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72화 (172/447)

71. 아미산 탈출 작전(1)

이 을종 녹혈귀는 철혈신니의 제자이자 아미파 장문 제자로 다음 대 아미파 장문인이 유력한 금정사태였다.

비록 괴물로 변했으나 아기 때부터 손수 기저귀까지 갈아주며 애지중지 키운 하나뿐인 제자의 목을 직접 벤 스승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꿈틀꿈틀.

검강에 잘린 금정사태의 목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육체 쪽으로 뻗어 나갔다.

목이 잘린 와중에도 죽지 않는 지독한 생명력에 장내의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르르륵! 그르르!

그것도 모자라 절단면이 조금씩 재생됐다.

아미산의 냉혈한, 철혈신니는 제자의 비참한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런 철혈신니 곁으로 철목숭이 다가갔다.

“이보게, 신니.”

“……철 방주.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시게.”

“철 방주께서 빈니의 제자를 처리해 주세요.”

“……알겠네. 그리하지.”

철목숭은 과거 금정사태라 불리던 녹혈귀의 머리에 장력을 뿌렸다.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른 강기공에 머리통이 버티지 못하고 녹아 버렸다.

그걸로 끝이다.

철혈신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눈을 떴다.

길게 제자의 명복을 빌 시간 따위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

짧은 시간 모든 번뇌를 털어버린 철혈신니는 다시금 냉정한 얼굴로 철목숭에게 감사를 표했다.

“철 방주. 본파를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철 방주가 아니었으면 처음 녹혈귀가 튀어나왔을 때 복호사 내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피해가 커질 뻔했어요.”

“흐힛! 다 같은 북천의 하늘 아래 적을 둔 사이 아닌가. 구파일방은 모두 한 식구지.”

“그래도 이렇게 큰 빚을 지고 모른 척할 수 없어요. 이 빚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허허, 거 참. 그보다 신니. 앞으로 어찌할 셈인가?”

“으음…….”

작금의 위기는 아미산 내부에서 갑자기 녹혈귀로 각성한 천여 명의 문도 때문이다.

수양이 깊은 이들은 녹혈루의 의념에도 불구하고 녹혈귀가 되지 않고 버텼으나 2할에 가까운 문도와 수백의 시주들은 그렇지 못했다.

다행히 초절정고수인 철혈신니 본인과 1대 제자 중에선 녹혈귀로 각성한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럼 준천령급 전투력을 자랑하는 갑종 녹혈귀의 강림이니 미증유의 재난으로 번졌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2대 제자인 절정고수들 중 녹혈귀로 각성한 자들이 상당했다.

이들 2대 제자가 을종 녹혈귀로 화한 것이다.

철목숭은 복호사 내부에서 각성한 녹혈귀 제압에 크게 활약했으니 그 덕분에 피해가 최소화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대충 상황이 정리됐으니 복호무병진을 전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으음, 그렇다는 건 아미산을 포기할 셈인가?”

“작금의 상황은 녹혈루가 준동한 게 아닌가요?”

“그렇지.”

철목숭은 아미파를 근거지로 사용하며 성도 인근에 위치한 천독곡을 정찰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냉혈독수 당각이 이끄는 녹혈군단과 조우할 뻔하는 등 수많은 위험을 겪었으나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이를 극복했다.

하지만 오늘.

기어코 녹혈루가 사천 전체에 의념을 뿌려 녹혈을 각성시켰다.

철혈신니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미파를 이루는 것은 복호사가 아닌 아미의 제자들! 한 명의 제자라도 살려 탈출시키는 것이 장문인인 빈니가 할 일입니다.”

“흐히힛! 훌륭하군, 훌륭해. 좋네! 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지!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 우리 개방 거지들이 있는지 한번 확인 좀 해보자고.”

“예.”

“상황이 이 지경이 됐으니 맹하후, 그 친구도 움직일 게야. 날짜를 보아하니 오늘은 무림 대회 당일. 이미 녹혈루 준동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몰라.”

“……묵시천존에게 호가호위해 강호의 목을 옥죄는 자이나 이번만큼은 제법 믿음직하군요.”

“흐힛! 아무렴! 자, 그럼 상황이 어찌 되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

철목숭은 복호사 내부의 전각 벽을 밟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곧장 개방의 보신경인 연쌍비(燕雙飛)를 펼쳐 수십 장을 솟구쳤다.

뒤이어 연화락(蓮花落)을 전개해 육체를 극도로 가볍게 하고 취팔선보를 밟으며 능공허도의 묘리로 꽃잎처럼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철목숭은 빠르게 몸을 회전시켜 가며 사방을 살폈다.

날카로운 눈썰미로 녹혈귀 무리의 규모를 추산해 냈다.

‘……거의 1만 5,000구에 이르지 않는가!’

무지막지한 규모다.

대부분 아미산 아래 기거하는 무지렁이겠지만 일부는 아미파 제자가 변모한 강력한 녹혈귀도 존재했다.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걸 보니 상위 개체가 하급 개체를 지휘하고 있었다.

철목숭은 기가 질렸다.

‘너무 많아. 탈출에 성공할 순 있어도 희생이 상당할 거 같구나.’

초절정고수에 버금가는 을종 녹혈귀도 수십 구 존재했으니.

복호무병진을 펼쳐 단숨에 뚫어야 하는데 이조차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만큼 녹혈귀 무리는 강력했다.

‘그래도 해내야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문득 철목숭의 눈에 저 멀리 번쩍이는 금광이 보였다.

‘……별?’

그럴 리가.

별이 왜 저리 낮은 곳에 있단 말인가.

그뿐이 아니었다.

금광이 마치 유성처럼 미친 듯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곧 금광의 실체를 목격할 수 있었다.

“저게 무슨…….”

그것은 거대한 황금 마차를 연상시켰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바퀴가 무슨 물레방아만 하구나!’

그리고.

-콰르르릉!

단숨에 공간을 접고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좌우로 금륜을 회전시키며 천신과도 같은 위용을 뽐내는 인물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 철 숙부. 오랜만이에요.”

“너, 너는…… 신이?!”

기함하는 철목숭을 보며 환신이 씨익 웃었다.

금륜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열기에 올라타 허공에 둥둥 떠 있던 기우가 보신경을 펼쳐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환신이 철목숭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만 내려가죠.”

“그, 그러자꾸나. 헌데 신이 너 혹시…….”

“맞아요. 천령의 벽을 넘었습니다.”

그 말에 철목숭이 입을 헤벌쭉 벌렸다.

“흐히히힛! 암울한 시국에 그것참 반가운 소리구나!”

“알았으니까 그만 내려가죠?”

철목숭은 어떤 기운이 자신을 휘감는 걸 느꼈다.

허공섭물이다.

저항할 새도 없이 곧장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끄익!”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이 천령의 절대고수의 세계.

아승기의 시간 속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청난 속도와 달리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철목숭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신이의 진기 수발이 실로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철혈신니는 갑자기 등장한 소년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철 방주. 이 소년은…….”

“어, 신니도 들어봤을 게야. 흑오단주 흑익비영 환신이라고.”

“아! 들어봤어요.”

어찌 모르겠는가.

남궁세가와 염왕성이 제천혈맹전을 벌이는 동안 제천순보를 통해 그 활약상이 중원 전역에 널리 퍼졌는데.

“……하지만 천령의 절대고수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환신이 천연덕스러운 어조로 답했다.

“아, 그거 제천순보 다음 호에 실릴 예정이에요. 근데 녹혈루 위하 때문에 화제성이 밀려 버렸네. 아쉬워라. 제천순보 1면 한 번 차지해 보나 싶었는데.”

“그, 그렇구나.”

“자자, 잡설은 이 정도로 하고.”

환신은 날카로운 눈으로 철혈신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신니께선 앞으로 어찌하실 계획이시죠?”

“무슨……?”

“아미산을 탈출할 계획이시죠?”

철혈신니가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그걸 어떻게…….”

“문파를 이루는 근본은 결국 사람과 정신. 신니께서 신외지물을 지키기 위해 제자를 희생시킬 분이 아니라 생각했을 뿐이에요.”

“으음, 아미타불.”

환신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흑오단은 현재 제천대승상 합하의 지시로 사천을 위력 정찰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아미의 위기를 목격했으니 그냥 외면해 버리긴 그렇죠? 허니 합당한 금액을 제시하면 탈출에 적극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합당한 대가라…….”

철혈신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천령의 절대고수가 도움을 준다 공언했다.

환신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잡으면 탈출 과정에서 희생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거절할 이유 따위 없었다.

“은원보 5,000개. 어떤가?”

“흐흠, 단기 의뢰로 나쁘지 않은 금액이네요. 접수했습니다. 지금부터 저 흑익비영 환신과 흑오단은 아미파의 아미산 탈출 작전을 적극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우!”

“예, 주군.”

기우가 앞으로 나서자 철혈신니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이 젊은이는 왜?”

“신니. 탈출 과정에서 아미파의 지휘를 기우에게 맡겨주시죠.”

“뭐, 뭐라고?”

환신이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저를 믿고 기우를 써주세요. 그사이 신니께선 어린 제자들을 보호하시고요.”

“끄응.”

갑작스러운 환신의 요구.

철혈신니의 본래 성정이면 당장 싸늘하게 쏘아붙여야 옳았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낸 자가 다름 아닌 천령의 절대고수.

하늘 같은 자존심에 흰소리 따위 할 리 없지 않은가.

철목숭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보게, 신니. 신이가 허튼소리를 하진 않을 게야. 지금까지 한 번도 의뢰인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걸로 정평이 나 있지 않은가.”

“…….”

생각해 보면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탈출 작전에서 낭인의 경험이 도움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곳에서 최고수는 환신이었으니 끝까지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평상시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환신 본인의 불가사의한 매력과 천령의 절대고수의 무한한 권위가 합쳐져 이를 가능케 했다.

“……알겠네. 내 한번 흑익비영 환신, 자네를 믿어보지.”

환신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 선택.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자! 모두 저쪽을 보시죠!”

철목숭과 철혈신니 모두 환신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 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저건…….”

“흑오단입니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곧장 흑오단이 녹혈귀 무리 뒤를 칠 거예요. 녹혈귀 무리의 진형이 어지러워진 틈을 타 놈들을 가로질러 흑오단과 합류합니다. 아, 참고로 현재 객원단원으로 등천수룡 구자건과 사미인 소소린이 버티고 있으니 총 3인의 초절정고수가 녹혈귀 무리의 후미를 공격할 겁니다.”

3인의 초절정고수를 앞세운 흑오단이 뒤를 치고 천령의 절대고수인 환신이 이끄는 아미파가 녹혈귀 무리를 단숨에 뚫는다.

철혈신니는 바로 깨달았다.

환신과 흑오단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동아줄이란 것을 말이다.

“더 이상 시간 끌 필요 없겠죠? 바로 가겠습니다. 기우!”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전장의 군자’ 기우의 명성이 천하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는 아미산 탈출 작전이 시작됐다.

* * *

산문 쪽으로 달리는데 기우가 환신에게 다가와 말했다.

“주군. 소인이 해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주군께서 단정적으로 말씀하셔서 일단 해보긴 하겠습니다만 소인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기우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무당파 2대 제자인 청자배 사이에서 경원시당하고, 이윽고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기우였다.

항상 단독 임무만 수행했으며 무병진 지휘는커녕 무병진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한 적도 없었다.

무당에서 기우는 언제나 고독했다.

그런 자신이 사문도 아니고 아미파 전 문도의 탈출 작전을 지휘한다니.

과연 가능할까?

‘……허나 주군께선 가능하다고 하셨다.’

자신을 믿는 게 아니다.

주군을 믿는 것이다.

기우는 주군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겠다 굳게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문 앞에 도착했다.

아미 제자 중 2할가량이 녹혈귀로 각성하는 바람에 복호무병진을 펼칠 여유가 없어 항마복룡대진으로 녹혈귀 무리의 산문 진입을 막고 있었다.

이제 내부를 정리하고 복호사 제자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탈출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 순간.

환신이 신룡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73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