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355화
144. 서역에서 온 손님(1)
제갈노아의 말에 환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행도에? 무슨 일이지?”
오행도는 대만섬의 다른 이름으로 복건성의 주도인 복주에서 350리(약 140㎞)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중간에 남해 해적의 본거지인 금구도가 있는데, 금구도는 여러 섬의 군집인 군도였다.
오행도는 현재 남해 교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환신의 지배하에 있는 광동성 오문, 절광성의 영향권인 반도, 그리고 맥골과 연줄이 닿은 왜국으로 이어지는 삼각 교역.
이 삼각 교역은 자연히 그 중심에 위치한 오행도에서 이루어졌다.
먼바다에서 중앙 행정의 간섭을 피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고작 반년 정도에 불과했으나 오행도는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환신은 중원으로 돌아오기 전 오행천강부의 공능으로 항구를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항구가 완공되자 오행마군의 진두지휘로 오행무사와 오행도의 원주민인 다두 왕국 백성들이 항구의 여러 시설을 손수 마감했다.
이로써 오행도는 남해 교역의 중심지가 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제갈노아의 지도 아래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초대박.
몇 차례의 교역만으로 강호의 모든 낭인을 고용할 수 있는 은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 은의 대부분을 왜국에서 충당했다.
왜국 영주는 중원과 반도의 사치품이 필요했고 중원과 반도는 왜국의 풍부한 은이 절실했으니.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였다.
제갈노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원과 왜국의 금은 가격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오행도에 금은거래소를 설치했다.
소정의 수수료를 받고 금은을 태환해 주는 사업을 벌인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 역시 어마어마했다.
과연 내정의 신 제갈노아다운 솜씨였다.
남해 교역은 광동십상행 독점으로, 광동 세족이 물산을 모아 오문의 흑오 요새에 가져오면 광동십삼행이 일괄 구입해 남해 교역을 통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광동십삼행의 대주주는 환신이었으나 광동 세족 역시 상당수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광동 세족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은에 비명을 질렀다.
땅에서 수확하는 작물과 중원 곳곳에 설치된 관도를 통한 상행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국제 교역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다.
광동 세족 모두 뼈저리게 깨달았다.
진정한 부는 바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광동 세족의 머릿속에 국제 관념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광동의 대표적인 친낭천 세족인 불산엽가는 이에 크게 고무돼 아예 환신의 광신도가 될 지경이었다.
소가주 엽중강은 환신 휘하에서 남해 수전을 지휘하며 광동 세족 사이에서 그 위상이 하늘을 찔렀다.
이공자 엽지강 역시 을지효 휘하 군사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환신이 황산 사변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덕분에 불산엽가 가주 엽무는 요즘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허나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제갈노아가 입을 열었다.
“서반아와 포도아 해적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합니다.”
환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해적은 무슨. 해적의 탈을 쓴 정규군이겠지.”
서양에 대한 지식을 지닌 환신은 서구 열강이 사략 해적을 운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갈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 상태를 보았을 때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휴, 그놈들은 왜 또 발작이야. 흑오 요새 앞에 포도아 거주지를 마련해 줬잖아. 거기서 교역하면 되지.”
“서역인을 만족시키기에는 물량이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아주 그냥 돼지처럼 욕심만 드글드글해가지고.”
그 욕심 때문에 지구 반 바퀴를 건너와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집요함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만했다.
환신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냥 이참에 서반아 놈들의 근거지를 세상에서 지워 버릴까?”
서반아의 동방 최대 도시는 비율빈(필리핀)에 위치한 마닐라.
여차하면 이 마닐라를 완전히 파괴해 버릴 작정인 것이다.
제갈노아는 섬뜩한 느낌에 침을 꿀꺽 삼켰다.
‘주군께선 진심이시다. 마음먹으면 실제로 행하시리라.’
누가 있어 천망의 초월자의 분노를 막을 수 있겠는가.
파공축지로 단숨에 마닐라로 날아가 모든 걸 파괴하겠지.
허나 이는 제갈노아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주군. 진정하십시오. 그럼 소신이 주군께 마닐라로 가라 말씀드리지 오행도로 가라 권하진 않았겠지요.”
“흠, 생각해 보니 그러네.”
제갈노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망의 초월자는 양날의 검이로다.’
날카로운 검이지만 그만큼 다루기 어렵다.
심지어 환신은 천간십존과 달리 제약조차 없었다.
또한 강호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대량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니.
그래선 안 된다.
‘주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나 제갈노아가 주군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그것이 책사의 의무였다.
제갈노아는 이런 생각을 숨기고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주군. 소신이 당하고만 있을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건…… 당연히 아니지.”
신룡팔준의 일원인 남봉황 제갈노아였다.
이미 최선의 선택지를 준비하고 환신에게 최종적으로 보고하는 거겠지.
“오행도에서 서반아 측과 회담이 성사됐습니다.”
“그래? 포도아는?”
“포도아는 서반아와 같은 왕을 섬기고 있으니 회담 결과를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몸소 오행도까지 가야 하는 이유는?”
천망의 초월자이자 무림지존인 환신이 어째서 오행도까지 몸소 행차해야 한단 말인가.
웬만한 이익이 아니고서는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서반아 측에서 주군을 뵙고자 합니다.”
“서반아에서 나를?”
“예. 그들은 남해의 지배자와 직접 결판을 내겠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흐음.”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암살 시도겠지?”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환신이었다.
도대체 몇 번의 암살 시도를 겪은 건지.
“그것도 선택지 중 하나겠지요.”
환신은 피식 웃었다.
“재밌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가소로웠다.
천망의 신위 앞에 모든 게 무의미했다.
환신은 곧 결정을 내렸다.
“오행도에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우군사. 오행도에 왜국 무역 책임자도 와 있어?”
“물론입니다. 왜국 무역 총책은 도진씨인데 그곳 영주의 사촌 동생이 무역 책임자로 와 있습니다.”
“도진씨? 왜국식으로 뭐라 부르지?”
“시마즈입니다.”
어딘가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옛날에 게임할 때 들어본 이름인데.’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왜국에서도 제법 유명한 가문인 모양이다.
“모처럼 좋은 기회야. 도진씨와 서반아, 그리고 절광성주까지 남해 무역의 이권을 지닌 자들이 모여 대회동을 하도록 하지.”
“좋은 생각이십니다.”
“도원향에서 요마를 사냥해 노심을 채굴하는 건 천하를 변혁으로 이끌 중차대한 일이야. 그렇다고 남해 무역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해졌다고 봐야 옳을 거야.”
노심 교역이 활성화되면 중원 경제와 도원향의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남해 무역을 통해 중원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제갈노아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역시 주군께서는 다른 천망의 초월자와 많이 다르시군요. 교역에도 이리 관심을 가지시다니.”
“내 기준에서 오히려 다른 천망의 초월자들이 이상한데. 어떻게 30년 동안 세상만사 전부 제쳐두고 2차 태산쟁위에 집착할 수 있는 거지?”
“……그게 평범한 겁니다만.”
은원을 갚거나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10~20년쯤 초개와도 같이 내던지는 게 강호인이다.
하물며 고금제일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태산쟁위다.
30년의 시간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가? 아무튼 좋아. 절광성주께선 아직 황산에 계시지?”
“그렇습니다.”
“이곳으로 모시도록 해.”
환신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편재각을 이용할 거야.”
제갈노아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가능한 겁니까?”
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 노사의 승낙을 받았어.”
헌원복은 오직 환신 1인에게 편재각 이용을 허락했다.
허나 환신이 천망의 벽을 돌파하고 창희가 헌원씨의 운명을 맡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헌원복은 환신을 포함한 12인에 한해 편재각 이용을 허가해 주었다.
제갈노아가 말했다.
“바로 절광성 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행도행이 결정됐다.
* * *
오행마궁 아래에 위치한 항구.
이곳은 본래 오행보선을 비롯해 오행도에 필요한 물산을 옮기기 위해 조성된 부두였다.
이 부두를 환신이 오행천강부의 힘으로 거대한 항구로 변화시켰다.
여기에는 대형 창고 수백 동 역시 포함됐다.
현재 이 항구는 광동십삼행과 반도, 왜국의 무역선이 끊임없이 오가는 남해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들은 항구 이용료는 물론이고 하역하는 물산의 1할을 세금으로 바쳤다.
이도 모자라 물산을 보관할 항구 수수료와 식수, 식량 등을 바가지를 써가며 구입했다.
배 한 척을 띄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허나 국제 교역은 이를 모두 지불하고도 몇십 배의 이문을 남길 수 있었다.
왜국 상인은 은을 싣고 와 영주들에게 없어서 못 파는 중원과 반도의 사치품을 구입했다.
쇼군의 조공사가 1년에 한 번 들여오기도 힘든 진귀한 물목을 은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상인에겐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도와 중원 역시 대동소이했다.
반도는 중원에서도 알아주는 귀한 약재인 인삼을 팔아 은을 벌고 중원은 비단과 도자기, 견사, 각종 공예품 등을 처분했다.
광동 세족은 심지어 저 멀리 대막에서 건너온 물산도 구해 왔다.
모든 거래는 오직 항구 내에 위치한 교역소에서 이루어졌다.
매 거래마다 물건 가격의 5푼에 달하는 거래세까지 떼어갔다.
상인들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으나 교역의 막대한 이득을 고려하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세금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모든 체계를 완성한 자는 제갈노아였다.
그는 은이 나올 구석을 예리하게 포착해 가차 없이 세금을 부여했다.
이렇게 알뜰살뜰 벌어들인 은을 환신이 낭인들에게 아낌없이 퍼부었으니.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였다.
그러던 중 평화로운 남해 무역에 방해꾼이 등장했으니.
바로 서반아 해적이다.
이들은 함선의 우위를 바탕으로 남해 무역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오행도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금구도의 화구와 연합해 서반아 해적과 맞섰다.
이들이 충돌하자 남해 일대의 무역로가 대단히 불안해져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 항구로 서반아의 초대형 갤리온과 이를 호위하는 프리깃 3척이 입항했으니.
이들은 객잔 하나를 통째로 대절한 채 누군가를 기다렸다.
남해의 지배자 흑천낭왕 환신.
바로 그였다.
* * *
오행마궁 내의 대전.
허공에 갑자기 거대한 황금문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대전 바닥에 떨어졌다.
-쿵!
“누구냐!”
“무슨 일이야!”
대전을 지키던 오행무사들이 화들짝 놀라 빠르게 몰려들었다.
그때 황금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에서 오행마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헛! 마군을 뵈옵니다!”
오행무사들은 잽싸게 오체투지했다.
허나 오행마군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금문 좌우로 빠르게 갈라져 시립했다.
후토마군이 외쳤다.
“궁주 대리로서 궁도들에게 명한다!”
황금문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등 뒤로 타오르는 흑염을 휘날리는 미청년이었다.
“낭왕께서 영광스럽게도 본궁을 방문하셨으니! 모두 예를 갖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