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58화 (158/447)

65. 천존의 전언 (1)

맹하후의 출현에 장내의 7만 무인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천맹도가 제천대승상 합하를 영접하나이다!

천무대전에 모인 무인 대다수가 제천맹의 천하 지배에 찬동하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무림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 그런 이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제천맹이 판을 짠 현 천하 구도가 어그러지는 걸 원하는 자들 역시 상당수 존재했다.

예를 들면…… 청천 같은.

실제로 이 자리에 청류무사가 제법 잠입해 있었다.

제천맹 잔치를 파투 내 제천내각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해.

맹하후는 허허롭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관객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무공 수위가 높아서가 아니었다.

맹하후가 서 있는 귀빈석 바로 앞엔 구리로 만든 동관이 존재했다.

동관 주둥이에 대고 말을 하면 관을 따라 음파가 전달돼 천무대전 지하의 거대한 구리 상자에서 기묘한 공명을 일으켜 소리가 크게 증폭되는 구조다.

일종의 대규모 확성기였다.

이런 동관이 객석 전체에 걸쳐 구석구석 설치돼 있었다.

수천 관(수십 톤)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구리가 소모됐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제천맹의 힘을 증명해 주었으니까.

맹하후가 입을 열었다.

-여러 맹도들이여. 천무대전에 온 걸 환영하노라. 제천내각은 오늘 무림 대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다. 허니 맹에서 준비한 축제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그리고…….

맹하후가 눈을 빛냈다.

-천존께서 후계에 관한 전언을 남기셨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맹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발표하리라.

순간 장내의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천존의 후계.

이는 곧 2대 제천맹주를 의미했다.

제천맹주는 곧 천하의 주인.

다음 세대 천하의 주인을 가리는 선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장내의 무인 모두 폐부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함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아!

-우르르르릉!

7만의 무인이 내공을 실은 함성에 거대한 천무대전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진동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맹하후는 함성이 잦아들자 입을 열었다.

-그럼 무림 대회 개최를 선포하노라.

그 말을 끝으로 맹하후는 소매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동시에 허공으로 무언가 쏘아졌다.

-피이이이잉! 펑! 퍼퍼펑! 퍼펑!

강호에서 길일에 터뜨리는 귀한 화약이 반산 상공에서 아낌없이 터졌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다.

환신은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누군지 몰라도 공연 연출 능력 하난 기똥차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 쓰기 때문에 신장룡 맹하후의 명성이 천하를 뒤덮는 건지도 모르지.

그때.

귀빈석으로 올라간 다른 천령의 절대고수와 달리 율약벽은 구천현녀와 같은 자태로 날 듯이 환신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아. 오랜만이네.”

“벽 누이.”

두 남녀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어째서일까.

그저 시선이 실타래처럼 엉키고 있을 뿐인데 이리도 기분이 좋은지.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는 관계란 이리도 달콤한 것이란 말인가.

등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소소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오라버니! 전 아버님께 갈래요!”

“어? 그, 그래.”

“흥!”

남궁소소가 콧방귀를 뀌며 귀빈석으로 향했다.

환신은 어안이 벙벙했다.

‘……쟤 왜 저래?’

그런 남궁소소를 보며 율약벽이 빙긋 웃었다.

“신이가 인기가 많구나.”

“제가요?”

“그래. ……응?”

그녀의 아미가 살짝 꿈틀거렸다.

“신아.”

“예.”

“교우 관계를 넓히는 건 좋지만 아무나 알고 지내면 안 되지 않겠니?”

“예에?”

환신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무나라니. 설마 그게 본녀를 칭하는 건 아니겠지?”

소소린의 말에 율약벽이 생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소 낭랑을 이르는 말이죠.”

“……낭랑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곧 비천십이룡을 떠나 새롭게 날갯짓하실 분이니 낭랑이란 존칭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야! 율약벽 너!”

소소린의 눈에서 혈광이 흐르며 허리에 두르고 있던 독문병기 뇌절편에 손을 가져갔다.

바로 그 순간.

율약벽의 품에서 자줏빛 전류가 번뜩였다.

자전의 칼날을 머금은 49개의 뇌룡탄이 순식간에 소소린을 포위했다.

소소린을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하는 뇌룡탄.

일말의 빈틈조차 허용치 않는, 완벽한 말살의 의지가 공간을 잠식한다.

-꿀꺽.

극심한 압박감에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환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발! 뇌룡탄 일곱 개도 압박이었는데 49개나 되니 공포 그 자첸데?’

당장 감당해야 할 변화가 7배로 늘어났다는 의미다.

천령의 벽을 넘고 사상의 지평이 넓어진 만큼 이는 곧 무한대의 변초와 대동소이했다.

무한에서 환신과 격렬히 승부하던 율약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의 율약벽이 당시의 율약벽 열 명을 홀로 감당하고도 남았다.

삼천경에 이르렀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소소린은 율약벽의 기세가 부친인 소이망의 그것에 비해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님도 날 지켜줄 수 없어!’

천령의 절대고수가 작정하고 죽이려 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급 고수인 소이망조차 소소린을 완벽히 지켜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천령의 화살을 도대체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살아남을 방법은 오직 하나.

혈교 총단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밀 석실에 숨어 지내는 것.

자유분방한 소소린에게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소소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림을 지배하는 대원칙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강자존(强者尊)!

율약벽은 강호를 지배하는 강자 중의 강자의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소소린은 넘은 수 없는 격차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 순간.

잔뜩 쫄아서 자신과 율약벽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는 환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뇌리에서 전류가 번뜩였다.

‘……맞아. 신이는 무한에서 율약벽 저년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지. 나이도 어리니 율약벽 못지않은 무공 천재가 분명해. 저 재능이면 곧 천령의 벽을 넘을 거야.’

답은 하나였다.

‘율약벽 저년 앞에서 기를 펴려면 신이의 마음을 손에 넣어야 돼!’

소소린이 삼십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초절정의 상위에 이르렀으나 아직 천령의 경지는 요원했다.

깨달음의 꼬리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허나 환신은 아니었다.

약관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이미 초절정의 극에 이르렀다.

오늘 당장 천령의 벽을 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

소소린은 싸우는 자가 아니었다.

유혹하는 자였다.

소소린은 뇌절편 손잡이에서 슬그머니 손을 뗐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의 신호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거참, 천령의 절대고수씩이나 돼서 약자를 괴롭혀서 쓰겠니? 그게 십전홍예 율약벽의 정의야?”

율약벽의 입술이 실룩였다.

맞는 말이다.

허나 그게 평소 자신을 음해하던 소소린 입에서 나온 게 문제다.

그러나 율약벽의 신념은 하늘처럼 드높았다.

삽시간에 뇌룡탄이 그녀의 품으로 돌아왔다.

“맞아요. 소 낭랑께선 ‘약자’니 ‘약자’를 괴롭히면 안 되겠죠.”

굳이 특정 부분에 강세를 집어넣는 걸 보니 그간 어지간히 쌓인 모양이다.

소소린 역시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참아냈다.

머릿속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금언을 떠올렸다.

언젠가 이 치욕을 갚아줄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때였다.

“하하하핫! 꽃에 둘러싸인 나비의 형국이라니! 신아! 우형은 네가 부러워 미치겠구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홍염을 연상시키는 붉은 머리에 특유의 불꽃 문양이 수놓인 백색 전포를 걸친 천하제일쾌남!

등천수룡 구자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여자 사이에 끼여 숨 막혀 죽을 것 같던 환신이 반색해 외쳤다.

“건 형님!”

곧장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구자건이 환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 우형이 그리도 보고 싶더냐!”

“그럼요!”

환신이 자리를 피하자 서로를 노려보던 율약벽과 소소린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한 소소린은 환신을 향해 가볍게 눈을 찡긋하고 재빨리 소이망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율약벽이 환신에게 다가와 말했다.

“신아. 나도 이만 가 봐야겠어.”

“이런! 벽 누이! 나 구자건이 왔는데 이리 자리를 피해서야 되겠소.”

그 말에 율약벽이 눈살을 팍 찌푸렸다.

“……구 소협. 본 총령이 벽 누이라 부르는 걸 허락한 건 오직 신이뿐이에요. 입을 조심해 주세요.”

“어허! 나 구자건의 의형제인 신이가 누이라 부르는데 나 역시 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지! 내 입을 막으려거든 차라리 목에 검기를 찔러 넣으시구려!”

실로 호쾌한 발언에 율약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마 용왕 구천세의 후계자이자 환신의 의형인 구자건 목에 자전검기를 박아 넣을 순 없었다.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함부로 입을 놀리면 본 총령의 명예를 걸고 구 소협을 징치하겠어요.”

“그러시든가. 헌데 아버님께서 검황가에 넣으신 혼담에 대해 들었소?”

“당연히 거절이에요.”

“어째서!”

율약벽이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본 총령은 약자의 아내가 될 생각 따위 없으니까요. 본가로 혼담을 넣으시려거든 천령의 벽을 넘고 오세요. 최소한의 기준이에요.”

“으윽!”

구자건은 말문이 막혔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천하에 오직 아홉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천령의 절대고수다.

헌데 율약벽의 부군이 되려면 천령의 벽을 넘어야 한다니!

실로 가혹하기 그지없는 폭거였다.

율약벽이 코웃음을 치며 도발했다.

“자신 없으신가 보죠?”

“……좋소! 해내겠소!”

“그전까지 본 총령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그건 싫소!”

단호하기까지 한 구자건의 외침에 율약벽이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참으로 답이 없는 남자였다.

허나 또한 그게 구자건이란 사내였다.

구자건은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외쳤다.

“다시 만났을 때 천령의 벽을 넘고 벽 누이에게 청혼하겠소!”

율약벽은 힐끔 환신을 보며 살짝 질책하는 어조로 말했다.

“신아. 정말 골치 아픈 사람과 형제의 연을 맺었구나.”

환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달리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율약벽은 한숨을 내쉰 후 자색 전류를 남기고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형환위였다.

율약벽이 귀빈석으로 올라가자 환신은 구자건을 보며 말했다.

“건 형님. 수로맹주님을 따라온 거예요?”

“그렇다. 아버님께서 이번 무림 대회에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고 하셨다.”

“……혹시?”

“네 생각이 맞다.”

구자건은 방금 전과 다른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존의 후계 문제다.”

“으음…….”

“제천대승상 합하 명의로 비밀리에 전언이 왔다. 나의 무림 대회 참가를 명하는 전언이다.”

“아.”

“저길 보거라.”

구자건이 손으로 가리킨 쪽을 보자 녹의를 입은 차분한 인상의 관옥 같은 미남자를 볼 수 있었다.

“녹림맹주의 장자이자 비천십이룡의 일원인 녹의검군(綠衣劍君) 초마린이다.”

“그도 왔군요.”

거칠고 패도적인 녹림왕 초일비의 장자 녹의검군 초마린은 일반적인 녹림의 산적들과 달리 단아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냉철한 성품인 용왕 구천세의 장자 등천수룡 구자건이 격정적인 성정으로 유명하다 보니 녹림과 장강의 두 지배자와 후계자가 기묘하게 대비되는 걸로 유명했다.

“그뿐이 아니다. 북천무맹에서 나나 초마린과 같은 위상을 자랑하는 무당비상검 운한도 왔다.”

“그렇다는 것은…….”

구자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마군자 담천악도 이 자리에 온 걸로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세외의 팔대명왕의 후계자인 두 명을 제외한 비친십이룡 거의 전원이 반산에 집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로 범상치 않은 일이다.

“어쩌면…… 천존께선 현 정사마와 정사지간, 세외의 지존에게 후계를 넘길 생각이 없으신 건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묵시천존, 천간십존과 팔대명왕은 동시대의 인물이었으니까.

후계란 다음 세대를 의미한다.

그 대상은 어쩌면…… 비천십이룡 세대일지도 모른다.

허나 이 역시 추측에 불과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그저 맹하후가 한시라도 빨리 천존의 전언을 말해주길 기다릴 뿐이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진정되고 본격적인 무림 대회가 시작되려는 찰나.

한 관객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저게 뭐지?”

그러며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을 본 사람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느새 관객 대부분이 이변을 알아챘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저 멀리 화염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거대한 불새였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59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