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신입단원 어서오고(3)
을하는 전신 혈관 한 가닥 한 가닥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톱이 파고들어 누군가 단숨에 잡아당기는 듯한 지옥 같은 고통에 경악했다.
‘이, 이게 뭐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아아악! 커흑! 끄어어어억!”
고통이 전부가 아니었다.
심혼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에 온몸이 망치로 때리는 것마냥 아팠다.
시간상으론 고작 2, 3초에 불과하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을하는 세상만사를 모두 잊고 그저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개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커, 커헉…….”
순간.
을하의 기혈로 파고들었던 태음지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고통에서 해방된 을하가 침상에 얼굴을 처박은 채 숨을 헐떡였다.
“헉! 허억!”
침상 위는 물론이고 몸까지 서리가 내렸다.
을하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환신을 응시했다.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끈한 을하가 외쳤다.
“너 이 개새…….”
“응. 한 번 더.”
다시 을하의 맥문을 따라 기혈과 단전으로 태음지기가 침투했다.
“끄아아아악! 악! 아아악!”
“귀 아파 죽겠네. 이거나 물어. 이빨 다 작살난다.”
환신은 흑영낭에서 자신이 절맥 발작으로 고통받을 때마다 사용했던 유서 깊은 두꺼운 가죽끈을 꺼내 을하의 입에 물렸다.
“읍! 으으읍!”
‘흠, 내가 태음칠절맥 발작을 겪을 때마다 이 꼴이었나 보네.’
많이 추하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저렇게 발버둥 쳐도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그것이다.
‘을하. 넌 아무것도 몰라.’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아주 약간.
티끌만큼 맛을 보고 있을 뿐.
‘일찌감치 굴복하면 맛만 보고 끝나겠지. 하지만 굴복하지 않으면…… 진짜 지옥이 뭔지 알게 될 거야.’
환신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환신은 을하가 물고 있는 가죽끈을 억지로 잡아 뺐다.
을하의 눈에서 광기가 흘렀다.
“이 개자식아!”
환신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허나 무림 고수에게 맥문을 잡힌다는 건 육체는 물론이고 기혈까지 완전히 제압당했음을 의미했다.
환신이 맥문으로 진기를 쑤셔 박으며 팔을 꺾었다.
“아아아악!”
“다시.”
기혈로 파고드는 태음지기.
“끄아아악! 빌어먹을! 아아아악! 커헉!”
그렇게 을하는 무려 14번이나 태음지기 발작을 겪었다.
한 번에 고작 2, 3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게 14번 이어지자 온몸에서 기혈을 따라 빙정이 자라났다.
이쯤 되자 을하의 눈동자에 이글거리던 독기가 미약해졌다.
전부 합쳐도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을 아득히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자, 잠까안.”
폐부를 찌르는 극심한 한기에 이빨을 딱딱거리며 을하가 입을 열었다.
환신은 15발째 태음지기를 발출하려던 걸 잠시 보류하고 말했다.
“뭔데.”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 건데.”
을하의 물음에 싱그러운 미소로 답했다.
“그야…… 오늘부터 너는 내 낭인단 소속이거든.”
“……뭐?!”
다 죽어가던 을하가 몸 이곳저곳 자라 있던 빙정을 깨부수고 벌떡 일어났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독고 대형이랑 다 합의됐어. 너 감당하기 힘드시대. 자업자득이지, 뭐. 그러게 잘하지 그랬냐.”
“이, 이익! 빌어먹을 대머리 새끼! 날 이 미친놈한테 팔아먹어?!”
“응. 미친놈한테 한 방 더 맞으시고.”
“끄아아아악!”
15발째는 신경 써서 약 10초간 고통을 겪도록 태음지기의 밀도를 조절했다.
“악! 아아악! 언제 끝나! 아아아악!”
“좋아. 이왕 하는 거 20번 채우자. 괜찮지?”
“그, 그마아아안!”
20발을 모두 맞은 을하의 눈에 공포의 기색이 감돌았다.
“허억. 허으윽.”
온몸에 깃든 냉기에 입술이 시퍼렇게 질렸다.
부들부들 떠는 생쥐 몰골을 한 을하를 내려다보는 환신의 마음속에 은은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앓는 소리야. 난 하루에 일곱 번 15분씩 이 고통을 겪었다고.’
환신이 보기에 을하는 엄살쟁이였다.
물론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그가 겪은 고통은 절대 일반적인 게 아니었으니까.
환신 자신이 겪은 고통을 타인에게 강요하면 자살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기어코 태음칠절맥의 저주에서 벗어난 환신이야 말로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야.”
“으, 으으…….”
“입 안 열어? 한 발 더?”
“그, 그만! 하지 마!”
“존댓말.”
“뭐, 뭐라고? 그게 뭔 개소리…….”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태음지기가 기혈에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이번에는 짧게 2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다.
“존댓말.”
“아, 알겠다고! ……요.”
“좋아. 먼저 한마디만 할게.”
환신은 을하의 귀에 속삭였다.
“이거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어.”
“으, 으으…….”
“그러니까 입으로 내뱉을 말을 신중히 가리는 게 좋을 거야. 난 독고 대형과 달리 단원 훈육에 가차 없으니까. 알겠지?”
“…….”
“말이 없으니 한 발 더…….”
“알겠다고요!”
“좋아. 이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된 거 같네.”
그 어떤 미친 성격파탄자도 태음칠절맥의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
환신 역시 다시 태음칠절맥을 앓으라고 하면 그냥 입에 칼 물고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먼저 네가 처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줄게. 독고 대형께서 정식으로 네 낭인적을 우리 흑오단으로 옮겨주셨어.”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고 있던 을하가 항변했다.
“하, 하지만 내 동의가 없으면 정식으로 이적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요.”
“물론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흑오단 입단, 동의해 주지 않을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반발하는 을하를 보고 지금까지 열심히 채찍질만 했으니 슬슬 당근을 줄 때임을 깨달았다.
“흑오단에 입단하면 네가 혹할 만한 혜택이 있어.”
“그게 뭔데. ……요.”
환신은 을하의 맥문을 놓고 팔뚝을 덮고 있던 흑익신화포를 걷어 맨살을 드러냈다.
그리고 흑영낭에서 유엽도 한 자루를 꺼냈다.
을하는 자신의 목을 따려는 줄 알고 기겁했다.
“이 미친 새끼야! 갑자기 무슨 개짓거리……!”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유엽도를 내려쳤다.
-쨍그랑!
유엽도가 환신의 팔을 자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졌다.
“어, 어어?”
환신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때. 죽이지? 하나 더 보여줄까?”
손가락에서 광자검강이 발출됐다.
환신은 맨살이 드러난 팔에 광자검강을 그어버렸다.
“미, 미친! 뭐 하는 짓이야!”
“그냥 보고 있어.”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팔에 깊게 베인 상처가 생겼다.
베이는 것과 동시에 상처에서 붉고 푸른 기운이 교차되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수복됐다.
을하는 그 광경을 보고 기겁했다.
“어, 어버버…….”
환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흑오단원이면 누구나 익히는 제식 무공, 불괴수라마공이야. 말이 마공이지 실제로는 상고시대의 천하제일인 만겁마존의 성명절학으로 패도지공이지. 보다시피 금강불괴에 준하는 강체능과 재생능을 제공해 준다고. 여기에 격발형 대법인 열혈수라대법을 통해 잠깐이지만 최대 여섯 배 공력을 증폭시킬 수 있어.”
을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런 무공이 존재했다니!’
광룡투라는 근접 박투술로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을하지만 자신의 무공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바로 비루한 방어력.
보갑이라도 하나 구해 입어야 되나 싶었지만 은을 주고 사려면 은원보 수천 개도 부족하다.
광룡투 기연도 겨우 얻었는데 보갑 기연을 얻을 거란 보장도 없고.
하지만 저 불괴수라마공이라는 무공을 익히면 모든 게 해결된다.
“물론 불괴수라마공을 전수받으면 흑오단 종신 단원으로 자동 임명되지. 삼천경에 도전할 수 있는 광세 절학을 익히는 대가로 이 정도면 아주 싼 거야. 안 그래?
“……그건 그렇죠.”
환신의 말대로다.
모든 무인의 꿈인 삼천경에 오를 수 있는 초상승 내가기공은 그야말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다.
이를 전수해 준 은인이 평생 마소처럼 부려도 군소리 하나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선택을 도와줄게.”
번개처럼 교룡금나수로 을하의 맥문을 제압한 환신은 중단전이 위치한 거궐혈(명치)에 장심을 가져다 댔다.
곧장 태음지기를 불어넣었다.
“끄, 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거궐혈의 태음지기가 미친 듯이 회전했다.
회전이 극에 이르자 기운이 점점 압축됐다.
“악! 아아악! 아악!”
이윽고 압축된 태음지기가 중단전 안에 고드름 형태로 결정을 이뤘다.
환신은 그제야 손을 뗐다.
“컥! 커흑…….”
고통에서 벗어난 을하가 숨을 헐떡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환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느껴져. 태음지기 결정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실이. 영성으로 이어진 게 확실해. 헐, 이게 되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맥문에서 손을 뗐다.
“이젠 굳이 제압할 필요도 없네.”
환신은 씨익 웃으며 태음지기 결정과 이어진 영성의 실을 따라 의념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을하는 명치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이상 없이 잘 돌아가네.”
고통이 멈추자 을하는 떨리는 눈으로 환신을 보며 소리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단주님께 존댓말 쓰랬지?”
다시 한번 명치를 중심으로 태음지기가 흘러나왔다.
“억! 어어억! 끄억!”
고통에 몸부림치는 을하에게 환신이 말했다.
“네 중단전에 심어진 건 태음혈살정(太陰血殺釘)이라는 거야. 그냥 가슴에 박힌 못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일종의 금제지.”
“끄, 끄어어어억! 끄악! 뭐, 뭐라고?!”
“계속 들어봐. 태음혈살정은 나와 영성으로 이어져 있어서 10,000리 밖에 있어도 숙주에게 언제든 고통을 줄 수 있지. 내가 원하면…… 하루 종일도 가능해.”
“커흐흑! 이, 이런 미친!”
환신이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조용. 그리고 존댓말. 자, 일단 여기까지.”
“끄으윽! 허억! 허억!”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환신을 응시하던 을하는 절망감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런 을하의 모습에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 선택해. 흑오단에 뼈를 묻고 불괴수라마공을 익혀 화려한 낭인 생활을 이어가든가, 아니면 내가 생각날 때마다 주는 고통에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비루하게 살든가. 간단한 양자택일이지?”
“그, 그런 게 어디 있…….”
“이 새끼 말하는 거 보게? 야, 생각해 봐라! 기껏 불괴수라마공 같은 광세 절학을 전수해 줬는데 네놈이 튀었어. 그럼 내가 엄청 기분이 나쁘겠지? 너 잡으러 온 중원을 쫓아다니는 것도 엄청난 손해야. 최소한의 신뢰 관계도 없으니 이 정도 안전장치는 필수지. 안 그래? 자, 빨리 선택해.”
꿈도 희망도 없는, 실질적인 독자택일이다.
허나 그것이 환신에게 찍힌 을하의 운명이었다.
영원한 고통이냐, 그도 아니면 저 까마귀 새끼의 노예 신세가 되느냐.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 입단하겠습니다.”
“좋아. 선배 단원들이 우리 막내 듬뿍 예뻐해 줄 거다. 앞으로 잘해.”
일광병단의 망나니 조장, 귀폭 을하.
괴물 같은 강자가 득실대는 흑오단으로 전격 이적.
곧 몽춘추 명의로 제천순보에 실릴 기사 내용이었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4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