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346화 (346/447)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346화

137. 도원향 시대 개막(3)

한 무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

하늘이 자줏빛이다.

살짝 분홍기가 도는 오묘한 색감.

자색 하늘 사이로 오색구름이 고즈넉이 스쳐 지나가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허나 가장 놀라운 건 태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감을 뽐내는 무지갯빛 구체였다.

무슨 조화인지 계속 응시하고 있어도 눈이 조금도 따갑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심신이 편안해지고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쯤 되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 선계였어?”

“정말로?”

“맙소사!”

청류무사와 황궁무사는 물론이고 함께 온 무림 명숙들 역시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들은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환신을 의심했다.

헌원복이라는 증인이 존재했고 실제로 요마를 때려잡아 노심을 얻었지만 선계라니.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는 기담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 아닌가.

허나 아니었다.

도원향은 실존했다.

자줏빛 하늘과 홍황구, 오색구름을 보고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기연이 난무하는 무림에서도 이렇게 기이한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때 청류무사인 조카 때문에 이곳까지 따라오긴 했으나 뛰어난 연단 실력으로 이름 높은 청성파의 한 장로가 중얼거렸다.

“허어, 참으로 신비로운 곳이로다. 보아하니 이곳 도원향의 식생은 중원과 사뭇 다른 거 같은데. 노심은 둘째 치고 어떤 신비한 약초가 자생하고 있을지 기대되도다.”

청성파 도사의 말을 들은 환신은 머릿속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홍황구가 내뿜는 상서로운 기운을 흡수한 동식물은 엄청난 영기를 품게 되지 않을까? 아니, 분명히 그럴 거야. 그럼 도원향의 식생을 연구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농경시대는 물론이고 현대에도 식물은 돈이 된다.

아니, 부의 원천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인간이 섭취하는 수많은 곡물과 각종 약재, 거기서 추출하는 여러 성분은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대항해시대 대영제국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왕립식물원을 건설한 후 전 세계의 식물을 수집했다.

그렇게 식물을 연구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환금 작물을 개발해 냈다.

대표적으로 사탕수수가 있었다.

이렇게 식물을 연구하고 최적의 농법을 개발해 세계 각지에 대규모 상업 농장을 일궜다.

세계 제국이 탄생이었다.

환신의 진정한 무서움은 천망의 경지에 이른 무공이 아니었다.

미래 지식을 이용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에서 환신의 진가를 볼 수 있었다.

환신이 막연히 그린 그림을 을지효, 제갈노아가 현실로 구현한다.

만약 환신의 구상대로 남해 정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남해 무역을 장악해 어마어마한 은을 손에 넣지 못했다면?

과연 중원 전역에서 7만에 달하는 낭인을 고용해 제천팔패에 버금가는 대군을 편성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천망의 신위로도 때려죽여도 불가능했다.

환신이 황산 사변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낭천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는 천망의 초월자보다 위대했다.

그런 환신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날카로운 번뜩임이 작렬했다.

환신은 은근한 어조로 헌원력에게 물었다.

“헌원 공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세공사 일족은 도원향의 식생에 대해 연구하고 있나요?”

헌원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식생을 연구한다? 허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저희 헌원씨는 타고난 야장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주로 광물을 사용합니다.”

그는 손을 들어 홍황구를 가리켰다.

“홍황구를 설계하고 만든 것은 시조모님을 비롯해 여러 신이지만 헌원씨의 전설적인 대야장들이 홍황구 제작에 깊이 관여했지요. 복 숙부께서 가끔 홍황구를 만들 당시 태어나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십니다.”

“하하…….”

헌원복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 같았다.

“홍황구는 칠봉산의 광산에서 캘 수 있는 칠보신석을 수십 단계 공정을 거쳐 제련해야 완성할 수 있는 신진철로 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현재 신진철을 만들 수 있는 건 복 숙부님뿐입니다만. 그만큼 저희 헌원씨는 광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족이지요. 그래서 세공사 일족이라 불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도원향은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확장된다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헌원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처음 도원향은 칠봉산과 봉마혈 일대 10리 정도가 전부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도원향의 대지가 조금씩 넓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했습니다.”

면이 넓어지는 만큼 대지의 면적 역시 커질 테니 당연했다.

“작금에 이르러 도원향은 중원의 일 개 성에 필적하는 크기가 되었습니다. 소인이 혈족을 이끌고 직접 측량을 나선 적이 있는데 대략 사천성과 비슷한 넓이더군요.”

“와아.”

정말 신비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도원향은 얼마나 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까?

점점 기대감이 커졌다.

헌원력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혈족 입장에선 그리 좋을 것도 없습니다. 악신의 파편은 주로 봉마혈에서 튀어나오는데 도원향이 확장되자 우리도 모르는 틈이라도 생겼는지 도원향 곳곳에서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혈족이 악신의 파편에 의해 산 채로 찢겨 죽은 적도 있지요. 헌원씨는 만드는 자이지 싸우는 자가 아닙니다. 이게 저희 헌원씨가 강호의 영웅들을 환영하는 이유지요.”

“그렇군요.”

“칠봉산 일대와 봉마혈을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힘에 부칩니다. 도원향의 식생을 알아볼 정도의 역량은 없습니다.”

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 헌원씨는 도원향의 식생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 아닌가?

이 지점에서 환신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내가 한 번 연구해 볼까?’

물론 직접 할 생각 따위 없었다.

낭천이라는 대세력의 주인인데 아랫사람을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도원향의 식생을 연구해 줄 인재를 이미 알고 있잖아!’

바로 양대신의, 봉침구명 동방척과 화약사 냉조였다.

동방척은 봉침이 특기인 만큼 동물이나 곤충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화약사 냉조는 아예 황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약왕곡에 영약 농장을 조성할 정도로 이쪽 방면으로 엄청난 선견지명을 자랑했다.

그들이 과연 도원향의 식생을 연구해 보라는 환신의 제안을 거절할까?

절대 그럴 리 없었다.

환신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이 득시글거리는 욕망을 말이다.

어찌 모르겠는가.

태음칠절맥을 치료해 준 이유 중 하나가 고금제일절맥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고 직접 들었는데.

그들이 도원향의 식생을 연구할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의술을 한 단계 도약시킬지도 모를 이 기회를?

환신이 아는 양대신의는 절대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갑을 관계가 이렇게 역전되는구만.’

태음칠절맥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은 치욕, 분노, 불합리를 그대로 돌려줄 기회였다.

‘아니지. 가급적 2배, 아니, 3배로 돌려줘야지.’

최대한 불공정 계약을 맺고 뼛속까지 털어먹겠다 굳게 결심했다.

“흐, 흐흐흐.”

“신아? 뭐 좋은 일 있니?”

율약벽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환신의 말에 율약벽은 생긋 웃었다.

“신이 너는 참 신비로워.”

“예? 제가요?”

환신이 무림에 출도하기 훨씬 전부터 강호를 종횡한 율약벽이다.

그녀가 자신을 신비롭게 생각한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을 봐. 할아버님의 명으로 제천사에 적을 두고 임무를 수행하며 근 10여 년간 강호를 종횡했어. 계림이나 오채지, 장가계 같은 강호의 명승지란 명승지는 모두 가봤지. 하지만 여기 도원향보다 아름다운 곳은 본 적이 없어.”

율약벽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눈빛으로 도원향을 응시했다.

“고마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데려와 줘서.”

“……나야말로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환신과 율약벽은 서로를 보며 살짝 웃었다.

헌원복과 도제들의 인솔을 따라 칠봉산 자락을 걷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강호인 모두 경악했다.

“저, 저게 뭐야!”

-칙칙! 폭폭!

편재각에서 보았던 검은 연기를 내뿜는 괴상한 기계.

기계가 바퀴를 단 채 움직이고 있었다.

헌데 앞뒤로 움직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기이이잉! 철컹! 기잉! 키리리링!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집채만 한 석재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석재를 비슷한 크기의 석재가 쌓인 성벽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어찌나 잘 다듬었는지 석재와 석재 사이로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과연 헌원씨의 솜씨다웠다.

환신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저거 완전 중장비잖아!’

내연기관이 아닌 증기기관을 이용하지만 아무튼 중장비였다.

중장비에 탑승한 헌원씨가 기계에 설치된 지레를 움직여 석재로 성채를 쌓고 있었다.

헌데 중원의 성채와는 사뭇 달랐다.

서양의 성형요새에 가까웠다.

중장비뿐만이 아니었다.

헌원복이 비마나라고 부르던 부유체가 자질구레한 자재를 성채 위로 옮기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눈이 팽팽 돌아갈 것만 같은 광경이다.

환신은 곧장 헌원복에게 달려갔다.

“헌원 노사!”

“오, 소형제. 어떤가. 마음에 드나?”

“……저게 대체 뭐예요!”

“아, 저거? 중원의 성과는 좀 다르지? 편재각의 문은 중원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연결돼 있지.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서역 마법사도 있고.”

“그, 그래요?”

“물론이지. 편재각의 여러 공작 기계 역시 이런 기술 교류의 산물이라네.”

“…….”

대체 어디까지 갈 셈인지.

헌원복의 무한한 능력에 이젠 무서울 지경이다.

“아무튼 이건 서역의 최신 성채 건축 양식일세. 목재를 주로 사용하는 중원 건축과 달리 서역은 석재를 잘 다루거든. 솜씨가 아주 최고야. 나도 한 번 석재로 대규모 건축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영 기회가 닿지 않았거든.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최선을 다해 만들어 봐야지. 이게 다 소형제 덕분일세.”

“……너무 크지 않아요?”

“강호의 귀인들이 도원향으로 많이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죠.”

“그래서 가능한 크게 준비했는데 뭐 문제 있나?”

“…….”

확실히 그런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이 정도로 대규모 도시 계획을 단행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 정도를 생각했는데 이건 규모가 커도 너무 크잖아!’

헌원복이 말을 이었다.

“혈석의 공능을 이용해 성채 내부에 공간을 압축할 거야. 그럼 대략 수백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북경, 혹은 남경급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지. 도시의 중앙에는 관문을 설치할 걸세. 관문 주변 토지에 소형제가 원하는 건물을 지어줄 테니 말만 하게.”

부동산을 준다는 말에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어마어마하네요.”

“이제 시작에 불과해. 주춧돌은 우리 헌원씨가 놓지만 훗날 강호인들의 손에 의해 도시 본연의 모습과 기능을 갖춰 나가겠지. 모두 소형제, 자네 몫이야.”

헌원복은 환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대로였다.

천하에 도원향의 존재를 공표하고 강호인들을 도원향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한 게 환신 자신이었다.

환신은 이 도시의 창립자로 영원히 이름을 남길 것이다.

그때였다.

헌원복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품에서 편재경을 끄집어냈다.

“응? 뭐라고? 시조모님께서?”

편재경에 떠오른 인물과 대화를 나눈 그는 곧 통신을 종료했다.

헌원복은 환신을 보며 말했다.

“소형제.”

“무슨 일 있어요?”

“시조모께서 소형제를 뵙고자 하시네.”

그는 손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율약벽이었다.

“저기 있는 소저와 함께 말일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