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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천국과 지옥 (62/95)


62. 천국과 지옥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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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서 열린 티파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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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애도 다녀오셨나요?”

적당한 기회를 엿보던 마르다가 가장 궁금했던 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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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당연히 초대장을 받았죠.”

피오넬이 어깨를 으쓱하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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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황궁 구경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너무 환상적이었죠.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었어요!”

지금도 꿈을 꾸는 사람처럼 피오넬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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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폐하께서 티에르 영애에게 청혼하시는 장면은 꼭 동화 같았다고요. 커다란 불꽃이 별빛처럼 수놓아진 밤하늘에 이국의 악단까지!”

마르다는 말과는 다르게 피오넬의 표정에 담긴 질시를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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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애, 그날 황궁에서 ‘그 사건’이…….”

옳다구나 싶어진 마르다가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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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죠, 맞아요. 하,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오싹해요.”

황궁 하녀 살인 미수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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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너무 무서웠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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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무섭다 뿐이겠어요? 왜 하필 그날에 그런 일이. 어휴, 좀 그렇더라고요. 불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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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랬겠죠.”

마르다는 입꼬리가 씰룩대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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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좋다.’

하나뿐인 여동생도 부르지 않으니 그런 불행이 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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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도 큰 사고로 번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안 그럼 꿈자리가 사나울뻔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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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러네요.”

하녀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더 요란하게 난리가 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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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해요, 영애. 내가 눈치 없이 어두운 이야기를 꺼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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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페런 영애.”

금방 웃는 얼굴이 된 피오넬이 신이 나서는 황제에게 받은 선물 이야기까지 줄줄 늘어놓았다.

마르다가 긴 이야기를 가까스로 참으며 듣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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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러고 보니…… 아쉴브 영애가 아주 망신을 당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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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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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피오넬이 말을 해도 될지 말지 가늠하듯 마르다를 보다가 입꼬리를 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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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쉴브 영애가 그날, 티에르 공녀에게 임산부가 먹으면 안 되는 차를 선물했거든요. 게다가 폐하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처럼 굴었는데, 폐하는 전혀 기억도 못 하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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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마르다는 씰룩이는 입술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대체 어떤 멍청한 여자기에 그런 하찮은 짓을 저지른 건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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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고한 아쉴브 영애의 자존심이 팍 무너졌을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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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쉴브 영애는 어떤 사람인데요?”

마르다가 흥미를 보이자 피오넬의 흥이 올랐다.

원래 가십과 남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법이었다.

페런 백작가는 집안끼리도 가까운 사이고 하니, 사교계에 떠도는 풍문을 전해 줄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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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쉴브 영애는요, 훌륭한 영애이지만 자존심이 좀 센 편이긴 하죠, 자의식이 조금 강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오해는 말아요, 아주 좋은 레이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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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아쉴브 영애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만나 보고 싶어요.”

누구보다 이블린을 미워하고 있을 여자.

마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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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안 그래도 사흘 뒤에 함께 살롱에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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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나요?”

마르다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이거 봐. 일이 되려니까 술술 풀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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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요. 대신 오늘 내가 해 준 이야기는 비밀이에요?”

피오넬 영애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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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당연하죠.”

마르다가 눈을 가볍게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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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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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나와 눈싸움이라도 하려는 건가?”

침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블린을 보며 바스티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 밤이 늦어 처음으로 묵게 된 숙소였다.

평소 같았으면 씻고 몸을 가볍게 푼 뒤 침대로 들어왔을 이블린이 꼿꼿한 석상처럼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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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날 의식하는 게 분명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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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바스티안이 일부러 짓궂게 말하자 이블린이 태연한 척 고개를 내저으며 다가왔다.

이제는 이블린을 움직이게 하는 법을 파악한 후였다.

바스티안이 이블린이 누울 자리를 툭툭 두들기며 이불을 걷어내자 이블린이 그 자리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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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그러더니, 앞으로 매일 이럴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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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엇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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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계속 내외할 생각인지 묻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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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아니지만…… 생각할수록 황당해요, 처음부터 의도가 너무 불순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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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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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때문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해서 그러는 것처럼 같은 침실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셨잖아요.”

턱 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린 이블린이 툴툴댔다.

다른 침실을 쓰겠다고 선전 포고를 했지만, 역시 바스티안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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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락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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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 잘못이라는 말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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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난 원래 치사해,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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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이블린이 톡 쏘아붙이며 눈을 감았다.

의식하는 걸 티 내고 싶지 않아서 더 까칠하게 구는 걸 바스티안이 모를 리 없었다.

알면서도 저렇게 놀려대니까 더 얄미운 거다.

속으로 구시렁대는데 불을 끄고 옆에 자리하는 바스티안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블린이 일부러 몸을 멀리 떨어트리려 하는데 바스티안의 손이 먼저 다가왔다.

이블린이 더 멀어지지 못하도록 옆을 손으로 짚어 막은 바스티안이 어둠 속에서 이블린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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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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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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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베개해달라고.”

몸을 휙 아래로 내려 옆으로 누운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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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꽤 뻔뻔하신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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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지친 상사를 위해 그 정도의 아량은 베풀지 그래.”

나 참.

이블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바스티안이 쿡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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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그대가 하든지.”

바스티안이 제 팔을 툭툭 쳤다.

이블린은 못 이기는 척 바스티안의 손목 부근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어차피 잠도 안 올 것 같고, 괜한 기 싸움으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바스티안이 이러는 게 싫지 않았으니까.

휘몰아치듯 사람을 흔들어대는 데 버틸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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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도, 자칫하면 폐하께 넘어갔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위가 조용해지니 누구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만 크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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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계약 결혼의 끝은 어디일까.

이미 바스티안의 마음을 알게 됐는데, 그저 계약 결혼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걸까.

그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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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머릿속이 나로 가득한 건 좋은데,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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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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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른 생각 마.”

바스티안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블린의 이마를 퉁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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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그대의 마음을 온전히 갖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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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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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날 궁금해하는 것만 해. 불필요한 걱정은 당분간 접어 두고.”

왜 이 사람은 내 마음을 이토록 잘 알아주는 걸까.

바스티안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걱정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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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 아무 이야기나 해 봐, 이블린. 쓸데없이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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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몸의 긴장을 푼 이블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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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폐하.”

이블린의 눈이 단번에 힘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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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베르 후작과는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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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베르 후작?”

바스티안이 한쪽 눈썹만 찡그리는 걸 보니, 여기서 왜 그의 이야기가 나오냐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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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저도 알아두려고 묻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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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질 마음이 생겼어?”

그런 거라면.

바스티안의 표정이 금세 너그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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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궁금하지,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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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도 제국 출신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폐하의 보좌관이 된 건가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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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저기 떠돌다가 우연히 주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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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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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리카락 색 때문이었어. 눈에 띄었거든.”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머리칼 끝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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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안이 정치 싸움에 밀려 곤란한 상황이었어. 똑똑해 보였는데, 방황하는 눈치라 데려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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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이블린이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바스티안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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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봐? 심장 떨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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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구시는 것 같지만, 의외로 정이 많으셔서요.”

이블린이 뒷말은 못 들은 척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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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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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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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군.”

바스티안이 쿡 웃으며 이블린의 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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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게 궁금한 건 없나.”

또 궁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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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도 폐하처럼 정령의 힘을 쓸 수 있게 될까요?”

그랬다면, 루체이에서 그 아이도 더 쉽게 구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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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단시간에 되지는 않겠지만 노력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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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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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지. 그래야 그대가 내 곁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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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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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기간이 더 길어지겠군.”

바스티안이 흡족해하는 걸 보며 이블린은 다시금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그는 확실히 저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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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블린. 그대가 힘을 발휘했다는 건 당분간 다트와 셋만 아는 비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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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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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중요한 무기는 원래 숨겨두는 거니까.”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이마 위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손끝으로 넘겨주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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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궁금한 건?”

바스티안의 재촉에 이블린은 망설이다가 가장 고민했던 걸 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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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만약 제가 황후가 되면 공작위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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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에 대해서는 계속 말했던 것 같은데, 이블린. 티에르의 이름은 그대 것이라고.”

바스티안이 황당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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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티에르고, 곧 티에르가 그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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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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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주겠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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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지요. 아, 혹시 휘스턴 디에스티 경과는 가까운 사이셨나요? 다트만큼?”

이블린은 어쩐지 뭉클해지는 기분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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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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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요.”

이블린이 작게 웃었다.

바스티안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마 밤새도록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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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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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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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에타, 이게 무슨 일이야?”

황궁으로 돌아온 이블린을 맞이한 건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알리에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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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며칠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공녀님은 여행 어떠셨어요?”

이블린이 곧장 팔짱을 껴 부축하자 알리에타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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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도 많은 일이 있었어.”

이블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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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그게 정말인가요?”

황제의 개인 응접실에 앉은 알리에타의 주름진 눈에 금방 눈물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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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마님, 어째서 그런 …… 이게 말이 되나요, 어떻게 공작님이 마님께 그런 짓을…….”

이블린이 알리에타가 주룩주룩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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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을 받을 겁니다, 지옥 불에 떨어질 거라고요!”

응, 그럴 거야. 알리에타.

현실에서도 지옥을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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