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날이라 손
님을 더는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어차피 오늘 할당량은 다 채우기도 했으니 슬슬 가게 마 감을 준비해야겠다.
드르륵.
두툼한 철창이 내려오고 나서야 마음을 안심하며 가게가 위치한 골 목을 지나 거리로 나섰다.
거리로 나서자 아직 이른 시간임 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인해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놈의 젊은것들은 질리지도 않 나.”
젊은것이라고 말하기엔 내 나이 또한 한참 어리긴 하지만, 지나가 는 투로 말하는 나에게 이의를 제 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이는 21살이며 이름은 강한성. 외모에 관해서는 직업 특성상 조금 잘생겨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기는 한다.
내 직업의 정확한 이름은 타투이
물론 타투를 해주는 것을 좋아하 기에 이 직업을 선택했을 뿐이지, 딱히 엄청난 사명감이 있다거나, 내 몸이 검은 먹선으로 가득 차있 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 다사다난’.
어렸을 땐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 가시고 그때 나온 사망보험금은 큰 아버지란 사람과 작은아버지란 사 람이 서로 가지겠다고 싸움을 해대 지를 않나…….
결국, 큰아버지란 작자가 부모님 두 분의 보험금을 모두 챙기며 나 의 양육권마저 법적으로 넘어가는 꼴이 되었지만, 그 큰아버지라는 작자는 아직 사람이 덜되었는지 나 에게서 보험금만 쏙 빼가고는 나를 다른 동네의 보육원으로 보내버렸 다.
그렇게 시작한 인생이지만, 나름 보육원 원장님의 도움으로 아르바 이트도 병행하며 직업학교를 졸업 했고, 직업학교에 다니며 조금씩 모아둔 아르바이트비로 20살에 홍 대 골목 구석진 자리에 작은 가게 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낡 은 고시원 한 곳을 얻었다.
물론 가게는 무보증으로 임대했 으니, 엄청난 월세가 빠져나가고 있다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만…….
나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에 입이 떡하니 벌어지게 된다.
정확하게는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을 거닐던 사람 전부가 멈춰 섰다.
내 불안한 인생사를 줄줄이 이어 가던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게 해 준 것. 아니, 정확하게는 아무런 생 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준 것은.
“이게 뭐야?”
눈앞에 나타난 작고 네모난 모양 의 반투명한 홀로그램이었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의 선물을 받아 ‘각성’합니다.]
신도 아니고 창조주라니?
당황하며 발걸음을 멈춘 것은 나 뿐이 아닌 듯, 사람들은 모두 황당 해 하는 표정으로 길거리 한가운데 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에이. 이게 무슨……
나는 내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반투명한 홀로그램을 헛것으로 치 부하며 눈을 잠시 감았다 떠보았다.
“ 응?”
눈을 깜빡이자 홀로그램이 경쾌 한 알람음과 함께 갱신되는가 싶더 니, 새로운 문구가 올라와 있었다.
띠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도 태될 것이다.]
세상에는 변화라는 이름의 혼란 이 찾아왔다.
2016년 12월 19일.
‘그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세상은 조금씩 변화를 맞이했다.
각종 언론매체는 이 현상이 어찌 된 일인지 각종 정부 관계자와 과 학자들에게 자문을 요구했지만, 그 들로서는 이 기괴한 현상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못했다.
아무도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상황에 적응하 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세상에 일어난 작은 변화 로는 지금 내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는 홀로그램 창 또한 한몫하고 있다.
[강한성]
+ Level. 1
十 미전직 상태
+ 특수.
- 종족. 인간
+ 스탯
-힘 11
- 민첩 9
- 지능 6
+ 보유 기술
- 미보유 상태
대단할 것도 없이 매우 초라한 상태 창.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작은 푸념을 하며 얼마 전 인터 넷에서 봤던 글을 떠올렸다.
이 상태창이라는 것은 그저 마음 속으로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하 면 바로 눈앞에 나타나며, 타인에 게 공유하고자 생각하기 전에는 오 로지 본인만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정확하게 전직을 했다는 사 람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부 인 터넷 매체에서 자신은 기사가 되었 느니 마법사가 되었느니 하는 글들 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그리고 이 상태창이라는 기능(?) 이 생기며 함께 생긴 덤 같은 능력 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물 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 다.
[연필]
나무와 흑연으로 만든 싸구려 연 필이 다.
이 능력 또한 거창할 것 없이, 정보를 원하는 물건에 손을 대고 마음속으로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 만 하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정보가 실시간으로 갱신된다는 점 정도일
까?
예를 들어 이 연필 끝 부분을 칼 로 날카롭게 갈아준다면 이런 식으 로 바뀌게 된다?
[날카로운 연필]
나무와 흑연으로 만든 싸구려 연 필이며, 끝 부분에 날카롭게 가공 되었다.
단조로운 홀로그램에 질린 현재 의 정보를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 는 방법인 티비를 켰다.
“아무래도 인터넷보다 실시간으 로 중계해주니 말이지.”
티비를 켜고 채널을 돌리자, 지 금까지 편성되었던 모든 방송은 뒤 로 밀려나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 다루는 특집들을 대량으로 틀어주 었다.
“어? 이건 뭐야.”
?이번에 세계 곳곳에 나타난 이 높은 탑 형식의 건축물은, 가까이 다가갈시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 까?’라는 문구와 함께 결정을 강요 하는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티비에는 관리를 하지 못해 꽤 지저분한 행색의 앵커가 이번에 갑 작스럽게 솟아난 건축물에 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던전?”
던전은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지 않은가?
「세계 각국의 정부 관계자 또는 과학자들은 아직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건축물에 대해서 군을 투입하 기로 했으며…….J
“결국은 미끼를 먼저 넣어볼 테 니 기다려 보라는 소리군.”
참고로 나는 ‘고아’라는 사유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먼저 투입되는 군인들만 불쌍하 게 됐군.”
대책 없이 군부터 투입하겠다는 무능한 정부를 탓하며 티비와 함께 신경도 꺼버렸다.
나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가게의 영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 고.
어차피 손님도 없을 테니 꽤 한 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기 대하며 작은 원룸을 나섰다.
물론 그 기대가 깨지기까지는 많 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우!”
마지막으로 한야(도깨비)의 뿔 부분에 명암을 세기자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고마워 동생! 젊은 사람이 실력 이 괜찮네."
마지막 손님은 꽤 큰 덩치와 험 악한 인상 때문에 처음에는 깡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 간이 지날수록 그의 남다른 친화력 에 매료되어 끝에 가서는 말을 편 하게 할 정도로 친근해졌다.
“아직 멀었습니다. 하하.”
“너무 겸손한 것도 문제라니까? 어쨌든 난 가볼게. 수고해 동생.”
그는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섰 다.
“넵! 다음에 또 들러주세요!”
나는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소파 에 누웠다.
“두 달 동안 손님이 백 명 정도 는 온 것 같은데. 그나저나 벌써 이렇게 됐네.”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다고 생각이 들어 큰일이다. 그도 그럴게.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난 이후로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보통은 나이를 먹게 되면 그렇 게 된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스물 한 살이라고!”
아무도 듣지 않을 외침이라고 생 각하니 괜히 기운이 빠지며 한숨이 흘러나온다.
물론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 것이 정말 나이가 먹었다고 느껴서 는 아닐 것이다. 그 이유야 요즘 가게에 손님이 부쩍 늘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사실 최근에 들어서까지 대한민 국에서는 타투(문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쪽으로 여론이 흐르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느 정도 나이가 어린 학 생들이나 20대까지는 그렇게 생각 하지는 않겠지만, 당장 30대 40대 부터 설문조사를 실행한다면, 타투 를 하는 사람들을 철없다고 생각하 는 경향이 큰 것이 현재의 여론이 었다.
물론 그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 지만, 손님이 늘어난 이유는 두 달 전 있었던 ‘그 날’이 크게 기여해 주었다.
‘그 날’이란 자칭 창조주라는 사 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자가 사람들 에게 이상한 게임 능력을 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날’ 이후 잠시간은 세상의 종말이다. 아니 다의 갑론 을박을 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지 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자 ‘죽어 도 하고 싶은 일들은 전부 하고 죽 자.’라는 주의가 되어, 이렇게 손님 이 많아진 것이다.
손님은 대부분 이삼십대의 젊은 층이 대부분이었으니, 세상이 이 지경이 됐는데 부모가 자식이 하고 자 하는 일을 말리는 일은 거의 없 어졌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런 때일수록 여러 기득권 층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는 것 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세상 이 말세라는 것이다.
“더불어서 저런 이상한 건물이 아직도 도심 안에 자리를 잡고 있 으니.”
시선이 향한 곳에는 가게 안에 손님들이 기다리며 보라고 설치해 둔 TV에서 아직도 특집으로 다루 고 있는 거대한 탑을 보여주며, 앵 커가 한 육군 대령에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진운 대령님. 파견된 특수부
대에서는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