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싱싱해서 어쩌자는 거냐 고! 으아아아악!”
결국, 참고 있던 화가 터져버렸 다.
“대체 나한테 어쩌라는 거냐! 망 할 두근거리는 심장이랑 붉은 돌이 라도 가지고 춤이라도 추라는 거야 뭐야?”
내가 숲의 한복판에서 악 소리를 지르며 생쇼를 벌이고 있는 시점, 홀로그램은 던전 1층의 곳곳에 흩 어진 모든 일행의 눈앞에 나타났다. 나의 코볼트 킹 처치 공헌도와 함 께 아이템이 분배된다는 홀로그램 말이다.
일행은 그것을 지켜보고는 하나 같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똑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 상황이 말이 되는 상황인가? 선혁의 강한 익스플로전 샷에도 상 처하나 나지 않던 코볼트 킹이 단 한 사람에 의해 레이드되었다. 일 행들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으 나, 애석하게도 그 물음에 대답해 줄 사람은 자신의 옆에 있지 않았 고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탑의 던전 1층을 클리어하셨습 니다!]
[자동으로 다음 층으로 이동됩니 다. 5, 4, 3, 2, 1.]
카운트가 끝나자 일행이 빛에 휩 싸이며 다음 층으로 이동되었고, 그것은 한성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아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건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 았나 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고 눈앞의 시 야가 바뀌었다. 처음 던전에 입장 했을 때의 거북함이 느껴지며 늘 그렇듯이 불친절한 홀로그램이 눈 앞에 떠오르는 건 이제는 익숙해진 상황이 었다.
[탑의 던전 2층에 입장하셨습니 다.]
나는 온몸에 녹빛의 혈수를 뿌린 채로 일행들을 맞이했고 지금으로 써는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어줄 뿐. 다른 행동은 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지속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진 나는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음. 안녕하세요?”
일행의 황당한 눈빛이 느껴진다.
‘좋은 일을 하고서도 해명을 해 야 하는 상황이라니.’
요즘 들어 입에서 한숨이 나오는 일이 잦아진 것 같다. 결국 분통이 터지는 건 나였다.
해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전사 클래스의 삼 형제(?)가 먼저
입을 열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오오오! 그 뿔 뭐야?”
“머, 멋있어!”
“게다가 날아다니잖아!”
‘아. 이런 사람들이었지.’
‘내 인생에서 이리도 짧은 시간 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 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건만. 이 사람들의 반응 을 보니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이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아. 하아.’
레인저인 선혁과 사제인 김환이 야 그나마 평소에 말을 좀 하고 지 내니 어떻게든 된다 쳐도, 남은 일 행이 문제였다.
‘아니지. 남은 일행들이야 언제나 처럼 고개만 끄덕이겠지. 그중에서 도 가장 문제인 건……
내가 시선을 그 시선을 받는 브를 푹 눌러쓴 거렸다.
한쪽에 고정하자, 당사자는 붉은 로 채로 고개를 갸웃
‘불의 마도사 한윤아.’
저 여자에게는. 아니 솔직히 말 하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겠 다. 지금까지 일행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로브를 벗는 것은 둘째 치 고 목소리조차 들려준 적이 없는 정체불명의 사람이니까.
‘하필 걸려도 저런 사람에게 걸 리다니.’
어쩌겠는가. 잘잘못을 따지자면 처음부터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 은 내 잘못인 것을.
그때, 사색에 빠진 나를 포함한 모든 일행에게 김환이 상황을 정리
하고자 나섰다.
“여러분. 우선 중요한 건 한성씨 가 코볼트 킹을 어떻게 격파했느냐 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뭐가 중요한데!’
이 순간 모든 조원의 마음은 같 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정도로 경솔한 사람은 없었다. 김 환이 일부러 화제를 전환하려 했다 는 것은 전사 클래스의 세 명조차 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코볼트 킹은 격파되었 고, 우리는 2층에 도착했습니다. 그 리고 모든 지형이 통째로 바뀌었습
니다.”
일행은 그제야 주변을 정확히 둘 러보더니, 조금씩 놀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2층에서 출현하는 몬스터가 포자 몬스터였지. 아마?’
1층의 지형이 넓은 숲이었다면, 이곳은 거대한 버섯 양식장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곳저곳에 거목이 쓰러져 크고 작은 알록달록 한 버섯들이 거목에 붙어 기생하고 있었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면 버섯 양식장이지만, 저 버섯 중에 몬스터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2층에 출현하는 몬스터는 펑거스 와 펑거스킹이다. 물론 회의에서 들은 정보는 위력 면에서는 모든 게 잘못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출현하는 몬스터나 생김새 같은 면 에서는 믿을 만 했기 때문에, 우선 은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전술을 생각해야 했다.
펑거스. 일격에 죽이지 못 할 시 에는 상처 부위에서 독 포자를 뿜 어내는 몬스터라고 했다.
“여러분도 다들 아시겠지만, 회 의 당시에서 들었던 모든 정보는 일치했습니다. 그 중 틀린 것은 단 한 가지였죠.”
일행은 단 한 가지의 정보만 틀 렸다는 말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코볼트 킹의 스킬이나 모 든 코볼트들의 수준 등을 살펴봤을 때, 한 가지의 문제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난이도입니다.”
“아!”
몇몇 일행은 낮은 탄식 소리를 내었고, 몇몇 일행은 고개를 끄덕 이며 수긍했다.
‘그렇군. 저 모든 말들을 난이도 라는 한 단어로 묶을 수가 있구나.’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이 우리 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는 것.”
김환은 일부러 말을 끊으며 일행 을 둘러보았다. 그중에 로브를 둘 러쓴 한윤아가 김환의 시선을 받자 잠시 몸을 떨었지만, 찰나의 순간 에 일어난 일이라 그것을 본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미국이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었을 리는 없겠죠. 그런 다고 그들에게 갈 이득이 없을 테 니까요. 오히려 미국은 이번 정보 를 제공하는 대가로 국가에 무언가 를 요구했을 겁니다. 그 요구를 들 어주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야겠죠.”
일행은 합죽이처럼 고개를 끄덕 였다. 지금은 집단 최면이라도 걸 린 것처럼, 김환의 말이라면 뭐든 수긍하는 상황이었다.
김환은 그런 일행을 보며 나지막 이 웃었지만, 일행은 나름 심각하 게 그의 의견을 수용하고 있었기에 그 상황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 다.
“그럼 여기서 첫 번째 가설은 의 미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두 번째 가설입니다. 바로 던전이 난이도를 조절하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일행은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만 난이 도가 높게 설정된 거지? 애초에 던 전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에 나타난 곳이라고 하던데.”
이런 선혁을 필두로 한 5명과 김 환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는 5명. 물론 후자의 다섯 명에는 나 또한 포함이 었다.
“어디까지나 가설의 일환입니다 만, 미국의 경우 E급 100명과 D급 5명으로 이루어진 전직자들로 던전 을 클리어했습니다. 이것 또한 잘
못된 정보가 아니라면요.”
“그렇지.”
“현시점에서, 등급의 구분은 대 략 이렇습니다.”
김환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 방에서 등급제를 정리한 종이를 꺼 냈다.
도급: 민간인 혹은 그에 준하는 평범한 전직자.
E급: 전문 운동선수 혹은, 병장 기를 소지한 전직자.
D급: 범용성이 넓은 스킬을 사
용하거나, 자신의 전직과 관련한 스킬의 숙련도가 어느 정도 높은 전직자.
“사실 E급과 D급의 차이가 조금 크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엿한 전 직자 취급을 받으려면, D급 정도는 돼야겠지요.”
김환은 일행을 둘러보고는 설명 을 계속했다.
C급: D급 전직자의 스킬 5개를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스킬을 가지 고 있거나, 그에 준하는 병장기를
소지한 전직자.
“여기가 중요합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 여러분과 회의를 시작하 기 전에 D급의 전직자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선혁씨와 비슷한 클래 스의 궁수(弓符) 전직자 분이었습 니다. 저는 그분의 스킬을 직접 보 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선뜻 보여주셨죠.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자신의 정보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되는 판국에서, 그분은 D 급을 받았 다는 흥분감에 자신의 스킬을 아낌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김환은 자신에게 스킬을 보여준 궁수를 냉철하게 판단했고, 결론은 이랬다.
‘어리석군.’
“그분의 스킬명은 '패스트 샷'이 라고 했습니다. 이름만 듣고도 충 분히 알 수 있는 스킬이죠. 그냥 화살이 빠르게 나아가는 겁니다. 뭐, 기본 패시브 스킬로도 몇 가지 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C급인 선 혁 씨와는 비교를 불가합니다.”
일행은 김환이 말하고자 하는 등 급의 차이를 이해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았다.
“등급의 차이는 이해했다. 그래
서? 하고자 하는 말이 있을 거 아 니야.”
선혁은 남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재능이라도 있나 보다. 물론 일행의 평균 연령보다 오래 살아온 연륜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요약하자면, 저희의 전력은 최 소로 잡아도 D급으로 환산하면 50 명. E급으로 환산하면 250명 이상 의 전력이라는 말이죠.”
수치로 환산하고 나니, 10명의 C 급 전직자라는 숫자는 꽤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럼, B급이 됐을 때의 나는 혼
자서 E급 125명의 몫을 한다는 건 가?’
이렇게 생각하니, 전직자라는 게 정말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미국의 던전 격파 전력은 E급 100명과 D급 5명. 저희는 지금 힘 으로만 따졌을 때, 최소 2배 이상 의 전력을 가지고 미국과 ‘같은’ 던 전에서 애를 먹고 있다는 말입니 다.”
“끄응.”
선혁이 환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앓는 소리를 냈다.
요약하자면, 결국 빙 돌아왔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같았다.
“탑의 던전의 난이도는 사용자에 따라 변화하는 겁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저 허무맹 랑하게 들렸다면, 등급의 이해를 하고 우리의 전력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 그 말을 다시 듣고 나니 이 제는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여기서 우리는 작전에 한 가지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혁의 작전에 말없이 따르던 김환이 자신 있게 말하는 작전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일행이
귀를 기울였다.
“작전에 변화를 준다?”
“지금 던전의 난이도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저희 9명 모두가 달려 들어야 트라이를 할 수 있을 정도 로 극악의 난이도입니다.”
‘9명? 우리는 10명인데?’
“잠깐. 9명? 우리는 전부 10명이 잖아?”
선혁이 일행의 생각을 대변해주 듯이 김환의 말에 태클을 걸자 그 는 지금까지처럼 사람 좋은 미소가 아닌 악동처럼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 파티의 메인 딜러는 한성 씨가 맡아야 합니다.”
이 순간, 일행은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는 숨겨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지 금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이끌던 김환은 죽을 수 있 다는 가능성 앞에서 한없이 사람을 몰아갈 수도 있는 사내였다.
‘저기요? 저는 비전투직인데 이 게 무슨 미친 소리죠?’
아무리 지금 내 모습이 뿔 달린 미친놈처럼 생기기는 했어도 갑작 스럽게 이건 아니지 않는가?
“저, 잠시만요!”
내가 황급히 김환의 말을 자르 자, 일행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다 들 내 모습에 적응되질 않는지, 고 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 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저는 비전투직인데요?”
“살벌한 뿔이 달려 있는 시점에 서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요?”
평소에는 그리도 살갑게 느껴졌 던 그의 표정이 지금은 그저 살벌 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런 사람이었나? 표정 하나 변 하지도 않고 사람을 사지로 내몰겠
다는 말을 하는군?’
내가 메인 딜러가 된다. 그 말은 즉. 모든 전투에서 선두에 나서야 하며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포지션 을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방
패병인 박진혁이 어느 정도 대미지
를 분산시켜주기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