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09화 (109/447)

43. 염왕성채 공방전(3)

여전히 잡음 가득한 사막 사이로 여덟 개의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천팔괘의 묘리로 염왕성채를 둘러싼 기문진의 생문이다.

황금색 철갑을 걸치고 머리에 황금 투구를 쓴, 이번 염왕성채 공성 총괄을 맡은 위임사령 팽저가 도갑에서 자신의 대도를 빼 들었다.

대도의 날을 따라 도강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공력을 실어 육합전성의 묘리로 소리쳤다.

『전군! 돌격하라!』

그 외침에 물경 3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인이 단체로 피가 끓어올랐다.

그들 모두 내공을 실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쿠르르릉!

환신은 진도 5 이상의 강진이라도 발생한 듯 천지가 뒤집힐 것만 같은 엄청난 충격파에 전율했다.

‘방구석 게이머 주제에 무인 다 됐네.’

저 함성에 피가 끓어오르니 말이다.

환신은 흑익신화포를 휘저으며 말했다.

“흑오단! 출격이다!”

“단주의 명을 받듭니다!”

“흘흘흘! 모처럼 피 맛 좀 보겠구나!”

그렇게.

염왕성채 공략의 서막이 올랐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선봉을 맡은 오호병단이었다.

오호병단은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북방과 인접한 하북은 장대한 체구를 지닌 장사가 많이 태어나는 걸로 유명하다.

삼국전설에서 무력으로 유명한 무장 상당수가 하북 출신이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북팽가는 이런 우수한 근골을 지닌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가문의 무사로 양성했다.

오호병단은 그런 이들 중에서도 유독 체구가 큰 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같이 6척(약 180㎝)에 이르는 장대한 체구다.

그중에서도 유독 거대한 체구에 두꺼운 철갑을 입은 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하북팽가의 직계인 초절정고수.

오호병단의 군장을 맡은 패도사천왕이다.

물론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건 개천도 팽저였다.

그가 오호병단의 꼭짓점에 서서 크게 외쳤다.

“하북팽가의 용사들이여! 본좌를 따르라!”

“가주의 명을 받듭니다!”

오호병단의 돌격이 시작됐다.

-쿠르르릉! 두두두두!

하북팽가의 무공은 우직하다.

그리고 차돌처럼 단단했다.

팽저가 외쳤다.

“무병진을 전개하라!”

“명을 받듭니다!”

팽가무사의 정수리에서 영기의 실이 길게 튀어나왔다.

홀실, 날실처럼 엮어 들어가며 영기의 장막을 구현했다.

무병진 발동이다.

팽저가 대도를 치켜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여덟 개의 생문 중 중앙.

그곳에 소머리 탈과 말머리 탈을 쓴 괴한이 엄청난 마기를 방출하며 각자의 병단을 이끌고 있었다.

우두마귀와 마두마귀다.

그중 마두마귀는 왼팔이 없었다.

환신의 직광포에 당한 상처였다.

마두마귀는 언제나처럼 상의를 벗어 던진 채 우락부락한 근육을 꿈틀거렸다.

“흑익비영 그 빌어먹을 까마귀 새끼도 이곳에 왔다 들었다! 죽더라도 그놈만큼은 반드시 찢어발기고 말리라!”

“내가 돕겠다! 마두!”

“고맙다, 형제여! 그전에 저 멧돼지 같은 팽저 놈을 저지하는 게 우선이겠지?”

“오오!”

그들이 속한 곳은 염왕성.

스스로 지옥 세계 저승시왕이라 생각하는 자들이다.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염왕성이라는 이름이 영원히 전설로 남을 수 있도록 절대적인 공포를 심어주는 것.

그게 이들이 바라는 전부였다.

허나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팽저와 오호병단의 질주는 과연 하북팽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섬멸한다.

우두마귀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준비하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두병단 소속 우두무사 십여 명이 품에서 붉은 구체를 꺼냈다.

그리고 대략 3초가 지난 후.

팽저와 오호병단이 가상의 선을 지나치자마자 날카롭게 외쳤다.

“투척!”

“명을 받듭니다!”

우두무사들이 일제히 붉은 구체를 던졌다.

팽저의 눈에 오호병단 쪽으로 날아오는 붉은 구체가 들어왔다.

그의 동공이 커졌다.

“저건 진천뢰……!”

팽저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구체가 무병진의 반탄강기와 맞닿았다.

신관이 터지듯 진천뢰 내부에 불똥이 튀고.

-쿠콰카카카캉!

천지가 진동하는 엄청난 폭발이 오호병단을 뒤덮었다.

진천뢰는 무림의 유명 문파인 벽력뇌가에서 생산하는 화기(火器)로 반경 10장(약 30m) 안의 모든 걸 분쇄하는 무시무시한 병기다.

내공도 아닌 그저 물리적인 폭발이기 때문에 딱히 막을 방법도 없었다.

벽력뇌가는 이를 군부와 제천내각에 독점적으로 판매했다.

물론 무림 문파들도 그 압도적인 위력에 반해 흑점을 통하여 알음알음 진천뢰를 구입했지만 제천내각의 눈치가 보여 대놓고 쓸 수 없었다.

암묵적인 금기였다.

헌데 염왕성이 그 금기를 깨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염왕성은 금기 따위 지킬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몰린 대로 몰린 염왕성은 그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스카악!

흑색 연기 사이로 수십 갈래의 푸른 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뒤이어 인위적인 돌풍과 함께 연기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팽저의 솜씨였다.

그는 두껍고 넓으며 길기까지 한 자신의 독문병기 패천신도를 젓가락처럼 다뤘다.

팽저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흥! 본좌 단독이었으면 진천뢰에 의해 제법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르지!”

허나 팽저는 지금 1,000여 기에 이르는 완편 병단을 이끌고 있었다.

무병진을 전개해 천 명의 진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진천뢰 따위가 어찌 무병진의 반탄강기를 뚫을 수 있단 말인가!

폭발로 인한 물리력 따위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를 뿐이다.

우두마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연이어 진천뢰가 날아왔다.

-쿠콰아아앙!

다시 한번 굉음과 함께 오호병단 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허나 여전히 오호병단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제천맹 천하!

강력한 폭탄조차 무병진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었으니.

과거 낭만강호의 재림을 추구하는 자들이 청천의 사상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몇 차례 진천뢰에 의한 폭발이 일어나고.

드디어 오호병단이 생문에 도달했다.

팽저가 크게 외쳤다.

“4열로!”

“명을 받듭니다!”

돌격에 특화된 쐐기 형태의 추행진에서 단숨에 4열 종대로 대열이 변형됐다.

생문은 고작 5, 6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그리 넓지 못했다.

전면에 팽저가, 그 뒤를 패도사천왕이 받치는 형국이다.

팽저는 패천신도의 도병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육체에 힘을 집중시키자 그의 흉부와 팔뚝이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올랐다.

우락부락한 근육에 황금 갑주가 터질 듯이 늘어났다.

허나 수천 개의 합금 철편을 이어 만든 황금 갑주는 금사갑이라는 신병이기로 고작 이 정도에 부서질 리 만무했다.

패천신도에 거의 3장(9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강이 튀어나왔다.

도강을 따라 흑색 전류가 번뜩였다.

오직 하북팽가의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광세절학.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상의 강기공인 혼원벽력강기다.

팽저는 패천신도를 등 뒤로 있는 힘껏 당겼다.

팔뚝의 근육 사이로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그리고.

“흡!”

단숨에 내리그었다.

하북팽가를 대표하는 도법.

오호단문도다.

-우르르릉!

만물을 찢어발길 것만 같은 검은 벼락이 연속해서 갈지자(之)를 그리며 내리꽂혔다.

공간 그 자체를 가르는 위력이 과연 천강삼십육장 중 구중천의 일원이라 자부할 만한 일도(一刀)였다.

우두마귀의 낭아봉과 마두마귀의 월아산에서 붉은 강기가 쭈욱 튀어나왔다.

그들의 강기가 X자를 그리며 검은 벼락과 격돌했다.

-쩌어엉!

“푸후욱!”

“웨엑!”

전율스러운 위력에 우두마귀는 코피를, 마두마귀는 각혈을 터뜨렸다.

전신에 엄청난 충격을 입었는지 무릎을 부들부들 떨었다.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허나 둘 모두 기쁨에 미소 지었다.

‘……버텼다!’

기어코 이겨냈다.

팽저와 비교했을 때 두 수가량 아래인 우두마귀와 마두마귀다.

힘을 합치긴 했으나 그의 일격을 버텨낸 것이다.

평범한 상황이었으면 불가능했겠지.

진천뢰를 터뜨린 것도 모두 폭발을 견디는 과정에서 혼원무병진의 공력을 소진시키고 팽저의 신경을 거슬러 최초의 일격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팽저가 첫 일격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건 강호에서 유명했으니까.

그럼에도 이번 일격은 유독 강렬했다.

하마터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내장이 터졌을지도 모를 정도니까.

팽저가 이를 갈았다.

“이것들이?!”

연속해서 도를 휘둘렀다.

흑색 뇌전과 붉은 강기가 연속해서 충돌했다.

-쩡! 쩌저정! 쩡!

“크으윽!”

“팽저 이 멧돼지보다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닥치고 죽어라! 소대가리, 말대가리들아!”

“팽저어어!”

우두마귀와 마두마귀 모두 마도십문의 일익인 염왕성을 대표하는 강자였으나 지살칠십이숙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자들.

팽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검도 고수에 비해 초식의 화려함과 면면부절 이어지는 연환의 묘리는 떨어졌으나 일도 일도의 파괴력은 압도적이다.

이게 바로 도객과 검객의 차이다.

팽저는 천하 도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자부하고 있었다.

허나 감히 천하제일도를 노리진 못했다.

천간십존 중에는 고금제일도로 칭송받는 초월자가 존재했으니까.

천령도 요원한데 천망은 언감생심이다.

팽저는 현실적인 사내다.

우두마귀와 마두마귀는 각자 거느린 무병진의 지원을 받아 맞섰으나 연신 뒤로 밀렸다.

팽저는 그들의 주군 염왕신마 우문패가 속한 칠대신마와 동급인 구중천의 일원.

이는 당연한 일이다.

팽저는 기세 좋게 그들을 밀어붙였다.

우두병단과 마두병단 모두 연신 천공을 시행하는 오호병단의 공세에 맞서 방어에 여념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생문이 뚫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게 바로 그들이 노린 바였다.

우두마귀가 팽저에게 외쳤다.

“이 멧돼지 같은 놈! 걸려들었구나!”

“뭣이?”

그 순간.

4열로 길게 늘어진 오호병단의 좌우로 공간이 진동하더니 사람 한 명 겨우 통과할 정도로 작은 생문이 열리더니 염왕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역시 무병진을 전개했는지 들고 있던 구겸창에 강기를 입힌 채 다짜고짜 찔러 넣었다.

“이, 이놈들이!”

오호무사들은 도를 들어 막았지만 몇 걸음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

오호무사의 몸이 심연과도 같은 진세에 휘말렸다.

“끄, 끄아아악! 살려줘!”

탈출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무병진의 강력한 방어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성채를 둘러싼 초대형 기문진의 힘을 당해낼 순 없었다.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 진세가 오호무사의 육체를 집어삼켰다.

-우드드득! 콰드득!

무언가 뜯기고 부서지는 괴이한 소리.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지옥 같은 소리였다.

외부 세계와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기문진에 걸렸으니 시체조차 찾지 못하겠지.

“이놈들!”

군장을 맡은 패도사천왕 중 일인, 거령도가 포효했다.

장대한 체구에 걸맞지 않게 귀신같은 보신경으로 대열 사이를 가로질렀다.

“죽어!”

염왕무사를 노리고 도강이 날아들었다.

허나 그를 비웃듯 생문이 닫히고 귀신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강은 헛되이 진세 속에 빨려들 뿐이었다.

출렁이는 심연이 거령도의 허망한 심정을 대변했다.

“이이익!”

그때.

길게 늘어선 대열의 다른 쪽에서 생문이 열렸다.

다시 염왕무사가 구겸창을 찔러 넣자 오호무사 몇 명이 밀려나 기문진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거령도가 탄식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언제나처럼 낭인 놈들을 먼저 밀어 넣을 것을! 선봉의 영광을 탐하다 큰 희생을 치르고 마는구나!”

이 와중에도 낭인은 고기 방패 취급이다.

실제로 여덟 개의 생문 중 일곱 개의 생문은 낭인병단을 앞세웠다.

팽저와 패도사천왕이 하북팽가의 후예답게 기분을 너무 내다 보니 핵심 전력인 오호병단의 희생이 커졌다.

이것이 바로 5대 난공불락의 위력이다.

수성 측은 진세의 변화를 이용해 생문이 열릴 때마다 상대를 수월히 공격할 수 있다.

허나 공성 측은 진세의 변화에 대응할 수단을 찾기 전까지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을지효와 헌원력이 공략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준 것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지만 여전히 염왕성채는 난공불락이다.

서둘러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팔세영웅련이 위기에 처한 바로 그때.

흑오단의 질주가 시작됐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10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