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2)

연락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인가요?」

앵커가 대령의 이름을 밝히자, 그의 얼굴에는 작은 균열이 생겼지 만, 금방 사라졌기에 사람들은 크 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이상하게도 탑의

주변에만 가면 모든 현대의 전자기 기들이 먹통이 되기 때문에, 조금 아날로그식의 무전기를 쥐어서 보 냈지만, 그것 또한 탑 내부에 들어

가게 되면 소용이 없나 봅니다.」

나름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약간 의 조급함과 두려움이 실려있었다.

파견한 부대가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 지만, 군대에서는 까라면 까야 하 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자신이 덮어 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겠지 만 말이다.

“벌써 세 번째 부대가 파견된 거

였나?”

정부에서는 첫 번째 부대가 파견 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 지 않자, 급하게 부대를 재편성하 여 두 번째 부대를 파견하였지만, 두 번째 부대 또한 연락이 오지 않 았다.

급기야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 른 뒤에 세 번째 부대를 파견했지 만, 그마저도 연락이 오지를 않으 니, 아마 현 정부의 고위인사들은 지금 즈음 똥줄이 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띠- 하는 소리와 함께 티비의 화 면이 검게 변한다.

어차피 보고 있어 봐야 한숨만 더 나오는 장면이다.

“드디어 퇴근이다……

기지개를 켜며 온몸의 경직을 풀 어주고 있던 나의 모든 시선이 한 쪽에 집중되었다.

“이게 뭐야?”

나의 시선이 집중된 오른쪽 시야 구석에는, 이제는 익숙해진 홀로그 램으로 작게 빛나는 느낌표가 그려 져 있었다.

“아무리 일에 집중했다고는 하지

만, 내가 이걸 지금까지 발견 못 하다니……

어려서부터 한 번 일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를 못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중증이었다.

일단 확인부터 해야겠다는 생각 을 하자, 상태창과 함께 많은 홀로 그램이 떠올랐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문구는 바로 ‘전직’이라는 글자와 밝게 차오르는 빛이었다.

[전직 조건이 충족되어 자동으로

타투이스트로 전직이 됩니다.]

[당신은 최초로 전직한 타투이스 트입니다! '최초의 타투이스트' 칭 호가 주어지고 여러 스킬에 보정 효과를 받습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지?”

2챕터

화아아아!

홀로그램에서부터 밝은 빛이 흘 러나오더니, 빛의 갈무리들이 점점 나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 O 으”

? 1=1 ?

작은 침음이 흘러나오기는 했지 만, 아프지는 않은 상쾌한 기분이 다.

시간이 지나자 상쾌한 감정이 더 욱 충족되며, 방금까지만 해도 지 쳐있던 육신의 피로가 씻겨 나가고 머리는 맑아졌다.

“전직? 이게 진짜 게임이라도 되 는 거야?”

나의 궁금증이 더욱 깊어져 가 자, 이 작은 홀로그램은 그런 나의 궁금증에 대답이라도 해주는 듯이 수많은 정보를 갱신해주었다.

[새로운 칭호 ‘최초의 타투이스 트’가 생성됩니다!]

[새로운 스킬 ‘초급 타투’가 생성 됩니다!]

[새로운 스킬 ‘쉐이딩’이 생성됩

니다!]

[새로운 스킬 ‘라이닝’이 생성됩 니다!]

[새로운 스킬의 조건이 충족되었 습니다. ‘쉐이딩’과 ‘라이닝’이 ‘타 투이스트의 손길’이 됩니다!]

[새로운 스킬 ‘타투이스트의 손 길’。] 생성됩니다!]

[새로운 스탯 ‘손재주’가 생성됩 니다!]

[강한성]

+ Level. 1

+ 1 차 전직 - 타투이스트

+ 2차 전직 - 미전직 상태

+ 특수.

- 종족. 인간

- 최초의 타투이스트

+ 스탯

? 힘 11

- 민첩 11

- 지능 8

- 손재주 21

十 보유 스킬

- 초급 타투 Lv.l [Acctive]

- 타투이스트의 손길 [Passive]

꽤 많이 갱신된 홀로그램들을 하 나하나 천천히 읽어나가자, 나는 왠지 모를 흥분감에 감정이 고양되

어 갔다.

“지, 진짜 게임처럼 전직이 되었 어! 새로운 스탯도 생기고 새로운 스킬도 생겼다고!”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바쁜 삶 을 산 나머지, 내 인생에서 게임이 나 여가는 없는 단어가 돼버린 지 오래였다.

주변에서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 는 소식이 들리면 금방이라도 pc방 에 달려가서 캐릭터를 생성하고 싶 었지만,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내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들은 모두 사치라고 느껴졌기에.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조금이나 마 게임에 대해서는 다른 남자들처 럼 작은 로망이 있었다.

“나도 막 판타지 소설처럼 불을 만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기대감에 부풀어 새로 생긴 스킬 들을 둘러보았다.

[초급 타투 Lv.l] Acctive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동물이나 몬스터를 몸에 새길 수 있다.

지속 - 24시간

효과 - 동물의 경우 30%, 몬스 터의 경우 20% 만큼 대상의 스탯 을 빌려온다.

- 낮은 확률로 대상의 스킬을 사 용할 수 있다.

- [타투이스트의 손길] 효과로 20%의 상승 보정 효과를 받습니 다.

- [최초의 타투이스트] 효과로 10%의 상승 보정 효과를 받습니 다.

[타투이스트의 손길] Passive

‘쉐이딩’과 ‘라이닝’이 합쳐진 스 킬이다. 전문가의 손길로 타투의

질이 한층 높아진다.

지속 - 없음

효과 - 모든 스킬에 20%의 상 승 보정 효과를 받는다.

“최초의 타투이스트? 그러고 보 니, 아까 본 것 같기도 한데.”

너무 많은 정보에 혼란스러워 대 충 읽고 넘기다 보니 잠시 까먹고 있었다.

[최초의 타투이스트] 칭호

당신은 최초로 타투이스트로 전

직하였습니다.

효과 - 모든 스킬에 10%의 상 승 보정 효과를 받는다.

“최초? 내가 최초라고? 아무리 우리나라의 인식이 안 좋기는 해도 미국 같은 경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있는 게 타투인데?”

그의 말에도 나름의 일리는 있었 지만, 전직의 조건은 같은 행위를 100번 반복하는 것이다. 마음잡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는 숫자기는 하지만, 세상이 말세니 뭐니 하는 상황에서 가게의 영업을 계속 이어 나갈 정도로 성실한(?) 사람은 세 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군다나 100명이라는 손님이 단 기간에 몰릴 정도로 자리가 좋은 타투 매장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 운이 작용하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나저나 좋은 거 맞겠지?”

마음속 깊은 곳 한편에서 ‘별로 좋은 스킬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금 세 잊어버렸다.

“좋으면 어떻고, 안 좋으면 어때.

평소에 못해본 게임 현실에서 한다 고 생각하지 뭐.”

나는 급하게 퇴근 준비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며 가게의 문 앞에 작 은 종이를 붙여두었다.

[오늘은 쉽니다.]

‘후후. 오랜만에 인터넷을 뒤져봐 야겠다.’

어쩌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게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었다.

온통 불이 꺼져 있는 작은 원룸 에 들어와 형광등을 전부 켰더니 묘한 안정감이 드는 게, 이래서 집 이 좋다고 하는 건가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일을 하고 왔는데 몸이 전혀 피곤하지가 않단 말이지.”

최근 가게는 항상 손님으로 북적 거렸기에 집에만 들어오면 피곤에 절어 드러눕는 게 일상이었으나, 오늘은 신기하게도 전혀 피곤하지 가 않았다.

“전직의 영향인가? 이게 무슨 게 임처럼 레벨 업 할 때마다 체력이

랑 마나가 다 차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생각을 해볼까 고민했지 만, 결론은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런데, 이 놈의 스킬은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소설처럼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시스템이라 도 있으면 얼마나 좋아.”

조금 창피하지만 입으로도 말해 보고 상태창을 열어 스킬을 눌러도 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후우. 조급해하지 말자. 이럴 때 는 인터넷을 보는 거지.”

과연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 한 글이 인터넷에 아무렇게나 쓰여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켜고 최근에 생 긴 ‘각성자 커뮤니티’라는 사이트를 들어갔다.

사이트에 들어가자 두 달 전에 봤던 것들에 비해서 많은 게 변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반길만한 변화는 내가 찾고 있던 정보들을 모아놓은 ‘전직’ 카테고리가 생긴 것이다.

“이래서 사람이 SNS를 해야 한 다는 건가? 제길. 일에 치어 사는 사람도 생각 좀 해달라고.”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으며 ‘전직’이라 쓰여 있는 카테고리를 들어가자, 생각보다 흥미로운 정보 가 많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검사로 전직을 하였다고 밝히며, 진검을 들고 수 직 베기와 수평 베기를 수 없이 반 복했다는 글도 있었으며, 어떤 궁 술 국가대표는 자신이 궁수로 전직 했다고 밝혔다.

“호오. 생각보다 전직한 사람들 이 꽤 되는구나.”

그렇게 스크롤을 내리며 흥미로 운 글들을 읽어 내리던 중, 구미가 당기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초보자 특집! 스킬의 모든 것.]

“그래. 이거지.”

게시글에 쓰여 있는 내용을 요약 하면 대충 이렇다.

1. 스킬은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일정 행위를 반복하면 획득 할 수 있다.’

2. 스킬에는 전투스킬과 비전투 스킬로 나뉘는데, 스킬의 구분은 보통 전직자의 특성에 따라 갈린다. - 예시) 전직자가 전투직인 검사가 되었으면 검술과 관련한 스킬들로 구성이 되고, 전직자가 요리사나 학자 같은 비전투직으로 전직을 한 다면 그 전직과 관련된 스킬들이 생성된다.

3. 스킬의 사용법을 모르는 초보 자들이 많은데, 보통 스킬을 눌러 보거나 입으로 말해보는 경우가 많 을 것이다. 허나 이것들은 죄다 쓸 모없는 행위이며, 진정한 사용법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 이렇게 하라는 건가?”

나는 머릿속으로 아까 생성된 스 킬인 초급 타투를 떠올려보았다.

띠링!

[초급 타투 스킬이 사용됩니다! 알람은 첫 번째 스킬 사용 시에만 갱신됩니다』

눈앞에는 스킬이 사용됐다는 알 람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머릿속으 로 스킬의 구체적인 사용 방법이

한 번에 주입되었다.

“그러니까, 타투를 새길 부위를 정하고, 머릿속으로 도안을 그려 라? 단, 직접 본 생물체에 한해서? 좋아. 어차피 24시간밖에 지속이 안 된다고 했으니, 큼직하게 등으 로 하고. 동물은 호랑이가 좋겠군.”

호랑이야 고등학교 시절 체험학 습으로 동물원에서 본 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배 운 타투 기술과 결합시켜 머릿속에 도안을 떠올렸다.

슈우우우욱!

w 三丁 O ,’

도안이 완성되자 밝은 빛 무리와 함께 등 부분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타투를 새길 때의 고통이 한 순간에 몰려오는 것 같다.

[초급 타투 스킬의 사용에 성공 하셨습니다!]

[뛰어난 실력으로 좋은 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초급 타투 호(虎)의 영향으로 스 탯이 상승합니다!]

[초급 타투 스킬의 숙련도가 대 폭 증가합니다!]

[초급 타투 스킬 레벨이 상승합 니다!]

[초급 타투 스킬 레벨이 상승합 니다!]

“조선시대에 죄를 지으면 이런 기분인가? 인두로 지지는 기분이 내.”

물론 매우 과장된 말이다. 사실 상 고통은 직접 타투를 할 때 이상 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스킬 레벨이 이렇게 올리기 쉬운 건가?”

[강한성]

+ Level. 1

+ 1차 전직 - 타투이스트

十 2차 전직 - 미전직 상태

十 특수.

- 종족. 인간

- 최초의 타투이스트

- 초급 타투 : 호(虎)

+ 스탯

-힘 11 (+14)

- 민첩 11 (+12)

- 지능 8 (+1)

- 손재주 21

+ 보유 스킬

- 초급 타투 Lv.4 [Acctive]

- 타투이스트의 손길 [Passive]

“그러고 보니, 스탯이 오른다고 했던가?”

힘은 14가 올랐고, 민첩은 12, 지능은 1이 올랐다. 애조에 가지고 있던 스탯의 두 배 이상이 올랐지 만 지금으로서는 이 스탯이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 알 길이 없었 기에, 일단은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나저나, 지능은 1밖에 안 올 랐어? 하긴. 동물의 지능이 높아봤 자 얼마나 높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의 거울로 향해 등에 통째로 그려져

있는 한 마리의 호랑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확실한 것은 평소에 내가 작업하 던 타투보다 퀄리티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초급이 이정도면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대체……

여러 가지로 궁금한 점이 많아졌 기에, 우선 아까까지 하던 커뮤니 티를 다시 접속하기로 했다.

콰직!

“어?”

커뮤니티에 접속하기 위해 마우 스를 잡았더니 힘 조절이 너무 강 했는지,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대체 힘이 얼마나 강해졌으 면……

알고 싶은 게 여전히 많았지만, 마우스가 부서진 상태로는 컴퓨터 로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체감했 다.

“강해진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마우스 값만 버리게 생겼군.”

어쩔 수 없이 본체의 전원을 매 우 살살 눌러 컴퓨터를 종료했다. 본체마저 부서지면 앞으로 일 년간 컴퓨터는 할 수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이 본체의 할부가 3개월이나 남 았는데……. 벌써부터 고장나게 할 수는 없지. 티비나 볼까?”

티비를 켜자,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뉴스매체에 서 두 달 전의 일을 거론하고 있었 다. 하지만 어차피 매일 같은 이야 기를 반복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 기 때문에, 리모콘을 살살 눌러 채 널을 넘기자 이번에는 대통령이 조 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여러분…….

때문에 이번에 국회에서는 ‘전직자’ 특별법을 통과시켰으며, 국가의 모 든 전직자는 이번 서울 시내에 오 늘 완공된 전직자 관리청에서 등록 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대한 민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먼저 도입 중인 시스템으로 국내의 전직 자들을 서포트하고 관리하기 위함 이니, 모쪼록 국민 여러분의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모든 전직자라고? 미친 윗대가 리 놈들은 전 국민을 서울 도심으 로 모을 생각인가?”

아까 커뮤니티에서 확인했던 글 에는 분명히 일정 행위를 반복하면 전직이 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 다면 언젠가는 전 국민이 전직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이런 생 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사실 커뮤니티의 글에는 약간의 정 보가 빠져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 상의 모든 행위가 전직으로 이어지 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평범하게 삶 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전 직이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지 만,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은 긴 시간이 흐른 후였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국 가에서 까라면 까야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리청이 서 울에 있다는 정도지만, 이것을 제 외하면 모든 게 문제 투성이다. 아 무래도 전국의 모든 전직자들이 그 곳으로 몰릴 것이다. 사람이 몰리 면 시간은 오래 걸리기 마련이고, 애초에 그런 사소한 일들을 빼더라 도 중요한 시험 자체가 어떤 것인 지를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아무래도 가게를 하루 더 쉬어 야겠다.”

성실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강한 성의 삶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휘유. 급하게 지었다고 들었는 데, 꽤 잘 지었잖아?”

눈앞에는 불과 한 달 반 만에 지 었다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빌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의 능력이 개방된지는 두 달. 그리고 전직자가 생기기 시작 한 지는 못해도 한 달 반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을 텐데, 그 시간 안 에 이런 건물을 완공시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인 것이다.

물론 국가가 직접 지시한 건물이 니 비리나 저항 없이 곧바로 만들 어 이렇게 빨리 된 일이겠지만.

“다른 건물들도 이렇게 빨리빨리 지어주면 얼마나 좋아.”

건물의 내부는 이미 수많은 사람 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의 대 부분이 등에 검이나 활 같은 살벌 한 무기를 매고 있는 채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싸움이 안 나는 게 신기하구만.”

그렇게 쓸데없는 감상을 늘어놓 고 있자, 조금 바빠 보이는 여성이 애써 시간을 내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아, 등록하러 왔습니다.”

여성은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 다.

“지금은 대기 열이 긴 관계로 조 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저쪽에 가 있 으면 되나요?”

“네. 그럼 이 서류를 작성해주신 후, 번호표를 뽑고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아침 일찍부터 오느라 조금 피곤 해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뺨도 때리며 정신을 차려볼까 싶었지만, 결국에 는 밀려오는 잠의 파도에 눈꺼풀을 감아버 렸다.

꾸벅…….

“대기번호 261번 강한성님! 없으 십 니 까?”

“네네! 이, 있습니다!”

‘이크. 그래도 딱 맞게 일어나서

다행이군.’

시계를 보니 대략 세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거, 오래도 걸리는군.’

번호를 호명해준 직원의 뒤를 따 라 꽤 넓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 러자 그곳에는 한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이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처럼 의자에 앉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강한성씨?”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흰색 가운을 입은 여성이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웃음을 짓지 않음에도 꽤 미인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여성이다.

“‘타투이스트’로 전직하셨다고

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자신의 직업이 전투직인 지, 비전투직인지 알고 있나요?”

“ 아마??????

나는 그들이 물어보는 것을 성실 하게 대답했다. 끝에 가서는 스킬 에 대한 설명이나 효과도 보고 싶 다고 했는데, 등에 있는 웅장한 타 투를 보여주며 대답하자,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 뒤로 이 어진 힘과 민첩성을 알아보는 시험 에서 조금(?) 날뛰었더니 모두 늘 라는 눈치가 되었다.

“이건, 대단하군.”

“그렇네요. 아마 가능할지도 모 르겠습니다.”

“허어. 그렇군.”

그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 더니, 잠시 뒤 나에게 한 장의 종 이를 건네 왔다.

“강한성씨의 등급은 C로 책정되 었습니다.”

“등급이요?”

“설명을 못 들으셨습니까? 국가 에서 등록제를 운용하는 이유는 전 직자들에게 등급을 매겨 확실한 전 력을 알기 위함입니다.”

‘진짜 무슨 전쟁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아, 그렇군요. C면 잘 나온 건 가요?”

“등급은 F>E>D> C>B> A> S> Master 순으로 나누어집니다. 위치상으로만 보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등급이 지만, 지금 C등급을 판정받은 전직 자는 강한성씨가 열 번째입니다.”

“여, 열 번째요?”

“네. 지금까지 등록한 전직자는 총 12,057명입니다. 당신은 그 안 에서 상위 0.1% 안에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정확한 수치로 알려주자 조금씩 실감이 났다.

“이 전직이 그렇게 좋은 거였나 요?”

“네. 우선 직접 본 것에 한하지 만, 그 대상의 스탯을 빌려오는 직 업 자체가 없었을 뿐더러, 그 수치 가 아직 초급의 수치라면 후일이 되었을 때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대상보다 스탯만큼은 우월한 위치 에서 전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요.”

“전투요? 누군가와 싸워야 합니 까?”

“아직은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입 니다만, 그 문제로 강한성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이요?”

어째 불길한 기분이 마음 한구석 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디 다른 9명의 C급 전직자들 과 함께 탑의 던전에 들어가 주세 요.”

“탑의 던전이요?”

“두 달여 전, 갑자기 서울 한복 판에 나타난 거대한 탑을 아십니 까?”

“네. 뉴스에서 얼핏 본 것 같습 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앵커가 그 곳을 던전이라고 했던 것 같은 데……

“맞습니다. 그 건축물의 이름은 ‘탑의 던전’. 현대의 모든 화기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던전입니다.”

“모, 몬스터요? 그 게임에서나 나오는?”

“그렇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전직자들을 파견해 탑의 던전을 클 리어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탑의 던전은 한 번 클리어하면 바 로 사라지는 모양입니다.”

“그 던전이라는 게, 위험한 것 아닙 니 까?”

“위험하지 않다고는 하지 않겠습 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E급 100명과 D급 5명으로 이루어진 전 직자들로 탑을 클리어했습니다. 저 희가 예상하는 탑의 난이도는 E?D 급의 사이. 그렇기에 C급인 당신에 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번 C급이 된 전직자분들 중에는 ‘사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제라면 그 게임에서 버프도 주고 힐도 주는 캐릭터요?”

“맞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던전 ‘공략’은 매우 안전할 게 분명합니 다.”

하기야, 던전의 난이도가 E?D급 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C급 9명과 1명의 사제가 파견된다고 한다. 마 치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래서 저에겐 무슨 이득이 있 습니까?”

사업하는 입장이다 보니, ‘득과 실은 확실하게.’라는 주의가 되어버 렸다.

차가운 느낌으로 일관하던 그녀 의 표정에 미세하게 실금이 갔다.

“후우. C급의 분들은 모두 그런

말을 하시더군요.”

그녀는 입술을 질겅거리더니 미 리 준비해놓은 말을 꺼냈다.

“국가에서는 당신들에게 이번 던 전의 소유권을 드릴 예정입니다. 던전 내부에서 어떤 장비나 몬스터 의 사체를 얻어도 그것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 말은 이번이 두 번째군요. 그렇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다고 하니 들어 나 보자.

“바로 C급 이상의 전직자들에 한하여 국가 공무원직을 내릴 예정 입니다.” “국가 공무원직이요?”

이건 꽤 놀라웠다. 그도 그럴게. 안 그래도 취업난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마당에, 전국 취업 준비생들 의 절반 이상이 준비하고 있다는 공무원직을 공짜로 주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7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할 것입 니다. 월급과 연금도 같은 수준에 서 지급될 것입니다.”

“전직자 급수가 올라가면 공무원 급수도 동시에 올라가는 거고요?”

“아마. 그렇겠지요. 그 대신 그에 따르는 의무도 많아지겠지만요.”

사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 다. 국가 공무원직을 준다는 것 자 체가, 그 전직자들을 국가에 귀속 시킨다는 의미이며, 언젠가는 국가 의 명령 하에 강제로 움직여야 하 는 순간도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걸 다 감안하더라 도 너무 좋단 말이지.’

이런 거로 고민하게 되는 날이 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현 실이고,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

“좋습니다. 단, 계약서에 추가하 고 싶은 조건이 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두 번째 실금이 갔다. 이야, 꽤 신경을 건드 렸나 보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첫 번째군 요. 무엇이죠?”

“국가에서 쥐어준 정보가 ‘불일 치’할 시에는 그것에 합당한 ‘배상’ 을 합니다.”

“그렇군요. 그 정도야 제 선에서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며 고 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행동 은 그 정보들이 잘못 됐을 리가 없 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었지 만, 미래는 모를 일이다.

“좋습니다. 언제 시작하는 건가 요?”

“미리 말씀드릴 사항들이 꽤 됩 니다. 우선 다른 C급의 전직자 분 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시죠.”

“알겠습니다.‘

그녀는 마치 내가 이렇게 될 것 이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회 의실을 향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곳에는 각기

다른 성향을 띠는 9명이 원탁을 중 심으로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중 가장 쾌활하게 생긴 사내가 먼저 말을 건네 온다.

“안녕하십니까? 사제인 김환입니 다.”

갑작스레 건네 온 자기소개에 어 쩔 줄을 모르자,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아, 안녕하세요. 강한성입니다.”

굳이 내 직업을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사제라기에 청초하게 생긴 여성을 생각하고 있

었는데. 조금은 아쉽게 됐다.

이때, 지금까지 상황을 관전하던 여성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가장 상극의 성격을 가진 두 분 이 이렇게 자기소개를 나누니, 제 입장에서는 신기하군요.”

나의 등급을 평가하고, 나를 여 기까지 데려온 장본인이다.

“하하. 지연씨 기분이 왜 이리 안 좋아지셨나요?”

“시끄러워요. 어서 앉기나 하세 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이 직원……. 아니, 연구원의 이 름이 지연이었군.’

직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 만, 연구원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분위기와 이미지가 매치가 되는 기 분이었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 다.”

지연은 그렇게 회의의 시작을 알 리며 빔 프로젝터를 조작해, 원탁 앞에 거대한 스크린을 띄웠다.

김환을 제외한 나머지 다른 C급 의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제지도 참여도 하지 않

았다.

회의는 한 시간 삼십여 분 정도 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대부분이 미국에서 얻어온 정보들이었다.

“탑의 던전은 총 5층으로 이루어 져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선례를 가지고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에 나타난 던전 자체와는 다를 게 없을 것이라고 예상합니 다.”

지연의 말은 매우 무책임한 말이 었지만, 그만큼 그녀는 정보에 대 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지연의 말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하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 정보와는 생판 다른 곳이라면?”

입을 연 사람은 눈가에 길쭉한 상처가 나 있어서 그런지, 꽤나 시 대착오적인 생김새의 사내였다. 게 다가 등에는 자신의 몸과 크기가 비슷해 보이는 장궁을 매고 있었는 데, 그 때문에 그의 직업이 궁(弓) 과 관련돼 있음은 이미 기정사실이 었다.

“레인저인 선혁씨군요? 정보를 믿지 못하시겠다는 겁니까?”

“정보의 신뢰 여부를 떠나서, 만 약의 상황을 대비하자는 거야.”

지연의 고운 이마에 작은 혈관이 튀어나왔다.

“후우. 그 말은 오늘 두 번째 듣 는군요. 그에 관한 합당한 보상은 준비 해두겠습니 다. 됐습니 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은 잠자코 있도록 하지.”

그렇게 대화는 일단락되었지만, 방금의 대화로 인해 회의의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가라앉았다.

‘싸움만 안 나면 다행이겠군.’

“어쨌든. 다시 설명을 시작하겠 습니다. 던전은 총 5층. 아까도 말 씀드렸다시피, 미국의 도심 한복판 에 나타난 탑의 외형과 대한민국 서울 도심에 나타난 탑의 외형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의 탑이 같다는 전제를 깔고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탑은 총 5층으로 이루어져 있으 며, 한 층 한 층을 격파 할 때마다 난이도와 함께 층수가 올라가는 구 조라고 한다.

1층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는 코볼 트와 코볼트 킹. 쥐와 난쟁이를 합 쳐놓은 것 같은 생김새라고 한다. 코볼트 자체는 돌로 된 무기를 들 고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 지만, 코볼트 킹의 경우에는 ‘고유

기’인(여기서 '고유기'란, 보스들만 이 사용할 수 있는 본연의 특성 기 술이다.) 대지 강타를 사용한다고 한다. 대지강타를 사용하면 코볼트 킹을 기준으로 반경 50m 정도의 땅이 흔들리면서, 여러 갈래로 갈 라진다고 하는데, 진형을 무너뜨리 는 데에는 제격이기는 하나, 직접 적으로 가해지는 대미지도 없을 뿐 더러 10명이서 도전하는 주제에 진 형은 무슨. 지연은 이 부분에 대해 서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해 보였다.

2층은 펑거스와 펑거스킹. 이곳 에서부터는 주의를 필요로 한다.

펑거스는 버섯처럼 생긴 몬스터인 데, 일격에 죽이지 못할 시에는 그 상처부위에서 출혈을 일으키는 독 포자를 뿜어낸다고 한다. 펑거스킹 의 고유기는 포이즌 웨이브(Poison wave). 몸에 나 있는 여러 구멍에 서 독기를 방출하는데, 그 독기에 닿는 순간 몸이 경직 상태에 이르 며 해독까지는 1시간 정도의 시간 이 걸리기 때문에,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3층은 슬라임과 슬라임킹. 딱히 주의할 점은 없다고 한다. 다만 몸 전체가 반고체+액체의 형태로 되어 있고, 그 몸 내부의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아무리 난도질을 해도 사라 지지 않는다고 한다. 까다로운 점 은 몸 전체가 산성으로 되어 있다 는 점일까? 슬라임킹은 그냥 몸이 크다. 대략 4M 정도 된다고 하는 데, 그 몸 전체가 산성이란다. 고유 기는 없지만, 슬라임킹의 몸에 흡 수되는 순간 몸 전체가 바로 녹아 버린다고 한다. 그 때문에 미국에 서도 3층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지만, 몬스 터의 이름을 저렇게 대책 없이 지 어놓은 장본인이 누군지 궁금해지 는군.’

하품하며 잡생각을 하고 있던 것 을 들켰는지, 지연이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것처럼 나를 노려봤다.

어쨌든 이어서 설명하자면, 4층 에서부터는 특이하게 지형이 바뀌 는데, 바로 사방이 강이 되는 것이 다. 4층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멀 록(Murloc)과 멀록 킹. 개구리가 이족 보행을 한단다. 그리고 물 안 에서는 말도 안 되는 빠른 움직임 과 날카로운 이빨로 다리를 물어뜯 는다고 하는데, 불에 상당히 약하 다고 한다.

“이곳 4층에서는 불의 마도사인 윤아씨가 활약을 해주셔야 합니다.”

윤아라고 불린 여성은 특이하게 도 붉게 칠해진 고급스러운 로브를 몸 전체에 빙 두르고 있었는데, 신 비스러운 컨셉을 잡으려는 것인지 는 몰라도, 한여름에 상당히 더워 보였다.

그녀는 로브를 푹 눌러쓴 채로 낮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연은 그런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설 명을 시작했다.

멀록 킹의 고유기는 파도의 눈 (Eye of the wave). 강가에 작은 물의 소용돌이들을 만들어 지형을 어지럽혀 공격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파훼법은 소용돌이의 중앙에 있는 눈 모양의 구슬을 파 괴하면 되는데, 이 때문에 파도의 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마지막인 5층은 꽤 친숙한 몬스 터가 나온다. 그 몬스터의 이름은 오크. 5층 몬스터들의 특성은 ‘군 대’라고 한다. 인간과 유사한 체계 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는 오크들은 ‘그렉’이라는 보스 몬스터의 지휘를 따르는데, 다른 잔재주는 없지만, 온몸이 근육질로 덮여있는 오크들 이 철제 무기를 들고 진영을 갖추 며 달려오는 장면은 꽤 가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C급 인 여러분의 앞에서 모두 무력화될 것입니다.”

지연이 한 말이 격려의 말인지, 아니면 자신감에 차서 나온 말인지 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몬스터’와 싸우러 간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와 조금씩 몸을 경직시키던 C급 10명 의 긴장이 풀린 것은 좋은 일이었 다.

“그럼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탑을 정벌하는 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정부의 의 견을 수용해, 3일 뒤인 금요일로 하겠습니다. 각자 자택으로 등급이 나와 있는 신분증과 함께 오늘 회 의에서의 정보가 전달될 예정이니, 집에서도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아 무렴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니까요.”

지연은 그렇게 살벌한 말을 던져 놓고는, 문을 쾅! 하고 닫으며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섰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자, 사제인 김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러분. 팀워크도 기를 겸 오늘 저녁은 함께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 까?”

김환 나름에는 어색해진 분위기 를 풀기 위해서 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 턱에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졌 고,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회의 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 신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나를 보며 김환은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었지 만.

“저도 일이 있어서……

왠지 부담스러운 미소를 견딜 재 간이 없어, 다른 이들과 길을 함께 했다.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회 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몬스터가 실존한다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던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혹시 몬스터도 실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기는 했지만, 회의를 통해서 자세한 설 명을 들었을 때는 그게 현실적인 감각을 통해 느껴졌다.

무섭다. 무섭지 않다면 그 사람 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 섭기만 하다면 이번 부탁은 들어주

지 않았을 것이다.

“재밌겠지?”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은 공평하 게 흘러갔다.

무미건조의 극치. 거대한 탑을 눈앞에 두고 생긴 첫 감상이다.

“이렇게 아무런 무늬도 없을 줄 은 몰랐는데 말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만, 그 말에 반응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다른 이들은 그저 거대한 탑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탑의 앞에서 대기하던 중, 군대에 통제되어 있 던 울타리 사이로 검은 벤이 경호 를 받으며 들어왔다.

그리고 벤에서 내리는 검은 양복 의 한 남자.

“전직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짧은 머리를 포마드로 올린 중년 의 남성은 최근 티비나 인터넷에서 자주 보던 남성이었다.

“전직자 관리청장 이환석입니다. 미약하게나마, 저도 전직자입니다.”

자신을 관리청장이라 소개한 남 성은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c급 전직자 모두에게 악수를 주고받으 며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을 전

했다.

어째선지 직장 상사를 대하는 기 분이라 조금 껄끄러운 상대였지만, 옆에서 총구를 살벌하게 들이대고 있는 군인들 탓에 내민 손을 무시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대통령님의 관심이 많으십니다. 부디 잘 부탁 하겠습니다.”

이환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벤에 올라타 탑의 주변을 빠져나갔 다.

“뭐, 그럼 가볼까요?”

이번 단체(던전을 소탕하기 위해 결성된 임시 단체)에서 암묵적으로 리더가 된 사제 김환이 무리를 유 도해 탑의 입구를 향했다.

탑의 입구에 도착하자 모두의 눈 앞에 하나 같이 똑같은 알람이 떠 올랐다.

[경고! 탑의 던전에 입장하시겠 습니까? 네 / 아니요 ]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 을 보였지만, 이내 한 두 사람씩 희미한 빛에 감 쌓이며 형체가 사 라져 갔다.

‘저게 마법이라는 건가?’

이 현상을 마법이라고 치부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해야 할 행동이 하나인 것은 확실했다.

‘네’

이윽고 몸이 빛의 무리에 감기더 니, 몸이 공중을 부양하는 듯한 기 분과 함께 극심한 어지러움과 온몸 에 통증이 찾아왔다.

‘제길.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고 통이군.’

마치 전신을 타투기계로 난도질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일 초. 이 초. 삼 초.

화아아아!

눈앞의 장면이 나무가 울창한 숲 으로 바뀌어있었다.

“하아앗!”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 보자, 다들 나와 상황이 비슷한지 거친 숨을 걸러내고 있는 C급 조 원들이 보였다.

“으윽. 정말 오장육부가 뒤집히 는 기분이네요.”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 던 조원들이었지만, 김환의 이번 말에는 동의하는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신음을 내었다.

“후우. 그나저나 지형이 바뀐다 고는 들었지만, 탑 안에 이런 공간 이 있을 줄이야.”

솔직한 감상이었다. 분명 회의에 서 들은 정보에서 지형 자체가 바 뀐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완 벽한 공간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 다.

어느 정도 숨을 골라내고, 시간 이 지나자 김환이 다시 조원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일단은 제가 여러분에게 다중 버프를 걸어드리겠습니다. 성스러운 축복!”

그가 스킬명을 외치자 그의 온몸 에서 밝은 빛 무리가 쏟아져 나오 더니, 주변 사람들의 몸으로 스며 들어갔다.

[성스러운 축복의 효과를 받습니 다!]

당신은 빛의 사제의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이동 속도가 상승하고 몸의 피로 가 누적되는 것을 늦춰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르며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 다. 확실히 지금까지 느끼던 것과 는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아주 가 벼운 갑옷을 입은 든든한 기분이랄 까?

“후후. 사실은 스킬명을 외치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하면 멋있잖 아요?”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하하, 김환씨 답네요.”

“저 녀석의 천성은 어딜 가서도 변하지 않는군.”

사람들은 그런 김환의 행동에 긴 장이 조금씩 풀렸는지 얼굴에 작은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일단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들어 간 군대의 흔적을 찾는 거지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금 부끄러운지 낮게 속삭였다.

“자, 자기소개부터 하고 시작할 까요‘?”

사람들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이내 작게 웃으며 그 말에 수긍했다.

“그럼 저부터 하겠습니다! 사제 인 김환입니다! 정확히는 빛의 사 제이며, 방금 여러분께 걸어드렸던 버프라든지, 버프라든지, 버프라든 지……. 힐도 조금은 할 줄 압니다. 아직은 다친 상처 부위를 조금 아 물게 하는 정도가 최대지만요.”

그가 부끄럽다는 듯이 마치 방문 판매원이 물건을 소개하듯 자신의 내력을 줄줄이 읽어주자, 사람들은 차례차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 다.

“이름은 김선혁. 내 등에 달려있 는 장궁을 보면 알겠지만, 레인저 다. 내 말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 한다면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보도 록. 이래 보여도 내 나이는 서른아 홉이다. 환이 녀석처럼 버프 같은 건 없지만, 전투에는 자신이 있지.”

선혁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장 궁을 꺼내 멀리 있는 나무를 겨냥 했고, 이내 활시위를 놓았다.

퓨웅! 쾅!

화살은 나무를 향해 날아가더니, 나무의 겉면에 닿자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통으로 부숴버렸다.

“이름은 익스플로전 샷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있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

사람들은 그 말에 수긍했다. 저 정도의 전투력이라면 반드시 엄청 난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후로도 사람들은 각자의 소개 를 하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방패 병이나 검사 같은 육체 계열이 세 명. 트래퍼나 탐색꾼 같은 보조계 열이 세 명. 그리고 회의에서 불의 마도사라고 밝혀진 한윤아와 자신 을 빙결술사라고 소개한 마법사 한 명까지 마법 계열은 총 두 명이었 다.

그리고,

“타투이스트인 강한성입니다. 저 는 몸에 타투를 새겨드림으로써 대 상의 스탯을 일시적으로 높여주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소개를 끝마치자, 사람들은 저마다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았 다.

“스탯을 높여준다고요?”

김환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 는 듯 물어왔고, 나는 그럴 줄 알 았다는 듯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원래 이런 건 직접 경험해봐야 하니까요. 참고로 지속 시간은 24 시간입니다.”

나는 그의 목 스킬을 사용했다.

“초급 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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