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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놓칠 수 없는 (69/95)


69. 놓칠 수 없는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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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래 기다렸어요, 아버지. 어릴 때부터 황후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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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고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느냐.

공작이 볼을 씰룩이면서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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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이블린 언니가 욕심을 부린 탓이겠죠. 안 그런가요?”

마르다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부친을 빤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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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요것 봐라? 수도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귀족 흉내를 내게 됐구나.’

전과 달라진 마르다의 눈빛을 본 공작은 퍽 흥미로워졌다.

멍청한 제 모친을 닮았나 했더니, 그래도 제 핏줄이긴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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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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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했던 약속, 지금도 지켜 주실 마음이 있으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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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네가 이블린을 대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공작이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마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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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시는 모양인데, 제가 이렇게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된 건 전부 제힘으로 이룬 거예요.”

마르다가 턱을 치켜들자 공작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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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소문이란 게…….’

짐작이 맞는다면, 어쩌면 마르다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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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럼 말해 보아라.”

공작의 표정이 급격히 친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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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널 황궁으로 보내도 될지 걱정하던 차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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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아버지의 딸이랍니다.”

마르다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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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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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린, 먹으면서 해.”

혀를 짧게 찬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입에 작은 쿠키를 밀어 넣었다.

공식 일과가 시작되기 전, 이른 새벽부터 도서관에 틀어박힌 상태였다.

어젯밤 나눈 대화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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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그 정령의 힘이란 건 어떻게 강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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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밤을 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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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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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침하면 생겨. 말하지 않았나, 황제와 황후가 반려의 의식을 치르면 생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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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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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지? 하,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보던가.”

 
덕분에 눈을 뜨자마자 이블린의 손에 이끌려 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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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말이네.”

책장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아 기록을 읽던 이블린이 탄식했다.

대대로 황실 주치의들이 적어 온 진료 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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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이블린. 내가 그대에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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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거죠?”

이블린의 고개가 뒤늦게 삐걱대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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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이 될지도 모르고, 악용하는 사례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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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침…….”

이블린이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입맞춤만으로도 바스티안에게 잡아먹히는 줄 알았는데.

그 이상했다가는 숨도 못 쉬고 기절해 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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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와 동침해서 힘을 키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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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머리를 콩 부딪쳐오며 기대는 바스티안에 이블린이 발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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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물론 그 생각에 찬성이야.”

짓궂은 말에 이블린이 옅은 한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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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루체이에서요. 제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이를 구하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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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이 힘을 쓰는 건 다른 정령술사와는 조금 달라. 내 몸이 매개체가 되어 본능적으로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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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건강에 영향은 없나요?”

이블린이 걱정스레 눈썹 끝을 일그러뜨렸다.

몸이 매개체가 된다니.

알면 알수록 황제의 책임과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다.

제국이 너무 오랫동안 황실만 바라보고 살았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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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안타까움에 종이를 손끝으로 문지르던 이블린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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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에게서 가져온 사유 재산이요. 그걸로 아카데미를 만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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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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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유능한 학자들을 데려와서 과학이나 다양한 쪽으로 재능 있는 이들을 육성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 폐하의 부담도 좀 덜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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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지. 대륙 연합도 갈수록 약해지는 상황이니까.”

정령의 축복을 받아 오랜 역사 동안 우위에 섰던 제국이다.

대륙 내에 그런 제국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것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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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건도 역시 그쪽일 확률이 높겠지.’

바스티안이 이블린의 머리에 기댔던 고개를 조금 더 기울여 이블린의 동그란 어깨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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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블린이 못 말린다는 듯 몸에 힘을 줬다.

저보다 훨씬 큰 체격의 사내가 기대어 오니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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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참 훌륭한 생각이야, 이블린. 역시 그대를 놓치면 안 되겠어.”

바스티안이 은근슬쩍 이블린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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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대가 이 힘을 쓰려면 몸에 흐르는 기운을 스스로 느끼는 게 먼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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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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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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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황제와 동침하는 거라고.

이블린이 그만하라며 말을 끊자 바스티안의 눈이 예쁘게 휘었다.

음, 저런 얼굴로 유혹해 오면 역시 못 버틸지도.

이블린이 괜히 헛기침하며 생각을 털어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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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바스티안이 들어오라 허락하자 다베르 후작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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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회의에서 긴급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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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때문인가.”

바스티안이 알 것 같다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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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꽤 늦었군.”

루체이에서 돌아오자마자 안건을 넣은 데다가, 며칠 전 공작가에서 열린 이블린의 생일 연회에서 불을 지펴 넣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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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블린이 조금 염려되는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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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이블린의 머리를 톡 건드린 뒤 이마에 입을 맞춘 바스티안이 웃은 뒤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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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일지?’

그리고 다베르 후작은 바닥에 흩어져 있는 서류 뭉치들을 빠르게 훑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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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네 건강에 관해 물으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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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버지의 입김이 드디어 공작님께도 영향을 미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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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버지는 네가 황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경하셔.”

 
이블린은 휴이터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황제궁의 실외 복도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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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떻게 나오려나.”

귀족 회의의 분위기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부친의 목적은 명확해지는 듯한데.

한숨을 쉬며 무심코 정원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이블린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에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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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 생일 축하드려요!”

 
며칠 전, 그녀의 생일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던 순박한 얼굴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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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켰다는 건 짐작도 못 하는 건가.’

에바가 더욱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함께 붙어 다니게 했던 하녀 아이들을 뺀 상태였다.

에바는 제 뒤를 쫓는 그림자가 항상 붙어 있다는 건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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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궁의 출입도 좀 풀린 상태니 슬슬 움직일 때가 됐지.’

이블린은 고민하다 에바를 따라 움직였다.

에바가 향한 곳은 본궁과 황제궁 사이에 있는 정원 중 하나였다.

오히려 길목에 있어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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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리숙한 하녀는 아니었구나.’

뛰어난 실력자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일반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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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껏 몰랐을까.’

순진하리만큼 믿은 게 잘못이었을까.

이블린은 씁쓸함을 삼키며 인기척을 죽였다.

근위병이 한 차례 교대를 마칠 때까지 돌아다니던 에바가 주변을 확인하고는 풀숲 안으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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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이블린의 존재를 진작 알아챈 기사단원이 어떻게 하냐며 먼 곳에서 눈빛으로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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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요.’

이블린의 예상대로, 에바가 빠져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내가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에바가 사라진 걸 확인한 이블린은 사내를 뒤쫓으라고 신호를 주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던 사내가 막 황궁 정문까지 향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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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멈추시죠.”

이블린의 신호를 받은 기사단원이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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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누구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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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망발이오!”

바스티안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것과 디에스티 공작이 벌떡 일어선 건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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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자고 긴급회의를 청한 거요?”

디에스티 공작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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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소문이 도는 걸 좌시할 수는 없잖습니까. 지금이야 저희끼리 이야기하는 거지, 말이 번지는 건 금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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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따지고 보면 공녀가 오해 살만한 행동을 한 게 원인이지요.”

바스티안에게서 냉기가 풀풀 풍기는데도 귀족들은 작정한 듯 물러서지 않았다.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오늘은 그들의 뜻을 관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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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경들의 말은, 내 아이를 가진 여인이, 그것도 황제의 호위기사단장씩이나 되는 티에르 공녀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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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티에르 가문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영애이지요. 하지만, 폐하 이성적으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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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단장의 건강 이상설은 꾸준히 말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루에 세 번씩 진찰받는다지요?”

바스티안의 턱이 꿈틀댔다.

역시 황궁 내 사람들을 솎아내기를 잘했지.

그가 이블린을 과하게 보호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전부 새어 나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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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들이 황실의 일에 관심이 많으니 참 고맙기 그지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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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당연한 말씀입니다. 황실과 폐하의 안위가 곧 제국의 안위 아니겠습니까.”

비꼬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귀족들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디에스티 공작을 위시한 친황제파 귀족들만이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이터와 이블린을 엮어서 공격해오니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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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르 공작.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바스티안이 방관하고 있는 공작을 차갑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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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있는 이들이 그대의 딸을 모욕하고, 황후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는 뜻이었다.

대놓고 타박하는 말에 공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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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유쾌할 수 있겠습니까, 폐하. 저로서는 처음부터 이런 일을 우려해 기사단장직에 오르는 것부터 반대했던 것입니다.”

침통한 듯 가라앉은 표정과 달리 모호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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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의 건강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지병을 앓기도 했고, 건강을 되찾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저도 걱정하던 바입니다.”

걱정을 빙자한 채 깎아내리는 발언이었다.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눈물을 글썽이는 공작을 보며 바스티안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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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희가 공녀가 황후가 되는 걸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아쉴브 후작이 크게 심호흡한 뒤 목소리를 높였다.

황제가 잔뜩 화가 난 게 느껴졌지만, 설마 여기서 제 목을 어찌할 수는 없을 터.

이쯤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척 연기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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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를 황후로 인정하는 대신, 황비를 추가로 들이시는 게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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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를 들이라?”

바스티안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아, 목적이 그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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