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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21화 (121/447)

48. 비무(2)

강호에서 고기 방패 취급당하는 낭인이 어찌 이리 유명세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환신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꼽자면 환신의 용모파기를 그린 제천순구의 솜씨가 비범해서랄까.

예술적 감각이 탁월했던 제천순구는 태음칠절맥으로 절세미모를 지닌 환신의 얼굴에 큰 영감을 받고 열정을 바쳐 용모파기를 그렸다.

그렇게 용모파기가 제천순보를 몇 번이나 장식했다.

낭인의 활약은 일반적인 무인 입장에서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허나 여협들은 좀 달랐다.

기본적으로 여협들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색마나 마도고수에게 엄한 꼴 당한 여협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간간이 제천순보 1면을 장식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환신은 여협들이 동경심을 가질 요소가 다분했다.

강호에서 천대받는 낭인.

송옥과 반안이 울고 갈 미소년.

여기에 초절정고수까지.

초절정고수는 강호에서 무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인식된다.

제천맹을 대표하는 고수 집단 자운백팔대성 역시 제천팔패의 주인인 팔대명왕을 제외하면 전원 초절정고수.

헌데 약관도 안 된 소년이 초절정고수라니.

제천순보에 수차례 언급된 내용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바로 남궁천이다.

그는 친분 있는 제천순구와의 독점 면담에서 공을 세운 이를 다수 언급했다.

그중 환신의 흑오단이 많은 공적을 쌓았다며 은근슬쩍 띄워줬다.

흑오단을 팔세영웅련 전속으로 선점해 두기 위한 사마작의 모략이었다.

헌데 엉뚱하게 여협들의 동경심에 불을 붙여 버린 것이다.

유명해지면 면전에서 코를 풀어도 빨아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뒤이어 강호 전체를 발칵 뒤집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바로 환신과 율약벽과의 비무였다.

염왕성채 공방전이 막을 내린 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환신과 율약벽의 비무는 제천순보 지면을 타고 강호 전체로 퍼져 수많은 여협의 방심을 자극했다.

두 초절정고수의 비무.

그것도 절세미소년과 절세미녀의.

여기에 어떤 뒷이야기가 있을까?

상상만 해도 소녀들의 방심을 자극했다.

이 비무를 직관하기 위해 강호의 여협들이 무한으로 몰려들었다.

그런 여협을 노리고 화화공자 역시 밀려들어 왔다.

환신은 자신을 보며 꺄악 거리는 여협과 씹어 먹을 듯 노려보는 무림 공자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뭐랄까……. 남자 아이돌 된 기분인데?’

그것도 얌전한 모범생 스타일과 거리가 먼 삐딱한 불량 학생 느낌의?

낭인이 그런 이미지니까.

덕분에 무한 성도 내의 최고급 객잔 3층은 기묘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소면에 죽엽청을 곁들여 식사를 하고 있던 구양숙이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다.

“흘흘흘! 내 살다 살다 낭인이 강호 여협들에게 이리 관심받는 경우는 처음 본다. 얼굴 반반한 단주 덕분에 별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환신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때였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공녀께서 지나가신다! 다들 비켜라!”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 이은 거친 사내들의 음성.

곧 계단을 차지하고 있던 무림 공자들 밀치고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무한을 장악하고 있는 남궁세가 소속 창궁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호위하고 있었다.

계단 위로 송아지만 한 설랑을 타고 양어깨와 정수리에 아름다운 빛깔의 새가 앉아 있는 신비로운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소소…….”

“오라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궁소소가 설랑 백아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환신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덥석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히힛!”

“응, 오랜만. 근데 여긴 웬일이야?”

“그야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서 왔죠! ……라고 말하면 안 믿으실 거죠?”

“응.”

“사실 아버님 뵈러 왔어요. 예전부터 오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겨우 허락하셨거든요.”

“그래?”

“예!”

남궁소소는 뭔가 생각난 듯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라버니! 이거 보세요! 앗! 다른 사람들은 보지 마시고요! 오라버니만 보셔야 돼요!”

남궁소소가 내민 건 자주 펼쳤는지 손때가 잔뜩 묻은 서책이었다.

서책을 펼치고 내용을 확인한 환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흑익비영 환신이 이끄는 흑오단, 고루마군 반안추를 처단하다!

-오행마군 소황문을 상대로 생존한 흑오단, 그 중심에는 흑익비영 환신이?

-흑오단, 천주산 소탕 작전 선봉에 서다!

서책 안엔 제천순보에 실린 환신의 활약상이 꼼꼼히 붙어 있었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것도 있고 한 면을 꽉 채운 대서특필도 있다.

그중 고루마군 반안추 척살에 관한 기사가 분량이 가장 많았다.

무림을 강타한 대사건이었으니 당연했다.

거기에 이런저런 색종이를 붙여 소녀적 감성을 듬뿍 살린 흔적이 보였다.

여기에 제천순구가 그린 용모파기는 물론이고 소소 본인이 그린 그림도 붙어 있었다.

지극히 남궁소소의 주관에 따라 미화된 그림이었다.

그걸 본 환신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놔, 여덕 기질 충만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완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팬아트잖아!’

무림까지 와서 이런 걸 보다니.

어질어질하다.

환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소소는 신나서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제천순보에 실린 용모파기도 나쁘지 않은데 아무래도 신이 오라버니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거 있죠? 뭐랄까. 너무 딱딱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솜씨 좀 부려봤죠. 어때요?”

“괘, 괜찮네.”

“그쵸? 역시 신이 오라버니는 좋아할 줄 알았어요! 히힛!”

“…….”

그때 구양숙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신아. 이 아해는 누구인고?”

“아, 남궁 가주님의 영애인 남궁소소라고 해요.”

구양숙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남궁 애송이에게 이런 깜찍한 딸이 있다고?”

남궁소소가 구양숙을 보며 손뼉을 쳤다.

“와아! 혹시 검치 구양숙, 구양 노사 아니세요?”

“노부를 아느냐?”

“그럼요! 천하구대검수의 좌장이시잖아요! 이번에 구천검신마 단목 가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다시 한번 강호에 명성을 떨치셨고요!”

“그걸 어찌 알아?”

“제천순보만 꼬박꼬박 챙겨 봐도 다 알죠, 뭐.”

구양숙은 통쾌한 듯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이럴 수가! 어찌 남궁 애송이 그 근엄한 놈에게서 이런 똑똑한 딸이 나왔을꼬?”

“아버님이 좀 고리타분하긴 하죠?”

“뭐? 푸하하핫!”

“히히히힛!”

“…….”

환신은 남궁소소가 무서웠다.

자기 아빠 팔아서 구양숙의 호감을 얻다니.

‘그나저나 소소 얘는 할배들 호감 사는 데 완전 특화됐네.’

구양숙도 그렇고 동방척도 그렇고.

유독 나이 많은 노인들이 남궁소소한테 맥을 못 췄다.

한창 담소를 나누는데 문득 남궁소소가 환신에게 물었다.

“신이 오라버니. 어쩌다 벽 언니랑 비무를 하게 된 거예요?”

“미안. 그 부분은 서로 함구하기로 했어.”

태음칠절맥 치료 때문에 애장품을 걸고 비무를 벌이게 됐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율약벽을 흠모하는 후기지수들로 줄을 세우면 무한 성도를 한 바퀴 돌 정도다.

그들에게 무한한 질시와 원망의 대상이 될 게 아니면 입 꾹 닫고 있는 게 현명했다.

원망이 암살로 이어질 수 있는 게 무림이었으니까.

“그런데 율 좌총령이랑 아는 사이야? 친근하게 부르네.”

“그럼요. 벽 언니랑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걸요.”

“그래?”

“예. 제천사 집행에 우리 남궁세가에서 몇 번 협조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벽 언니랑 친해졌어요.”

그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소 얘가 들이대면 누군들 안 넘어오겠어.’

만수조령지체라는 마성을 매력을 지닌 아인데.

환신은 옆에 딱 붙어 쫑알대는 소소에게 건성으로 대꾸를 하며 저 멀리 성도 밖에 건설되고 있는 비무대를 떠올렸다.

‘드디어 내일인가.’

이런저런 잡다한 일 때문에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드디어 그날이 왔다.

‘반드시 승리해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겠어.’

이번 비무에 모든 걸 걸겠다.

환신은 그렇게 다짐했다.

* * *

무한 성도 한가운데로 장강이 지나간다.

성도 밖의 장강과 인접한 대규모 모래사장에 열흘에 걸쳐 가로세로 60장(약 180m)에 이르는 비무대가 설치됐다.

하부는 싸구려 벽돌이지만 발이 닿는 부분은 고급 청석을 깔아 품격을 더했다.

비무대에는 제천사를 상징하는 흑검 깃발과 황(皇) 자 깃발이 나부꼈다.

이 모든 걸 감독한 건 제천사의 집법사자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작업이 과연 제천사에서 준비한 행사다웠다.

제천순보에 공지된 비무 당일.

새벽부터 비무대 주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제천순보를 통해 환신의 열렬한 신도가 된 십 대 여협들은 전날부터 비무대 주위 명당자리에 천막을 깔고 밤을 지새웠다.

여협들의 혼약자 혹은 연모의 감정을 품은 무림 공자들 역시 근처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았다.

그들만 해도 이미 비무대 인근을 꽉 채울 정도인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가판을 깔고 당과와 각종 꼬치구이를 파는 상인과 비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여러 무림인, 흔치 않은 구경거리를 즐기러 성 밖으로 나온 무한 백성까지.

비무대와 가까운 곳에 마련된 귀빈석에는 팔세영웅련과 북천무맹의 귀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비무대 주변으로 더러운 옷(汚依)을 입은 늙은 거지 한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판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꼬치 가판이었다.

하루 종일 장사가 너무 잘돼 기분이 날아갈 것 같던 상인은 늙은 거지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 거기! 늙은 거지!”

“으잉? 나 말인가?”

“그래! 어서 꺼져! 손님들이 싫어하잖아!”

상인의 말대로였다.

가판 주변 손님들은 거지가 뿌리고 다니는 시큼한 썩은 내에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상인의 말에 늙은 거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앞니가 있던 자리에 금니를 박아 넣었는데 더러운 거지에게 심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인장! 여기가 주인장 땅이야?”

“뭐? 그건 아니지만…….”

“그럼 이 노화자가 여기서 한숨 자도 되겠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늙은 거지는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심지어 자기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벗고 가슴팍을 드러냈다.

“꺄악! 더러워!”

“에잇! 퉤!”

손님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뜰 기미를 보이자 상인이 화들짝 놀라 늙은 거지에게 물었다.

“아이고, 노개 양반. 알겠소! 뭘 원하시오!”

“꼬치 3개. 소, 닭, 돼지 잘 섞어서!”

“하아…….”

전형적인 거지들의 동냥 수법이다.

일단 재물이 좀 있어 보이는 집 대문 앞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심성 고운 집주인은 적당히 먹을 걸 내준다.

동냥 받은 거지는 자비로운 주인의 복을 비는 노래를 한 곡조 뽑고 자리를 뜬다.

하지만 성질 고약한 주인장은 하인을 시켜 거지에게 몽둥이찜질을 퍼붓는다.

얻어터진 거지는 다음 날 동료 거지를 몰고 온다.

그렇게 거지 수백 명이 모여 주변이 온통 거지들이 싼 똥과 오줌 냄새로 가득 차게 되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 상 거하게 차려 먹인다.

이들을 먹이느라 가산을 전부 탕진한 이도 흔했다.

한마디로 동냥 적당히 받아주는 게 조용히 넘어가는 지름길이었다.

상인이 꼬치를 가져오자 늙은 거지는 헤벌쭉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히힛! 고맙네 그려.”

자리에서 일어난 늙은 거지는 상인의 손에서 꼬치를 빼앗아 들더니 입에 물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그때.

늙은 거지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툭.

“거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니…… 응?”

“으잉?”

늙은 거지와 어깨를 부딪친 건 다름 아닌 구양숙이었다.

늙은 거지는 구양숙을 보고 함박웃음 지었다.

“아이고! 우리 숙이 아닌가! 이거 참 오랜만일세! 반갑네, 반가워!”

“냄새나! 떨어져!”

“숙이~.”

“카악!”

구양숙이 발작을 일으키자 늙은 거지는 그제야 떨어졌다.

“허허, 우리 사이에 내외하고 그래.”

“거참. 낯짝 두꺼운 건 여전하구먼.”

“자고로 거지는 낯짝이 두꺼워야 잘 빌어먹고 다니는 법이야.”

늙은 거지의 말에 구양숙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마디 툭 던졌다.

“당장 저기 귀빈석에 가면 산해진미를 대접받을 수 있는 주제에 뭔 소리야.”

“흐히힛! 이 노화자는 심약해서 높으신 분들이 껄끄러워.”

“장난하나? 자네가 그 높으신 분이잖아, 어! 개방 용두방주 철목숭 나으리!”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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