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 웃게 만드는 사람 (66/95)


66. 웃게 만드는 사람
2022.05.18.



16550816432464.jpg

“주인공이 왜 여기 나와 있는 거지?”

16550816432469.jpg

“폐하!”

이블린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싼 바스티안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16550816432464.jpg

“두 사람이 합심해서 날 기다렸을 리는 없고.”

삐뚜름하게 내리뜬 눈이 휴이터와 이블린을 번갈아 응시했다.

16550816432469.jpg

“잠깐 대화 중이었어요.”

16550816432464.jpg

“아무리 봐도 두 사람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단 말이지.”

당당하게 질투심을 드러내는 말에 이블린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일부러 저를 위해 휴이터를 근위대장직에 앉힌 거면서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게 바스티안다웠다.

말로만 저렇지, 그녀에 관해서는 끝도 없이 관대해지는 바스티안이라는 걸 잘 알았다.

16550816432469.jpg

“바쁘신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폐하.”

16550816432464.jpg

“무슨 그런 서운한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대의 생일 연회인데, 더 일찍 오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지.”

투덜거린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16550816432494.jpg

“폐하, 그만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정한 두 사람을 지켜보던 휴이터가 상황을 일깨웠다.

16550816432464.jpg

“그럼, 들어갈까?”

이블린의 손을 감싸 쥔 바스티안이 걸음을 옮겼다.

휴이터는 한숨을 폭 내쉬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16550816432494.jpg

‘이블린을 웃게 만드는 사람은 나 하나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전에는 황제의 애정 표현에 어쩔 줄 모르고 어색해하던 이블린이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16550816432494.jpg

‘그래, 이블린을 웃게 해주니까. 이블린이 행복하면 됐지.’

괜히 시큰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발을 내디딜 때였다.

16550816432494.jpg

‘음?’

테라스에 옹기종기 모여 이쪽을 보고 있는 영애들이 눈에 띄었다.

그의 시선이 닿자 흠칫 놀란 영애들이 아닌 척 딴청을 부렸다.

16550816432494.jpg

‘뭐야, 저 부자연스러운 반응은.’

휴이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16550816459251.jpg

 

* * *

공작가에 나타난 바스티안은 그야말로 깜짝 선물이었다.

16550816459255.jpg

“폐하, 여기까지 와 주시다니요!”

요란하게 목소리를 높인 티에르 공작이 바스티안의 앞으로 나섰다.

16550816432464.jpg

“내가 경을 곤란하게 한 건 아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16550816459255.jpg

“그럴 리가요, 폐하께서 직접 와 주시니 아비로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공작이 일부러 이블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16550816432464.jpg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군요.”

그러냐며 웃은 바스티안이 공작의 손을 슬쩍 밀어내며 이블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16550816459255.jpg

‘이 여우 같은 자식이.’

밀쳐진 손을 거둔 공작이 속으로 욕하면서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지금도 그와 황제 사이를 오가며 관찰하는 요란한 시선들이 명백하게 느껴졌다.

이블린이 기사단장직에 취임하는 문제로 황제와 대립했으니, 다들 호기심을 드러내는 게 당연했다.

16550816459255.jpg

‘지금은 좋게좋게 가야지.’

황제와 가까운 사이처럼 보여서 나쁠 건 없었다.

어쨌든 바스티안이 여기까지 행차해 준 건 여러모로 그에게 큰 이득이었다.

적어도 제국의 황제가 바뀌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16550816432464.jpg

“공작, 지금 이블린의 얼굴을 많이 봐 두는 게 좋을 듯싶군요.”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허리를 감아 제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16550816432464.jpg

“곧 결혼식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

제법 힘이 실린 목소리가 연회 홀에 메아리치듯 울렸다.

결혼식.

연회 홀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입술을 씰룩이던 마르다는 부채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16550816476541.jpg

‘세상에, 저 사람이 황제라고?’

기사로만 보던 황제의 실물을 처음 본 마르다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것 같은 키에 커다란 체격만으로도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16550816476541.jpg

‘얼굴이 꼭 누군가 조각한 것 같아.’

게다가 서늘한 미소와 잘생긴 얼굴이 만나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16550816476541.jpg

‘아쉴브 영애가 푹 빠질 만하네.’

헛숨을 토해낸 마르다의 시선이 이블린을 다정하게 안고 있는 황제의 팔로 향했다.

제복 소매가 착 감기듯 달라붙은 팔은 강건해 보여서 괜히 심장 언저리가 설레는 기분이었다.

16550816476541.jpg

‘그러니까, 저 자리가 원래 내 것이었다는 거잖아.’

마르다가 입술을 짓씹었다.

불가능한 꿈도 아니었는데, 부친이 약속한 자리였는데.

욕심 많은 이블린이 그 기회를 홀라당 채 간 거다.


16550816432469.jpg

“영애가 원하는 게 뭐죠? 티에르 공작이 숨기려고 애쓰는 딸인가요, 아니면 페런 백작가의 영애인가요?”

 
거만한 얼굴로 무시하던 이블린의 얼굴을 되새기자 발끝에서부터 분노가 차오르는 듯했다.

16550816476541.jpg

‘돌려받아야겠어.’

적당히 골탕이나 먹이려던 건데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됐다.

저 욕심쟁이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니까.

16550816476541.jpg

“아쉴브 영애.”

결심한 마르다가 보니카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가볍게 당겼다.

16550816476578.jpg

“……뭐죠?”

16550816476541.jpg

“저 궁금한 게 있어요.”

16550816476578.jpg

“나중에, 나중에요.”

16550816476541.jpg

“영애가 아니면 물어볼 곳이 없어서 그래요.”

16550816476578.jpg

“하, 뭔데요?”

바스티안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보니카가 고개를 돌려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16550816476541.jpg

“아까 영애들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해져서요.”

마르다는 보니카에게만 들리게끔 목소리를 더 낮췄다.

16550816476541.jpg

“그러니까, 티에르 공녀의 아이가 폐하의 아이가 맞는 거죠?”

16550816476578.jpg

“……네?”

보니카가 주변을 빠르게 살핀 뒤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상황에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16550816476541.jpg

“아니, 아까 영애들이 공녀와 디에스티 경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것처럼 말한 것 같아서요.”

16550816476578.jpg

“…….”

솔직히 말하면, 가십을 좋아하는 영애들의 말장난일 뿐이었다.

하지만, 보니카는 마르다의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16550816476578.jpg

“그래서요?”

16550816476541.jpg

“그럼 티에르 공녀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뜻 아녜요? 그래놓고 폐하의 아이라고 거짓말한 거라면…….”

16550816476578.jpg

“…….”

16550816476541.jpg

“역시 제가 너무 이상한 소리를 했나 봐요. 미안해요, 영애. 그냥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마르다가 황급히 실수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16550816476578.jpg

“……아녜요, 그런 의심이 들 수도 있죠.”

16550816476541.jpg

“휴, 제가 이렇다니까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마르다는 보니카의 눈빛이 실시간으로 표독스럽게 변하는 걸 만족스럽게 지켜봤다.

보니카만 생각대로 움직여 주면 되는데.

16550816476541.jpg

‘이블린 언니, 언니가 편하게 사랑받는 꼴은 보기 싫거든요.’

자, 이제 어떻게 나올 건가요, 아쉴브 영애?

마르다가 기대에 찬 눈으로 보니카를 응시했다.

* * *


16550816432469.jpg

“…….”

황궁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이블린은 눈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겼다.

생일 연회, 태도를 바꾼 부친.

페런가로 간 마르다, 마르다가 제게 보인 적의.

그리고, 에바.

16550816432469.jpg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이야. 그 하나만 찾으면 되는데.’

지금껏 하나씩 잡은 단서들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정리하던 이블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역시 결혼식 전에 부친을 정리하는 게 나을까? 그럼 결혼식에 문제가 생기려나.

결혼식에 앞서 티에르 가문 내의 불화가 터지는 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16550816432469.jpg

‘계약결혼이니까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터뜨리는 게 더 나을 테지만, 지금은…….’

이블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16550816432469.jpg

‘이러면 꼭, 내가 결혼식을 더 바라는 것 같잖아.’

정신 차려, 이블린 티에르.

이블린이 속으로 끙 앓는 소리를 내며 한숨을 삼킬 때였다.

16550816432464.jpg

“이블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바스티안이 발끝으로 이블린의 구두코를 톡 건드렸다.

16550816432469.jpg

“……아.”

16550816432464.jpg

“이제야 내게 시선을 주는군.”

바스티안이 서운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16550816432464.jpg

“왜 그리 심각한 얼굴이지? 공작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16550816432469.jpg

“아녜요, 폐하. 그건 아니…… 응?”

말을 이으며 무심코 발을 움직인 이블린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작은 마차도 아닌데 바스티안의 긴 다리 탓에 발이 엉켜 있었다.

16550816432469.jpg

‘……다리도 길어.’

감탄하던 이블린이 당황하며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16550816432469.jpg

‘나, 생각보다 더 외모를 보는지도.’

바스티안의 얼굴이 제 취향이라는 건 이미 인정한 후였지만, 이블린은 새삼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16550816432464.jpg

“이블린?”

바스티안이 다시 한번 발끝으로 이블린의 구두코를 톡톡 건드렸다.

이블린이 멍하니 그 장면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턱을 괸 채 짓궂게 웃고 있는 바스티안을 보며 이블린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6550816432469.jpg

‘그래, 처음부터 저 모습이 그리 싫지는 않았어.’

그간 바스티안과 해 온 모든 것이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녀의 사심도 조금은 섞여 있던 걸까.

어쩌면 그냥 연기라고 합리화한 건지도 모르지.

마음을 한 번 입 밖으로 내고 나니까 바스티안과 보낸 사소한 시간까지도 색다르게 다가오는 듯했다.

16550816432469.jpg

‘머릿속이 꽉 찬 기분이야.’

가문 일부터 결혼식, 바스티안에 대한 마음.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조금 피곤해진 느낌에 이블린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는 동안, 마차는 어느새 황궁 정문을 지나쳤다.

곧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마자 먼저 내려선 바스티안이 이블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16550816432469.jpg

“감사합……!”

자연스레 잡으려던 찰나, 이블린의 몸이 허공으로 떴다.

이블린을 옆으로 안아 든 바스티안이 망설임 없이 성큼 걸음을 옮겼다.

황제궁과 반대 방향이었다.

16550816432469.jpg

“폐하?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16550816432464.jpg

“그대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말이야. 머릿속을 좀 비워야 잠이 오지 않겠어?”

16550816432469.jpg

“그런 거라면 이제 괜찮아요, 그만 내려주세요, 폐하.”

뒤에서 우르르 쫓아오는 기사단을 보며 부끄러워진 이블린이 작게 속삭였다.

아니, 다들 왜 따라오는 거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단에게 그만 가라며 눈짓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다들 일정 거리만 둔 채 계속해서 따라올 뿐이었다.

왠지 다들 웃음을 참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16550816432464.jpg

“이블린, 잘 잡아. 그러다 떨어져도 몰라.”

16550816432469.jpg

“아, 네.”

눈을 가늘게 뜨고 기사단을 노려보던 이블린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16550816432469.jpg

‘연무장?’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를 확인한 이블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지 말고 검이라도 휘두르며 기분 전환하라 이건가.

16550816432469.jpg

“폐하, 저 그렇게 화가 나 보였나요?”

이블린이 몸의 긴장을 풀며 물었다.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바스티안은 걱정한 모양이었다.

바스티안의 과한 배려에 슬슬 웃음이 나오려고도 했다.

16550816432464.jpg

“글쎄,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대를 웃게 해주고 싶은 건 맞아.”

바스티안이 조금 늦게 대답을 하며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두운 공간에 이블린을 내려놓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잠깐 눈을 찡그려 빛에 적응한 이블린은 곧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16550816432469.jpg

“………이게 다 뭐죠? 왜 연무장에 이런…….”

이블린이 놀라서 굳어버린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였다.

1655081660030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