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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261화 (261/447)

101. 동쪽에서 온 손님(1)

어두운 밤.

수백 척에 이르는 낭천 함대는 오문 항구로 복귀하기 위해 남해 해류를 가르고 있었다.

낭천 함대 중앙에 기함이 있었다.

기함 내부에는 낭천 천주 흑천낭왕 환신의 전용 선실이 존재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내일이면 오문에 도착한다.

환신은 그간 미뤄뒀던 일을 처리할 작정이었다.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기엔 이런 심야가 좋았다.

환신은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응시했다.

바로 소황문이 착용했던 오행보갑이다.

오행보갑은 중력 십자살의 압도적 화력에도 불구하고 소황문이 즉사하는 걸 막아준 엄청난 보물.

천하의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욕심낼 만한 최상급 신병이기였다.

하지만 환신이 오행보갑을 노린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다.

환신은 손을 쓱쓱 부비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오행보갑을 한 번 깨워보실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신의 왼팔에 어둠이 휘몰아쳤다.

어둠은 곧 형체를 갖추었다.

거대한 군룡의 형상이 양각된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영군룡패였다.

-키이이잉! 키이이잉! 키이이잉!

흑영군룡패가 모습을 드러내자 오행보갑이 초진동을 일으켰다.

-크르르! 크르르륵!

방패 안에 존재하는 군룡의 머리가 사나운 울음을 터뜨렸다.

선실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내부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군룡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가만있어.”

오른손에서 번개처럼 장강이 튀어나와 군룡의 머리를 때렸다.

-쾅!

-끄르륵! 끄륵끄륵!

아파 죽겠다고 항의하는 듯한 울음소리.

환신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닥치고 어서 깨우기나 해.”

-끼히힝.

군룡의 머리는 안쓰러운 울음을 터뜨리며 시선을 오행보갑으로 돌렸다.

-크르! 크르크르! 크르! 콰라라라!

자연스러운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수학적으로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는, 마치 암호와 같은 울음소리였다.

그러자 이변이 벌어졌다.

오행보갑이 적청흑백황 다섯 가지 색으로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광채를 발하는 것이 아닌, 신호등처럼 5진법으로 빛을 발했다.

그 신호가 군룡의 울음소리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오행보갑이 내뿜는 빛이 점점 짙어졌다.

군룡의 울음소리 역시 점점 빨라져만 갔다.

강기막을 펼쳐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방지하지 않았으면 선내에 자고 있던 자들 모두 깜짝 놀라 깨어났을 것이다.

울음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더니 어느새 초음파의 영역에 도달했다.

빛의 색깔 역시 너무 빠르게 변하자 그저 하얗게 보일 뿐이었다.

한순간 군룡의 울음소리가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음역으로 변하고 오행보갑이 내뿜는 빛 역시 정면으로 보면 시력을 잃을 정도로 밝아졌다.

바로 그때.

-파직! 파지직!

오행보갑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빛과 음파가 절정에 다다랐다.

-카칭! 팟!

빛으로 이루어진 조각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오더니 고운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시각을 현혹시키던 빛 역시 사라졌다.

-철컥! 철컥! 철커덕!

철린의 철갑마왕과 남궁소소의 익룡마군을 연상시키는, 구마동신 특유의 기계동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체는 물론이고 팔과 다리, 심지어 관절까지 빈틈없이 부품으로 감싼 전신 갑주가 눈앞에 있었다.

붉은색과 녹색이 뒤섞인 파충류 특유의 색채는 위압적이기 그지없다.

특히 인상적인 건 흉부와 복부를 뒤덮은 군룡의 머리.

한 가지 아쉬운 건 투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했다.

군룡왕은 투구, 전신갑주, 방패, 이렇게 세 개의 조각이 하나로 모여 완전한 형태를 이룬다.

군룡왕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반드시 모든 조각을 모아야만 했다.

환신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군룡왕의 투구만 얻으면 돼.”

구마동신 군룡왕의 조각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영혼이 담긴 투구가 언제, 어디서 모습을 드러낼지 아무도 몰랐다.

허나 갑주와 방패가 이미 합쳐졌으니 곧 출현할 것이다.

두 개의 조각을 지닌 환신은 누구보다 빨리 투구의 출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구만.”

세 개의 조각을 모아 완전체를 이루면 군룡왕의 위용이 천하를 진동시키리라.

그 순간.

환신의 어깨에서 조용히 펄럭이고 있던 흑익신화포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흑익신화포가 움직이자마자 환신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질렀다.

“네가 그럴 줄 알았지!”

환신의 손 그림자가 선실을 뒤덮었다.

교룡금나수였다.

흑익신화포는 기하학적인 궤도를 그리며 환신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환신의 손이 흑익신화포 자락을 낚아채기 위해 움직이고, 또 그걸 피하는 광경이 전투기가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공중 기동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찰나지간 환신의 손과 흑익신화포가 좁은 선실 내부를 수백 번도 더 움직였다.

환신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이 미친 망토 새끼! 빨라도 보통 빠른 게 아니네!’

어떻게든 군룡왕을 삼키려는 흑익신화포와 그 뒤를 쫓는 환신의 추격전이 이어졌다.

환신을 상대로 이 좁은 선실에서 이 정도로 회피하다니.

흑익신화포는 절대 평범한 신병이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걸로 끝이다!’

생각과 동시에 번개처럼 손바닥을 뒤집었다.

천지역전의 충격이 작렬하며 흑익신화포가 일순 경직됐다.

“너 이 자식! 잡았다!”

손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흑익신화포 자락을 쥐었다.

완전히 제압했다 생각한 바로 그 순간.

환신의 손이 그대로 흑익신화포를 통과해 버렸다.

“뭐?!”

흑영동화였다.

그림자로 화한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장을 따라 일렁거리는 그림자에서 불쑥 군룡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환신이 흑익신화포에 정신이 팔린 사이 갑주를 그대로 삼켜 버렸다.

“야, 이……!”

-번쩍!

거대한 군룡의 머리에서 붉은색과 녹색 전류가 번뜩였다.

-파지지직! 파지직!

군룡의 머리가 점점 압축됐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거대한 머리에서 육신이 자라났다.

이윽고 선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 군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장에 달하는 본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였지만 지금까지 머리만 튀어나왔던 것과 달리 육체를 구성할 정도로 고차원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크르르르르.

그림자 군룡이 허리를 숙이더니 거대한 머리를 환신에게 바짝 붙였다.

화등잔 같은 동공이 실로 위압적이었다.

환신의 이마에 핏대가 서더니 번개처럼 손가락을 튕겨 군룡의 콧잔등을 때렸다.

“눈깔아, 이 새끼야!”

-번쩍!

회색 십자가가 떠오르며 군룡의 콧등이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꾸에에에에엑!

“너 이 새끼!”

-번쩍!

-꾸아아아악!

“어디서 고개를!”

-번쩍!

-크라라라락! 끄락!

“바짝 들어!”

-번쩍!

-끄락! 끄락끄라라락!

“죽어! 이 새끼야!”

-번쩍! 번쩍!

-끄라아아…….

군룡의 육체 이곳저곳이 움푹 파였다.

국소 범위에 불과했으나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중력 십자살이다.

아무리 군룡왕이라도 직격당하면 버틸 수 없었다.

“너 임마. 한 번만 더 반항하면 그땐 국물도 없다. 알겠냐?”

-크르르르르…….

엉망으로 얻어터진 군룡왕은 결국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군기 잡은 후 군룡왕과 연결된 영혼의 실을 따라 영기를 공급했다.

소실된 군룡왕의 그림자 육체가 빠르게 차올랐다.

“앞으로 잘해.”

-크라라라!

“알았으면 합신(合身) 한 번 해보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수의 형태를 하고 있던 군룡왕이 빠르게 변형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커덕!

순식간에 갑주의 형태로 변모했다.

팔에 붙어 있는 군룡패와 갑주까지 기계동체 전체가 흑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지지직!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기계동체를 구성하는 그림자 사이로 붉은색과 녹색 전류가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이다.

-스르륵.

어둠 속으로 스며든 군룡왕이 환신의 등 뒤에 있는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멀스멀 그림자를 따라 환신의 육신을 뒤덮은 군룡왕은 이윽고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 갑주 형태로 변모했다.

-철컥! 철컥! 철컥!

흉부와 복부의 부품이 빠르게 군룡의 머리 형태로 변형됐다.

군룡왕을 이루는 그림자 육체에서 흑익신화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환신의 어깨에 걸쳐졌다.

헌데 형태가 이전과 달랐다.

더욱 화려하게 변모한 것이다.

전포 깃에 있던 군룡 머리 형태 배지가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룡의 상체로 형상화했다.

이것이 바로 흑영군룡갑(黑影君龍鉀).

숙주인 환신과 합신한 군룡왕의 진정한 모습이다.

“흠, 제법 괜찮은데?”

은근히 철린과 남궁소소가 부러웠던 환신이다.

구마동신은 멋과 성능을 모두 갖춘, 룩덕이라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신병이기.

아름다운 기계동체는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환신의 육체를 감싸고 있었다.

상체에 모습을 드러낸 군룡의 머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멋스럽기 그지없다.

군룡의 머리가 입에서 하얀 김을 내뿜었다.

어깨를 따라 길게 휘날리는 흑익신화포의 자태는 그야말로 화룡점정.

한 가지 아쉬운 건 역시 투구가 없다는 점이다.

투구까지 갖추면 구마동신 최강, 군룡왕의 위엄에 천하가 진동하리라.

앞으로 환신을 상대할 적들은 군룡왕을 먼저 뚫어야 할 것이다.

환신이 해체하려고 마음먹자 군룡왕은 순식간에 수만 개의 부품으로 분리되더니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환신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세공사 일족을 찾아가면 구마동신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

99회차 플레이에 빛나는 환신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마수마장과 구마동신에 얽힌 비밀.

어서 빨리 세공사 일족의 장원에 달려가고 싶은 환신이었다.

* * *

낭천 함대는 오문에 도착한 후 함선 대부분은 오문과 향항 항구에 남고 기함을 필두로 전리품을 실은 분함대가 주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함과 분함대는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 부두에는 이미 불산엽가를 비롯한 광동 세족이 우르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와아아아! 낭천 만세!”

“흑천낭왕 만세!”

춘절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폭죽까지 터뜨렸다.

“중강아!”

“아버님!”

엽중강은 엽무 앞으로 달려가 넙죽 절했다.

“아버님! 소자가 남해 해적 정벌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천주께서 소자를 크게 치하하셨습니다!”

“내 아들 중강아!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네가 세운 공이 실로 엄청나다! 가문의 방계도 네 가주 등극을 반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니라!”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엽무는 엽중강 옆에 서 있던 엽지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 들었다. 지강이 네가 오문과 향항에 완공된 항구의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고? 참으로 잘했다.”

“부끄럽습니다.”

“아니다. 천주께서 잘 대해주시더냐?”

엽지강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소자는 좌군사 밑에서 군사에 관한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만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다행이구나. 참으로 다행이야.”

둘째 아들이 천하를 뒤흔드는 영웅 휘하에서 책사로 공명을 추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엽무였다.

환신 역시 흑오단과 을지효를 거느린 채 기함에서 내렸다.

그런 환신을 제갈노아가 맞았다.

“주군. 남해 정벌을 경하드리옵니다.”

“별거 아니야.”

“겸손이 과하시군요. 천령의 경지에 오른 오행신마 소황문을 상대로 승리하셨으니 누가 있어 주군의 위업을 폄하하겠나이까.”

“거참, 주군의 기분도 잘 맞춰주고. 역시 신룡팔준의 일원다운데?”

“후훗, 소신은 패왕 항적의 책사였던 범증 같은 부류를 경멸합니다. 진정 뛰어난 책사는 결코 주군의 기휘를 범하지 않는 법이지요.”

“그 이야기는 이쯤하고. 내가 남해 정벌에 나선 사이 중원에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어?”

환신의 물음에 제갈노아가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제법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큰일? 그게 뭔데?”

이어지는 제갈노아의 말에 환신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팔세영웅련주 검제 남궁천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2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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