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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269화 (269/447)

104. 마수마장의 후예(2)

환신과 헌원복은 건곤탑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실 쫓겨난 것에 가까웠다.

헌원력 역시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어지간히 헌원복과 같이 있기 싫은 모양이었다.

‘헌원복, 이 양반. 얼마나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으면 취급이 이러냐. 헌원력 그 인간도 살벌하네. 가문의 존장이고 뭐고 없이 바로 손절해 버리고.’

헌원복이 환신과 함께 원반 위에 오르며 말했다.

“소형제. 자네 꽤나 중요한 인물인 모양이구먼. 시조모님께서 이리 신경 쓰시다니.”

“뭐, 비슷해요.”

헌원복이 씨익 웃으며 팔뚝을 걷어붙였다.

야장답게 아주 우람했다.

물론 환신에겐 공사판 십장으로밖에 안 보였지만.

“이보게, 소형제! 내가 이래 봬도 현조부이신 구벽 어른을 제외하면 야금술에 있어서 당할 자가 없다고 자부하는 몸일세! 시조모님의 명도 있고 또 자네가 지닌 흑익신화포와 군룡왕에 흥미가 아주 많으니 내 힘 좀 팍팍 써주지. 푸허허헛!”

그러며 본인의 배를 두드렸다.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는 환신이었다.

헌원씨 직계가 머무는 궁전 내부로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는 아무 방해 없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원반은 흑오단이 머무는 누각 쪽으로 향했다.

중장에 착륙하자 남궁소소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신이 오라버니!”

“달라붙지 마.”

“아잉잉!”

어느새 환신 옆에 딱 붙어 아양 떠는 남궁소소를 본 헌원복이 눈을 크게 떴다.

“……구마동신 익룡마군? 아니, 50년에 한 번 출현할까 말까 한 구마동신이 벌써 2개나? 그것도 한 곳에 있다고?”

헌원복의 경악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군. 오셨습니까.”

기우가 중정으로 나오자 헌원복은 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아닛?! 공공보갑! 선조이신 구야자와 함께 야금술의 비조(鼻祖)인 막야께서 공공의 정기를 받아 제작한 신병(神兵)! 그걸 어떻게…….”

“하암, 단주. 빨리 왔네요?”

을하가 하품을 하며 배를 긁었다.

헌원복은 을하가 손에 착용한 수투를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광혼수투라니. 저거 내가 친우인 광혼권왕 종무기의 부탁을 받고 만들어준 건데.”

“예? 이걸 어르신이 만드셨다고요?”

“……젊을 때 만든 거라 역시 조악해. 당시는 회심의 역작이라 자평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물건이구먼. 촉룡의 비늘이 아까울 정도야.”

광혼검기를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는 광혼수투가 조악하다니.

지금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주군! 오셨습니까!”

광동삼살 삼형제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이 패용한 병기를 보고 헌원복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허, 천왕신도, 지령벽력극, 인마여의창이라니. 저건 후한 말 촉한의 전설적인 야장 포원이 만든 형제 병기 아닌가. 포원의 실력은 신화시대의 명장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대단한 것. 이 몸조차 포원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을 정도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런 최상급 신병이기가 한자리에 모이다니. 실로 이례적인 일이군.”

“이걸 보시면 그런 생각이 더욱 짙어지실걸요.”

환신은 흑영낭에서 무언가를 꺼내 헌원복에게 내밀었다.

“그, 그건?! 용연! 신검 용연 아닌가! 선조이신 구야자께서 간장과 협력해 벼린 세 자루 신검 중 하나! 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소형제! 대체 이건 다 어디서 구한 겐가!”

헌원복의 물음에 환신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흐흐, 제가 기연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 그런 거죠.”

“……그래 보이는구먼. 아무튼 그래서? 이 몸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세공사 일족의 능력으로 우리가 지닌 신병이기를 강화해 주십사 하는 거죠.”

“크흣! 그것참 이 몸의 마음에 쏙 드는 부탁이구먼.”

“아, 그전에 이것 좀 봐주실래요.”

“뭔데 그러나.”

환신이 흑영낭에서 꺼낸 건 고급스러운 자개 상자였다.

뚜껑을 열자 헌원복의 눈이 커졌다.

“그, 그건…….”

“혹시 강호에서 벌어진 녹혈루의 난에 대해 아시나요? 이건 갑종 녹혈귀, 그중에서도 심어검의 경지에 올랐던 절대 강자 냉혈독수 당각의 노심이에요.”

“노심? 바깥세상에선 그리 부르는 모양이구먼. 하긴. 주변 영기를 빨아들여 정량적인 열량으로 전환할 수 있으니 적절한 표현이긴 하군.”

“여기선 다르게 부르는 모양이죠?”

환신의 말에 헌원복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미안하지만 아직 그 단어를 꺼낼 수 없네. 먼 훗날 소형제도 알게 될 걸세.”

마수마장의 후예 헌원복.

그는 도원향의 대야장이라는 신분 외에도 여러 비밀을 간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노심을 이용해 무엇을 하고 싶은 겐가?”

“이거 외에도 30만 개 이상의 노심을 보유하고 있어요. 세공사 일족과 논의해 이를 활용하고 싶어요.”

“30만 개? 그렇게 많이? 허어, 이리도 공교로울 데가.”

“예? 공교롭다뇨?”

헌원복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소형제. 내 바깥의 야장들이 노심을 어찌 사용할지 눈에 선하네. 대충 가져다 붙여서 신병이기를 제작하거나 순수한 영기를 이용해 무공 경지를 높이고, 또 기문진이나 술법을 사용할 때 제물로 태우겠지. 내 말이 틀리나?”

“역시 전문가시네요. 정확합니다.”

“그건 노심을 제대로 쓰는 방법이 아니야.”

그는 끌끌 웃으며 당각의 노심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이건 악신의 파편이 세계에 침투해 이 땅의 가능성을 갈취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 이걸 제대로 쓰려면 가공을 거쳐야 돼.”

“그렇다는 말씀은…….”

“물론 이 몸은 얼마든지 가공할 수 있지. 당연히 공짜는 아니야. 노심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스러기 같은 게 떨어지는데, 가공해 주는 대가로 이걸 받겠네.”

“그거면 돼요?”

“충분하고도 남지. 바로 그 부스러기가 도원향을 이루는 중요한 자원이거든. 마침 계축 방위의 결계가 불안정한데 잘됐어. 소형제. 자네 이 정도 품질의 노심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나.”

녹혈루 토벌전 당시 환신이 사냥한 갑종 녹혈귀가 수십 구에 육박했다.

“제법 많죠.”

“다 내놓게. 그걸로 자네와 자네 수하들의 병기를 강화해 주지.”

그는 용연의 검신을 따라 손가락을 문지르며 말했다.

“이건 아직 깨우지도 못했구먼. 여전히 잠들어 있어. 이 몸의 손을 거치면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물건이 될 걸세.”

“다행이네요.”

그때.

은근슬쩍 이 자리에 껴 있던 북궁척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환 천주. 저기 이거…….”

그는 신검 용광을 내밀었다.

헌원복은 오늘 엄청난 신병이기를 많이 봤음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호오, 용광인가. 신화시대의 물건이군. 허면 자네는 신단의 후예겠구먼.”

“그렇습니다. 절광성의 소성주 북궁척이라고 합니다.”

“그쪽도 넓은 의미에서 우리 소호금천의 후예와 남이 아니니 괄시할 수 없지. 어차피 대가는 여기 소형제가 지불할 테니 그가 허락하면 용광도 손을 봐주지. 딱 봐도 검날을 제대로 벼린 지 너무 오래돼 본래 위력의 십분지 일도 못 내고 있어.”

“그, 그 정도입니까?”

북궁척은 간절한 눈으로 환신을 응시했다.

환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대신 이번 일로 절광성은 나한테 빚 하나 진 거다?”

“감사합니다, 환 천주!”

북궁척은 포권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환신 같은 거물에게 빚을 지는 건 큰 부담이다.

하지만 절광성, 나아가 맥골 전체의 대권을 상징하는 신물이 바로 신검 용광이었다.

여기서 신검 용광을 강화하면 그 자체로 엄청난 공이었으니.

훗날 어떤 형태로든 빚을 갚아야 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낭천과 동맹을 맺은 아버님의 판단이 옳았구나!’

동맹의 효용감을 제대로 만끽하는 북궁척이었다.

헌원복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작업을 시작해 볼까.”

“바로요?”

“아무렴. 한시라도 빨리 가공 과정에서 생기는 부스러기를 모아 계축 방위의 결계를 복원해야 돼. 사실 소형제가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결계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악신의 파편이 몰려오겠지. 이곳 도원향은 악신의 파편을 끌어당기거든.”

“예?”

헌원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 몰랐나? 바깥세상이 악신의 파편의 침공에 최소한으로 노출되는 건 모두 도원향 덕분일세. 저길 보게나.”

헌원복이 가리킨 것은 자색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었다.

헌데 일반적인 태양과 달리 칠채보광을 내뿜고 있었다.

“저거 태양 아니었어요?”

“허참. 여긴 시조모님과 우리 헌원씨가 만든 종속 차원일세. 태양이 왜 있어. 저건 홍광구(虹光球)라는 건데 악신의 파편을 도원향으로 끌어들이지. 그렇게 모인 파편을 결계의 힘으로 박멸하는 거야. 저게 완성되고 나서야 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신화시대가 종언을 고했지.”

“……한마디로 도원향은 악신의 파편을 끌어들이는 파리지옥 같은 거네요.”

“그렇지. 이제 알겠는가. 우리 헌원씨가 이 세계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미는 헌원복을 보며 환신은 생각했다.

‘빨리 여기서 튀어야겠다.’

녹혈귀 같은 것들이 또 몰려오면 쓸데없이 개고생할 게 아닌가.

그때였다.

“어?”

헌원복의 손에 황금 망치가 들려 있었다.

‘언제 저걸 꺼냈지?’

환신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헌원복은 다짜고짜 황금 망치로 허공을 때렸다.

-쩡!

허공에 쩌적 금이 가더니 공간이 거울처럼 깨졌다.

-파칭!

깨진 공간 너머로 서광과 함께 황금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원복이 손가락을 튕기자 문이 벌컥 열렸다.

“자자, 어서들 들어가게.”

“이, 이게 뭐예요?”

“편재각(遍在閣). 이 몸의 거처지. 세상 어디에나 편재하기 때문에 그리 이름 붙였어. 빨리 들어가. 내 작업장을 보여주지. 거기서 노심을 가공해 자네들의 병기를 강화하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아 결계를 복원해야 해. 자자, 한시가 급해! 빨리 들어가! 어서!”

“아, 알았어요. 거참, 성질은 급해가지고.”

“뭐야?!”

“알았다고요!”

환신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헌원복을 따라 편재각 안으로 들어갔다.

흑오단과 북궁척 역시 뒤를 따랐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황금문이 사라지고 깨졌던 공간이 빠르게 복원됐다.

아름다운 중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기만 했다.

* * *

도원향의 중심엔 심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멍이 존재했다.

악신의 파편이 기어 나오는 구멍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부정형의 괴물 형상을 한 수많은 파편이 구멍에서 나오고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이다.

이 구멍은 봉마혈(封魔穴).

악신의 파편이 이 세계로 오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통로로, 창희와 그녀를 따르는 헌원씨가 고안한 일종의 결계였다.

구멍에서 나온 악신의 파편은 녹혈루 위하가 이끄는 녹혈군단조차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를 자랑했다.

파편은 봉마혈에서 뛰쳐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자색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홍황구가 내뿜는 파장에 본능적으로 이끌린 것이다.

그들은 다짜고짜 홍황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걸 막은 건 다름 아닌 결계였다.

결계 인근에 존재하는 거대한 상자를 덮고 있던 뚜껑이 벌컥 열렸다.

상자 안에서 날렵한 부유체가 떠오르더니 파편 쪽으로 날아갔다.

부유체에는 하나같이 혈석이 박혀 있었다.

혈석이 빛을 발하자 비행체에서 진언이 떠오르더니 적색 광선을 방출했다.

-끄에에에엑!

광선에 적중된 파편이 괴성을 질러댔다.

몇 번 더 적중하자 육체가 녹아내리더니 끈적끈적한 분비물을 사방으로 뿌렸다.

육십 방위의 결계가 철통같이 봉마혈 주변을 지켰다.

실로 철옹성과 같은 방어태세였다.

그때였다.

계축 방위의 결계 뒤에 위치한 상자가 쿵쿵거리더니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결계를 이루는 거대한 빛의 장막에 금이 갔다.

악신의 파편은 계축 방위 결계가 불안정한 걸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도원향에 위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2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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