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370화 (370/447)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370화

152. 복수의 수호자(2)

“객이라고?”

환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옆에 있던 제갈노아가 말했다.

“소신이 절광성주를 별채로 모실 테니 주군께선 막내 사제에게 가보시지요.”

“그럴까? 좋아, 안내해.”

“예, 주군!”

흑오병단원의 안내를 받아 총단 내부로 들어섰다.

곧 총단 한가운데 있는 인공 호수 위의 정자에 도착했다.

그곳에 을지효와 검은 전포를 걸친 인물이 서로 마주 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환신이 다가오자 을지효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했다.

“주군. 돌아오셨습니까.”

“아아.”

그때 검은 전포를 걸친 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자의 얼굴을 보자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전포를 걸친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컥! 철커덕!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가 들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철컹! 철컹!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환신 앞으로 다가와 포권했다.

“소인 흑수천이 낭왕을 뵈오이다.”

흑점의 점주 흑왕 흑수천!

그가 낭천 총단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환신은 흑수천의 행색을 살폈다.

외관부터 기괴했다.

오른손엔 붉은 열기가 일렁이는 정교한 의수를, 왼손에는 냉기가 흐르는 갈고리 의수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왼쪽 다리에는 강철 의족을, 왼쪽 다리에는 날카로운 칼날 의족을 착용했다.

그의 사지를 자른 건 바로 환신이다.

이 기괴한 모습은 환신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보며 말했다.

“흑수천. 오랜만이군.”

“그렇습니다, 낭왕이시여.”

환신과 흑수천은 잠시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한 명은 황산 사변에서 천하를 제압한 천망의 초월자.

다른 한 명은 강호의 암거래를 한 손에 틀어쥔 흑점의 점주였다.

일개 초절정고수임에도 환신을 앞에 두고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대단한 정심이다.

아니, 그걸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았다.

‘저건…… 원한이야.’

흑수천의 눈동자에 귀신이 깃들어 있었다.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원망이 극한에 달했을 때 저런 눈빛이 되곤 했다.

복수귀(復讎鬼).

그렇다.

복수에 미친 괴물이 저런 눈일 테지.

‘나에 대한 원한인가?’

사지가 잘렸으니 충분히 원한을 가질 만했다.

허나 겨우 초절정의 경지로 천망의 초월자에게 복수하러 왔다고?

그리 생각하는데 흑수천이 갑자기 환신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철컹! 철커덕! 끼이이익!

의수와 의족이 청석 바닥에 부딪쳐 고막을 찔렀다.

환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오연한 얼굴로 흑수천을 내려다보았다.

흑수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석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낭왕이시여! 부디 소인을 도와주소서!”

-쿵! 쿵! 쿵!

바닥에 머리를 세 번 박은 후 고개를 들었다.

이마의 살점이 뜯어져 피가 줄줄 흘렀다.

환신이 입을 열려고 하자 다시 청석에 머리를 박았다.

-쿵! 쿵! 쿵!

“낭왕이시여! 부디 소인을 굽어살피소서!”

다시 고개를 들자 상처에서 하얀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얼굴이 피범벅이 됐는데도 눈동자에 깃든 귀기(鬼氣)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광기로 휘몰아쳤다.

흑수천이 다시 청석에 머리를 박으려는 순간.

그의 몸이 우뚝 멈췄다.

전신에 회색 중력자가 흘렀다.

환신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시비들이 피를 닦느라 고생하게 생겼잖아. 알았으니 그쯤 해.”

“……감사합니다.”

중력자가 사라지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신은 정자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거기 앉아. 피도 좀 닦고.”

“예.”

“이걸로 닦으시지요.”

“고맙소.”

흑수천은 을지효가 건넨 비단 수건으로 이마의 피를 닦았다.

아름다운 촉금이 피로 물들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환신이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로 본천의 총단까지 온 거지?”

환신의 물음에 흑수천이 답했다.

“낭왕이시여.”

“오글거리니까 그냥 천주라고 불러.”

“……그리하지요. 천주.”

“어.”

“소인의 사지를 자른 그날. 소인과 한 가지 약조를 한 것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환신은 그날을 떠올렸다.

청천 13호 풍운전장주 능천화에게 고용돼 흑점 접수 작전에 참가했었지.

그때 환신은 청천을 견제하고자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옥쇄하려는 흑수천을 설득했다.

살아남으라고.

치욕스러워도 흑점 구성원의 목숨을 살리라고 말이다.

환신의 제안을 들은 흑수천은 전음을 보냈다.

‘훗날 본 점주가 의뢰하면 받아주겠소?

환신은 답했다.

‘액수만 맞으면 얼마든지.’

초절정고수 시절 한 약조다.

허나 무림인은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말을 목숨 바쳐 지키는 족속이었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10, 20년쯤 던지는 건 예사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의무는 더욱 커졌다.

물론 천망의 초월자는 강호의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다.

허나 환신은 묵시천존이나 천간십존과 조금 달랐다.

황산 사변의 최종 승자로 실질적으로 무림지존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또한 제천팔패 중심의 강호 질서 재편을 주도했다.

모든 행동이 의무로 돌아왔다.

강호의 행사에 이 정도로 개입했으니 어물쩍 넘어갈 순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나 몰라라 할 생각 따위 없었지만.

환신의 목표 중 하나인 도원향 수호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각오였다.

환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억하고말고. 그때 흑점주는 의뢰를 하면 받아줄 거냐고 물었지.”

“천주께선 의뢰비를 지불하면 얼마든지 받아주실 거라 말씀하셨고요.”

“그리 말했지. 해서? 내게 의뢰할 건가?”

환신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다.

“천망의 초월자의 몸값을 감당할 자신은 있고?”

그렇다.

의뢰를 받아주기로 약조한 건 맞았다.

허나 그것이 환신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만능열쇠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강호의 모든 대소사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비대칭적 힘.

그것이 천망의 초월자였다.

천망의 초월자를 움직이려면 그에 걸맞은 의뢰비를 지불해야 했다.

강대한 힘을 빌려 쓰려면 과연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까?

흑수천이 환신을 보며 말했다.

“천주. 남경으로 유학을 떠난 소인의 장자와 흑점 간부의 자식들이 어찌 됐는지 아십니까?”

“……어찌 됐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흑수천의 동공 깊숙한 곳에서 피맺힌 원독의 감정이 흘러나왔다.

“능천화, 그자에 의해 말입니다.”

“뭣이?”

능천화가 인질로 잡은 흑점 간부의 자제를 몰살시키다니.

그런 무리수를 둘 인물이었던가, 능천화가.

“언제 죽였지?”

“황산 사변 바로 다음 날입니다.”

“…….”

어째서 죽였는지 알 만했다.

청천의 양대 기둥.

청천 1호 담천악과 청천 3호 공손자렴이 죽었으니 청천의 푸른 꿈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뿐인가.

능천화의 연인, 청천 9호 검후 예령화 역시 환신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또한 청천 잔당은 또 다른 천망의 초월자인 십전홍예 율약벽이 이끄는 제천사의 집요한 추적을 받고 있었다.

이로써 능천화는 자신의 모든 걸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걸 잃은 남자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자기 파멸적 질주.

그것뿐이다.

‘나의 빛나는 승리가 흑수천에겐 혈육이 살해당하는 처참한 결과로 돌아온 것인가.’

실로 모순적이다.

허나 안타깝다고 아무 대가 없이 도와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낭인에게 공짜 의뢰는 없었다.

절대로.

환신은 팔짱을 낀 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바라는 게 뭐지?”

흑수천은 다시 청석에 무릎을 꿇고 포권했다.

-철컥! 철커덩!

의수와 갈고리가 서로 부딪쳤다.

흑수천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다.

눈꼬리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지금까지 참았던, 피 끓는 원한을 폭발시키며 외쳤다.

“천주! 복수를 대신해 달라는 의뢰 따위 하지 않겠습니다! 스스로 복수를 하는 것이 남아의 길 아니겠습니까! 소인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소인의 복수를 허락해 달라는 거뿐입니다!”

“……복수에 내 허락이 필요하다고?”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흑수천은 살짝 원망의 감정을 담아 말했다.

“능천화는 청천에 속한 자. 천주께서 청천의 무리를 모두 도원향이란 곳에 잡아 가두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흑수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일을 맡은 곳이 제천사. 제천사의 대총령이 누굽니까.”

“……벽 누이지.”

“그렇습니다. 십전홍예 율약벽, 율 대총령이 천하에 포고를 내려 청천의 무리에 대한 사적 복수를 금했습니다. 천주! 일이 이 지경이 됐으니 소인이 호소할 곳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는 환신을 직시하며 외쳤다.

“율 대총령과 대등한 힘을 지닌 천주밖에 없지 않습니다! 천주! 부디 소인의 복수를 허락해 주소서!”

흑수천은 다시 청석에 머리를 박았다.

-쿵! 쿵! 쿵!

환신은 오랜만에 머리털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발! 더럽게 걸렸네!’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으로 꼬였는지 대충 감이 잡혔다.

환신은 도원향 개척을 위한 선발대로 청천의 무리를 선택했다.

율약벽 역시 이에 동의했고, 현재 중원 전역에서 청천의 무리를 색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상황이 이리 돌아가니 능천화는 더 이상 풍운전장을 유지할 수 없었겠지.

환신과 율약벽에 대한 원한은 끓어오르는데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천망의 초월자는 일종의 자연재해였으니까.

결국 지하로 잠적해야 했으니.

인질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모두 죽였다.

능천화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방법이 최악이다.

이로써 흑수천과 능천화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이다.

환신 역시 이 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흑수천과 능천화 사이를 중재한 자가 바로 환신이다.

담천악과 공손자렴을 죽여 능천화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 역시 그였다.

흑수천의 비극에 환신의 선택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환신은 흑수천이 자신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했다.

‘덕분에 대단히 곤란해졌지만 말이야.’

한마디로 율약벽을 설득해 달라 요구하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천사는 제천맹 맹규를 수호하는 사정기관이다.

감히 맹규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응징했다.

율약벽은 제천사 대총령으로 강호에 출도한 이래 평생 이 일을 해왔다.

그녀에게 청천의 무리를 잡아 도원향에 가두는 것은 당연한 책무였다.

흑수천이 복수에 성공하려면 율약벽의 포고를 무시하고 능천화를 잡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흑수천과 흑점이 감히 율약벽의 명을 어긴 대가로 심판받겠지.

끔찍한 결말이다.

흑수천 혼자라면 망설임 없이 목숨을 내던질 것이다.

허나 능천화는 청천 잔당을 이끌고 있었다.

흑점 구성원 전원이 복수에 나서야 했다.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흑점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결국 흑수천은 환신에게 율약벽을 설득해 달라는 의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환신으로서도 율약벽을 설득하는 건 대화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율약벽과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할지도 몰랐다.

-쿵! 쿵! 쿵!

“천주! 부디 소인의 복수를 받아주소서!”

흑수천을 내려다보는 환신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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