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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67화 (67/447)

24. 검치(2)

허나 환신이 한발 빨랐다.

중늙은이가 검을 뽑는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미 양발에 불꽃의 수레바퀴를 소환해 역방향으로 회전시켰다.

빠르게 후방으로 이동해 가타부타 말도 없이 흑영낭에서 화살촉을 꺼내 즉발식 묘리에 따라 냅다 발출했다.

-키이이융!

후발선제의 극치인 즉발식이다.

당연히 같은 절정고수조차 즉발식 속도를 따라잡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중늙은이는 번개처럼 검을 앞으로 찔렀다.

그러자 중늙은이의 검봉과 화살촉 끝이 부딪혀 경력이 상쇄됐다.

튀어 오른 화살촉을 잡아채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호오. 신기한 무공을 쓰는구나.”

중늙은이는 보신경을 전개해 환신에게로 쇄도했다.

뒤쪽은 강.

피할 곳이 없었다.

“젠장!”

곧장 강으로 뛰어들었다.

일륜에서 뿜어지는 강대한 제트 기류와 초상비 신법이 만나 넘실대는 파랑 끝을 밟아나갔다.

중늙은이 역시 가공할 보신경을 전개해 물 위를 마치 평지처럼 내달렸다.

환신은 뒤돌아선 채 태양속을 전개해 가며 연신 화살촉을 날렸다.

허나 중늙은이는 이를 튕겨내거나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했다.

‘시발! 세도 너무 세!’

그럴 수밖에.

눈앞의 중늙은이야말로 지살칠십이숙 중 천하검객의 정점인 구검(九劍)의 좌장 검치(劍痴) 구양숙이었으니까.

구양숙이 낭인 주둔지를 어슬렁거린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바로 지살칠십이숙 중 몇 안 되는 낭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더.

‘검치 저 미친놈은 천하에 둘도 없는 전투광이라고!’

별호 그대로 검에 미친 자.

그게 바로 구양숙이었다.

바로 그때.

구양숙의 지팡이검이 버드나무 가지를 연상시키며 기이하게 흔들거렸다.

‘……시작됐어!’

순식간에 가속해 환신에게 접근했다.

지팡이검에서 거의 3장(9.9m)에 달하는 엄청난 검기가 쭉 뽑히더니 검영이 사방을 뒤덮었다.

무엇이 실초고 무엇이 허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점과 선의 조합.

공간 그 자체를 뒤집어엎을 듯한 검초의 향연에 환신이 내적 비명을 질렀다.

‘미친! 연환구구탈백검(連環九九奪魄劍)이구나!’

검치의 성명절기가 펼쳐지는 순간.

기린지재가 발동했다.

‘……어?’

그동안 환신이 수확한 수많은 무공.

합비대혈사와 황산에서 후토병단과의 사투를 거치며 쌓인 대전 경험이 뇌리에 층층이 쌓여 하나로 겹쳐졌다.

‘보여.’

연환구구탈백검의 취약점이 말이다.

망설임 없이 즉발식 묘리를 실어 화령천강부를 발출했다.

-키유우우웅!

-쿠콰아앙!

화령천강부에서 마치 진천뢰가 터진 것마냥 엄청난 폭발과 함께 열기가 확 퍼져 나갔다.

당연히 초절정고수의 반탄강기를 깨뜨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환신이 탈출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 열렸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연환구구탈백검 사이로 보이는 빈틈.

그곳에 수령천강부, 금령천강부를 발출했다.

구양숙의 좌측으로 수령기가 폭발하며 강물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측으론 금령천강부가 원형의 구체로 변하더니 일순 구양숙을 노리고 수천 개의 철침을 쏘아 보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허나.

지팡이검에서 튀어나온 검기에서 폭발적인 기파와 함께 말도 안 되는 각도로 검이 움직이며 철침을 일일이 쳐냈다.

동시에 좌장을 뻗어 진기를 발출해 어마어마한 열량으로 빙하가 된 강물을 단숨에 녹여 버렸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신위!

구양숙이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재밌구나. 자, 그럼 이건 어떠냐?”

구양숙이 다시 쇄도했다.

서둘러 화살촉을 발출하려는데 환신이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방금 전까지 보이던 수많은 빈틈 중 반 이상이 사라져 버렸다.

단숨에 깨달았다.

‘……일부러 빈틈을 노출한 거였어!’

구양숙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

초절정고수의 상징인 검강을 전개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격공장조차 발출하지 않는다.

공격하고 있지만 전력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시험이다.

‘아니, 무시하고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검치 구양숙은 지살칠십이숙 중 구검의 좌장으로 천하 검도 고수 중 최상위의 실력자였다.

아니, 검제를 제외하면 검치 위에 누굴 놓을지 실로 난감한 문제다.

그야말로 지살칠십이숙이 상징하는 무혼을 현실에 구현해 놓은 듯한 인물.

그게 바로 검치 구양숙이었다.

물론 묵시천존과 천간십존은 예외로 두고.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초극에 이른 구양숙이었으니 당연히 절정고수인 환신 정도는 단숨에 참살할 수 있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

환신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어느 정도 실력인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일 뿐.

환신의 비비 꼬인 성질머리가 폭발했다.

‘그래! 절정고수 찌끄러기한테 쓴맛 보고 밤에 자다 이불킥하면 기분 참 좋겠어, 아주!’

환신의 눈동자에서 태양과 같은 광채가 일렁이더니 잔상을 일으키며 빛살처럼 움직였다.

동시에 기린안과 태양신경총이 융합됐다.

영기의 흐름과 열을 느끼는 감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기린지재의 천재성과 태음칠절맥의 연산 능력이 구양숙이 노출하는 취약점을 엄청난 기세로 분석해 냈다.

다시 구양숙의 빈틈이 두 배로 늘어났다.

이 모든 과정이 고수 간의 초수 교환이다.

환신은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거기!”

흑영낭에서 꺼낸 두 개의 화살촉이 백열하며 단숨에 쭈욱 늘어났다.

광침으로 화한 화살촉이 한순간 발출됐다.

직광포였다.

구양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절정고수의 화력이 아니다.’

초절정고수 수준도 아니지만.

절정과 초절정 사이의 어느 한 지점.

구양숙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좋구나.’

젊은 피란.

쏜살같이 날아온 광침이 취약점을 노리고 날아들자 구양숙은 검병에서 검강을 쭉 뽑아내 툭 쳐서 손쉽게 이를 증발시켰다.

직광포의 어마어마한 화력도 파괴의 정화인 검강의 벽을 넘진 못했다.

물론 환신이 놀란 건 이게 아니었다.

‘미친! 검병에서 검강을 뽑아낸다고?’

검병은 검의 손잡이를 의미한다.

거기서 검강을 뽑아내다니.

‘얼마나 전투 경험이 풍부하면 저런 임기응변을 다 부릴 수 있지?’

물론.

환신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미 개금비 제2초 회선광의 묘리로 목령천강부를 발출한 직후였다.

강물 표면을 따라 부메랑처럼 길게 선회한 목령천강부에서 청색 빛이 폭사하더니 순식간에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그물을 형성해 구양숙을 덮쳤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예전부터 알고 싶었어. 금령천강부로 직광포를 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환신은 손바닥 위에서 백색 광채를 발출하는 금령천강부에 일양지기를 밀어 넣었다.

-끼이이이이잉!

‘더! 더! 더어엇!’

-파칭!

일양지기가 밀려들자 급격히 백열하던 금령천강부가 한순간 스프링을 연상케 하는 나선 구조의 기묘한 형태로 변모했다.

“가랏!”

곧장 나선침이 쏘아졌다.

구양숙이 일부러 드러낸 취약점을 노린 게 아니다.

기린안과 태양신경총으로 실초와 허초의 변화를 감지해 가며 최선을 다해 도출해 낸 빈틈.

바로 거길 노리고 쏘아진 일격이었다.

-파파파파파팟!

사방으로 지팡이검을 휘둘러 나뭇가지를 잘라낸 구양숙의 예리한 감각에 서늘한 느낌이 차올랐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강대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헌데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고수에게는 자신만의 영역이 존재한다.

고수만의 공간인 영역은 결코 침범을 허락지 않는다.

결국 무림고수 간의 초수 교환은 이 영역을 뚫고 상대의 육체를 범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한다.

영역을 잃으면 패하는 것이다.

지금 날아오는 무언가는 구양숙이 펼친 점과 선의 빈틈을 예리하게 뚫고 영역을 돌파하고 있었다.

-카칭! 카칭!

일부러 낮춘 출력 때문일까?

미친 듯이 백열하는 나선침이 차례로 반탄강기를 관통했다.

이윽고 구양숙의 미간이 꿰뚫기 직전.

나선침의 궤도에 극도로 압축돼 날카롭기 그지없는 검강이 불쑥 튀어나왔다.

-끄라라라락!

파괴의 정화인 검강의 어마어마한 열량에 나선침이 그대로 쪼개져 좌우로 뿌려졌다.

허나 곧 나선침이 허공에서 쇳가루를 날리며 사라지더니 부갑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환신은 수령천강부를 밟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구양숙 역시 입에 물고 있던 갈대를 뱉어 그 위에 일위도강의 신법을 펼쳤다.

-스르릉. 창!

구양숙이 지팡이에 검을 집어넣었다.

환신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걸로 끝인가요?”

“그렇다.”

“어째서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야……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네놈을 죽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럼 너무 아깝지.”

구양숙의 눈동자에서 광기가 일렁였다.

“네놈이 경지를 돌파하고 나면…… 좀 더 재미를 볼 수 있겠지. 흘, 흘흘흘…….”

‘……미친놈.’

역시나 제정신이 아니다.

검치 구양숙이란 인간은.

‘……생각해 보니 자운백팔대성 중에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 찾기 힘들지.’

일부러 정신병자만 모아 놓은 듯했다.

‘플레이어 괴롭히려고 작정했다니까.’

“다들 기다리는구나. 돌아가자꾸나.”

“옙.”

환신과 구양숙은 서둘러 강가의 낭인 진채로 이동했다.

“와아아아아아!”

강대한 고수는 무인을 열광케 한다.

그중에서도 자운백팔대성은 언제나 바람을 몰고 다녔다.

“거, 검치 선배! 선배를 존경하는 낭인입니다! 여기 수결 좀……!”

“일없다.”

“대충 붓으로 선이라도 그어주십시오!”

“……끄으응.”

마지못해 붓을 받아 들고 대충 선 하나 그어주었다.

낭인이 이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사라졌다.

그런 자들이 수십이다.

“익숙하신가 봐요?”

“……자운백팔대성이 되고 나서 늘상 겪는 일이다. 신장룡 그 늙은이는 어쩌자고 제천순보 따위를 만들어서, 끌끌.”

‘헐. 완전 아이돌이 따로 없네.’

구양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것도 흑점에 팔아먹겠지.”

“……예?”

“몰랐느냐? 흑점의 주요 거래 품목 중 하나가 자운백팔대성의 신물이나 수결이니라. 특히 여류 고수의 애장품은 없어서 못 팔지.”

“어, 음…….”

환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강호에도 굿즈 거래가 아주 활발하구만. 잠깐! 흑점에 율약벽 애장품도 있으려나?’

귀호단 막사에 도착하자 구양숙이 외쳤다.

“두파!”

“예! 구양 노사!”

“좋은 구경 했을 테니 어서 술이나 내오거라!”

“알겠습니다!”

“서둘러!”

“예, 예엡!”

구양숙이 두파를 닦달하는 사이 기우가 환신에게 전음을 쏘아 보냈다.

「단주. 괜찮으십니까?」

「하아, 죽다 살았다고……. 잠깐. 혹시 기우는 저 양반 다가오는 거 감지했어?」

「예.」

「아니, 그럼 좀 나서서 막아주지.」

「소인에겐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않습니까.」

「끄으응.」

「그리고 구양 노사께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알겠어.」

「물론 단주의 생명을 노렸으면 이야기가 달랐을 테지만 말입니다.」

완고하기까지 한 기우의 어조에 서운함이 눈 녹듯 녹는 걸 느꼈다.

‘……그럼 그렇지. 의리와 충성심 하면 기우 아니겠어?

구양숙이 살의를 품었다면 누구보다 먼저 검을 빼 들었을 사람이 기우였다.

어쩐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흑익비영 환신! 신이 이놈아! 이리 와서 노부의 잔을 받거라!”

“…….”

다짜고짜 칼부림한 게 불과 5분 전인데 이젠 친한 척 부르며 술을 마시자니.

‘역시 미친 인간이야.’

“이놈아! 술 안 받으면 노부의 칼을 받을 테냐!”

“가요! 간다고요!”

구양숙 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99회차 플레이 동안 검치 구양숙이 천주산 쟁탈전에 참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오히려 천주산 쟁탈전 이후 분쟁이 격화되자 각 세력을 오가며 은을 쫓아 활동하지.

특히나 팔세영웅련 산하 낭인으로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의문을 뒤로하고 귀호단 막사 앞 불가에 다들 둘러앉아 술을 푸기 시작했다.

“자! 한잔 받거라.”

“예.”

“노부는 진기를 운용해 술기운을 날려 버리는 놈은 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깝게 무슨 짓이냐.”

“어휴.”

구양숙이 따라준 술잔을 받아 들이켰다.

“푸하핫! 계집애같이 생긴 주제에 술 하나는 시원하게 마시는구나! 합격이다!”

“……감사합니다.”

“자. 한 잔 더 받거라.”

“예.”

그렇게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술이 너무 잘 넘어가는데?’

이 몸뚱이.

태음칠절맥을 제외하면 성능이 좋아도 너무 좋다.

그렇게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구양숙이 입을 열었다.

“어떤 놈인지 알고 싶었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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