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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날 정말 좋아하나 봐 (68/95)


68. 날 정말 좋아하나 봐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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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고마운 선물이잖아요.”

못 말린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웃은 이블린이 안고 있던 인형을 바스티안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도톰한 솜으로 채워진 나무 모양 인형의 군데군데에서 엉성하게 바느질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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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풍습입니다. 받는 이의 무운과 안녕을 기원하는 거지만, 저희는 단장님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면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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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품에 지닐 수 있도록 작게 만들지만, 일부러 크게 만들었습니다. 잘 때 곁에 두면 걱정과 근심을 지워준다고도 합니다.”

 
쑥스러운 얼굴로 건네며 설명을 덧붙이던 기사단원들이 생각났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들이 한 땀씩 손을 거들며 만들었을 걸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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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예상도 못 했던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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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도 그 녀석들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리지만, 바스티안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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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 이 인형을 안고 주무시겠다? 그것도 우리 침대에서?”

침대란 단어에 유독 힘을 준 바스티안의 얼굴이 스르륵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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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걱정과 근심을 지워준다니까 한 번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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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대는 날 안고 자면 될 텐데.”

이블린은 바스티안의 짓궂은 농담을 못 들은 척하며 테이블 위에 인형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틀어 바스티안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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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폐하.”

붙어 있지 말라고 질투하면서도 휴이터까지 불러준 바스티안의 배려와 다정함이 더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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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면서 연무장에서 생일 연회를 하게 될 줄도 몰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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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적합한 장소였어. 체면 차리지 않아도 되고, 무슨 일이 생겨도 대응하기 좋은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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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러네요.”

이블린이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을 쓰고 속내를 숨겨야 했던 공작가에서의 연회와는 전혀 달랐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넓은 공간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웃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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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행복했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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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안 되겠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바스티안이 짧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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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걸 말해 봐,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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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미 많은 걸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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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내가 기사단 녀석들에게 밀릴 수는 없지.”

화들짝 놀라 내젓는 손을 바스티안이 낚아채듯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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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어서.”

바스티안이 이블린을 제 무릎 사이로 끌어와 한쪽 다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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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쯤은 그대 입으로 직접 말한 걸 주고 싶어.”

졸지에 바스티안의 무릎 위에 앉게 된 이블린이 난감해하며 입술을 어름거렸다.

보석이나 드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다 받은 것 같은데.

게다가 오늘은 마음 따뜻해지는 추억까지도 만들어 주었고.

솔직히 바스티안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준 것만으로도 기꺼웠다.

이제는 그녀 또한 마음을 표현할 때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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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는…… 폐하께서 곁을 지켜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정말로요.”

용기 내서 솔직한 마음을 전하니 바스티안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굳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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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었을까?

이블린이 바스티안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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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내가…….”

바스티안이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쩐지 목이 따끔거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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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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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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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티안은 이블린의 단단한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곁에 있어서 좋다.

내내 이블린에게 듣고 싶던 말이었다.

바스티안은 이블린의 손과 허리를 붙잡아 제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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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내가 조금 더 욕심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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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블린이 결심한 듯 목소리에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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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혼에, 한 사람의 진심만 담겨 있는 건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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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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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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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멍하니 굳어버린 바스티안의 입술 끝에 곧 그린 듯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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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블린, 기쁘게 선심을 써 주는 건 어때. 오늘은, 그대의 생일이니까.”

바스티안이 이블린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늘였다.

이블린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쳐다만 보자 바스티안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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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의도를 눈치챈 이블린이 곧 어이없다는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금방 뻔뻔해져서는 입맞춤을 바라는 모습이 퍽 귀여워 보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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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내 심장이 고장 나기 전에 서두르는 게 어때?”

이블린의 움직임이 없자 바스티안이 재촉하듯 졸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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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슨 그런 말씀을…….”

이블린이 핀잔하니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손을 더 밑으로 내려 제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댔다.

탄탄한 가슴 근육에 닿은 이블린의 손이 움찔 떨렸다.

맞닿은 손을 통해 쿵쿵쿵 커다란 박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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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있을 때면 난 늘 이랬어, 이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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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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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그래?”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쪽 심장도 더 뛰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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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듯한 이마부터 베일 듯 날카로운 턱선까지.

이블린은 조각처럼 매끄러운 바스티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사람, 정말 날 좋아하나 봐.

늘 차가운 얼굴로 농담이나 툭툭 던지는 사람인데, 이토록 열정적으로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의 열기와 긴장감이 옮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마다 몰랐던 사실을 착실하게 깨닫게 된다.

이 사람과 있으면 마치 어린 소녀가 되는 듯했다.

가슴이 콩닥대기도 하고, 자꾸만 상대방이 신경 쓰이고.

그의 장난 같은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것도 그렇고.

이런 건 다른 사람에게서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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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

기다리다 못한 바스티안이 눈을 뜨려 하자 이블린은 반사적으로 그의 눈을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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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되게 이상한 표정일 것 같아.’

그가 눈을 뜨면 무조건 들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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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금 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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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래?”

이블린은 제 손 밑에서 길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봤다.

무슨, 사람의 입술이 이토록 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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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시면 안 돼요.”

한 번 더 당부한 이블린이 손을 슬그머니 떼어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조심히 바스티안의 볼을 감싸 쥐었다.

침을 꼴깍 삼킨 이블린이 붉은 입술에 제 입술을 얹듯이 입을 맞췄다.

바스티안이 눈을 뜸과 동시에 이블린이 몸을 뒤로 물리며 손등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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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되겠죠?”

얼핏 본 바스티안의 표정이 묘했다.

설마, 부족하다는 걸까?

이블린의 미간이 좁아지려는 찰나, 바스티안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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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네, 이블린. 난 볼 키스 정도를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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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이, 진짜!

이블린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바스티안이 더 빨랐다.

휙 끌어당기는 힘에 이블린의 몸이 바스티안의 품 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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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대가 먼저 한 거야. 허락한 거다?”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손등을 떼어내며 그녀의 목과 턱으로 손끝을 미끄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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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 둬, 이블린.”

금방이라도 입술이 겹쳐질 듯 간격이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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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하는 건, 연기라는 핑계도 대지 않을 거니까.”

낮은 경고를 흘린 바스티안이 입술을 겹쳤다.

귓불을 스치는 손끝이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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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

이블린이 움찔하며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바스티안이 밀려들었다.

질척하게 섞이는 호흡이 농밀해서 어지러웠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휘발되어 날아가는 느낌.

이런 느낌도 바스티안과 있을 때만 경험하는 거였다.

이블린은 제 볼을 감싼 바스티안의 손을 꼭 쥐었다.

제 자리를 찾아가듯 아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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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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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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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출근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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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휴가야.”

바스티안이 침대 밖을 빠져나가려던 이블린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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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할 업무가 많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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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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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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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대의 생일이잖아. 하루 정도 생각을 비우고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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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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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명령이야.”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팽팽한 대립에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손을 휙 잡아당겼다.

그대로 침대 위에 풀썩 쓰러진 이블린을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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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대가 원하는 걸 전부 들어줄게. 일과 관련된 것만 빼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순순히 몸의 힘을 푼 이블린이 바스티안의 까만 머리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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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폐하, 저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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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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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폐하의 머리를 만져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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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픽 웃은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손을 가져다 제 머리 위에 얹었다.

이블린은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풍성하고 결 좋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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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원하는 게 이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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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그냥 어쩐지 만져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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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는 기분이야. 나쁘지 않은데.”

바스티안이 기분 좋아진 맹수처럼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블린은 웃음을 흘리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이상했다. 손에 닿는 촉감과 느낌이 꽤 익숙했다.

어릴 때 만져 보았던 토끼나 고양이를 떠올려봤지만, 조금 달랐다.

이블린은 의아해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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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할 일이 많은데.’

오후에는 정원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럼 바스티안의 명령을 따르면서 일도 볼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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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에타에게 도시락을 부탁해야겠어.’

어쩐지 즐겁고 달콤한 생일이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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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먼저 찾으실 줄은 몰랐어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아버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공작가를 다시 찾게 된 마르다가 드레스 자락을 살포시 쥐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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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제법 그럴듯해졌구나.”

마르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하듯 훑어본 티에르 공작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를 볼 때마다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도 철없는 소리나 하던 시골뜨기 시절과는 꽤 달라져 있었다.

역시 페런 백작가로 보낸 게 잘한 선택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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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라.”

공작의 허락에 마르다가 사뿐사뿐 걸어가 소파에 자리했다.

마르다는 이미 테이블 위에 준비된 다과를 보며 흡족해졌다.

공작가로 부른 것도 그렇고, 그녀를 대하는 부친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새벽녘에야 돌아온 페런 백작은 자고 있던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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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 얘야. 너는 내일 티에르 공작님을 만나게 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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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처음에는 명령을 어기고 연회에 참석한 것 때문에 화내려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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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래가 달린 중요한 자리가 자리야. 잘하면 네가 황비가 될 수도 있어. 실수하면 안 된다. 알겠지?”

 
하지만 뒤에 이어진 말을 들으며 짐작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보니카는 그녀의 예상대로 움직였고, 그 효과는 생각보다 더 크게 나타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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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블린 언니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다면서요?”

마르다는 대각선에 앉는 부친을 보며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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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절 드디어 황궁으로 보내주시기로 하신 건가요?”

오늘이야말로 부친의 의중을 제대로 확인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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