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조나단은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어둠침침한 방안에는 사각형의 테이블 하나와 자신이 앉은 의자, 그리고 맞은편 의자가 전부였다. 그나마 테이블 위에 놓인 마법등 덕분에 시야 확보가 가능했다.
수사관들은 구금되어 있던 그를 끌고 나와 지금 앉아있는 의자에 앉혔다.
끌려 들어오기 전 봤던 대로라면 이 방은 취조실이 분명했다.
곧 취조가 시작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조나단은 불안한 눈빛으로 묶인 두 손을 들어 올려 맞잡았다.
어차피 자신은 건네진 밀수품을 유통만 했을 뿐 밀수 루트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아는 사실만 이야기한다면 취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고작 밀수품 유통이야. 형을 받아봤자 3~4년이라고. 카멜리아 후작의 손에 죽는 것보다야 감옥에 가는 것이 훨씬 낫지. 암, 낫고 말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밝은 빛이 긴 실루엣과 함께 새어 들어왔다.
긴장에 젖은 조나단의 눈동자가 상황을 살피느라 이리저리 굴렀다.
잠깐 새어 들어왔던 복도의 빛은 곧 사라졌다. 대신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느릿하면서도 여유로운, 그래서 더 두렵게 하는 소리였다.
들어온 사람이 맞은 편 자리의 의자를 빼고 앉을 때까지도 조나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긴장으로 인한 마른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조나단 트리엘 남작?”
묵직한 저음이 위압감을 품고 그의 귀에 내려앉자 몸이 저절로 움칠하고 떨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수사국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조나단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묶인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아무래도 시력에 이상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제파의 수장이자 수사국의 국장인 데이모스 공작이 자신의 앞에 앉아있을 리가.
하지만 그가 몇 번이고 눈을 비벼도 상대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정말로 데이모스 공작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의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데이모스 공작이 직접 취조를 하는 경우는 제국의 안위와 관련된 중대 범죄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앞에 있단 말인가.
‘미, 밀수품 유통이 그렇게 큰 죄였나? 아니면 밀수품 중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었던 건가?’
크게 확대된 조나단의 동공이 갈피를 잃고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밀수했던 물품들을 다급히 머릿속으로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건 분명 없었다.
‘이건 오해야. 오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그가 밀수했던 것들은 대부분이 귀족들을 위한 사치품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제국의 안위를 위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조나단은 입을 뗄 수 없었다.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상대의 분위기에 압도당해버린 것이다.
수사관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위협적인 표정도, 고압적인 태도도 없었다. 그렇다고 오만한 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 긴 다리를 꼬고서 느긋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데이모스 공작을 연회에서 본 것은 여러 번이었지만 단 한 번도 가까이 간 적은 없었다.
귀족파인 그가 황제파의 수장인 데이모스 공작과 말을 섞을 일도 없는 데다가 자신이 말을 걸기에는 까마득히 위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데이모스 공작은 타고난 지배자였다. 아무 말 없이 서 있어도 자연스럽게 고귀함과 위엄이 흘러나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사내가 바로 눈앞에 앉아 있으니 위축되는 것도 당연했다.
얼어붙어 있던 조나단은 데이모스 공작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남작이 재미있는 일을 벌였다고 들었네.”
위협적인 느낌은 전혀 없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그런데 어째서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한이 드는 것 같은 걸까.
뭐라도 변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조나단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각하. 그저 저는 밀수……!”
“황실 연회에 허락받지 않은 음료를 반입했다고 했던가,”
“……예?”
조나단은 어리둥절했다.
밀수품 유통으로 취조를 받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연회에서의 일을 꺼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어진 공작의 목소리에 그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황제 폐하를 암살하려 한 건가?”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황제 폐하를 암살하려 했다니?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데이모스 공작의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조나단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만 뻐끔거리다가 다급히 외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무서운 생각을……!”
“그럼 무엇 때문에 음료를 몰래 들여온 거지?”
“그건…….”
조나단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을 말하려고 하니 그것 역시 범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쳤다. 어쨌든 황제 암살 죄만큼은 피해야만 했다.
“카, 카멜리아 후작에게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폐하가 아니라 카멜리아 후작에게 말인가?”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조나단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든 공작의 질문은 또다시 그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 카멜리아 후작을 암살하려 했던 건가?”
아니, 왜 자꾸 암살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입에 담는 건데?
울상이 된 조나단은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완전히 뒤섞여 버린 그의 머리는 질문에 대해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저, 절대 아닙니다! 그저 후작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헤리스가 들어간 칵테일을 몰래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후, 후작이 헤리스에 부작용이 있다고 누군가 말을 해서…….”
“그 말을 한 자가 누군가?”
“저도 모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야기를 섞게 되었는데 후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들었습니다.”
“그자의 인상착의는 기억하나?”
“로브를 쓰고 있었기는 하지만 대충은 기억합니다. 갈색 머리카락에 회색 눈동자를 지닌 20대 중반 정도의 사내였습니다. 잘생긴 편이었고 웃을 때 호감 가는 인상이었습니다.”
조나단은 군기가 바짝 들은 병사처럼 완전히 얼어붙은 채 물음에 신속하게 대답했다.
자칫 잘못하면 황제 암살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카멜리아 후작은 칵테일을 마셨나?”
“예. 하지만 곧 사라져 버리셔서…….”
“그 이후에 만난 적은 없고?”
“……어, 없습니다!”
잠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린 조나단은 황급히 답했다. 그러자 서늘한 공작의 목소리가 곧바로 돌아왔다.
“사실대로 털어놓는 것이 좋을 거야, 남작.”
순간 취조실 내부의 온도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섬뜩해진 조나단은 다급히 외쳤다.
“정말 그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맹세합니다!”
여관에 있다가 끌려가서 땅에 묻히고 죽이네 마네 협박을 받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데이모스 공작의 위압적인 기운도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무섭긴 했지만 자신의 목에 닿았던 차가운 칼날의 느낌은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무감정해서 더 무서운 하르 테스케 경의 눈빛도.
[오늘 이후로 그녀나 나에 대해 입에 올리게 되면 네 머리는 목에서 분리되게 될 거다. 네가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혹시라도 목이 베일까 싶어 거짓말을 하기는 했지만 겁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테이블 아래 조나단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공작은 시선을 내린 채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느릿하게 톡톡 칠 때마다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조나단의 심장도 쿵쿵 떨어져 내렸다.
어느 순간 데이모스 공작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다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실 연회에 대한 것은 넘어가도록 하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공작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던 조나단의 얼굴이 환해졌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재빨리 공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
“대신.”
“……?”
뭔가 싶어 고개를 든 조나단의 얼굴에서 금세 핏기가 사라졌다.
데이모스 공작이 섬뜩할 정도로 금안을 형형하게 빛내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리에서 시작된 떨림은 곧 조나단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어둠 속에서 맹수에게 주시당하는 가엾은 사냥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의 귓가로 묵직한 공작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이 시간 이후 카멜리아 후작에 대한 이야기가 남작의 입에서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남작은 귀족 암살 죄로 다시 나와 마주하게 될 걸세. 알겠나?”
입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자 조나단은 과격할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앞으로는 카멜리아 후작의 근처에도 가지 않겠노라고. 아니, ‘카’ 자만 나와도 도망치겠다고.
⚜ ⚜ ⚜
이케르가 취조실을 나서자 곧바로 미하엘이 따라붙었다.
“취조는 모두 끝나신 겁니까? 그럼 저자는 어떻게 할까요?”
“프레디 경을 투입하도록.”
“프레디 경이요? 프레디 경이면 밀수품 유통 범죄 담당이 아닙니까? 그럼 역시 각하께서 조나단 트리엘 남작에게 관심을 가지신 건 다른 이유로…….”
“미하엘.”
상사의 무뚝뚝한 부름에 미하엘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오랜 시간 보좌해온 경험상 저 목소리는 입 다물라는 소리였다.
“프레디 경에게 밀수 경로 확인하라고 하게. 그리고 사람 하나 찾아봐. 소문나지 않게.”
“사람 찾는 건 또 제가 전문이죠. 어떤 자입니까?”
“갈색 머리카락에 회색 눈동자를 지닌 20대 중반의 사내다. 잘생긴 편이고 웃을 때 호감 가는 인상이라던가. 트리엘 남작과 술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군. 누구의 밑에 있는지 확인해보게.”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미하엘이 자리를 떠나자 이케르는 국장실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와 같이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이지만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만큼.
‘조나단 트리엘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조나단에게 겁을 주기 위해 이케르는 일부러 죄명을 밀수품 유통이 아니라 황제 암살로 몰았다.
그럼에도 엘리시아에게 보복당한 것을 입에 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가 제대로 입막음을 잘한 것 같았다.
거기에 자신까지 압박을 가했으니 앞으로 조나단 트리엘의 입에서 엘리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확률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서신의 내용을 떠올린 이케르는 느슨하게 웃었다.
그 서신이 왜 자신에게 왔는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보낸 이의 의도도.
그는 자신이 받은 정보를 아주 잘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전부터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렇기에 엘리시아가 참석할, 모레 있을 정기 의회가 정말로 기대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