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59화 (159/447)

65. 천존의 전언(2)

맹하후는 불새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그는 저 불새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봉황 전언술!

술법을 다루는 술사들은 원거리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는 다양한 형태의 전언술을 부렸다.

그중에서도 불새를 형상화한 저 봉황 전언술은 한 명의 술사를 상징했다.

묵시천존, 바로 그였다.

무공으로 고금제일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이도 모자라 학문, 기문진, 토목과 기관진식 등에 통달한 다재다능함을 자랑하는 묵시천존이다.

술법 역시 고금제일술사 지뇌기가 고천을 제외하면 딱히 적수를 찾기 힘든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불꽃에 휩싸인 봉황이 천공을 가르며 천존의 의중을 전한다.

천하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맹하후는 침중한 눈으로 저 멀리 날아오는 봉황을 응시했다.

‘……천존이시여. 어찌해 갑자기 전언을 보내는 거란 말이오.’

후계에 관한 일을 확정 짓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와중에 또 갑작스레 변덕이 도졌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맹하후는 묵시천존이 내리는 명을 반드시 수행해야 했다.

제천내각의 천하 지배는 어디까지나 묵시천존에게 호가호위한 결과물이었으니까.

천무대전까지 날아온 봉황이 허공에서 화염과 함께 펑 하고 터졌다.

그리고 하얀 종이 새로 변모했다.

종이 새는 팔랑거리며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 맹하후의 손에 안착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7만 맹도 전원이 맹하후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맹하후는 엄청난 압박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종이 새를 펼칠 뿐이었다.

그는 서신을 쭉 읽어 내려갔다.

맹하후는 눈을 부릅떴다.

“……헉!”

그의 신음성이 어찌나 컸던지 동관을 타고 장내의 무인들의 귀에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귀빈석의 팔대명왕 역시 살짝 놀랐다.

그들이 아는 맹하후는 이리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묵시천존을 대리해 철권을 휘두르는 철혈 재상.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冷血漢) 이 바로 맹하후였다.

헌데 저리도 격동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맹하후는 서신의 내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연신 머리를 흔들었다.

모두의 관심이 한곳에 집중된 상황.

맹하후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동관 주둥이 쪽에 대고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맹주의 전언을 대독하겠노라.

환신은 힐끔 자신을 보는 맹하후의 시선을 느꼈다.

‘……뭐야, 갑자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다.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맹하후가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본존을 대리해 천하를 다스리는 맹하후와 여러 맹도에게 고한다. 모처럼의 무림 대회니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또한 후계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논의를 끝내고 온전히 맹하후에게 맡겼으니 여기선 더 이상 논하지 않겠노라.

묵시천존 특유의 미사여구를 뺀 짧고 건조한 어투다.

맹하후는 계속해서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존이 급히 서신을 보낸 이유는 하나다. 하루라도 빨리 맹도에게 고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선포한다. 나 천존 묵시흔이 전인을 두게 되었다.

묵시천존의 전인!

그 충격적인 소식에 장내의 모두가 경악하고 한 명은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이런 시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대독이 계속 이어졌다.

-허나 그 아이는 이미 사부로 모신 자가 존재하여 본존의 의발전인 자리를 거부했고 본존은 이를 인정했다. 허니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밝힌다. 그 아이는 본존의 제자가 아니다. 또한 본존의 무학을 오롯이 이어받은 계승자이기도 하다. 알겠느냐.

그리고.

천존의 무학을 계승한 자의 이름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흑익비영 환신. 신아.

순간.

7만 명의 시선이 일제히 한 명에게 집중됐다.

바로 환신이다.

옆에 있던 구양숙은 눈꼬리가 찢어질 것처럼 부릅뜬 채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환신을 응시했다.

‘……부, 분명 한서불침인데 왜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거지.’

-신아. 이 자리를 빌려 말하마. 너와 너의 사부인 낭인 왕힐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존중해 사제지간을 맺지 않았다. 허나 신이 네가 나 묵시흔의 무를 이은 계승자란 사실 역시 변치 않는 진실이다.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마라.

천하의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는 대사건이 터졌다.

실제로 제천순구 몇 명이 보신경을 펼쳐 천무대전을 뛰쳐나갔다.

사흘 후 발행될 제천순보에 방금 전 얻은 특종을 싣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환신의 무림 출도부터 현재까지를 다룬 특집 기사가 되겠지.

그중에는 당연히 몽춘추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맹도들에게 고한다. 환신은 나 묵시흔의 무를 이은 계승자. 혹여 본존의 무학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자가 있다면 흑익비영 환신을 찾으라. 환신이 나 묵시천존의 무를 대변하리라.

묵시천존의 전언은 그걸로 끝이었다.

이쯤 되자 환신은 묵시천존의 속셈을 읽을 수 있었다.

‘……나를 죽어라 굴릴 생각이구나!’

무학을 이은 후계자는 개뿔.

환신과 묵시흔.

이 둘은 그런 말랑말랑한 관계가 아니었다.

언젠가 서로의 목숨을 노릴 대적자다.

묵시천존은 환신이 하루라도 빨리 자격을 갖추길 원했다.

또한 그는 환신을 편히 내버려 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강호를 종횡하는 무인 모두가 묵시천존과 무학을 논하고, 한 수 배우고 싶어 했다.

허나 천간십존을 제외한 그 누구도 감히 묵시천존 앞에서 무를 논하지 못한다.

심지어 팔대명왕조차도.

그것이 묵시천존의 위엄이다.

하지만.

제자, 아니, 무학의 계승자가 존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든 찾아가 무를 논할 수 있다.

무인과 무인이 무를 논하는 것은 실로 간결한 과정을 거친다.

바로 비무!

생사결!

무엇이든 상관없다.

묵시천존의 무를 견식하기 위해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와 손을 섞을 자들이 천하에 넘쳐흘렀다.

심지어 의발전인(衣鉢傳人-사부의 모든 걸 이은 하나뿐인 제자도 아니라지 않은가.

명백히 선을 그었으니 생사결 중 환신이 죽는다 해도 무림의 율법상 복수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연히 환신은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묵시흔 이 인간! 뭐? 사나이는 누구나 가슴에 애새끼를 품고 있어? 본체가 나잇값을 못 해? 에라이! 그냥 본래 성격이었던 거잖아!’

묵시천존의 뜻은 간단했다.

자신의 무공을 전수받은 이상 편히 지낼 생각 따위 꿈도 꾸지 마라.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 대적자에 어울리는 무를 갖춰라.

앞으로 환신이 겪게 될 고난을 떠올리며 키득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뭐가 됐든 가장 원하지 않는 형태로 묵시천존과의 관계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옆에 있던 구양숙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 신아!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그, 그게…….”

“정녕 묵시천존을 만난 것이냐? 그가 어찌 힐의 이름을 알아! 정말로…… 정말로 묵시천존의 무학을 계승한 게야?”

달리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환신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양숙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환신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신이 네가 평소 어디서 기연을 잘도 주워와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하니 묵시천존의 무학을 잇는 기연을 주워올 줄이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구나.”

“사실 저도 그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양숙은 참으로 대견하다는 듯 그윽한 눈으로 환신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묵시천존의 의발전인 자리조차 거부하고 끝까지 힐과의 사제지연을 소중히 여기다니. 참으로, 참으로 고맙구나.”

평상시 냉막하고 까칠하기 그지없는 구양숙이다.

그런 구양숙의 눈가에 살짝 물기가 어렸다.

묵시천존의 제자 자리를 거절하고 의형제인 왕힐의 제자 자리를 고수한 것은 가장 낮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장 높은 자리를 걷어찬 격이었으니까.

그때.

맹하후가 입을 열었다.

-흑익비영 환신. 이리로 올라오라.

환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코앞에 들이닥친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귀빈석으로 올라오자 어마어마한 기파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천마 담군명을 필두로 검제 남궁천, 자하신협 매장소, 혈마 소이망, 녹림왕 초일비, 용왕 구천세까지.

이 자리에 모인 팔대명왕 전원이 환신을 노려본다.

특히 환신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던 남궁천의 눈동자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어떻게 묵시천존의 무학을 계승한 것일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팔대명왕뿐만이 아니었다.

담군명과 매우 닮았으나 좀 더 젊은 관옥 같은 미남자.

묵빛 학사의에 섭선을 살랑살랑 흔드는 서생 차림의 귀공자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환신을 응시했다.

‘마군자 담천악이군.’

담천악뿐만이 아니었다.

의형인 구자건을 비롯해 녹의검군 초마린, 무당비상검 운한, 사미인 소소린까지 환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특히 소소린의 눈은 알 수 없는 열기로 가득했다.

‘린 누님은 또 왜 저렇게 보지?’

그리고.

율약벽 역시 환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 속에 있는 건 기쁨의 감정이었다.

환신이 얻은 기연을 기뻐하는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 다시 손을 섞을 그 날을 기대하는 거겠지.

환신이 귀빈석에 올라오자 맹하후가 입을 열었다.

“신아. 서신의 내용이 사실이냐?”

“예.”

“도대체 언제.”

“……어젯밤입니다.”

“뭣이? 어젯밤이라고?

실로 어처구니없는 말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허나 불과 5초도 안 돼 떨리는 동공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맹하후의 눈동자에서 신광이 번쩍이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환신은 떨떠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음껏 써먹을 왕패를 손에 넣은 얼굴일세.’

충분히 그리 생각할 만했다.

환신에게 흑익비영이란 별호를 지어준 사람이 누군가.

바로 신장룡 맹하후였다.

이미 서로 간에 인연의 실이 이어졌다.

수차례 맹하후의 후광을 누린 환신이다.

그의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적당히 대가를 챙겨주면 언제든 부릴 수 있는, 묵시천존의 무를 계승한 자.

제천사와 함께 제천내각의 만능패가 될 수 있겠지.

환신 역시 맹하후에게 협력할 용의가 있었다.

문제는…….

‘청천이지.’

확신할 수 있었다.

청천이 제일대적으로 여기는 묵시천존의 무학을 이었으니 청천과는 반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가까운 시일 내로 분명 암살자를 보낼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자들로.

허나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청천에서 파견한 암살자를 분쇄한다.’

손쓸 여지도 없이 빠르게 말살해 버린다.

몇 차례 암살자를 사냥하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은근슬쩍 의뢰를 넣을지도 모르지.

‘그 의뢰를 수행하면 되는 거고.’

그럼 자신을 대단히 경계하겠지만 은을 주고 부릴 수 있다 여길 것이다.

‘뭐가 됐든 결국 중요한 건 힘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믿을 수 없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무당비상검 운한 도장이 있었다.

운한 도장은 차가운 눈으로 환신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천한 낭인 따위가 천존의 무학을 계승하다니. 이를 믿으란 말인가? 이 모든 일이 네놈이 꾸민 수작일지 어찌 알고.”

명백한 억지였다.

맹하후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항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족속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그래. 어찌 낭인이 천존의 무학을 이을 수 있겠어!”

“동의하오! 묵시천존께서 계승자를 선택하신다면 당연히 명문정파의 인물이지! 무당비학 현월 진인의 무를 이어받은 운한 도장처럼 말이야!”

주로 정파가 자리 잡은 구역에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마외도 역시 은근히 이에 동조했다.

강호의 최하층에 위치한 낭인에 대한 경멸은 무림의 보편적 정서였으니까.

이런 불신이 계속되면 환신은 어느새 묵시천존의 후계를 사칭한 천하의 역적으로 전락할 게 분명했다.

물론.

환신은 이를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회였다.

그는 피식 코웃음 치며 입을 열었다.

“야.”

운한 도장의 안색이 변했다.

“……설마 본도를 칭한 것이냐?”

“이거 완전 모자란 놈일세?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뭣이! 낭인 따위가 감히!”

“아, 됐고.”

환신이 사납게 이빨을 드러냈다.

“더러운 주둥이 여물고. 보여주면 될 거 아니야.”

“뭘 말이냐!”

“뭐야.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

환신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천존의 무공.”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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