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54화 (54/447)

화약사 (3)

중원에 비단과 도자기, 비단 원사 같은 견제품, 차 등을 매입해 유럽에 돼 판다.

‘대양 무역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엄청나니까.’

포도아 상인이 취급하는 상품이 바로 은이다.

중원에선 세금을 은으로 내는 법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은의 가치가 높았으니 더할 나위 없는 교역품이었다.

‘그렇다는 건······ 범선에 은을 톤 단위로 싣고 다닌다는 말이렷다?’

환신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해적질 한 번 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마구 휘저었다.

‘안 되지, 안 돼. 이래봬도 낭인이라고. 의뢰를 수행하고 은을 받아내면 되는 거야.’

하지만 하루 일곱 번 겪는 지옥 같은 고통이 자꾸 편한 길을 쫓게 만든다.

은을 가득 실은 범선 한 척만 나포해도 은원보 9,800개 따위.

한 방에 해결될 텐데.

‘······그래. 언제 한 번 오문에 다녀오자. 혹시 알아? 일이 잘 풀릴지. 거래를 하든 해적질을 하든 상황 봐서 정하는 거지, 뭐.’

배 한척 정도 쓱싹해도 티도 안 나지 않을까?

······라는 뻔뻔한 생각을 하는 환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남해에 오행도가 있잖아.’

하필 지금 황산에 오행마궁의 후토병단이 와 있지 않은가.

살짝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설마 바다에서까지 오행도와 부딪힐 일은 없겠지.

냉조가 천천히 검지를 들었다.

“하나.”

“하나······ 요?”

“그래. 본 낭랑은 동방 사제처럼 좀스럽게 의뢰를 7개나 요구하지 않는단다.”

“지, 진짜요?”

매우 의심스럽다.

‘······냉조 이 할망구가 그리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무슨 꿍꿍이지?’

장장 5만 시간.

하루 18~20시간씩 플레이해가며 수년 간 겪어 온 냉조다.

당연히 말랑말랑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 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역시나 환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곰방대를 입에 물고 깊이 들이쉰 후 연기를 내뿜은 냉조가 나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 낭랑에겐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 어려운 격조 높은 취미가 하나 있단다.

바로 당대 절세가인과 여협들의 애장품을 수집하는 것이지.”

‘······시발! 벌써 불안해! 하여간 이 할망구 때문에 제천 제작사 앞에 여성단체가 허구한 날 피켓 들고 1인 시위 하는 거잖아!’

그 와중에 냉조의 설명을 가장한 자랑질이 계속 이어졌다.

“한 때 천하제일미녀로 이름 높던 남궁세가 노대부인 천수독화 당문혜의 애장품 역시 본 낭랑의 수집품 수장고에 잘 모셔뒀지. 대단하지 않니?”

“아, 예······.”

똥 씹은 표정을 짓건 말건 스스로 도취된 나머지 얼굴에 홍조마저 피어올린채 열변을 토했다.

“물론 본 낭랑의 수장고에 아무나 들어올 수 없지. 당대 최고의 절세가인과 여류고수만이 수장고에 들어가는 영예를 누릴 수 있단다. 헌데······ 최근 본 낭랑이 눈여겨보는 아이가 하나 있지 뭐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시발! 제발 아니라고 해줘!’

공포에 질린 나머지 미친 듯이 내적 절규 질러댔다.

냉조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콧김을 쉭쉭내쉬며 말했다.

“십전홍예 율약벽. 그 아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또 가장 오랫동안 지녔던 물건을 가지고 오렴. 그게 본 낭랑의 의뢰란다.”

“아······.”

환신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자 냉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말렴. 원래 율약벽 그 아이의 속곳을 가져오라고 시키려 했는데 신이 네게 이상할 정도로 호감이 들어 많이 봐준 거란다.”

‘이 할망구가 누굴 색마에 무림공적으로 만들려고?!’

떨떠름한 얼굴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그거 참 고오맙습니다.”

“알면 됐다.”

환신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저기······.”

“냉 낭랑이라 부르렴.”

“······예, 냉 낭랑. 아무튼 율약벽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가져오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아니,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본인이 일단 초절정고수인데다 제천사 좌총령이고 결정적으로······.”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 빽 소리 질렀다.

“젠장! 율약벽 할아버지가 신검황 율무극이잖아요! 천간십존 신검황 율무극!

걸어 다니는 천재지변!”

환신의 절규에 냉조가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저 죽으라는 거죠, 지금?”

냉조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내 알바 아니지. 난 율약벽 그 아이의 애장품이 갖고 싶고 그걸 가져와야 태음칠절맥을 치료해주기로 결정했을 뿐이야. 싫으면 치료를 받지 않으면 된단다. 본 낭랑은 아쉬울 게 없지 않니?”

“아······.”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절대갑의 압도적 횡포에 절망한 것이다.

애초에 양대신의에게 치료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긴 한데······.

‘빌어먹을. 말이 의뢰 1개지 실제로는 동방 늙은이 의뢰 7개 합친 것보다 난 이도가 훨씬 높잖아! 이 미친 할망구 때문에 뇌룡탄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네.’

비록 환신의 기린지재가 봉황지재보다 한 차원 높은 신화적 재능이지만 율약벽은 환신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무공을 연마해 왔다.

율약벽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초절정의 벽을 돌파해야 했다.

한 가지 더.

‘······다음에 조우했을 때 율약벽의 경지가 초절정이라는 보장이 없거든.’

왜냐하면 율약벽은 ‘제천’ 메인스토리 중반 항상 천령의 절대고수가 돼서 등장하니까.

‘합비대혈사를 종결지은 검제 남궁천과 같은 경지지.’

한 마디로 절정고수 따위.

뇌룡탄에 스쳐도 사망이라는 뜻이다.

‘천령지경에 오른 율약벽이 쏴대는 공뢰 속도가 마하 20이었지, 아마?’

이 지점에서 환신은 딜레마에 사로잡혔다.

태음칠절맥을 치료하지 않은 상태로 초절정의 경지에 도전하면 환골탈태 과정에서 얼어 죽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허나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 냉조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율약벽의 소중한 물건을 가져오려면 그 과정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죽은 목숨이네, 이거?’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이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연구가 필요할 거 같았다.

‘특히 애장품 입수작전을 설계 해줄 책사가 반드시 있어야 돼.’

머릿속에 을지효를 떠올렸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이 일에 대해 조언을 좀 구해보자고.’

머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의뢰를 준 냉조를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냉조가 달래는 투로 말했다.

“본 낭랑은 사내놈들의 눈빛 따위 신경도 안 쓰지만 어쩐지 너는 신경이 쓰이 는구나. 그런 의미에서 신이 네게 좋은 일이 하나 있단다.”

“그게 뭔데요.”

퉁명스러운 태도에 냉조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태음칠절맥 발작이 고통스럽지 않니?”

“하! 당연한 거 아니에요?”

환신의 흰자위가 슬금슬금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마성이 발작할 징조다.

“하루 일곱 번 죽음보다 더 한 고통에 시달리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기분이라고요. 진작에 피에 미친 살인귀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고요.”

“알고 있단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알긴 뭘 알아요. 이 고통은······ 태음칠절맥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죽었다 깨나도 이해 못한다고요.”

이쯤 되자 냉조도 더 이상 환신을 도발하지 못했다.

진짜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럼 이건 어떠니? 본 낭랑이 신이 네 절맥 발작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면?”

“······뭐라고요?!”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냉조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절맥 발작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요?”

그때.

냉조가 환신의 턱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아. 실로 안타깝구나. 신이 네가 여자였으면 본 낭랑의 첩으로 삼았을 것을. 그럼 공짜로 태음칠절맥을 치료해줬을지도 모르는데.”

잠시 멍하니 있던 환신이 퍼뜩 놀라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예상했던 반응인 듯 냉조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호호홋! 잡아먹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말거라. 본 낭랑의 취향은 어디까지나 여자니까. 물론 신이 너를 보니 꼭 취향을 고집해야 된다는 신념이 조금 흔들리는 기분이지만.”

“취향 존중해드릴게요. 제발 계속 유지해주세요.”

“입담도 훌륭하고.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구나.”

“······하아.”

말을 섞을수록 냉조가 변태라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고통을 줄여준다는 건 진짠가요?”

“물론이지. 대략 3할 정도?”

“3할······.”

그게 어딘가.

아주 약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어라 운기조식하는데 30%나 줄여준다면 정말 살만할 거 같았다.

그때 퍼뜩 든 생각.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죠?”

“그걸 말이라고 하니? 치료비는 면제해줄 수 있어도 이건 안 된단다.”

“······역시 그렇죠?”

냉조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태음칠절맥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선 절맥 발작 때 기혈을 따라 흐르는 태음지기를 약간이나마 중화시켜주는 열양신단(熱陽神丹)이란 단환을 섭취하면 된 단다. 다행히 약왕곡에 연단을 위한 재료가 대량으로 준비돼 있지. 원한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제조해줄 수 있단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걸 물어볼 차례였다.

“그래서 얼만데요?”

냉조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약 한 알에 은원보 1개.”

“······너무 비싸요! 은원보 1개면 양민 한 가구 1년 생활비라고요!”

당장 남궁천이 남궁소소 구해 준 보상으로 준 게 은원보 100갠데?

“어머나. 열양신단은 다른 의원은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단다. 오직 나 화약사 냉조만이 연단할 수 있지. 한 마디로 약왕곡 소속 의원들에게 맡기지 않고 본 낭랑이 직접 연단 한다는 의미야. 당연히 노임이 들겠지? 본 낭랑의 노임은 아주 비싸단다. 은원보 1개면 합리적인 금액이지.”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열양신단 한 알이면 효과가 하루 동안 지속되지. 하루 일곱 번의 지옥 같은 고통을 고작 단환 한 알로 3할이나 줄일 수 있다니. 이렇게 남는 장사가 천하에 또 어디 있을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원한다면 제천순구를 통해 배달도 가능하단다. 신이 네가 중원 어디에 있든 제천순구의 발길이 닫는 곳이면 열양신단이 끊기지 않게 얼마든지 공급해줄게.”

한 마디가 빠졌다.

은만 계속 내놓는다면······.

“······진짜죠?”

“물론이지.”

알고 있다.

저 망할 할망구가 자신에게 열양신단을 비싼 값에 팔아먹을 속셈이란 걸!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통을 줄여준다는데.

환신은 냉조의 유혹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할망구 장사 잘해, 아주? 이래서 양대신의가 제천 게시판에서 욕을 바가지로 처먹는 거지. 그나저나 열양신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은을 어마어 마하게 벌어야겠네. 진짜 해적질이라도 해야 하나?’

그때였다.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냉 낭랑.”

“말하렴.”

“제가 열양신단을 사긴 살 건데요. 제대로 된 효능도 시험해보지 않고 덜컥구입할 순 없잖아요.”

냉조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환신을 보았다.

환신 역시 지지 않고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시제품 좀 줘보세요.”

샘플 내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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