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 사랑과 우정 사이 (65/95)


65. 사랑과 우정 사이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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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이 커서 길을 잃기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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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마르다는 다시 연회 홀로 안내해주는 휴이터를 따라 얌전히 걸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는 공작가에 대해 잘 아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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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과 소꿉친구라고 했지?’

스캔들 기사에 같이 이름이 났을 정도면 꽤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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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공작가에서 살았다면, 이 사람과 나도 가까운 사이로 지냈을까?’

마르다는 부채 뒤로 얼굴을 숨기며 휴이터를 연신 훔쳐봤다.

커다란 체격이 다부져 보이는데 또 눈은 동그라니, 웃는 게 선한 미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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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 혼자 다 누리고 살았으면서,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휴이터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자니 이블린에 대한 미움이 또 울컥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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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런 영애, 어딜 갔다 오…… 어머.”

한데 모여 떠들고 있던 영애들이 함께 나타난 휴이터와 마르다를 번갈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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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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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예요, 영애. 디에스티 경과 단둘이?”

휴이터가 떠나자 영애들이 하이에나떼처럼 마르다에게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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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길을 잃어 도와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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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페런 영애. 그러게 혼자 다니면 안 된다니까.”

피오넬이 잔소리를 하며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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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디에스티 경 매력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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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잘생기고 그 젊은 나이에 근위대장직까지 맡고.”

휴이터에 대한 평가를 주워들으며 마르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휴이터를 유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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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티에르 공녀를 찾는 모양이죠? 진짜 친하긴 한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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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임신 기사 떴을 때 아이 아빠 후보로 거론된 거 아니겠어요? 티에르 공녀는 행복하겠어요. 연인이 무려 황제 폐하고, 소꿉친구는 디에스티 경이고. 누구나 꿈꾸는 상황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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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었다면 삼각관계로 발전하기 딱 좋은 소재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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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바로 저거야!

누군가 흘리듯 던진 말에 마르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마르다는 휴이터와 보니카를 번갈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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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골탕 먹이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이블린을 한 번쯤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리 죽여 깔깔대는 영애들을 보며 마르다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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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혼자 남은 우리 디에스티 경을 어떤 영애가 차지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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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그러고 보면, 디에스티 경도 공녀 외에는 가까이 지내는 영애가 없기는 하네요? 사교계 데뷔한 지 오래인데 달리 들려오는 소식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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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두 분이 그냥 단순한 친구인 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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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마르다!”

마르다가 태연하게 묻자 피오넬이 그녀의 손을 지그시 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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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제가 실수한 건가요? 죄송해요, 제가 황성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소식이 좀 느려요.”

마르다가 순진한 척 눈꼬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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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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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두 사람 사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네요. 진짜 친구였는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지는?”

영애들의 눈동자가 곧 호기심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흡족해진 마르다의 눈이 휴이터를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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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지도.’

오늘따라 머리가 휙휙 빠르게 돌아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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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좀 똑똑한가 봐.’

마르다는 적당히 때를 보다가 연회장을 돌아다니는 하녀 하나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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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디에스티 경께 말 좀 전해주겠니? 누가 유리 온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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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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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지는 밝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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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백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겠지.

하녀의 씰룩대는 입꼬리를 보며 마르다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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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전해 줘야 해. 알았지?”

하녀가 휴이터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속삭이자, 한숨을 쉰 휴이터가 저택 밖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적당히 시간을 기다리던 마르다는 또 다른 하녀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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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공녀님은 어디 계시지? 디에스티 경께서 티에르 공녀님을 찾으시던데. 급한 일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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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공녀님께서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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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보면 알려드리렴. 아까 보니 디에스티 경은 온실 쪽으로 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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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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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

정원 근처의 유리 온실로 온 이블린이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하녀에게 휴이터가 그녀를 찾아 온실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온 거였다.

루체이에 다녀온 후로 휴이터와는 황궁에서 오가며 안부만 나눴을 뿐이었다.

서로 바빠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그간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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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돌아간 건가?”

조용한 침묵에 이블린이 막 몸을 돌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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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커다란 나무 뒤에서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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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야. 너 왜 거기 숨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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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문이 열리니까 반사적으로…… 근데, 날 기다린다던 사람이 너였어?”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휴이터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다른 때처럼 어느 영애에게 고백을 받으려나 했는데, 이블린이 나타나서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샘솟는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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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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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이블린이 미간을 좁히자 휴이터가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내렸다.

푸른 눈동자에 반짝하고 떠올랐던 희망도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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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누가 불러낸 거지? 기다린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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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내다니? 날 찾느라 여기 온 거 아니었어?”

휴이터가 온실 입구를 힐끔거리자 이블린이 덩달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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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찾은 건 맞지만, 여기 온 건 누가 날 기다린다고 들어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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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블린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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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 일단 나가는 게 좋겠어.”

찝찝해진 이블린이 곧장 드레스 자락을 쥐고 몸을 돌렸다.

쉽게 위험에 처할 실력도 아니고 주변에 기사단도 있긴 했지만, 조심해서 나쁜 건 없었다.

아버지가 잔꾀를 부리는 건지도 모르고.

서둘러 온실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된 곳까지 이동하고서야 걸음 속도를 늦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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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휴이, 내가 뭔가 방해한 건 아니지?”

뒤늦게 아차 싶어진 이블린이 운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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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야.”

휴이터가 이미 멀어진 온실을 힐끔 돌아봤다.

오늘처럼 불러놓고 막상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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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왔으니까 그냥 돌아가도 괜찮겠지?’

용기 없는 사람이 그 혼자만은 아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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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 너 인기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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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진 않아. 이래 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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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인기가 많아서 뭐 해. 정작 내가 원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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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생일 축하해, 이브.”

휴이터는 그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는 이블린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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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내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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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축하해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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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축하하는 거야? 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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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바쁜 몸이 여기까지 행차했으면 된 거 아니냐?”

휴이터의 농담에 이블린이 큭큭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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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이는 어땠어? 우리 형 만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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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만났어. 너랑 많이 닮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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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별다른 말은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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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황궁은 어땠어?”

그간 있었던 일을 공유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저택 입구가 보였다.

정원 끝자락에 이를 때쯤, 휴이터가 아예 걸음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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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결혼식, 올리기로 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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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응, 그렇게 됐어.”

이블린이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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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찮은 거야? 정말…… 괜찮겠어?”

한층 더 목소리를 낮춘 휴이터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모습에 이블린이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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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괜찮아. 내가 원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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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해서, 하는 거라고?”

휴이터가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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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해서 한다고. 이블린이.’

휴이터의 떨리는 눈동자가 이블린을 주시했다.

흔들림 없이 올곧은 표정은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처럼 행복한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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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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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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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를, 좋아해?”

휴이터는 망설이며 묻어두기만 했던 질문을 입 밖으로 냈다.

그동안은 어차피 가짜라고, 두 사람의 사이는 언젠가 끝이 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지만, 만약 이블린의 마음이 그쪽으로 향했다면…… 그런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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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이블린의 마음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확인해야만 하는 때가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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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블린의 투명한 피부가 점차 붉게 물들었다.

폐하를 좋아하냐고?

바스티안조차도 대놓고 묻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래도 답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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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 마음에 충심과 존경심만 있는 게 아니란 건 확실해.”

이블린의 입꼬리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입 밖으로 답을 내고 나니 마음이 더 명확하게 보이지 않나.

아직 바스티안에게도 말한 건 아니지만, 휴이터에게는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다.

알리에타와 더불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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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구나.”

휴이터는 씁쓸한 마음을 숨기며 애써 웃어 주었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감정을 이블린에게 전할 일은 평생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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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게 맞는 거겠지.’

이블린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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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꼭 기억해 줘.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누구보다도 말이야.”

망설이던 휴이터가 이블린의 어깨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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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휴이.”

각기 다른 의미를 담은 시선이 서로의 얼굴에 닿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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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저기 좀 보세요. 저기 티에르 공녀와 디에스티 경 아닌가요?”

저택 테라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영애들의 시선이 정원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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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안 보인다 했더니, 두 분, 같이 있었네요?”

누군가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던지는 말에 마르다는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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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온실이었다면 밀회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금도 뭐, 나쁘지 않아. 오늘 정말 되는 날인가 봐.’

꾀를 낸 건 좋았는데, 정작 이 게으른 영애들을 온실까지 데려갈 마땅한 핑계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던 차였다.

그런데 알아서 두 사람이 저런 의심스러운 장면을 연출해 주니 퍽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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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어쩐지 묘한데요?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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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뭐랄까, 서로 되게 애틋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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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진짜 둘 사이에 뭐가 있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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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티에르 공녀가 아플 때도 디에스티 경은 공작가를 드나들었다는 말이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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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아무래도 소꿉친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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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셀리메 영애는 공녀의 머리카락 한 올도 못 봤다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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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어머나, 그럼 뭘까?”

이블린과 휴이터를 관찰하며 쑥덕대던 영애들의 표정에 모호한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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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슬슬 …….’

제가 뿌린 씨앗이 싹 틔우는 걸 즐겁게 바라보던 마르다가 보니카의 곁으로 다가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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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폐하께서 도착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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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연회 내내 기운이 없던 보니카의 얼굴이 화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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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쉴브 영애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걸요? 티에르 공녀가 황후가 되리란 건 기정사실이니까요. 폐하를 진짜 좋아하는 모양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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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기정사실은 무슨. 그렇게는 안 될걸?’

피오넬 영애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며 보니카를 보던 마르다가 부채를 손바닥 위에 탁 부딪쳐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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