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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중요한 약속 (59/95)


59. 중요한 약속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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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또 놀아줄 거예요?”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아이들이 아쉬움을 드러내며 이블린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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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밥 잘 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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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두 그릇 먹을게요!”

이블린은 아이들이 우르르 들판을 벗어나는 뒷모습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조그만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몽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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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아이들이 제법 멀어지고 나서야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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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레아, 아까 그건 뭐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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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세 소속의 기자인데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더군요.”

기자?

이블린이 짧게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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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은 확실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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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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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만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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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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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도 아니고, 프레세잖아요. 뭔가 중요한 취재를 하던 건지도 모르고.”

다베르와의 대화를 떠올린 이블린이 몸을 일으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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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사단이 무례를 저질렀다면 너그러이 양해해주면 고맙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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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폐하와 단장께서 이곳에 오실 줄은 몰랐던 터라, 조금 욕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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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합니다, 특종은 기자의 사명과도 같죠.”

생각보다 친절한 이블린의 반응에 기자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심지어 어떠한 격식 없이 작은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채였다. 기사단원들이 그를 압박하는 것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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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면서 본 마을 분위기는 어땠나요?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표정은 밝아 보이는데 실상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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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걸 물어 올 줄은 몰랐는데.

하긴, 이블린 티에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려진 건 별로 없기는 했다.

기자는 의외라고 생각하며 제가 아는 걸 줄줄이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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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하고 싶군요.”

기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이블린이 대화 끝에서야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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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이의 기사를 낼 때, 제 이야기는 빼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관심이 폐하와 수해 지역의 복구에만 집중됐으면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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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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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재미있는 기삿거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지요.”

어느 게 더 이득인지는 기자니까 더 잘 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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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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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이해해줘서 고맙군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짧은 만남을 끝낸 이블린이 나머지 기사단원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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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어.’

그리고 기자는 작아지는 이블린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짧은 대화였는데도 티에르 공녀에게 매료된 기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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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얘들아. 너희가 이러고 있으면 단장님이 밥을 먹을 수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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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아닌데. 공주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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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황후 폐하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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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알겠으니까 자, 그만 저리 가서 놀아라.”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이블린을 본 휘스턴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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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맛있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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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블린이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블린의 맞은편에 자리한 휘스턴은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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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입에는 좀 맞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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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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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특산요리인데, 생선을 통째로 넣어 뼈째 푹 끓인 수프입니다. 몸에 좋으니 많이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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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근데 제가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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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왜요? 냄새가 심합니까?”

휘스턴이 그릇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블린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얼굴은 휴이터와 똑 닮았는데, 행동은 판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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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다들 너무 쳐다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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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이유입니까?”

이블린이 머쓱하게 웃자 휘스턴이 알만하다는 듯 크게 소리 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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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도 스스로 아시지 않습니까. 황실을 제외한다면 제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바로 단장님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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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과한 말씀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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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나저나…… 휴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황궁에서 같이 일하시니 자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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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휘스턴이 이블린의 입가에 번지는 반가운 미소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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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느라, 얼굴 못 본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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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 많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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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제 일을 하는 것뿐이지요. 그보다도, 기사단장 임명부터 임신 소식까지, 여러모로 많이 놀랐습니다. 곧 황후가 되시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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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정사실처럼 말하는 휘스턴에 이블린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귀족회의에서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보통은 이런 생각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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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휴이 녀석이 꽤 울겠군요.”

휘스턴이 턱을 매만지며 착잡하게 중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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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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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제일 친한 친구가 결혼하면, 허전해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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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끔뻑이는 이블린에 휘스턴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우리 늦둥이 동생을 울려 보는 게 소원이긴 한데요.

휘스턴이 마음속으로 동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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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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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어느새 두 사람의 뒤로 다가온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턱 아래를 손으로 감싼 뒤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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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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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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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디에스티 경의 말동무를 해주느라 바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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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가시가 든 말에 휘스턴이 난처하게 웃으며 바스티안의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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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었다지?”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옆에 앉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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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자 한 명을 마주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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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대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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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제 직무를 생각하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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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그냥 호위기사였다면 걱정 안 하지.”

이블린이 슬쩍 휘스턴의 눈치를 살폈다.

기사단원들이야 이미 많이 봐서 익숙해진 장면일 테지만, 그는 아니었다.

역시나, 몰래 관찰하는 그의 표정이 어딘가 기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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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뭐라도 좀 드셔야죠. 내내 바쁘셨잖아요.”

이블린이 적당히 하라는 신호로 바스티안의 팔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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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먹는 걸 보고.”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겨 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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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속은 괜찮으십니까? 못 드시는 음식이라도 있으신지요?”

휘스턴이 그제야 걱정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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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이라도 해야 하나?’

이블린이 헛구역질이라도 할까 생각하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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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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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먹어서 오히려 더 걱정…….”

하필, 바스티안의 말과 동시에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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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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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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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직접 변명해주실 줄은 몰라서.’

이블린과 바스티안이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렇게 손발이 안 맞아서야.

바스티안이 혀를 차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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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급하게 먹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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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입도 안 드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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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가씨는 참 소탈하기도 하지.”

바스티안이 아무 말도 못 들었다는 듯 휘스턴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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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그대를 닮았나 봐. 아무거나 잘 먹는 거 보면. 자, 먹어, 이블린.”

바스티안이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 이블린의 입가에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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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혼자 먹을 수 있…….”

바스티안이 눈동자만 옆으로 굴려 신호를 주었다.

둘을 지켜보는 인원이 황궁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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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블린은 한숨을 참으며 얌전히 입을 벌렸다. 새삼 낯선 일도 아니었다.

음식을 꼴깍 삼키자 사람들이 그녀의 평가를 기다리듯 긴장한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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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맛있네요.”

한마디에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게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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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먹는 게 좋겠어,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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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폐하.”

이블린이 호두까기 인형처럼 몇 번이고 입을 벌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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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주님 데리러 온 왕자님이에요?”

이블린이 낮에 놀아주었던 어린 꼬마 중 하나가 다가와 눈을 빛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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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머니나!”

마을 어른들이 놀라 아이를 데려가려 하자 바스티안이 괜찮다며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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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비슷한 거야.”

바스티안이 턱을 괸 채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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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둘이 결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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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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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우리 엄마 아빠도 결혼했는데!”

아이가 손뼉 치며 하는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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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라.’

이블린이 아이의 볼로 손을 뻗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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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둘이 뽀뽀도 해요? 우리 엄마 아빠는 맨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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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다음 질문은 조금 귀엽지 않았다.

이블린의 귓불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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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안 해요? 이상하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결혼하면 뽀뽀는 무조건 하는 거라고 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린 아이가 재촉하듯 재차 물었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말투였다.

아이의 별거 아닌 질문에 오히려 어른들이 더 긴장하고 말았다.

뽀뽀했냐고? 저 두 분은 이미 아이도 만들었어, 얘야.

아이는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을 어찌 설명할까.

지금이라도 끼어들어 아이를 빼 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그저 황제의 앞이니 함부로 행동할 수 없어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솔직히 예비 황제 부부가 무어라 대답할지 궁금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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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아가씨는 그게 왜 궁금할까?”

침묵을 깨뜨린 건 바스티안이었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린 바스티안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였다.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린 미소가 퍽 다정했다.

그간 냉정한 황제만 봐온 기사단원들만 당황해서 꽤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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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이면 공주님을 사랑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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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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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아빠는 사랑해서 뽀뽀한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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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나도 그래서 매일 뽀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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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아이가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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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이블린은 이제 머리 꼭대기까지 빨개진 기분이었다.

이 많은 군중 속에서 오로지 그녀만 부끄러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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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한테 매일 뽀뽀해주기에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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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약속.”

그런 약속이라면 얼마든지.

아이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바스티안이 제 긴 손가락을 걸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렇게 금실 좋은 예비 황제 부부에, 작은 아이에게까지 저리 다정한 황제라니.

지금 바스티안의 모습은 제국민이 사랑하는 엘레모트 황제의 전형적인 표본이었다.

이러니 황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마을 촌장과 사내 몇 명이 커다란 항아리를 낑낑대며 옮겼다.

뚜껑을 연 이들이 금방 내용물을 그릇에 담아 배분하기 시작했다.

휘스턴이 그릇을 받아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놓았다. 붉은 열매가 촘촘히 담겨 있는 액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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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 코디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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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섞어 먹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음료로 타주기도 합니다. 폐하, 이 정도의 휴식 시간은 눈 감아 주시겠지요?”

휘스턴이 묻는 말에 바스티안이 픽 웃음만 흘렸다.

그는 휘스턴이 내민 이블린의 잔을 먼저 점검하고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 * *

같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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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하녀장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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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그만 조용히 좀 해라. 네 우는 소리에 머리가 다 울린다.”

발목에 붕대를 칭칭 감은 알리에타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복도에 물을 쏟아놓은 걸 미처 보지 못하고 급히 지나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범인은 물론 에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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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저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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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에바가 으아앙 크게 울자 알리에타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우는 애를 더 다그칠 수도 없고.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한동안은 혼자 걷기 어렵다는 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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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공녀님도 안 계신 때에.’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알리에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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