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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에 미친 무공천재-298화 (298/447)

118. 건곤일척(3)

제갈모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량의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환신을 천하제일효웅으로 규정한 바 있다.

제갈모세는 환신의 빠른 성장과 절묘한 처세술에 주목했다.

낭인 출신 천령의 절대고수가 노골적으로 낭인계의 지배권을 탐하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의 평가는 신룡팔준의 일원답게 실로 날카로웠다.

하지만 당시 제갈모세는 환신을 큰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낭인이라는 신분이 지닌 한계 때문이다.

기존 강호의 기득권층인 정사마와 밑바닥 대우를 받는 낭인 사이에는 지닌바 무공과 세력의 격차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컸다.

기껏 성장해 봐야 장강수로맹이나 녹림맹 수준도 못 되리라는 게 그의 예측이었다.

하지만 이 예측은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이 바로 천하에서 가장 증오하는 존재.

남봉황 제갈노아가 환신의 휘하로 들어간 사건이다.

제갈노아는 주군인 운한 진인이 폐인이 되자 냉정히 손절하고 환신 휘하에 의탁했다.

그것도 아주 절묘한 시점에 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갈모세는 아차 싶었다.

융중의 청금과 자금.

두 쌍둥이 형제는 서로를 증오하는 만큼 또한 서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제갈노아라면 환신에게 모험을 걸 만했다.

이를 예측하지 못한 건 명백히 자신의 실수였다.

허나 제갈노아의 움직임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또 과감했다.

그만큼 자신의 운명을 건 도박이었다는 의미다.

여기에 신룡팔준 사형제 중에서도 최고의 재능으로 질시의 대상인 중금오 을지효가 합류하며 환신은 대전략을 짤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두 명이나 얻게 된 것이다.

여기에 강호의 변방 광주를 손에 넣고 뒤이어 남해를 정벌하니.

낭인계 전체를 고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여기에 마도 동맹이 암염총과 손을 잡는 사건이 벌어지자 낭천은 절묘한 외교적 줄다리기를 통해 정도 연합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대담한 움직임을 주도한 게 바로 낭천의 좌우군사인 을지효와 제갈노아였다.

제갈모세는 천령의 절대고수조차 장기판의 말로 여기는 책사로서 철저히 그들의 시점에서 현재의 판세를 분석했다.

하지만 책사의 판세 분석조차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천망의 초월자였다.

그들에겐 상식 따위 통용되지 않는다.

마치 바둑을 두는데 거인이 나타나 바둑판을 밟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당금 강호에 천망의 초월자가 11명이나 존재하지만 그들은 천하의 패권에 일 푼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직 그들만의 세계에서 천외천의 싸움을 이어갈 뿐이다.

하지만 환신이 그럴 것이란 보장이 대체 어디 있는가?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천망의 무위를 천하를 얻는 데 적극 사용할지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허니 환신이야말로 책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의 결정체였다.

제갈모세는 차갑게 읊조렸다.

“하루라도 빨리 흑천낭왕을 무대에서 퇴장시켜야겠군요.”

“그게 정답이지.”

“흑천낭왕을 제거하려면 작전을 제대로 짜야 합니다.”

“그의 능력에 대한 정보를 확보했는가?”

“저만큼 흑천낭왕의 능력을 잘 아는 자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반산 무림대회 이전부터 환신을 주목한 제갈모세다.

천구라는 별호에 걸맞게 치밀하고 독한 심계를 지닌 그는 환신이 참여한 전장에 사람을 보내 그의 무공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제갈모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갈 사제. 어찌 그러나?”

“살짝 막막해서 그렇습니다.”

“막막하다니, 대체 왜?”

“흑천낭왕 환신의 무가 실로 까다롭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소제는 거금을 들여 흑천낭왕의 무공에 대해 탐문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렀지요.”

“……겁나게 왜 그러나. 대체 무슨 결론이길래 이리 호들갑이야.”

“간단합니다. 흑천낭왕이 최소 473종의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양량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제갈모세는 말을 이어나갔다.

“놀라운 건 그의 무공에서 정사마는 물론이고 음양오행의 이종진기, 기본공부터 초상승까지 총망라하는 다양한 무공 흔적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이게 모두 473종인 겁니다.”

“잠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말이 안 되지요. 이게 가능하려면 이런 가설을 성립해야 합니다.”

제갈모세는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십, 수백 개의 기연은 얻은 것도 모자라 상대의 무공을 보자마자 익히고 이를 조합해 자신만의 무공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재능을 보유해야 합니다.”

“……하아. 기린지재.”

양량의 침음성에 제갈모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제가 가장 이해 안 되는 건 대체 그 많은 기연을 어디서 얻었느냐는 겁니다.”

“하다 하다 묵시천존의 무공까지 계승하지 않았는가. 상식선에서 그를 재단하려 하면 천추의 한을 남길 수 있네.”

“동의합니다. 허나 흑천낭왕 무공의 정수는 총 4개의 무공으로 취합됩니다. 그는 이를 사대권세(四大權勢)라 칭하더군요.

“사대권세라. 재담가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군.”

“흰소리할 때가 아닙니다. 현 강호에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오직 천마와 검제. 단둘뿐입니다.”

각각 천마신공과 제왕검형을 극한까지 익힌 심어검의 고수.

오직 이들만이 환신을 상대로 동수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이조차 언제 역전될지 모른다.

그야말로 강호의 질서가 환신 한 명에 의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신질서에 의해 구질서가 무너진다고 해야 옳겠지.

제갈모세와 양량 모두 마도 동맹의 책사로 이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양량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면 결론은 하나뿐이군.”

“그렇습니다.”

제갈모세의 눈동자에서 살의가 번뜩였다.

“제천맹 천하에서 수적 우위는 절대적입니다. 흑천낭왕을 제거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입니다.”

“작전은?”

제갈모세는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

“준천령사냥꾼 3개 조. 여기에 완편 병단을 이끄는 천령의 절대고수 3인이 흑천낭왕과 흑오병단을 상대합니다. 검치 구양숙과 용검신녀 남궁소소까지 고려한 전력입니다.”

양량을 눈을 부릅떴다.

준천령사냥꾼 2개 조면 천령의 절대고수를 반드시 죽일 수 있었다.

헌데 3개 조!

여기에 천령의 절대고수 3인이 이끄는 3개 완편 병단까지.

이는 마도 동맹의 모든 힘을 한데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암염총에서도 암천제 본인과 10명의 초절정고수를 내주셔야겠습니다.”

“……희생이 너무 크지 않을까?”

제갈모세가 피식 웃었다.

“희생 따위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면 됩니다.”

“그 정도 전력이 빠져나간 걸 팔세영웅련과 북천무맹이 포착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사마 사형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낭천은 기존 제천팔패에 비해 뿌리가 튼튼하지 못합니다. 급조된 조직이기 때문이지요. 오직 흑천낭왕의 위엄과 막내 사제, 증오스러운 혈육의 능력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입니다. 흑천낭왕과 흑오병단을 말살하면 낭천은 오합지졸에 불과하겠지요. 그럼 자연스럽게 승리는 마도 동맹 쪽으로 기울게 될 것입니다.”

양량은 살짝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꼽았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그는 눈을 떴다.

“그렇군. 흑천낭왕을 제거하면 마도 동맹이 큰 피해를 입더라도 최종 승률이 8할 5푼 이상이야.”

“소제의 계산 역시 같습니다.”

그때 양량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이 안 돼. 좀 더 성공 확률을 높여야겠어.”

“흠, 이 이상 성공 확률을 높일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이 정도면 마도 동맹을 마른걸레 쥐어짜듯 한 거나 마찬가지인 전력이다.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 말하는 제갈모세를 보며 양량이 씨익 웃더니 입을 열었다.

“슬슬 나오셔도 될 거 같군요.”

제갈모세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자신과 양량 둘만의 회동인데 대체 누굴 불렀단 말인가?

동혈 뒤편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산발인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너덜너덜한 녹의 위에 낡은 견갑과 헤진 갑주를 걸친 거구의 사나이.

녹림왕 초일비.

바로 그였다.

초일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어, 이미 구면으로 아는데 왜 그리 놀라나.”

“……총표파자께서 이 자리에 나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크큭.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여기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초일비는 양량을 턱으로 가리켰다.

“헌데 저자의 도발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단 말이지.”

그는 슬그머니 왼손을 들어 활짝 펼쳤다.

검지와 중지가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었다.

초일비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흑천낭왕 환신, 그 애송이에게 잃은 이 손가락을 걸고넘어지는데 도저히 참을 수 있어야지.”

초일비가 강렬한 살기를 뿌렸다.

양량은 기혈이 뒤집힐 것 같은 고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음에도 넉살 좋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서 설욕할 기회를 놓칠 생각이십니까?”

“지금 본좌에게 떼도적처럼 몰려가 환신 그놈을 치자고 하는 것이냐?”

양량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허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떼도적의 총두령이 바로 총표파자 아닙니까?”

“……뭐라고?”

초일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양량을 죽일 듯 노려봤다.

양량 역시 지지 않고 초일비를 응시했다.

갑자기 초일비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큭, 크큭! 크하하핫! 그래! 네놈 말이 맞다! 나 녹림왕 초일비야말로 떼도적의 총두령이지!”

초일비는 웃음을 뚝 그쳤다.

그는 냉기가 흐르는 차가운 얼굴로 제갈모세를 보며 말했다.

“뒤에서 모두 들었다. 이대로 놔두면 환신이 천망의 벽을 돌파할 거라고?”

“그렇습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한다.”

“음…….”

“끄응.”

제갈모세와 양량 모두 신음성을 터뜨렸다.

막연히 짐작하는 것과 천령의 절대고수가 공인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초일비는 공허한 눈으로 동혈 천장을 응시하며 말했다.

“환신 그놈에게 비참히 패한 후 미친 듯이 노력했다. 갑종 녹혈귀 네다섯 구를 상대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지. 목어검에 이르러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사천 특공 당시 천령사냥꾼을 통해 놈과 이어지고 깨달을 수 있었지. 아아, 나는 저놈을 평생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나와 저 애송이 사이에는 실개천과 바다 수준의 간극이 존재한다고 말이야.”

그는 고개를 내렸다.

제갈모세와 양량 모두 볼 수 있었다.

절대자의 고뇌와 열등감, 비애, 증오, 그리고…… 지독할 정도의 호승심을 말이다.

“일대일의 낭만적인 생사결 따위 포기한 지 오래다. 본좌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모든 것을 걸고 환신 그놈과 제대로 맞붙어보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그렇다면……?”

“아아. 본좌와 본좌의 옥황병단을 동원하도록 하지.”

제갈모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천령의 절대고수가 이끄는 4개 완편 병단과 준천령사냥꾼 3개 조.

환신과 흑오병단이 아무리 강해도 이들의 파상공세를 버텨내진 못하리라.

제갈모세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흑천낭왕 환신. 이것이 강호다. 그간 쌓아온 은원이 벼락처럼 그대를 덮치리라.’

환신을 노린 음모가 무르익고 있었다.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2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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