 확인할 때였다.

16550805072001.jpg“참, 공녀님.”

옆에서 편지 봉투를 밀봉하는 걸 돕던 알리에타가 손을 멈췄다.

16550805072001.jpg“에바 말이에요.”

16550804958924.jpg“에바? 왜? 치료에 문제라도 생겼어?”

16550805072001.jpg“아니요, 상처는 거의 아물었어요. 볼 때마다 자꾸 공녀님 곁에서 일하고 싶다고 졸라대서요.”

거짓 임신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황궁에서는 알리에타 외에 다른 고용인을 곁에 두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느니 조금 불편한 길을 선택한 거였다.

16550804958924.jpg“그래? 내가 한 번 만나볼게.”

상처도 나았는지 궁금하고. 이블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16550805072001.jpg“공녀님 얼굴이 뭐야, 머리카락 한 올 구경하기도 힘드네.”

황제궁 부엌에서 솥을 닦던 에바가 한숨을 쉬었다. 공작가에서 그랬듯이 황궁에서도 이블린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할 줄 알았다. 그랬는데, 오히려 그때보다 더 먼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블린이 기거하는 황제의 침실이 있는 층은, 지정된 몇 명을 제외하면 들어갈 수도 없었다. 대체 침실에 박혀서 뭘 그리하는지. 그 외의 시간은 전부 황제와 붙어 있는 데다가, 그때는 기존 황제궁의 시종들이 시중을 드니 말단 하녀인 그녀가 이블린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16550805072001.jpg“이러려고 두들겨 맞아가며 눈에 든 게 아닌데.”

투덜대며 아궁이를 벅벅 닦던 에바가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태양이 어느새 하늘 한가운데에 있었다.

16550805072001.jpg“아, 약속에 늦겠다.”

솔을 집어 던진 에바가 종종걸음으로 부엌을 벗어났다. 중요하게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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