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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국의 꽃이니까 (58/95)


58. 제국의 꽃이니까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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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길만이라도 통제할 걸 그랬나 싶네요.”

기사단원 몇 명과 함께 길가의 담벼락 근처에 기대어 선 이블린이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마을 안은 강변보다 더 분주했다.

공사 현장으로 나르는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과 건물을 복구하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이 섞여 정신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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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잖습니까, 단장님. 그랬다가는 폐하께 혼날걸요?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호위하는 게 기사단 임무 아니냐고요.”

보레아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왜인지 뿌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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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죠.”

이블린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국민에게 친화적인 건 엘레모트 황실 특유의 분위기였다.

게다가 지금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바스티안보다 저를 지키고 있는 기사단원이 더 많으니, 따질 염치도 없기는 했다.

이마저도 전부 바스티안의 명령이긴 했지만.

이블린은 2층 창가에 어른거리는 바스티안을 바라봤다.

제국민에게 사랑받는 그를 보고 있자면 묘한 충족감이 들었다.

그가 좋은 황제라는 건 늘 곁에 붙어 있는 그녀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그라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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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창가에 계시는 거야. 위험하게.’

표정을 찡그리는 순간, 바스티안과 눈이 마주쳤다.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는 바스티안을 본 이블린이 휙 고개를 떨어트렸다.

어차피 망토 후드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텐데도 어쩐지 부끄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망토 후드 아래로 주변을 경계하며 둘러볼 때였다. 문득, 위험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몇 걸음 떨어진 거리, 꼬마 아이 하나가 고양이를 잡으려는 듯 조금 높은 나무를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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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괜찮은 건가?’

나무를 타기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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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잡은 얇은 나뭇가지가 두둑 소리를 내며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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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를 본 이블린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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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폐하처럼 힘을 쓸 수만 있다면.’

습격 때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상상을 해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블린은 간발의 차이로 추락하는 아이를 가까스로 낚아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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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블린이 아이를 고쳐 안았다. 높지 않은 나무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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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야, 괜찮니?”

오들오들 떨던 아이가 이블린의 망토를 움켜쥐었다.

아이가 당기는 힘에 후드가 벗겨지고 이블린의 금발 머리가 흩어지듯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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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디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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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눈을 살그머니 뜨고 이블린을 본 아이의 눈이 곧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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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 공주 아닌데.

이블린이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작은 소란이 벌어진 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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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도대체…….”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을 본 바스티안이 입매를 굳힌 채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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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단장님, 순발력이 대단하…… 크흠.”

바스티안의 냉기를 뒤늦게 깨달은 휘스턴이 손뼉을 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휘스턴이 휙 몸을 돌리는 바스티안을 따라 공손하게 움직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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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이블린은 갈라진 인파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바스티안을 보며 긴장했다.

역시 혼나려나.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살그머니 내려주자 아이가 고맙다고 손을 흔들며 조르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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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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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죄송해요. 그게…….”

이블린이 제 어깨를 감싸 안는 바스티안에게 속삭이는데 바스티안이 이마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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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리고 이블린의 배 위에 손을 얹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 행동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이블린의 배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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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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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손이 찾아온 걸 진심으로 축하드리옵니다!”

누군가 크게 소리치며 짧은 침묵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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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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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손께 축복을! 엘레모트에 평화를!”

제각기 덕담과 축복을 기원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가 물결치듯 사람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환희에 찬 외침을 들으며 이블린은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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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떤 책임감 같은 게 엄습해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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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어쩌죠.”

이블린이 가까스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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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긴. 이제부터 다정한 황제 부부의 모습을 보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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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블린은 바스티안의 손을 본능적으로 잡았다.

큰 사고를 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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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제가 실수한 게 아니라고 해주세요, 폐하.”

이블린이 입술 안으로 속삭이자 바스티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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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 눈에 담긴 건 그대를 향한 애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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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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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지 않아? 나보다 그대를 더 좋아하는 듯한데.”

이래서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던 거야.

그대는 제국의 꽃이니까,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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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역사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황후가 되겠군.”

바스티안이 사람들의 환호성에 화답하듯 이블린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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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난 후, 이블린은 자유와 불편함을 동시에 겪게 됐다.

거추장스러운 망토는 벗게 됐지만, 움직임마다 따라붙는 시선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바스티안은 휘스턴과 대화를 마무리하러 갔고, 이블린은 기사단 전원을 곁에 둔 채 얌전히 앉아 있어야 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몰리니 안전을 기하라는 바스티안의 명이었다.

가만히 있으려니 장식용 조각상이라도 된 기분이라 이블린은 주변을 두리번댔다.

뭐라도 간단하게 도울 일을 찾는데 긴 주걱으로 커다란 솥을 젓는 여인이 보였다. 가느다란 팔뚝이 힘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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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까?’

일어서려던 이블린이 멈칫했다.

요리는 안 된다. 솥이 터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차라리 힘쓰는 일을 찾아서…… 아 참. 나 임산부니까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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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해.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이런 관심 또한 그대가 계속 겪게 될 일이니까.”

 
바스티안의 충고가 생각났다.

여기서 그녀가 행동하는 모든 것이 바스티안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게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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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마침 마을 일을 통솔하던 이가 눈치채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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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이 부족해 보이는데, 뭐라도 돕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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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휴, 그냥 계셔만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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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치 않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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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을 구경이라도 하고 오세요.”

난감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여인이 이블린을 내쫓듯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다 보니 결국 공사가 끝난 강변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익숙한 금발 머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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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베르 후작?’

후작은 서류에 무언가를 적기도 하고 강을 바라보기도 하며 바빠 보였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의 표정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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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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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단장님. 여기까지 왜 나오셨습니까?”

다베르 후작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돌돌 말아 품에 넣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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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표정이 어둡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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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옅게 미소지으며 이블린을 보던 후작이 반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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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큰 재해였는데도 금방 제 모습을 찾은 게 신기하다 싶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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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사로 보기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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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처참했지요. 선황폐하의 서거와 맞물리는 바람에…… 무섭지 않습니까? 황제의 힘 하나로 이토록 큰 제국 하나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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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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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런 큰일을 겪고도 아무도 황실을 탓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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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오래도록 풍요로운 생활을 했고, 저희는 그게 전부 황실 덕분이라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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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그러니 단장님이나 저나 폐하를 잘 보필할 책임이 막중하지요. 참,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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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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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기사단장으로 임명하시기에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올 줄은 몰랐는데요. 어쨌든 너무 멀리까지 가지 마세요, 단장님. 폐하께서 걱정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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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지요.”

이블린은 등을 보이며 사라지는 다베르 후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후작의 미소가 마치 비소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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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폐하의 곁에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그에 대해 아는 게 많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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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사람이야.’

가끔 관찰하듯 보는 그의 시선은 여러 번 느끼긴 했다.

아버지의 일만 보며 달려왔는데 이제는 바스티안의 주변에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았다.

그의 곁에 잠깐 머물고 사라지게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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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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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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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들, 아까부터 쫓아오고 있는데요.”

보레아의 말에 이블린이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올망졸망 모여 그녀를 바라보는 꼬마 아이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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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근처에 쉴 만한 곳으로 안내해주지 않을래?”

이블린이 웃으며 말을 건네자 아이들이 신이 나서 만세를 불렀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이블린을 데려간 곳은 마을 근처의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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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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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황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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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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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이블린이 다정하게 웃으며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조금 전, 이블린이 구해준 그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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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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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거 좋은데?”

이블린이 사르르 웃자 아이가 깔깔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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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주님이니까 왕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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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왕관을 만들자!”

아이들이 우르르 흩어져 저마다 예쁜 꽃을 뽑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손들이 야무지게 움직이자 금방 화관 하나가 뚝딱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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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요!”

아이들이 재촉하자 이블린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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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역시 예뻐요!”

고사리 같은 손이 화관을 씌워주면서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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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

이블린이 흐뭇하게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묘한 인기척이 들렸다.

이블린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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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아버지가 보낸 미행인가?’

소리를 들은 건 그녀만이 아니었는지, 이미 기사단원 몇 명이 빠르게 그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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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왜요? 왕관이 별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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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예뻐. 마음에 쏙 들어.”

이블린은 일단 눈앞의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믿을 수 있는 수하들이니까 맡겨도 괜찮을 거다.

아이들에게까지 괜한 불안감을 심어줄 필요는 없었다.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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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파라.”

덥수룩한 머리의 사내가 어깨와 팔을 툭툭 두들기며 숲을 빠져나왔다.

프레세 소속 기자인 그는 수해 현장 취재를 나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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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티에르 공녀의 조합이라니, 특종이라고 좋아했다가 하마터면 저승의 신을 마주칠 뻔했잖아.’

티에르 공녀의 사진을 몰래 찍으려다가 그만 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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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억세게 운이 좋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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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걸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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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기사단의 서슬 퍼런 시선에 깨갱한 사내가 입을 비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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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든 기사든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기자니까 더 잘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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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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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이 왜 그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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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 이블린 티에르니까.

그녀의 소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신문 판매 부수가 달라진다. 기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사진까지 있으면 판매량은 몇 배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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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카메라를 받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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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기사는 안 쓸 겁니다, 맹세합니다. 카메라도 없었다고요! 제 신분까지 다 아시잖습니까.”

사내는 풀숲 안에 숨겨 둔 카메라가 들키지 않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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