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길. 선혁씨의 작전대로면, 안 정적인 상태로 토벌을 마칠 수 있
는 건데!’
이렇게 된 이상, 힘겨루기를 해 야 한다. 압도적으로 상승한 스탯 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보스 몬 스터인 코볼트 킹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나의 존재를 알아차 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신 이 있으니 다가오는 게 아닐지 추 측했다. 게다가 코볼트 킹의 전투 감각은 자신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수준일 것이다. 스탯은 비등비등하 고 전투 감각은 훨씬 떨어지는 상 황. 일행을 부르고 싶어도 그들은 코볼트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 을 것이고, 어차피 도움을 주러 온 다고 하더라도 10명 전부가 모이는 게 아닌 이상은 솔직히 방해였다. 아직은 팀워크가 완벽한 것도 아니 고, 능력을 전부 파악한 것도 아니 니 말이다.
“결론은 나 혼자 해야 한다는 말 인데.”
이런 상황은 좋아하지 않는다. 모 아니면 도. 인생에서 도밖에 없 었던 나에게 모를 던지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못하면 죽겠지.”
결국에는 ‘변수’를 만들기 위한 것에 지나치지 않았던 스킬을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스킬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 는 것은, 스킬이 일회성이라는 점 과 정확한 위력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죽음에 육박하는 고 통이 임박한다면 어떤 생물이든 자 지러지겠지만, 그 죽음에 육박하는 고통’이란 게 사람조차 개개인이 다른 것이다. 평생을 훈련한 전사 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도련님 이 느끼는 고통의 총량이 같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건 코 볼트 킹에게도 적용된다. 과연 코 볼트 킹에게도 인간을 죽음에 이르 게 하는 고통이 통할까?
‘하. 나도 많이 변했구나. 평소라 면 이딴 위험한 일 따위, 하지 않 았을 텐데.’
어릴 때와는 다르게 변한 자신을 탓하며 코볼트 킹의 울음소리가 들 려온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며 몸을 한계 속도까 지 몰아붙였다. 어차피 스탯이라는 게 몸의 한계점과 비슷한 거라, 이 런 속도로 달려도 몸에 무리가 오 지는 않았지만 단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눈.
‘빠르게 달리면 장사일 줄 알았
더니, 엄청나게 따끔거리는군.’
빠르게 달리는 것에 적응하는 육 체와 달리 눈은 그대로였다. 빠르 게 달리면 달릴수록 따끔한 바람이 눈에 들어와 자꾸 시야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전투에서는 작은 변 수 하나가 모든 판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일 분이라는 시간만 가정하 더라도, 수백 번의 행동이 반복될 것이고 수천 번의 생각이 서로를 교차하는 것. 그게 전투였다.
그런 상황에서 눈이 몸에 적응하 지 못한 점은 꽤 불리한 변수로 적 응할 수도 있지만, 모든 상황을 가 려가며 전투를 치를 수 있다면 애 초에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후우.”
이제는 시야에 잡힐 정도로 가까 워진 코볼트 킹을 바라보며 속도를 늦추고 심호흡을 했다.
‘우선은 스탯의 총량부터 확인해 야겠다.’
코볼트 킹의 수준은 최소한 C급 의 능력자 이상으로 생각해야 했다. C급이라는 등급 자체가 사람이 인 위적으로 내린 등급에 불과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의지할 수 있는 정보가 그런 것뿐이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코볼트 킹의 등급을 최소 C로 분류하자면, 지금 엄청난 스탯 상승으로 인해 도핑 되어 있는 내 몸의 상태는 최소 B급이라고 분류 할 수 있었다. 등급 상으로는 코볼 트 킹의 스탯이 나보다 적은 상황 이 되겠지만, 보스 몬스터라면 다 른 몬스터들과 같은 등급이어도 차 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을 터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최적 의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런 것조차 불가했다.
“캬아아아아아!”
이제는 서로 대치할 정도로 거리 가 가까워진 코볼트 킹.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몬스터 자 체도 외관이 상당히 악질적인데 보 스 몬스터의 모습은 그 악질적인 모습들을 모두 확장해 놓은 모습이 라 정신이 조금 흔들릴 뻔했다.
“제길. 징그러운 등급으로는 으를 줘도 되겠군!”
콰앙! 나는 자리를 박차며 코볼 트 킹을 향해 선제 공격했다. 눈치 싸움 따위 성격에 어울리는 게 아 니었다.
어릴 적부터 모든 것을 충동적으
로, 하지만 체계적인 각이 잡힌 선 안에서 해결해온 나에게 당면해 온 상황에서 타개책은 처음부터 정면 돌파 뿐이었다.
퍼억! 캬아아아악!
코볼트 킹은 우발적으로 나온 나 의 대처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선제타를 허용했고, 내 주먹은 보 기 좋게 코볼트 킹의 안면에 처박 혀 들어갔다.
그때부터는 지루한 공방의 시작 이었다.
코볼트 킹이 때리면 막는다. 막 은 후에는 반격한다. 그럼 코볼트 킹은 그 공격을 막아낸다. 그리고 반격한다. 지루할 정도로 단순 반 복의 상황이었지만, 전투를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어느 면으로는 같다고 해야 하는가?
“제길! 기분 한번 더럽네!”
“캬아아아아아!”
평소에 전해지지 않는 피부의 접 촉 감각이 전신을 통해 들어오니,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점만 빼면 지금의 상 황이 막상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스탯으로는 비등비등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우세했다. 하지만 코 볼트 킹에게는 나에게 없는 압도적 인 전투감각이 있었다. 몬스터들이 단련을 하는 장면은 상상할 수 없 지만, 아마 그들에게는 태어날 때 부터 가지는 본능적인 감각일 것이 다.
“푸하!”
나는 일부러 커다란 동작을 휘두 르고는 뒤로 물러나 코볼트 킹의 반응을 살폈다.
“三1己 5 E......”
이런 상황만 되면 낮게 울어대는 것은 몬스터의 특성이라도 되는 것 일까? 코볼트 킹은 나의 수준이 의 외로 높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간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한쪽의 균형이 조금만 무너지더라도 전투 의 판가름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 다.
수많은 타개법이 존재하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였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 건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한 다. 주변의 상황에 딱딱 들어맞으 며 나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내 인생을 통째로 조작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 나?
“퉤! 어쨌든 기분이 좋지는 않 네.”
입 안에 끓어오르는 가래를 신경 질적으로 뱉으며 코볼트 킹을 노려 봤다. 여전히 못생겼으며 징그러웠 다.
‘푸흐. 그런 걸 생각해보면 사람 으로 태어난 게 축복이기는 하구 나.’
나는 경직된 자세를 풀고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코볼트 킹의 입장 에서는 상당히 거만하고 자신감 넘 쳐 보이는 도발적인 자세였다.
“캬아아아아!”
도발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코볼트 킹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다.
“너 죽고 나 좀 살자 이 새끼 야!”
‘비명!’
고오오오오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며 머 리 위에는 흉악하게 일렁거리는 두 개의 뿔이 솟아났다. 뿔은 현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신 기루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 유지 되고 있었다.
내 몸에 변화를 느낀 코볼트 킹 이 잠시 멈춰 서서는 나의 변화를 느끼고 정보를 수집해갔다.
허공에 떠오른 몸의 주변에는 푸 른 색상의 형태 없는 기운이 공기 중을 정처 없이 맴돌고 있었다. 마 치 길 잃은 사람처럼 휘청휘청 거 리며.
형태가 없는데 사람에 비유하는 게 우스웠지만, 스킬 설명을 읽은 나로서는 그들이 불쌍하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대상으로 느껴질 뿐이 다.
‘3마리. 이 상황을 좋게 봐야 하 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용해보면 알 겠지.’
나는 머리 위에 돋아난 뿔을 만 지려다가 형태 없이 기운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내렸다. 그리 고 생각했다.
‘ 가라.’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나라도 저 런 속도와 움직임을 가질 수 있을 까?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기운의 움직임은 괴리감이 느껴졌 다.
기운은 금세 코볼트 킹의 몸을 통과했고, 코볼트 킹은 무언가 자 신의 몸을 통과하는 걸 느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어리등 절한 표정을 지었다.
“크아아아아!”
코볼트 킹은 자신이 속았다고 느 낀 것인지 더욱 거세게 울어대며 나에게 다가올 태세를 갖췄다. 그 런데 그때 코볼트 킹의 온몸이 경 직되 었다.
“ 오?”
나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코볼트 킹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 마려운 강아지 같군.’
“크, 크륵……. 크르륵!”
코볼트 킹의 안면근육은 시간이 지날수록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극 심한 고통을 참으며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모습이. 육체가 직접 받는 고통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은 엄청날 것이라는 걸 온 몸으로 드 러내고 있었다.
‘허, 대단하군.’
아무리 종이 다르다고는 해도 죽 음에 이르는 고통이다. 나는 그런 코볼트 킹의 모습을 보며 어떤 면 으로는 대단하다며 혀를 찼다.
‘저런 괴물과 아무런 보험도 없 이 싸우라고 하다니. 망할 전직자 관리청 놈들.’
어찌 됐든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스킬의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코볼트 킹의 움직임 자 체는 확실하게 묶어두고 있다는 게 꽤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는 두 개의 푸른 기운을 바라봤다. 샐쭉 해진 눈은 기쁜 듯이 초승달의 모 양으로 휘어졌고 입에는 기쁨으로 가득한 환희의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그 미소가 코볼트 킹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내 알 바는 아니고.’
“그래! 까짓 거 내 인생에서도 모 한 번만 던져보자! 죽었다고 복 창해라 망할놈아!”
남은 두 개의 푸른 기운을 코볼 트 킹을 향해 쏘아내며 공중에 부 유하고 있던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 키에에에에엑!”
남은 두 개의 푸른 기운이 코볼 트 킹의 몸을 향해 쇄도하자 지금 까지 참고 있던 고통을 모두 방출 하듯, 커다란 포효를 내질렀다.
“귀 아파 이 새끼야!”
쾅!
몸과 함께 내지른 주먹이 코볼트 킹의 일그러진 안면에 처박혔다.
‘소리만 들으면 무슨 벽에다 대 고 주먹질을 한 줄 알겠네!’
“크, 크륵!”
코볼트 킹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 를 먹이자 다부진 입술에서 녹빛의 액체가 덩어리 채 튀어나왔다. 정 신이 없는 상황에서 골이 울릴 정 도의 충격을 먹였으니, 코볼트 킹 은 지금 죽을 맛일 것이다.
‘후우! 지속이 얼마나 갈지 모르 니, 남은 시간 동안 전력으로 두들 겨 패주마!’
쾅! 콰광! 콰득! 연속된 주먹질과 발길질에 코볼트 킹의 입 안에서 반 토막이 난 어금니가 튀어나온다.
“크, 크아아아아아악!”
코볼트 킹이 아무리 비명을 질러 대고 괴성으로 위협해도 주먹질과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끝내, 킹 의 몸 이곳저곳에서 뼈와 관절들이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일어설 힘도 없는 듯, 바닥에 고꾸라져 꿈틀댈 뿐이었다.
쿠륵……. 크르륵.”
“후우. 후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코볼트 킹을 향해 지 긋지긋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뭔 놈의 몸이 이렇게 단단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대는 때린 것 같은데…….“
이래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 다고 하나보다. 이번 던전에서 나 가게 된다면 무술이라도 배워야겠 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흐음. 이렇게 두들겨 패놓고 나 니, 미안하긴 하네.”
그때, 예민해진 온몸의 감각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 응?”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 리자 불의 마도사인 한윤아가 로브 를 푹 둘러쓴 상태로 이쪽을 응시 하고 있었다. 발 부분을 보니 나뭇 가지가 부러져 있는 게, 아마 실수 로 밟은 듯했다.
“거의 다 끝났으니 기다려요.”
한윤아는 잠시 몸을 움찔거리더 니, 이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이고 장소에서 사라졌다.
“제길. 딱히 보여주고 싶은 장면 은 아니었는데.”
머리에는 일렁거리는 검은 색의 흉측한 뿔이 달려있고 몸은 공중에 둥둥 떠다닌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 는 코볼트 킹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 모습은……. 아마 남이 보기에 는 그다지 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치 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안 죽었잖
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지 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랄까, 길가에 흔한 개미를 밟은 기분이랄 까? 개미도 작은 생명체이기는 하 지만, 개미를 밟아 죽였다고 죄책 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조금 커다란 개미기는 하지만. 하아.’
한숨이 나왔다. 이런 변화가 나 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으아아아!”
나는 작게 소리를 지르고는 고개 를 털고 다시금 코볼트 킹을 내려 봤다. 이제는 흉측하다 못해 눈뜨 고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살아있 었고, 시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지 금까지 일행과 수많은 코볼트를 죽 였지만 그중에서 시체가 사라지지 않은 코볼트는 없었다. 물론 보스 몬스터는 다를지도 모른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 다. 하지만 느껴졌다. 평소가 아닌 한야의 뿔이 몸에 현신한 지금은 코볼트 킹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스윽. 가볍게 움직여 코볼트 킹 에게 다가갔다.
“케르륵……
마지막까지 징그럽게 혓바닥을 내밀고 웃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재수가 없으려니 생각해.”
나는 코볼트 킹의 두꺼운 목을 잡고 손을 움켜쥐었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뼈가 산산조각이 나 는 감촉과 함께 본능적으로 ‘죽었 다’라는 게 느껴졌다.
사아아아아!
코볼트 킹의 시체는 시간을 거스 르듯 점점 사그라 들더니 이내, 가 루처럼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코볼트 킹이 처치되었습니다!]
[공헌도에 따라 아이템과 경험치 가 차등 배분됩니다!]
[코볼트 킹의 처치 공헌도]
타투이스트 - 강한성 99%
레인저 - 김선혁 1%
“귀찮게 이런 친절한 시스템은 왜 만든 거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눈앞에 나타 나는 두 개의 아이템을 잡아들었다. 하나는 붉은색을 띠는 투명한 형태 의 돌이었고, 하나는 아직도 두근 거리는 징그러운 심장이었다.
‘관찰.’
[코볼트 킹의 에너지 스톤] 코볼트 킹의 에너지 스톤이다.
거 설명 한 번 더럽게 단순하
군.’
단순한 게 좋기는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남은 손에 들 려있는 징그러운 심장을 살펴봤다.
[코볼트 킹의 심장]
코볼트 킹의 힘의 원천이 되는 심장이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게 살아있을 때의 싱싱함을 간직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