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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85화 (185/447)

74. 당문삼영(1)

사천성의 주도인 성도.

성도 인근에는 당가타(唐家陀)라는 곳이 존재했다.

당씨 성을 가진 자들의 집성촌인 당가타 중심에는 거대한 요새를 방불케 하는 대장원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 규모는 천하제일세가인 남궁세가의 장원을 오히려 능가하며 수많은 기문진과 기관진식이 편집증적으로 설치돼 있었다.

이곳이 바로 사천당문.

천하에서 가장 독하기로 유명한, 어느 정도냐면 천마신교와 혈교에서도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인 당문 일족의 총본산이다.

당문 대장원은 외원과 내원으로 나뉜다.

외원은 당문 데릴사위나 사천당문을 위해 지대한 공을 세워 당씨 성을 하사받은 자들이 머문다.

가장 경계가 삼엄한 내원은 당문 직계의 거처였다.

허나 무림에서 꺼리는 독과 암기를 주무기로 하여 강호에서 공포의 대상인 당문 일족이 거하는 이 대장원에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꿈틀. 꿈틀. 푸르르르.

아름다운 누각과 정원, 서역에서 건너온 고급스러운 장식품으로 화려함을 자랑했던 내원은 녹색 점막으로 가득했다.

점막으로 뒤덮인 누각 쪽으로 무급 녹혈귀 무리가 수십 명의 인간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안 돼! 살려줘! 제발!”

누각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점막에서 괴물의 주둥이를 연상시키는 구멍이 열렸다.

무급 녹혈귀는 가차 없이 인간을 구멍 안으로 던졌다.

“으아아아악!”

-우드득! 콰득! 위이이잉!

부서지고 뜯기고 산산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지렁이 백성들은 불길한 상상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 버렸다.

“헤, 헤헷. 이히힛.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하지만 녹혈귀에게 인정 따윈 존재치 않았다.

이들에게 인간은 맛 좋은 먹잇감, 혹은 상위 개체를 탄생시키기 위한 양분에 불과했다.

녹혈귀에게 끌려온 인간 행렬에는 사천 무인도 있었다.

이들은 최상급 양분으로 갑종 녹혈귀 제작에 사용됐다.

물론 모두 이렇게 갈아 넣는 건 아니었다.

개중 특별한 신체나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들은 다른 점막 누각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상위 개체, 즉 병종 녹혈귀로 개조된다.

이 모든 공정은 과거 가주전이 위치한 곳에서 생산 작업을 통제하고 있는 녹혈루 위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이 거대한 군체 속에 군림하는 왕, 아니.

창조주였다.

갑종 녹혈귀를 생산 중인 위하를 지키기 위해 냉혈독수 당각과 30년 전 녹혈귀로 화한 당문 정예들이 가주전 주변을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었다.

냉혈독수 당각은 다른 갑종 녹혈귀와 마찬가지로 청동 인형을 연상시키는 금속질 피부에 주름 하나 없는 약관의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변의 당문 정예 역시 당각과 같은 모습.

그렇다.

이들 모두 갑종 녹혈귀였다.

그것도 30년 동안 천망의 초월자인 위하의 지도를 받으며 경지를 높여온 괴물 같은 강자들.

20여 명에 이르는 당문 정예에 더해 현재 제작 중인 30구를 포함한 총 50구의 준천령급 갑종 녹혈귀가 완성되면 대망의 중원 침공이 시작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

녹혈군단은 시시각각 천하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때.

당각의 감각 기관으로 모종의 향기가 스며들어 왔다.

오직 녹혈귀만이 맡을 수 있는 기이한 향기.

바로 페로몬이다.

녹혈귀는 이 생체 물질에 정보를 주입해 다른 동족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무급 녹혈귀는 고작 몇 마디 정도의 정보를 보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갑종 녹혈귀쯤 되면 10분짜리 영상을 방불케 하는 막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보를 담은 생체 물질이 녹혈귀에서 녹혈귀로 전달돼 이윽고 이곳 당가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진다.

말도 안 되게 빠른 정보 전달 역시 녹혈귀의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페로몬에 담긴 정보를 확인한 당각이 눈을 떴다.

“놀랍군.”

정말로 놀랐다.

갑종 녹혈귀로 진화한 후 근 30년간 쉬지 않고 용맹정진하여 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당각이다.

그가 더욱 높은 경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녹혈귀로 개조된 후 젊음을 되찾는 건 물론이고 언제나 활력이 넘쳤다.

정신은 맑아지고 잠도 필요 없으며 사지가 잘린 상처조차 순식간에 재생되니 생사가 오가는 무리한 수련 역시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저 가끔…… 인간을 섭식해야 되지만 영원한 젊음과 더불어 강대한 힘을 얻는 대가로 인간성의 상실 따위.

너무도 싸지 않은가.

당각은 자신을 녹혈귀로 진화시켜준 창조주, 위하에게 무한한 경외심을 느꼈다.

‘흠, 생각해 보니 창조주를 만든 것 역시 본좌가 아닌가.’

모르겠다.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전지.

아무렴 어떠랴.

자신이 창조주에게 종속된 녹혈귀임은 변함없으니까.

당각은 문득 적우자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신위를 선보인 환신을 떠올렸다.

‘본좌보다 아래지만 만만치 않다.’

30년에 걸친 고련으로 준천령급을 넘어 완숙한 천령의 경지에 이른 당각이다.

그도 모자라 이를 초월해 천령의 끝.

심어검(心御劍)에 이르렀다.

당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군, 좋아.’

곧 중원을 녹혈로 물들이기 위한 대침공이 시작된다.

당각은 30년간 정체를 숨긴 채 은밀히 중원 곳곳을 살폈다.

이를 통해 현 제천맹 천하에 대해 제법 많은 정보를 모았다.

당연히 자신을 비롯해 갑종 녹혈귀의 주적이 될 천령의 절대고수, 팔대명왕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 신검황 율무극의 손녀인 십전홍예 율약벽이 천령의 경지를 돌파했다 들었는데 저런 아해가 있을 줄이야. 흑익비영 환신이라고 했던가. 재밌겠군.’

저항하지 않는 먹잇감은 시시하다.

포식자는 그저 먹이를 먹어 치우는 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유희가 필요했다.

미친 듯이 저항하는 먹잇감이 마지막 남은 희망을 잃고 절망감에 바들바들 떨며 정신을 놓아야 찢어발기고 씹어 먹는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인간이던 시절부터 당문 일족 특유의 잔혹한 성정으로 유명했던 당각이다.

하지만 위하의 손에 의해 ‘최초의 녹혈귀’로 개조되고 진정한 포식자로 다시 태어난 후 한층 더 포악해졌다.

작금의 침착한 모습 역시 그저 의태일 뿐.

그 속엔 괴물의 본능이 숨어 있었다.

당각은 턱을 쓰다듬었다.

“흠. 환신이란 아해의 무위를 보니 적우자와 여백기만으론 역부족일 테지. 허나 본좌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창조주인 위하를 지키기 위해 당각은 이곳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위하의 명령뿐이었다.

당각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일, 당이, 당삼. 이리 오너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각 앞에 3구의 갑종 녹혈귀가 마치 허공에 솟아난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과거 사천당문이 자랑하던 초절정고수로 당문삼영(唐門三英)이라 불리는 세쌍둥이였다.

당문삼영은 수십 년 전 당각의 명에 따라 독종독인 계획에 참여했고 당연하게도 위하의 복수를 피할 수 없었다.

작금에 이르러 그 누구보다 위하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수족이었다.

이들은 최초의 녹혈귀이자 최상위 개체인 당각의 명에 절대복종했다.

“말씀하십시오, 가주.”

당일의 말에 당각이 입을 열었다.

“백제성에 수십만에 달하는 인간이 모여 있다. 창조주께서 한시라도 빨리 상위 개체를 만들기 위해 그 인간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군단을 파견했는데 제법 저항이 심하구나. 동족의 숫자는 넉넉하니 너희만 가도 충분할 것이다.”

“가주의 명을 받듭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쌍둥이는 어기충소 신법으로 허공에 붕 떠올랐다.

당문삼영의 어깨에서 갑각질 뼈대가 튀어나오더니 박쥐 날개처럼 피막이 자라났다.

그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거의 100장가량 솟구쳤다.

-쿵! 쿵쿵! 피이이융!

후방으로 기류를 내뿜으며 3구의 녹혈귀가 편대를 이룬 채 곧장 백제성 쪽으로 날아갔다.

최근에 창조된 갑종 녹혈귀와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경지.

근 30년간 수련을 쌓은 자와 이제 막 녹혈귀가 된 자들이 같은 경지일 리 만무하다.

적우자 역시 새롭게 창조된 갑종 녹혈귀 중 최강일 뿐.

그 위에는 사천당문 출신의 갑종 녹혈귀들이 버티고 있었다.

당각은 저 멀리 점으로 화한 당문삼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아, 어서 빨리 중원으로 가고 싶구나.”

그곳에서 인간의 피와 살, 그리고 살육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당각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반으로 갈라졌다.

네 갈래로 주둥이가 벌어졌다.

그는 무급 녹혈귀가 가져다 바친 무림 고수의 종아리를 덥썩 집어삼켰다.

-오도독! 우득! 오물오물!

인간으로 의태한 괴물.

당각은 그런 괴물 중에서도 정점이었다.

* * *

낙월곡에서 벌어진 대혈전을 승리로 이끈 환신과 흑오단은 각자의 병단을 이끌고 백제성으로 돌아왔다.

이 역시 미리 정해진 작전 계획에 따른 것이다.

제갈노아는 그간 사천 분지 내부를 오가며 녹혈귀를 상대해 온 환신과 흑오단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 양식을 분석해 결론을 내렸다.

낙월곡에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승리를 거두면 같은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백제성 옹성 위 누각 안에서 고아한 자세로 앉아 있던 제갈노아가 입을 열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녹혈귀 무리는 더 이상 관도를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 파편화되어 산을 넘을 것입니다. 수백 개의 무리로 나뉘는 것이지요.”

“으음, 오히려 까다롭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갈노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제 장강수로맹의 선발대가 백제성 인근 부두에 도착했습니다.”

“오오!”

환신을 비롯해 초절정고수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무려 2,000여 척에 달하는 대선단을 끌고 왔더군요. 이번 작전을 위해 장강수로맹뿐만 아니라 강남의 선박이 대거 자원했다고 합니다.”

“……너무 엄청난 규몬데. 분명 강남의 물자를 양번을 비롯해 호북성의 각 요충지로 운송한다 하지 않았는가.”

철목숭의 물음에 제갈노아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철 방주님. 중원의 힘을 얕보지 마십시오. 장강수로맹이 이번 작전에 가용 가능한 모든 선박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경과 소항의 상선 상당수를 끌어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장강을 따라 끝도 없이 물류가 오가고 있습니다. 제천맹은 실로 천하 그 자체. 그 막강한 힘을 큰 칼처럼 휘두르니 그야말로 천하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구양숙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어, 노부는 제천맹의 힘이 이 정도인 줄 전혀 몰랐느니라. 오히려 상상 이상이지 않은가.”

“구양 노사께서 제천맹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계셔서 그렇습니다. 제천맹의 진정한 힘은 맹주이신 묵시천존을 정점으로 그를 대리해 천하 구석구석 뻗어 있는 제천내각의 행정력에 있습니다. 제천내각은 백만 무인에게 삼시 세끼에 더해 간식까지 제공할 수 있는 막강한 행정력과 물자 동원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치중을 먹이면 승패를 떠나 어떻게든 전쟁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실로 그러하다.”

계투나 제천혈맹전 같은 각종 분쟁에 잔뼈가 굵은 최고참 낭인 구양숙은 행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은 결국 누가 치중을 잘 대느냐의 싸움이다.

이 분야에서 제천대승상 맹하후의 능력은 가히 천하제일이었다.

물론 녹혈귀 같은 상정 외의 괴물을 상대하려면 좀 더 비상한 수단을 써야 했지만 말이다.

“지급!”

제갈노아는 누각 안으로 뛰어들어 온 병사가 내민 서신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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