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410화
171. 장강을 질주하는 백마와 같이(1)
기병(騎兵)은 말을 타고 적에게 돌격하는 병과다.
말의 중량은 평범한 중등마도 150관(약 560㎏)이며, 사막왕국에서 건너온 체격 좋은 상등 군마는 거의 170관(약 630㎏)에 이른다.
여기에 10관(약 40㎏) 무게의 철제 마갑을 씌우면 그 중량은 일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엄청난 중량을 지닌 군마가 적군을 향해 반 시진(1시간)에 150리(약 60㎞)를 갈 수 있는 속도로 돌격한다?
그것도 수천 단위의 기병대가 병진을 짠 채?
막대한 중량과 빠른 속도가 결합된 물리력을 무림 고수가 아니고서야 피륙을 지닌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창병이란 병과가 존재하지만 한 번의 돌격으로 절반 이상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즉사한다.
그도 아니면 말발굽에 밟혀 죽거나.
그만큼 기병은 전장의 꽃이라고 할 만했다.
중원에도 이런 기병 전통이 면면부절 이어지고 있었다.
장강백마 철린은 사천성 덕양현의 전통의 명가인 철가장 출신이다.
철가장은 수 대에 걸쳐 강력한 기병을 배출하는 군부 명가였다.
그들의 선조는 삼국 전설 속 무신인 금마초(錦馬超), 마초 맹기를 따라 사천 땅을 밟은 서량 기병이었다.
당시 마초 휘하 서량 기병은 전쟁에 종군하는 대가로 성도 인근 평야 일부를 분봉받았다.
철가장의 초대 장주 역시 덕양현의 땅을 분봉받아 철가장을 세웠다.
이후 철가장은 군부 명가로서 대대로 뛰어난 기병을 배출해 왔다.
군문에 종사하다 보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토사구팽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철가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철가장과 마찬가지로 서량기병 출신의 군부 명가 중 철가장의 위상을 질시하는 자가 있었다.
그자는 뛰어난 처세술은 물론이고 사천의 여러 무림 세력과 연합을 맺어 철린의 부친을 모함해 사천 군부에서 축출했다.
그도 모자라 자신과 친분이 있는 무림 문파를 총동원해 철가장의 직계를 몰살하고 천 년의 세월 동안 축적한 재산을 모조리 갈취했다.
허나 그자는 알지 못했다.
철가장의 막내아들 철린이 두 다리를 잃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나 기어코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천우신조로 살아난 철린은 천하를 기어 다니며 동냥했다.
군부 명가의 막내 자제에서 다리 잘린 소년 거지라니.
세상에 이보다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자결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허나 철린은 죽을 수 없었다.
철가장의 말예로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지 않고 어찌 저승에서 부모, 형제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흙탕물을 뒹굴던 중 운명적으로 구마동신 철갑마왕의 기연을 얻게 되니.
장강백마 철린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철린은 피나는 노력 끝에 천령의 경지를 돌파한 후 본격적인 복수행에 돌입했다.
천하를 기어 다니며 거지들에게 얻어터지고 동냥으로 연명하는 비참함을 겪은 그에게 자비란 없었다.
철린은 철가장 멸문에 티끌만큼이라도 연관된 무림 세력은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철저히 몰살시켰다.
진원지기를 빨아먹는 마물인 구마동신 철갑마왕을 착용하고도 끄떡없는 무한의 내공에 고금삼대창술 중 두 가지를 한 몸에 갖춘 압도적 무력까지.
철린의 복수행 당시 무병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복수를 막을 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사천 군부의 핵심 고관인 지휘동지(指揮同知)의 위치까지 올라간 원수는 버티다 못해 휘하의 수천의 기병과 살아남은 무림 문파를 모아 건곤일척의 승부에 돌입한다.
이것이 철린의 복수행의 절정인 성도 대혈전이다.
성도 평야에서 홀로 만 명에 육박하는 군부와 무림의 혼성 병력을 말 그대로 분쇄한 대위업.
철린조차 삼도천을 건널 뻔한 그 혈전에서 기어코 원수의 가슴에 경천풍마삭 일격을 쑤셔 넣는 데 성공한다.
원수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육편이 되어 흩어졌다.
원수를 살해함과 동시에 천망의 벽을 돌파하며 철린의 복수행은 결국 신화가 되었다.
천망의 초월자가 되었으니 황실조차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천망의 초월자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천망의 초월자뿐이었으니까.
원수와 원수의 혈육을 모조리 죽이고 천망의 경지에 오르니 복수가 덧없어졌다.
철린은 철가장 멸문에 가담한 자들 중 살아남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오른팔을 바치는 걸로 용서해 주겠다 선언한 것이다.
천망의 초월자가 이런 은혜를 베풀다니.
원수들은 철린의 관대함에 절을 하며 기쁘게 팔을 잘라 바쳤다.
그렇게 철린의 복수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복수를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강호인에게 철린은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사나이로 지금까지 칭송받았다.
철린은 태어났을 때부터 기병의 길을 걷는 운명이 예비된 남자였다.
구마동신 철갑마왕을 얻는 순간 운명은 숙명이 됐다.
무한의 내공을 지닌 철린의 기병 돌격.
그 한 방의 위력은 천간십존 사이에서 이렇게 평가받았다.
십자살황무의 일점 교차에 버금간다고 말이다.
환신과 철린이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바로 그 순간.
철린은 찰나지간 쌍철극을 결합했다.
철편이 합쳐지자 쌍철극이 기병삭(騎兵朔)으로 변모했다.
일반적인 기병삭은 길이가 13자(약 4m)에 이르는데 철린의 그것은 2배인 26자(약 8m)에 굵기도 작은 기둥만 했다.
-철컥! 철커덕!
기병삭을 이루는 철편이 철린의 옆구리에 부착됐다.
철린은 양다리가 없는 만큼 양팔의 완력이 천간십존 중에서도 발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병 돌격의 충격은 엄청났다.
때문에 육신에 기병삭을 고정시킴으로써 충격을 전신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철린을 무를 상징하는 양대 창술 중 하나.
당태종 이세민 휘하의 무신.
능연각이십사훈신의 일원인 악국공 울지경덕이 남긴 고대마상무예.
탈삭함진십칠식, 달리 경천풍마삭(驚天風魔朔)이라 불리는 최강의 돌격창을 작렬시키기 위함이다.
-철컥! 철컥! 철커덕!
철갑마왕의 동체를 이루는 기계 장치가 순식간에 변형됐다.
구마동신 익룡마군에게서 볼 수 있었던 분사구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사구에서 일제히 강한 불꽃이 뿜어지더니 엄청난 추진력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철갑마왕의 속도가 무려 7배 이상 빨라졌다.
환신은 눈을 부릅떴다.
‘빠르다!’
흑익비영 시절부터 순속의 비기로 이름 높은 환신이다.
속도에서 져본 적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런 환신조차 순간 속도만큼은 철린의 그것에 비견될 순 없었다.
기병삭의 창촉이 천지간의 영기를 끌어모았다.
-끼아아아아악!
풍마가 울부짖는다.
광동삼살 삼형제 중 막내인 와혼창마 추서의 궁기마창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무지막지한 풍인(風刃)!
바람의 칼날이 일점에 압축되더니 환신과 충돌한 순간 확 풀려났다.
-콰아아아앙!
봉우리에 강렬한 용권풍이 불어닥쳤다.
“흡!”
구자건은 빠르게 손을 놀려 이화접목 수법으로 경천풍마삭의 여파를 상쇄시켰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버겁군.’
천령의 경지에 이른 구자건이다.
허나 철린이 내지른 경천풍마삭 일격의 여파를 흘리며 술상을 사수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만큼 천망의 초월자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허나 포기할 수 없었다.
‘술상이 뒤집어지면 이 비무가 끝난 후 형제들과 술잔을 나눌 수 없지 않은가.’
이건 고집이다.
또한 의형제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기도 했다.
‘반드시 지켜내리라!’
구자건은 굳게 다짐했다.
환신은 영자핵을 노리고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경청풍마삭 한 수에 이를 악물었다.
‘빠르게 날카롭다!’
철린의 질주와 동시에 광자미채를 전개하고 사방으로 허초를 뿌리며 존재감을 분산시켰다.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허나 철린은 현혹되지 않았다.
기병, 그중에서도 기병삭을 다루는 중장기병에게 있어 적을 꿰뚫는 단 한 번의 행위가 생사를 가른다.
철린은 어린 시절 기병삭의 대가였던 부친에게 기병의 마음가짐에 대해 배웠다.
-린아! 기병은 자고로 창끝에 심혼을 담아야 한다!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돌격에 모든 것을 걸어라!
이후 철린은 가슴속에 부친의 가르침을 금과옥조와 같이 소중히 간직했다.
철린은 어린 시절 날아다니는 모기를 적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기병삭에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났다.
하물며 천망의 경지에 올랐으니.
창격의 정확도가 얼마나 높을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궁극의 기병 돌격을 자아내니.
환신의 선택지는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환신 주변 공간이 꿀렁거린다.
별과 별을 끌어당기는 중력신공 오단공 홍람의 공능.
기조력이 발동한 것이다.
-화아악!
철린의 기병삭이 무지막지한 인력에 휘말렸다.
기조력의 와류에 기병삭이 둥글게 휘어졌다.
철린은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이것이 묵시흔이 전수한 중력신공의 힘인가.’
폭발적인 일점 돌파의 궤적을 비트는 건 물론이고 거기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실로 기이하다.
허나 철린은 중력신공에 대해 아주 까막눈은 아니었다.
천간십존 사이에서 이미 중력신공에 대한 소문이 제법 퍼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공을 사용하면 할수록 파훼법이 개발된다.
독문무공의 비밀을 지키고 파훼법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살인멸구도 서슴지 않는 게 무림인이란 족속이다.
환신은 십전비무행 과정에서 중력신공을 계속 사용했으니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여기에는 제천순보의 영향 또한 컸다.
고천은 기사를 통해 십전비무행에 대한 정보를 여과 없이 전달했다.
덕분에 천간십존은 중력신공의 원리를 깨닫고 대처법 역시 어느 정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역시 묵시흔과 고천이 노린 부분이다.
중력신공은 이를 창안한 묵시흔조차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세절학.
허나 무공이란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았으니.
끝없이 파훼법이 만들어지고 상대의 파훼법을 다시 파훼함으로써 무공은 점점 더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무인이 비무행에 나서는 이유였다.
묵시흔은 환신이 중력신공을 더욱 발전시키길 원했다.
그래서 중력신공에 관한 정보를 뿌렸다.
모든 것이 묵시흔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흡!”
철린은 상체는 물론이고 팔뚝까지 몇 배로 부풀어 올랐다.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기병삭을 회전시켰다.
-키이이이잉! 파항!
기조력에 의해 비비 꼬여가던 기병삭이 회전력에 의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허엇!”
환신이 헛바람을 들이켜자 기병삭을 회수한 철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핫! 신아! 그 기이한 수법은 풍문으로 들었다! 파훼법까진 아니더라도 말려들었을 때 탈출하는 법 정도는 마련한 지 오래니라!”
“……젠장!”
철린은 기병삭을 잡고 양쪽으로 분리시켰다.
기병삭이 두 자루 쌍철극으로 변형됐다.
철린은 쌍철극을 들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
20자(약 6m)에 육박하는 무지막지한 체구의 은색 기병.
그 위압감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히히히히힝!
철갑마왕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신아! 우형의 쌍철극을 받아보거라!”
그와 동시에 폭풍같이 철극을 휘둘렀다.
환신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일월쌍륜을 소환했다.
“한번 제대로 붙어봅시다! 린 형님!”
“하하하하!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는 말이도다, 신아!”
환신의 일월쌍륜과 철린의 쌍철극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