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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248화 (248/447)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248화

96. 서역의 신비

각 조는 사방으로 퍼져 언덕에 위치한 여러 진지를 단숨에 덮쳤다.

“누, 누구…… 커헉!”

물론 조원들은 포도아어 따위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하나.

경애하는 흑오병단의 단장이자 자신들의 영원한 우상.

흑천낭왕 환신의 명령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뿐이다.

절정고수 1인과 일류고수 10인으로 구성된 각 조는 암영마행을 펼쳐 진지 안으로 귀신처럼 스며들었다.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포도아 병사가 총통을 쏘기 전에 모조리 제압했다.

포도아 병사들의 혈도를 점혈하는 걸로 간단히 진지를 점령한 후 곧장 추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제압을 끝냈습니다.”

“좋다. 요새 내부로 진입한다.”

“예!”

“을하 네가 앞장서라.”

“예, 서 형님!”

추서와 을하, 흑오병단은 사나운 까마귀 떼가 날갯짓하는 것 마냥 검은 전포를 휘날리며 요새로 진입했다.

전원 일류고수로 이루어진 흑오병단 각 조는 빠르게 성벽을 기어올라 경계를 서고 있는 포도아 병사를 제압했다.

애초에 포도아 병사들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야전에서 서역 총통으로 일제 사격을 가하면 모를까.

심야에 다수의 무림 고수가 잠영술이 가미된 암영마행을 펼친 채 침투하는데 답이 있을 리 없었다.

허나 나라의 명운을 걸고 지구 반대편까지 함선을 몰고 와 요새를 건설한 포도아인들의 노력을 우습게 봐선 곤란했다.

또한 서역에도 강호 무림과 같은 그들만의 신비가 존재했으니.

신비의 소유자들이 흑오병단의 존재를 감지하고 말았다.

-콰아앙!

요새 성벽 위쪽 출입구가 부서지며 일단의 인물이 튀어나왔다.

서역 수도승이 입는 모자 달린 겉옷, 로브를 걸친 거구의 사내들이다.

밀집 대형을 짠 채 전차처럼 달려들던 사내가 재빨리 로브를 잡아서 찢었다.

그러자 강호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외관의 소유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는 얼굴까지 완전히 가린 두꺼운 철제 투구.

그 아래로 두꺼운 철판을 두드려 만든, 전신을 빈틈없이 감싼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철갑 위에는 가슴에 검은 십자가와 처형인을 상징하는 검은 두건 문장이 그려진 서코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등에서 일제히 거대한 몽둥이를 연상시키는 두껍고 긴 검을 빼 들었다.

-번쩍! 번쩍!

검과 철갑에서 하얀 성광이 뿜어졌다.

흑오병단 조장은 엄청난 영기의 파동에 경악했다.

“저, 저놈들은 대체?”

가장 전면에서 철갑 기사들을 이끌던 자가 크게 외쳤다.

“신앙의 형제들이여! 이교도에게 신의 철퇴를 내리자! 신께서 바라신다(DEUS VULT)!”

“신께서 바라신다!”

철갑 기사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흑오병단 조장이 외쳤다.

“피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원들은 검은 전포를 휘날리며 사방으로 날렵하게 흩어졌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성벽 위로 7개 조에 이르는 철갑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오문 요새에 배치된 전부였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굉음 때문에 포도아 병사들이 모두 깨어나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침입자다!”

“머스켓을 발사하라!”

우르르 몰려나온 병사 전원 포도아의 영광을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항해했을 정도로 용맹한 고참병이다.

서역 열국의 끝없는 전쟁에 단련될 대로 단련된 포도아 병사들은 능숙하게 총구로 화약을 넣어 장전한 후 장교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이익. 탕! 타탕! 탕!

화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요새 내부를 자욱하게 메웠다.

“커, 커억!”

몇몇 납탄이 흑오병단 단원에게 날아와 박혔다.

일류고수 수준으로는 아음속으로 날아오는 납탄의 일제 사격을 피하거나 쳐낼 방법이 없었다.

납탄의 물리력이 어찌나 큰지 살을 잡아 뜯은 것마냥 파여 버렸다.

이 정도 상처면 일반 백성은 바로 전투 불능에 빠질 수밖에.

하지만 포도아 병사들이 상대하고 있는 건 불사의 까마귀 군단이다.

납탄에 적중된 흑오병단원의 상처에서 붉고 푸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지혈이 이루어지고 붉고 푸른 기운이 실처럼 교차하며 상처에 점차 살이 차올랐다.

흑오병단 제식 기공인 나찰기공의 재생능이었다.

원전인 불괴수라마공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평범한 낭인은 꿈에서 그릴 법한 상승의 내가기공이다.

그 광경을 본 철갑 기사가 눈을 부릅떴다.

“악마다! 악마의 역사함이로다! 저들 악마의 종자를 모조리 찢어 죽여라! 신께서 바라신다!”

“신께서 바라신다!”

이 자리에 있는 철갑 기사 모두 자신을 신에게 바치기로 맹세한 수도승 기사였다.

그들의 눈에 검은 전포를 걸치고 붉고 푸른 기운을 뿌리며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재생시키는 흑오병단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악마, 그 자체였다.

철갑 기사들은 크게 분노해 더욱 강렬한 성광을 방출하며 돌격을 감행했다.

포도아 병사들 역시 흑오병단을 노리고 화망을 형성했다.

두꺼운 철갑을 착용한 만큼 속도가 느려 보신경을 펼치는 흑오병단원의 소매 끝조차 잡지 못했다.

허나 중간중간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납탄은 제법 위협적이다.

조용히 요새를 점령하긴 이미 글렀다.

그렇다면 힘으로 홍모귀들을 응징해 주는 수밖에.

차가운 눈으로 전황을 지켜보던 추서가 외쳤다.

“흑오병단! 무병진을 전개하라!”

“흑오무적! 흑익만리!”

군장인 추서의 명이 떨어지자 흑오병단원의 정수리에서 붉고 푸른 영기의 실이 솟구쳤다.

홀실과 날실이 꼬이고 꼬여 비단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장막을 형성한다.

각 조는 수라무병진을 전개한 채 곧장 철갑 기사들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악마의 힘이 더욱 강력해졌다! 성물의 성력을 더욱 끌어내라!”

“예!”

성광이 거칠게 파도치며 강력한 방벽을 형성했다.

허나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건 제천맹 천하의 정수, 무병진이었다.

절정고수인 조장이 등에서 검을 빼 들었다.

검날을 따라 파괴의 정수, 강기가 방출됐다.

비록 무병진의 공능으로 뽑아낸 유사 강기였으나 초절정고수의 전유물인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병진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조장은 성광으로 이루어진 방벽을 향해 천공의 묘리로 결을 따라 검강을 휘둘렀다.

무병진 간 전투에 이골이 난 제천맹 천하의 다른 병단에 비하면 허술하기 그지없다.

-스가각!

방벽이 단숨에 잘라졌다.

무병진이 만연한 강호의 전장에서 천공에 성공했다 함은 상대에게 배를 열어준 것과 마찬가지.

조장은 빠르게 검을 출수했다.

전면의 철갑 기사의 육체가 갑주와 함께 두 동강 났다.

뒤이어 조원들은 각자의 병기로 철갑 기사를 공격했다.

무병진의 공능으로 일류고수는 꿈도 꿀 수 없는 절정고수의 상징, 검기를 방출해 철갑의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각자 화려한 초식을 곁들여 철갑 기사의 안력으론 초수를 따라잡을 방법이 없었다.

철갑 기사들은 거대한 방패를 들어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조장이 유사 검강을 크게 휘둘렀다.

방패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쿵!

어기충소 신법을 펼쳐 허공으로 뛰어오른 추서가 지상에 착지했다.

추서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나며 허리를 비비 꼬았다.

흉부와 함께 팔뚝이 한순간 두 배로 부풀어 올랐다.

용수철처럼 허리를 꼰 추서는 근육의 긴장을 풀어버렸다.

근육이 엄청난 탄력을 일으키며 마치 채찍을 내려치는 것처럼 음속에 가까운 찌르기가 작렬했다.

엄청난 풍압과 함께 창대가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나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궁기마창 제2초 섭공이었다.

공간을 확 잡아채는 듯한 기현상과 함께 성광의 방벽이 단숨에 꿰뚫리고 철갑 기사 3인이 갑주째 꼬치 꿰듯 꿰어졌다.

추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갈기갈기 찢겨져라.”

-끼이이이잉!

궁기마창 제1초 풍혈이 작렬하며 궁기마창 특유의 와혼검기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휘몰아치더니 이들을 모조리 토막 내버렸다.

눈 깜짝할 새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철갑 기사 1개 조가 한순간 증발한 것이다.

“아, 악마…….”

“입 닥치고 머스켓이나 쏴!”

“예, 예에!”

-탕! 타앙! 타탕!

허나 납탄은 무병진의 반탄 강기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니, 닿자마자 바로 녹아 쇳물로 변해 땅으로 흐를 따름이다.

포도아 병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검은 까마귀 떼는 그야말로 묵시록의 마수였다.

절망한 몇몇 포도아 병사는 땅에 코를 박고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했다.

이 지옥에서 제발 구원해 달라고.

을하 역시 양손으로 광혼검기를 뿌리며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핫! 그래! 바로 이거지! 이런 걸 기다렸다고!”

추서가 철갑 기사는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고 했으니 그저 즐길 뿐이다.

광혼검기를 채찍처럼 길게 늘여 철갑 기사의 팔뚝을 꽁꽁 묶은 채 그대로 손목을 날렵하게 흔들었다.

-서걱!

어깨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피를 뿌리는 철갑 기사에게 흑오병단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난도질했다.

을하는 그 광경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남경 뒷골목을 누비며 빌어먹던 소년 거지 을하.

현재는 흑천낭왕 환신의 측근으로 극적인 신분 상승을 경험했으나 거친 초년을 힘들게 버틴 만큼 기본적으로 잔혹한 성품이었다.

그동안 흑오단의 여러 선배들에게 눌려 지냈으나 오늘 제대로 폭력성을 드러낸 것이다.

수라무병진을 펼치자 상황이 빠르게 정리됐다.

요새에 침입한 적이 항거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철갑 기사 일부가 요새를 빠져나갔다.

“도망쳐라! 가서 우리의 패배를 마닐라에 있는 신앙의 형제들에게 알려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닥쳐라! 저 악마들의 만행을 알리는 게 급선무다! 빨리 떠나!”

“크, 크윽…….”

서로 대화가 통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허나 이들은 너무나 다른 언어, 문화적 배경을 지녔다.

또한 흑오병단은 반드시 이 요새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푸확!

“커, 커흐흑. 네, 네놈들에게 신의 저주가 있으리라.”

-끼이이이잉!

와혼검기가 작렬하며 마지막 철갑 기사가 토막 난 채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육편과 내장이 고여 피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추서는 침을 뱉었다.

“퉤! 머저리 같으니라고. 주군께 요새를 들어 바쳤으면 굳이 이런 희생 따위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을.”

무병진과 나찰기공의 공능 덕분에 흑오병단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상처도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모두 나았다.

반면 몇몇 배를 타고 도망친 자들을 제외하면 철갑 기사 전원이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추서가 몇 번 항복하라고 외쳤으나 애초에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저들은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서 모조리 죽였다.

죄책감 따윈 없었다.

그저 조용히 요새를 접수하라는 주군의 명을 수행하지 못해 아쉬울 뿐.

허나 상황을 들으면 주군도 자신을 탓하지 않으리라.

“추 군장. 이쪽입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추서는 흑오병단을 이끌고 요새 가운데 있는 석재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홍모귀들의 축성 기술이 제법 뛰어나군.”

“그러게 말입니다.”

목재 건축물이 대세인 중원과 달리 서역은 석재 건축물이 다수였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새를 만든 석수의 실력이 제법 뛰어난 거 같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의 방으로 안내됐다.

그곳에 다른 자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화려한 복색을 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방 안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는데 모두 흑오병단원에게 제압됐다.

“통역은?”

“이자가 통역이라고 합니다.”

추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전달하라.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요새는 주군의 소유다.”

그 말에 화려한 복색의 인물이 강하게 항의했다.

“헛소리! 이 성 바울 언덕의 성모 마리아 요새는 포르투갈 왕실 소유다! 나는 마카오 총독으로서 이 요새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

“그럼 너를 포함해 홍모귀 모두 죽일까?”

“그, 그건…….”

추서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의 주군이신 흑천낭왕 환신께선 전군대도독의 권능으로 너희 포도아 상인에게 내린 거주 허가권을 회수하셨다. 허니 이 요새 역시 주군의 것이다.”

“그, 그럴 수가…….”

“곧 주군께서 오실 것이니 남은 이야기는 주군께 하거라.”

절망한 나머지 고개를 떨어뜨린 마카오 총독에게 추서가 한마디 덧붙였다.

“주군께선 자비로운 분이니 발목 잡고 사정하면 뭐라도 떨어질지도.”

그렇게 오문 요새는 낭천의 소유가 되었다.

손쉬운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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