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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188화 (188/447)

75. 사천을 탈출하라!(1)

수백 구 단위로 파편화된 녹혈군단은 각개격파엔 유리하지만 반대로 도주할 경우 추격해 전과를 확대하는 건 어려웠다.

갑종 녹혈귀 모두 자취를 감춘 상태에서 환신 역시 숫자를 줄이는 데 한 손 거들어 창촉을 발출하는 등 폭격을 가했음에도 그랬다.

여차하면 촉수로 땅을 파서 들어가 버리니 답이 없는 것이다.

녹혈귀의 엄청난 생명력과 재생능 역시 후퇴 시 특히 강점으로 작용했다.

-스각!

뒤쪽에 끝까지 남아 추격을 방해하던 을종 녹혈귀의 목을 벤 구양숙이 다리에 진기를 주입한 채 머리통을 짓밟았다.

-콰직!

두부의 뇌와 심장이 단숨에 으스러지고 뒤이어 경력이 휩쓸자 가루가 됐다.

동시에 번개처럼 검을 찔러 흉부의 심장과 뇌를 도려냈다.

-털썩!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진 을종 녹혈귀.

구양숙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만만치 않아.”

준초절정급 전투력을 보유한 을종 녹혈귀다.

구양숙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병종 녹혈귀와 합공을 가해오고 또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단전이 아릿해질 정도로 진기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한 자가 승리하다.

대규모 전쟁에서 무인의 공력 역시 전쟁 물자로 치환해야 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기존 강호의 문법과 전혀 다른 것이다.

-콰르르릉!

전차가 달리는 굉음과 함께 금륜에서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며 환신이 구양숙 앞에 뚝 떨어졌다.

“구양 숙부!”

“신아. 전투 중에 다 보았느니라. 그 무지막지한 기파를 방출한 놈들은 도대체 무엇이냐.”

“숙부도 알고 계시죠? 냉혈독수 당각과 휘하 당문 정예 말이에요.”

“독혈대? 당연히 알고 있지. 노부도 녹혈루 위하를 처단하는 천라지망에 참가했었으니까.”

“진짜요? 거참, 구양 숙부는 도무지 안 끼는 데가 없네요. 굵직한 사건엔 전부 한 다리 걸치고 있으니 원.”

“이놈아! 나야 은만 주면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낭인 아니더냐! 큰 희생을 치를 만한 일에 낭인을 밀어 넣는 건 정사마 모두 한결 같느니라!”

환신 역시 낭인을 위기 상황에 많이 밀어 넣어본 만큼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방금 제가 상대한 자들은 자신들을 당각 휘하 독혈대 대원인 당문삼영이라고 했어요.”

“당문삼영? 으음…….”

구양숙은 신음을 흘리며 소매를 걷었다.

길쭉하게 찢어진 상처를 꿰맨 흉터였다.

“천라지망 당시 당문삼영의 맏이인 당일의 배심정(背心釘) 한 수에 당한 상처지. 다행히 독은 안 발라놨더구나. 덕분에 살았어.”

배심정은 사천당문이 자랑하는 암기 중 하나로 젓가락 절반 크기의 기형 대못이다.

대못 좌우로 날개 형태가 정교하게 세공돼 있는데 덕분에 속도가 다른 투척형 암기에 비해 3배 이상 빨랐다.

또한 이를 이용해 궤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헌데 노부가 느낀 기파는 적우자나 여백기 수준이 아니었다. 혹시…….”

“예. 모두 천령급 전투력을 보유했어요.”

구양숙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게 참말이냐?”

“예. 수십 년간 천망의 초월자 휘하에서 수련을 거듭했으니 당연한 일이죠.”

“끄으응. 녹혈귀 무리의 세가 실로 무시무시하구나.”

“하지만 역으로 숨겨둔 전력을 일찌감치 끌어냈다고 볼 수 있겠죠.”

“그것도 맞는 말이다. 신아. 네가 보기엔 어떻더냐. 상대할 만하더냐?”

“예. 모두 반산에서 생사결을 벌였던 녹림왕 초일비보다 반 수 정도 아래였어요.”

그 말에 구양숙은 턱을 쓰다듬었다.

“으음, 노부의 기억이 맞는다면 독혈대는 20구에 육박한다.”

“그건 무병진으로 어떻게든 극복해야죠. 호북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구양 숙부 같은 강자들의 역할이 더욱 커지겠네요.”

구양숙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맹씨 늙은이가 창안한 무병진이 낭만 강호를 철저히 파괴했으나 작금에 이르러 천하를 구할 유일한 수단이라니. 세상일은 참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구나.”

“동감이에요.”

“그나저나 괴물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려 했는데 아쉬워. 죽을힘을 다해 추격했지만 귀신같이 빠져나갔으니.”

환신은 본래 낙월곡에서 녹혈귀 1만 구를 처치하려 했다.

하지만 적우자의 등장과 빠른 후퇴로 고작 5천 구 정도 처리했을 뿐이다.

이번 전투에선 대략 7천 구.

아직 3만 8천구나 남은 것이다.

이쪽 역시 사천 무인을 400명가량 잃었다.

‘빌어먹을 놈들. 이러면 지들 피해도 커질 텐데 끝까지 포기하질 않네. 5만 구 정도는 전체 녹혈군단 규모를 생각하면 별거 아니다 이거지.’

당문삼영이 망설임 없이 물러난 것도 탈출 과정에서 더욱 큰 기회가 올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판단이 옳았다.

녹혈귀로 개조됐음에도 사천당문 특유의 독하고 집요한 성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만큼 더욱 지독해졌다.

또한 이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하지만 끝이 보여.’

장강 삼협을 통해 사천을 탈출하면 근 한 달에 걸친 개고생도 이제 끝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그러자꾸나.”

-콰르르릉!

금륜이 회전하며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빠르게 전장을 선회하며 소병단을 맡은 절정고수들에게 천리전음을 쏘아 보냈다.

각 소병단은 천리전음을 듣자마자 일제히 한 방향으로 보신경을 전개했다.

관도로 나오자 소병단은 하나로 합쳐지더니 천 명 단위 완편 병단으로 변모했다.

한참을 달리자 백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오단과 사천 무인들은 백제성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성 내부는 이미 한 명도 남김없이 텅 비어 있었다.

한참을 달리자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서 물자를 실어!”

“사람 먼저 태워! 물자는 필요하면 부두에서 보급받을 수 있게 이야기가 돼 있다고!”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이 먼저 탄다! 남자들은 뒤에서 기다려!”

부두에는 수만 명의 인원이 바글바글 몰려 있어 도떼기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부두 한쪽에 공성전에서나 사용되는 성 내부 정찰용 소차(巢車)가 있었다.

제갈노아는 도르래를 당겨 위로 올라가는 새집 형태의 탑승물 안에서 물자의 하역과 백성의 탑승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작업이 꼬일 조짐을 미리 감지한 것이다.

지휘봉을 들어 그쪽을 가리켰다.

“정미(丁未) 구역에서 물자를 나르는 수레의 바퀴가 부러졌군요. 바로 기동대를 파견하십시오.”

“군사의 명을 받듭니다!”

천호 밑의 계급인 백호가 아래쪽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정미 구역으로 기동대 파견!”

“확인!”

소차 옆에 서 있던 병사는 곧장 인근에 위치한 기동대 주둔지로 달려가 제갈노아의 명을 전달했다.

기동대는 빠르게 정미 구역으로 이동해 수레를 들어 한쪽으로 옮긴 후 바퀴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제갈노아는 인근 부두를 총 60개 구역으로 나누고 이를 육십 갑자로 분류했다.

언제든 문제가 발생하면 빠르게 해결하는 기동대를 두어 작업을 원활히 진행시켰다.

물론 이를 총감독하는 건 제갈노아 본인이다.

덕분에 하역 작업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환신과 구양숙, 철목숭이 어기충소 신법으로 허공으로 뛰어올라 곧장 탑승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갈노아는 부두의 작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예.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한 시진 정도면 하역 작업이 마무리될 겁니다. 모두 흑오단과 사천 무인 덕분입니다.”

환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시진……. 2시간 정도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제갈 군사. 좀 더 빨리 작업할 순 없나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갑종 녹혈귀 3구가 출현했어요. 적우자나 여백기보다 더욱 강력한 개체예요. 혹시 독혈대라고 들어보셨나요?”

“독혈대. 기억나는군요. 30년도 더 전에 녹혈루 위하의 척살을 위한 천라지망이 있었지요. 당시 위하를 호위하던 녹혈귀 무리를 독혈대라 불렀습니다.”

“맞아요.”

“본 세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에 그들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준천령급 무위를 보여준 자들이니 작금에 이르러 그 힘이 더욱 강력해졌겠군요.”

정확했다.

제갈노아는 3초가량 생각하더니 곧장 답을 도출했다.

“흑오단과 사천 무인이 하역 작업을 도와주면 시간을 반 시진 이내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특히 환 소협.”

“예?”

“환 소협의 그 기이한 무공. 무게를 늘리거나 물건을 둥둥 띄우는 무공 말입니다.”

“그게 왜요?”

“그 무공을 이용하면 무게가 나가는 짐을 빠르게 배에 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제갈노아의 말이 맞았다.

중력신공은 이런 하역 작업에 있어서 최고의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바로 갈게요!”

환신은 보신경을 전개해 곧장 소차 아래로 뛰어내렸다.

제갈노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구양 노사, 철 방주님. 부탁드리겠습니다.”

“흘흘, 알겠느니라. 언제든 지시하거라.”

“그리하지요.”

구양숙과 철목숭도 소차 아래로 내려갔다.

제갈노아가 목을 꺾었다.

-뚝. 뚜둑.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완편 병단은 다시 소병단으로 뿔뿔이 나뉘어 물자를 선박 안에 하역했다.

자연스럽게 사천 백성의 탑승 속도 역시 빨라졌다.

“흡!”

회색 영기가 거대한 수레로 스며들었다.

‘중력을 200분의 1로 줄였지.’

수레를 들어보았다.

1,000관(약 3.7톤)이 훨쩍 넘던 무게가 순식간에 5관(약 18.5㎏) 정도로 줄어버렸다.

“으차.”

환신은 수레를 들고 그대로 어기충소 신법으로 뛰어올랐다.

-쿵!

하역을 위해 선박에 설치된 도르래 옆에 수레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수부들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했다.

평생 배를 타며 이런 광경은 정말 처음이다.

그렇게 부두를 돌아다니며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 위주로 빠르게 선박에 실었다.

수백 명을 동원해도 한참 걸릴 일을 환신은 너무 쉽게 해치웠다.

‘……전신 타이즈를 입고 등에 망토 걸친 슈퍼히어로가 된 기분인데.’

환신의 활약 덕분에 30분도 되지 않아 하역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제갈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전원 선박에 탑승하십시오.”

곧 사천 무인 역시 선박 위에 올랐다.

마지막 사천 무인이 탑승하자 제갈노아가 외쳤다.

“출항하라!”

선박이 일제히 돛을 펼쳤다.

바람이 돛을 때리자 각 선박이 미끄러지듯 부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천 척의 선박이 줄지어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광경은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흘흘. 삼국 전설에 등장하는 적벽대전이 따로 없구나. 실로 가슴 뛰는 광경이야.”

“구양 숙부.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에요. 언제 녹혈귀가 몰려올지 모른다고요. 전 하늘에서 주변을 살필 테니 사천 무인 지휘는 구양 숙부와 철 숙부께 맡길게요.”

“알았다, 알았어!”

환신은 곧장 반중력을 전개한 채 허공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창공을 비행하며 선단의 처음과 끝을 선회했다.

‘조기경보기가 된 기분이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늘에서 기린안과 태양신경총을 펼치고 있는 것이 가장 빨리 적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보통 병단 뒤에서 뒷짐 지고 있는 천령의 절대고수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자 사천 무인은 물론이고 백성의 생존 확률 역시 높아졌다.

어느덧 선단은 강물을 따라 계곡 지형으로 진입했다.

환신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젠장. 불길한데.”

낙월곡과 유사한 지형.

이번엔 자신들이 계곡 아래를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태양신경총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환신은 그쪽으로 안력을 집중했다.

-샥! 샤샥! 샤샥!

-두두두두!

계곡을 따라 일단의 무리가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녹혈군단이었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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