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내 힘도 아닌 빌려온 힘 따위에 의지할 생각은 없지만, 사용할 수 있는 패는 모두 사용해 야 맞으리라.
‘혹시 모르니 새로 배운 스킬도 써놔야겠다.’
“잠시 진형을 이탈해도 되겠습니 까?”
일행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냐? 이런 중요한 상황 에 어딜 간다고? 화장실이라면 여 기서 지려라. 아무도 나무라지 않 는다.”
선혁은 조금 과장해서 말했지만, 그만큼 중요한데 왜 빠져나가느냐 는 식으로 해석하면 될 일이었다.
“어쩌면 이번 전투에 도움이 될 지도 몰라서 그래요.”
“말이 가정형이군. 얼마나 걸리
지‘?”
“5분이면 될 겁니다.”
“그 정도면 아슬아슬하겠군. 그 렇다면 나는 상관없으니 다른 이들 에게 허락을 구해라.”
이때, 김환이 나를 돕고자 나섰 다.
“한성씨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정말 도움이 되겠지요. 지금까지 봐온 그는 쓸데없는 일에 힘을 낭 비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말을 하는 지금도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빨리 보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환의 말을 들은 일행들의 눈빛 에 ‘혹시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하 는 불신의 뜻이 떠올랐지만, 그것 은 아주 잠시였고 다시금 정신을 다잡은 그들은 의견에 동의했다.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위험 한 상황에서는 결국 원래대로 돌아 가는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쩌 리. 자신도 같은 상황에 부닥쳤다 면 그랬을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일행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일행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잠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진영 을 빠져나가는 나를 멀뚱히 쳐다봤 지만, 이내 자세를 다잡았다.
“이 정도 왔으면 됐겠지?”
자세를 다잡고 잡생각을 없앴다.
‘뭘 해야 이득이지?’
지금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신 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도 잘 알기에, 고민이 깊어지는 것 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한야는 인간의 신체와 거의 흡사 한 몸을 가지고 있다. 본래 그녀가 인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괴 물이 되면서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그런 한야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부위.
“뿔!”
나는 한야의 상징과도 같은 뿔을 떠올려냈다. 그녀가 인간일 때와 괴물이 되었을 때의 차이점 중 가 장 또렷한 점은 뿔이었다. 아무래 도 뿔은 원념, 강함, 투기의 상징.
그 중 한 가지만 잘 걸려들어도 상 황을 쉽게 만들어줄 여러 가지 변 수를 만들 수 있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타투 : 신화.’
[타투 : 신화 스킬이 사용됩니다! 알람은 첫 번째 스킬 사용 시에만 갱신됩니다.]
처음 타투 스킬을 사용했을 때와 같은 홀로그램이 떠올랐고, 같은 방법으로 사용법이 흘러들어 왔다.
‘새길 부위를 정하고, 투영하고 싶은 존재의 신체 일부를 떠올리라 고 이 말이군.’
부위는 머리. 그리고 대상은 한 야의 뿔이다. 그렇게 정하자 다른 타투 스킬을 사용할 때와는 비교가 이상해질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느 껴 졌다.
“크으윽!”
이건 타투를 할 때의 고통 따위 가 아니다. 신화 속 존재를 직접 몸에 새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극 심한 정신력의 소모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을 것 만 같은 고통은 금세 줄어들었고, 1분여의 시간이 지나자 모든 고통 이 사라지며 어두운 기운의 덩어리 가 흘러나왔다.
A O O O......
주변의 모든 환경이 스산해지며 어두운 기운의 덩어리들이 머리로 모여들더니, 금세 흡수되었다.
화아아아!
[타투 : 신화 스킬의 사용에 성 공하셨습니다!]
[타투 : 신화 한야의 각(角)의 영 향으로 스탯이 대폭 상승합니다!]
[타투 : 신화 스킬의 숙련도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함에 따라 상승 합니다!]
[타투 : 신화 한야의 각(角)의 영 향으로 새로운 스킬 비명(碑銘)이 생성됩니다!]
“좋았어”
홀로그램에 떠오른 말들은 최고 의 상황이라 가정한 그대로였다.
[강한성]
+ Level. 5
+ 1차 전직 - 타투이스트
+ 2차 전직 - 미전직 상태
+ 특수.
- 종족. 인간
- 최초의 타투이스트
- 한야의 관심
- 중급 타투 (신화) : 코볼트(W 着)
- 타투 : 신화 한야의 각(角)
十 스탯
- 힘 12 (+32)
- 민첩 12 (+47)
- 지능 8 (+22) (+66)
- 손재주 41
+ 보유 스킬
- 중급 타투 Lv.l [Acctive]
- 타투이스트의 손길 [Passive]
- 몬스터 도감 [Passive]
- 타투 : 신화 Lv.l [Acctive]
- 비명(碑銘) [1 회성 Acctive]
“미친! 지능이 66이나 추가로 올 랐잖아?”
물론 지금 상황에서 힘이나 민첩 이 상승했다면 더욱 환호했겠지만, 지능이라도 단순히 66이라는 엄청 난 수치가 올랐다는 게 중요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쓸 데없는 것은 없었다. 지능이라도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고, 그 중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새로 얻은 스킬이 었다.
나는 급하게 새로운 스킬을 확인 했고, 예상대로 흡족한 미소가 지 어 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비명(碑銘)] 1회성 Acctive
한야의 복수심에 의해 육체를 잃 은 사념체들이 한곳에 모여 한야의 뿔이 되었고, 한야의 뿔은 곧 사념 체들의 상징이 되었다. 비명(碑銘) 이란 억울한 죽음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은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피눈물을 삼키고 있 다.
효과 - 자신의 지능에 비례한 숫 자만큼 원혼을 소환한다. 원혼이 지정한 대상을 투과(透過) 할 때마 다 대상은 원혼이 살아생전 받았던 고통을 공유하게 된다.
스킬 설명에서 보면 알 수 있겠 지만, 원혼들은 모두 한야에게 죽 임을 당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받 은 고통이라면 필시 죽음을 앞둔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문제는 그 고통이 코볼트 킹에게 통하느냐는 말인데, 생물이라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코볼트 들이 아무리 생각 없이 죽음을 불 싸지르며 덤비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온 상 황에서는 제아무리 몬스터라도 몸 을 주춤하게 된다. 그것은 코볼트 킹이라고 예외는 아닐 터. 그 점을 이용한다면 작은 틈을 만들 수 있 을 것이다.
나는 몸을 돌려 빠르게 일행과 합류했다. 일행과 합류하며 느낀 것이지만 진동이 점점 강해지고 있 었고, 무엇보다 4배는 더 크다는 코볼트 킹의 그림자가 뉘엿뉘엿 보 이는 듯싶었다.
“후우. 다 끝났습니다.”
일행은 내가 나올 때 취했던 자
세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아무런 성과가 없었어도 상관없다. 결국, 돌아왔고, 시간을 맞췄으니까. 이제 긴장해라.”
선혁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장궁 을 당겼다. 전투의 시발점은 항상 선혁의 익스플로전 샷이었다. 몬스 터 자체에 가해지는 대미지도 좋고, 몬스터 무리의 대열을 무너트리기 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익스플로전 샷.”
선혁이 낮게 읊조림과 동시에 끝 이 뭉툭한 화살이 코볼트 킹을 향 해 쇄도했다.
사아아악! 콰과광!
화살이 코볼트 킹과 부딪히자 전 보다 강해진 폭발력과 함께 커다란 화염이 코볼트 킹 자체를 삼켰다.
“저게 저 정도였나?”
창술사인 치원은 황당하다는 듯 이 지켜봤다.
하긴, 나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기는 했다.
‘각설하고. 감상은 집어치운다.
애초에 정보가 잘못되어 있었어. C 급이면 충분하다는 정보는 거짓이 다.’
이런 상황에서 비관적으로 상황 을 바라보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분석은 정확 한 것이었다. 만약 미국의 정보대 로 똑같은 난이도를 가진 던전이었 다면, 선혁의 공격에 보스의 몸 어 느 한쪽이라도 떨어지거나 다쳤어 야 맞다.
‘그런데 저걸 보라고.’
“크아아아!”
코볼트 킹은 이런 화염 따위 대 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징그러운 팔 을 허우적거리며 화염과 맞섰다.
불길 속에서 코볼트들과 빠져나 온 코볼트 킹의 모습은 가히 장관 이었다. 거대한 몸체에서 듬성듬성 자라난 털은 선혁이 만들어낸 화염 에 그을려 검게 변질됐고, 갑작스 러운 공격에 흥분한 얼굴은 모든 안면근육이 일그러지며 더욱 징그 러운 모습이 되었다.
“제길! 다들 흩어져! 정보는 확 실히 틀렸어! 저놈은 우리 실력으 로도 힘든 녀석이다! 우선 흩어져 서 각개로 코볼트들을 격파하며 코 볼트 킹과의 조우를 기다린다!”
전투에서는 실질적인 리더 역할 을 맡고 있는 선혁이 명령을 내리 자 일행은 단숨에 산개하였다. 일 행이 숲 속으로 하나둘 사라지자 코볼트 킹은 제자리에 멈춰서 코볼 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추임 새를 취했다. 그러자 일행들이 산 개한 방향으로 코볼트들이 대거 몰 려들기 시작했는데, 이건 선혁이 바란 가장 이상적인 상황 중에 하 나였다.
“좋아! 저놈들이 퍼지기 시작했 다. 각자 잘 숨어서 한 마리, 한 마 리 해치우다 보면 언젠가는 코볼트 킹만 남게 될 거다. 그때까지 몸을
사려! 멀티샷!”
선혁은 끝까지 말을 전달하며 자 신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코볼트 세 마리에게 각각 화살을 한 발씩 쏘 아주고는 자신도 숨어버렸다.
나는 선혁의 말을 듣자마자 가장 옆길로 뛰어 일행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만큼 다가오는 코볼트들의 숫자도 확연하게 적었 다.
“키케케케케!”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아.’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다가오 는 녀석을 보니, 마치 눈빛이 ‘네놈 들은 이제 끝이다!’하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나는 빠르게 다가가 코볼트의 머 리통을 강하게 내리쳤고, 카득! 하 는 소리와 함께 코볼트의 머리통이 터지며 녹빛의 뇌수가 튀어나왔다.
투둑!
얼굴에 몬스터의 뇌수가 흘러내 리는 상황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지금은 강해진 힘에 전율하여 그런 것을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도취 해 있는 상태였다.
‘좋아. 우선 내 몸 하나는 건사하 겠군.’
나는 차오르는 힘에 만족하며 주 변에 더 다가오는 코볼트는 없는지 확인했으나, 다가오는 녀석은 없었 다. 휑하니 비어있는 숲을 보고 있 자니, 커다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불길한 기운은 항상 틀 리지를 않지. 제길!’
“캬아아아아아!”
코볼트 킹의 울부짖음이 꽤 가까 운 곳에서 들려왔다.
사실 코볼트 킹의 뇌 속에는 작 은 네트워크 구조의 정보망이 구축 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코볼트 들의 죽음과 연동되어 죽음 직전의 모든 상황을 '감각'으로 느끼게 해 주는데, 한성이 압도적인 힘으로 코볼트를 짓누르자, 가만히 있던 코볼트 킹의 뇌 속에 다른 죽음의 상황과는 다른 압도적인 힘이 전해 져 왔다. 그 힘을 느낀 코볼트 킹 은 자신이 나서는 게 가장 나을 것 이라 본능적으로 판단했고, 코볼트 가 죽음을 전해온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실정이 작금의 상황 이다.
물론 그 상황을 모르기에 이를 악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