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341화
134. 초월무
광검.
육신을 영자화해 극도로 압축시켜 유형의 광입자로 빚어낸 후 출수하는 천망의 초월자의 권능.
더 이상 육신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초식의 변화 역시 무궁무진하다.
상상만으로 그려온 초식과 투로의 구현이 가능해진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점선면, 나아가 공간 그 자체를 자르고, 베고, 잇는 것이 가능했다.
광검으로 공간을 베어 혼백을 머나먼 와류우주로 보낼 수도 있었다.
삼천경에 이르기 전까지 일차원적인 무를 구사하다 천령의 벽을 넘으면 이기어검과 삼합굴공첩과 같은 삼차원의 무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천망의 벽을 넘으면 아예 차원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원영신.
영자 생명체로 진화한 순간부터 피륙을 지닌 인간은 결코 천망의 초월자를 당해낼 수 없었다.
때문에 천망의 초월자를 달리 무신(武神)이라 부른다.
당대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한 무신이 무려 11인.
이들이 모여 드잡이질을 벌이는 당금 강호야말로 무림 역사상 최대 황금기였다.
녹혈루 위하가 장렬히 산화하고 10인 되었으나 오늘 다시 2명이 늘었으니.
12인의 무신이 고금제일인 자리를 놓고 격돌하는 대난장.
2차 태산쟁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황산 연화봉에서 천간십존 최대 맞수.
천추검 척무상과 기화창 문류후의 생사결이 펼쳐진다.
구자건은 확신했다.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다!’
고금제일검과 고금제일창.
검과 창의 최고봉인 두 무신의 초수를 머릿속에 최대한 담아둘 수 있다면.
천령은 물론이고 훗날 천망의 경지에 도전할 때 무의식에 잠재된 저들의 초수 다툼이 돌파구가 돼줄 것이다.
이게 광세기연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기연이겠는가.
웬만한 기연은 비빌 수도 없었다.
환신은 기연을 긁어모으는 데 미쳐 있었지만 퍼주는 데도 진심이었다.
그때 척무상을 상징하는 녹색 광검이 문류후의 적색 광검을 노리고 쏘아졌다.
이를 지켜보던 철린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시작됐구나. 척무상의 팔만사천검로가.”
팔만사천검로.
척무상에게 고금제일검의 명예를 안겨다준 절대 무적의 검공.
녹색 광검이 기이하게 움직이며 날아들었다.
광검의 움직임은 천체의 운행을 그대로 빼다 박아 있었다.
하늘이 떨어지는데 피할 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팔만사천검로는 모든 검류의 총아인 궁극의 연환검.
구양숙의 연환구구탈백검 역시 모든 검공의 완성이랄 수 있는 팔만사천검로의 지루한 주석 중 하나에 불과했다.
환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과거 신마검존이 팔만사천검로를 완성하기 위해 비무행을 했었죠.”
“호오, 잘 알고 있구나.”
절광성이 속한 예맥의 연합체, 맥골의 선대 맥주이자 척무상의 선조.
신마검존 척준경은 수백 년 전 천하를 주유하며 양산박 백팔호걸을 격파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허나 척준경은 만족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검법을 총망라해 일말의 빈틈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검공을 완성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당시 팔만사천검로를 완성하지 못했음에도 척준경의 일초반식을 받아내는 자조차 흔치 않았다.
척준경은 강호의 모든 검객을 제압하고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라 신마검존이라는 존호를 받게 된다.
허나 그는 미련 없이 중원을 떠나 반도로 돌아갔다.
더 이상 중원에서 얻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상대한 무인들의 절학을 낱낱이 해체해 팔만사천검로에 이식했다.
척준경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만의 검학을 궁구했으나 끝내 팔만사천검로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의 비원은 후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백 년 후.
척무상 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
팔만사천검로, 달리 완전검로(完全劒路)라 불리는 절대 무적의 검공이 문류후를 노리고 쏘아졌다.
철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척무상. 여전히 전율적인 축시로군.”
천망의 경지에 올라 광검을 다루면 시간 축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보다 고차원적인 초식 운용이 가능해진다.
이를 축시(縮時)라 부르는데 검도창, 권장각 공히 같은 영역에서 초수 다툼이 성사된다.
검객은 태생적으로 축시를 다루는 데 유리했다.
천간십존 중 축시에 있어 박빙을 다투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천추검 척무상과 전대 우화접선이다.
이것이 2대 우화접선 호선강이 다른 천간십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1대 우화접선은 척무상과 초수를 겨뤄 조금도 밀리지 않은 압도적인 실력자였다.
삼두조차 감히 초수의 우위를 논하지 못한 인물이 전대 우화접선인데 그 후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어이없고 허망한 마음에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건 결국 호선강 자신뿐이었다.
환신의 검지가 사라지며 광검으로 화했다.
입자의 소용돌이가 척무상이 그려낸 천상열차(天象列次)를 일부 재현해 냈다.
철린은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였다.
“놀랍군. 팔만사천검로 아니더냐.”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요. 팔백사십검로쯤 되겠네요.”
천망부터는 완전히 다른 세계.
기린지재조차 천망의 경지에 이른 무인의 무공을 함부로 훔쳐낼 수 없었다.
제대로 붙어보기 전까지 팔백사십검로가 한계였다.
그때 문류후가 발출한 적색 광검이 하나로 뭉쳐졌다.
-고오오오오!
거대한 적색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색왜성은 그대로 천상열차와 충돌했다.
-쿠르르르릉!
미증유의 거력이 맞붙는다.
충돌의 여파를 일정 공간으로 제한하지 않았다면 두 천망의 초월자가 뿌리는 광검에 휘말려 수백에 달하는 인명이 단숨에 절명했으리라.
물론 환신과 율약벽, 철린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겠지만.
구자건은 눈을 부릅떴다.
‘……젠장! 아무것도 모르겠다!’
무공 격차가 너무 현격해 초식을 따라잡을 인지 속도를 얻었음에도 고차원적인 초수 다툼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이는 막 사칙연산을 배운 초등학생과 미분적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학과 대학원생 정도의 격차였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 이미 미분적분을 풀어내는 천재도 존재했지만.
린봉귀용의 재능이 그것이다.
“저건 내 몫이군.”
철린은 흥이 돋았는지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은색 입자로 화했다.
철린은 은색 광검으로 은색왜성을 구현해 냈다.
그의 독문무공인 패왕쌍철극상의 초식을 응용해서 말이다.
팔백사십검로와 은색왜성이 충돌했다.
구자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환신과 철린의 논검을 응시했다.
‘린 형님과 신이가 알기 쉽도록 천추검과 기화창의 무공을 풀이해 주고 있구나.’
의형제들의 노고에 가슴이 찡해졌다.
그는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환신과 철린의 초수 교환을 곱씹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심공 구결을 외우며 무의식에 깊이 각인시켰다.
척무상과 문류후의 그것과 달리 환신과 철린의 초수 다툼은 그나마 이해가 가능했다.
환신의 팔백사십검로가 현란한 궤적을 그리며 쏘아지면 철린은 창술 특유의 묵직함으로 이를 튕겨낸다.
광검과 광검이 충돌할 때마다 영기가 상쇄되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저 폭발 하나하나가 초절정고수가 전력으로 발출한 검강의 위력에 상응했다.
구자건의 머릿속에 깨달음이 폭죽 터지듯 반짝거렸다.
‘아아, 드높고 또 드높도다.’
이것이 천망이다.
전후좌우 관계없다.
모든 방위, 모든 시공간이 서로의 초수를 겨루는 전장이다.
때로는 강하게 압축하고, 때로는 덩어리를 이루며 합치고 분리되길 반복한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변화!
광검이야말로 천망의 초월자의 정화였다.
‘이것이 바로 초월무.’
실로 아름다웠다,
-주룩.
구자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렀다.
드높은 무에 대한 경의 때문에 절로 흐르는 눈물이다.
척무상은 피식 웃었다.
“과연 류후. 이런 가벼운 한 수로 네놈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그럼 제대로 해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신이 녹색 입자로 화하더니 허공으로 눈 녹듯 사라졌다.
문류후 역시 크게 포효했다.
“흥! 무상! 홍해하로 네놈의 목을 칠 것이다!”
문류후 역시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적색 입자로 변모해 붉은 서기를 뿌리며 쏘아졌다.
파공축지를 펼친 것이다.
적록의 광검이 하늘을 뒤덮었다.
-우르르르릉!
무지갯빛 서기 아래 적록색 구름이 미친 듯이 엮여 들어간다.
연화봉을 시작으로 황산의 수많은 봉오리에 천둥이 내리쳤다.
-번쩍! 콰콰카캉! 쾅!
동공을 자극하는 광검의 충돌.
수십만 무인 모두 멍하니 초월무를 응시했다.
그때 한 무인이 손가락으로 코를 훔쳤다.
“어?”
코피였다.
헌데 투명한 액체가 섞인 것이 그냥 코피가 아니었다.
코피에 뇌수가 섞여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몇몇 무인이 홀린 듯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들은 맹렬히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화악!
몇몇 절정고수가 깨달음을 얻고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타동한 후 1차 환골탈태에 돌입했다.
절정고수뿐만이 아니었다.
일류고수 역시 미간에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절정의 경지를 밟았다.
이들이 척무상과 문류후의 결전을 제대로 이해한 건 물론 아니었다.
허나 그들 역시 평생 동안 무를 정진해 온 무인.
실낱같은 깨달음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무를 궁구하며 지새웠던가!
누군가 등을 툭 밀기만 해도 벽을 넘을 수 있는 자들이다.
두 천망의 초월자가 그려내는 광검의 궤적.
그 아름다운 선의 조합이 이들의 등을 확 떠밀어 버렸다.
수십만 무인이 천추검과 기화창의 결전을 관전하기 위해 황산으로 몰려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무신의 결전을 관전하면서 조금이라도 깨달음을 수습해 무의 경지를 높이고 싶은 무한한 향상심!
무인이 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욕망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자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척무상과 문류후가 펼치는 광검을 무량대수의 시간 속에서 목격한 것은 물론이고 이를 쉽게 풀어낸 환신과 철린의 논검까지.
그의 머릿속에 깨달음이 강제로 쑤셔 넣어졌다.
초절정의 끝자락에서 수년간 용맹정진해 온 구자건이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진 구자건의 동공 깊숙한 곳 시신경을 따라 미증유의 광채가 뻗어 나왔다.
순간 그의 정수리 백회혈에서 적청녹 삼색 영기가 피어올랐다.
세 가지 색깔의 영기가 뭉쳐지더니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자아냈다.
머리 위로 삼색의 꽃이 활짝 만개했다.
삼화취정(三花聚頂)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코와 입에서 오색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다섯 개의 고리로 화했다.
오기조원(五氣朝元)이다.
삼색 꽃 주위를 빙글빙글 회전하던 오색 고리가 일순 합쳐졌다.
꽃과 고리는 하나로 뭉쳐지며 강렬한 금광을 방출했다.
구자건의 정수리 위로 황금 연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화취정과 오기조원이 하나로 융합된 최종 단계.
천화난추(天花亂墜)다.
황금 연꽃이 구자건의 육신으로 스며들었다.
피부가 금색으로 변하고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수박처럼 쩍 갈라진다.
금색 허물이 벗겨지고 우유처럼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구자건의 피부를 따라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환영이 스치고 지나갔다.
2차 환골탈태 용린(龍鱗)이었다.
구자건은 눈을 떴다.
-번쩍!
강렬한 신광이 사방을 뒤덮었다.
환신이 웃으며 말했다.
“건 형님. 천령의 벽을 넘은 걸 축하드려요.”
환신과 철린을 본 구자건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신아. 너와 린 형님이 숫제 용으로 보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