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432화
178. 파천황(5)
환신은 기억하고 있었다.
묵시흔이 천간십존과 1만 초 비무를 펼쳤을 당시 그는 철저히 방어에 전념했다.
그가 비록 고금제일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천망의 초월자 10인의 합격은 그야말로 미증유의 것.
‘천계의 군신 10인이 동시에 덤비는 것 이상이지.’
고천이 소환한 3대 군신을 가지고 놀았으나 천망의 초월자는 그들과 격이 달랐다.
필요에 의해 탄생한 존재와 피땀을 흘려가며 스스로 거듭난 자가 어찌 같을 수 있을까.
하물며 천간십존은 30년간 오직 묵시흔을 꺾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묵시흔의 무학을 파훼하기 위해 긴 시간을 소비한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천주를 쌓아 자신만의 무학을 개척한 대종사다.
그런 저들이 한 명을 합공한다?
묵시흔조차 십자건곤의 전율적인 위력에 의지하지 못했으면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겠지.
‘묵시흔의 무위가 30년 전 그대로일진 미지수지만.’
이는 묵시흔의 무학을 계승한 환신 역시 마찬가지다.
천간십존은 환신과의 비무를 통해 십자건곤의 비밀을 파헤쳤고,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당시의 묵시흔보다 더욱 어려운 싸움이 예정된 것이다.
허나 절망할 필요는 없었다.
환신 역시 십전비무행에서 저들의 천주를 훔쳤고, 또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대권세가 있으니까.
시작은 기화창 문류후였다.
원영신의 5할이 소실된 상태였음에도 그의 공격 본능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손도 못 쓰고 당한 탓에 독이 잔뜩 올랐달까.
그는 정신을 집중한 채 기본 중의 기본인 란나찰 중 찌르기인 찰을 선보였다.
“후웁!”
문류후의 양팔과 마창 홍해아가 붉은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키이융!
붉은 광선이 환신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환신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궁극의 찌르기였다.
창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찌르기다.
회피 불가능한 찌르기야말로 창수가 추구하는 궁극인 것이다.
문류후는 이 극한의 찌르기를 일선(日線)이라 불렀다.
태양을 머금은 찌르기.
일선의 위력은 태산의 봉우리 하나를 단번에 녹여 버릴 정도.
실제로 1차 태산쟁위 당시 문류후는 일선으로 태산의 봉우리 십여 개를 날려 버린 전적이 있었다.
만전이 아니라도 고금제일창의 기예가 어디 가진 않는 것이다.
허나 그는 알지 못했다.
중력신공 6단공 축퇴의 진정한 공능을 말이다.
모든 걸 녹여 버릴 기세로 흑천을 가른 붉은 광선이 환신의 절대 권역에 진입한 순간.
-끼이이이이잉!
한 쌍의 축퇴환이 회색 광채를 뿌리며 미친 듯이 회전했다.
문류후는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광검이 제어되지 않는다.
미시 영역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광검이다.
헌데 뜻대로 움직이지 않다니?
일직선으로 쏘아진 붉은 광선은 축퇴환의 굴곡을 따라 쏜살같이 회전했다.
그리고 축퇴환 한가운데 존재하는 검은 구멍에 이르러 속도가 느려지더니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갔다.
환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블랙홀의 중력에 휘말렸는데 제어가 될 리 있나.’
이것이 축퇴환의 무서움이다.
환신의 절대 권역에 진입한 순간 상대의 초식은 축퇴환의 무지막지한 중력에 휘말린다.
위대한 중력에 휩쓸리면 천망의 초월자조차 초식의 정묘함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류후뿐만이 아니었다.
천망의 초월자 전원 경악했다.
‘저, 저게 뭐지?’
‘빌어먹을! 신이 저놈이 또 이상한 걸 들고 왔구나!’
허나 묵시흔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자들은 축퇴환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축퇴! 신이가 축퇴를 완성했구나!’
율무극은 곧장 고천에게 혜광심어를 쏘아 보냈다.
「고천! 신이가 축퇴를 완성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그럼 왜 말하지 않았는가!」
「그야…… 환 소협과 둘만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미친놈.」
「하하하핫! 소인이 미친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입니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십시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묵시흔이 한 말을 잊었느냐!」
중력신공을 완성하는 대장정에 한 벌 걸친 고천과 율무극.
그들은 묵시흔이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력신공이 6단공 축퇴에 이르면 천망의 극에 이르렀다 보면 되겠지.’
‘허면 천존. 신이가 축퇴의 경지에 오르면 당신과 몇 초를 겨룰 수 있겠소?’
묵시흔은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그게 무슨 뜻이오?’
‘이 원처럼 무한히 초수를 겨룰 거란 뜻이다.’
묵시흔의 고백은 율무극에게 실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고금제일인 묵시흔이 환신이 축퇴를 완성하면 자신과 동수를 이룰 거라 말했다.
그의 오만한 성정과 드높은 경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율무극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헌데 환신이 축퇴를 완성했다니.
그렇다는 것은…….
율무극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이의 무위를 천존이라 가정하고 싸움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산은 없었다.
체면을 챙길 여유 따위 없는 것이다.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하는 것이 더욱 뼈아프겠지.
율무극은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제대로 협공을 펼친다!’
뜻을 정했으니 망설일 이유 따위 없었다.
그는 곧장 천간십존과 율약벽에게 혜광심어를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으음.」
「그럴 수가.」
다들 율무극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환신이 황산 사변에서 천망의 경지에 오른 걸 그들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로부터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헌데 천망의 극에 이르렀다니?
현월 진인이 빽 소리 질렀다.
「율무극! 이게 모두 네 탓이다! 네놈이 환신 저놈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일이 이 지경이 된 게 아니냐!」
「흥! 그건 본좌와 신이의 일! 현월 네놈이 상관할 바 아니다!」
「크으윽!」
「중요한 건 이것이다. 신이를 묵시흔이라 여기고 싸움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때 철린이 말했다.
「율무극의 말에 동의한다.」
척무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동의하지.」
척무상마저 동조하자 다른 이들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흘흘, 아미타불. 업보로다. 빈승을 포함해 시주들 모두 신이에게서 십자건곤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았는가. 허나 밑천을 털린 건 신이가 아니라 우리였던 거군.」
「끄으응…….」
「아미타불. 별수 없지. 더 이상 체면을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결론은 내려졌다.
이를 지켜보던 환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작당 모의는 끝나셨어요?”
환신의 말에 천간십존 모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굴욕감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이왕 굴욕을 맛봤으니 신이를 쓰러뜨려야지.’
이겨도 굴욕, 져도 굴욕이면 이긴 굴욕이 낫지 않겠는가.
율무극이 입을 열었다.
“벽아야.”
“예, 할아버님.”
“네 역할이 중요하다. 마찰여의로 신이를 견제하거라.”
“그리할게요.”
율약벽은 고개를 돌려 환신을 응시했다.
‘신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환신이 걷는 위대한 길.
고금제일인 묵시흔에게 도전하는 그 가혹한 행보를 말이다.
‘신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어떻게 해야 그를 도울 수 있을까?
율약벽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
‘평생을 익힌 모든 무학을 동원해 신이에게 시련을 줘야 돼.’
율약벽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뭔가 어긋났다는 걸 말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이렇게 타고났는데.
그녀는 평범한 여염집 처자가 아니었다.
무인이다.
환신과 애틋한 관계였으나 애틋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일반 백성과 전혀 달랐다.
오직 무로써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환신과 율약벽이나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게 정답이란 걸 말이다.
그녀는 결심했다.
전력을 다할 것이다.
환신은 자신을 뜨겁게 응시하는 율약벽의 눈빛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젠장. 벽 누나 제대로 발동 걸린 거 같은데.’
저런 얼굴로 자신을 보는 율약벽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율무극은 물론이고 환신조차 말이다.
‘뭐, 상관없나.’
그녀를 비롯해 천간십존이 전력을 다하면 이 싸움에서 그만큼 많은 걸 얻게 되겠지.
이 대전 경험은 고스란히 깨달음으로 승화돼 묵시흔과의 결전에서 미세하게나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역시 벽 누나야.’
정말이지…… 사랑스럽다니까.
환신과 율약벽.
기린과 봉황은 참으로 비범한 관계였다.
첫 만남만큼이나 말이다.
율무극이 입을 열었다.
“본좌가 지휘하지.”
천간십존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성화단을 이끈 문류후조차 전술 지휘에 있어서 제천사 총수 율무극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율약벽은 그의 손녀 아닌가.
천간십존 중에서도 말석으로 평가받던 율무극이 가장 중요한 싸움에서 이들을 지휘하다니.
실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이 또한 강호였다.
율무극이 싸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문류후! 천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류후와 천절 신승이 환신에게 쇄도했다.
이들이 선봉장이다.
율무극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척무상! 현월! 벽아야!”
문류후, 천절 신승의 뒤를 척무상과 현월 진인, 율약벽이 중군이 되어 받쳤다.
“고천! 호선강! 너희는 최후미에서 저들을 지원하라!”
“율 총수! 그럼 당신은?”
호선강의 물음에 율무극이 말했다.
“나 역시 검객! 중군에 합류할 것이다! 철린!”
“듣고 있다!”
“너는 우회해서 신이의 뒤를 쳐라!”
“하하하핫! 율무극! 네놈의 지휘 능력이 실로 야무지구나! 아무렴! 그게 기병의 역할이지!”
“알았으니 어서 가라!”
“오냐! 나 철린이 경애하는 의제에게 궁극의 기병 돌격을 바치겠노라! 하하하하핫!”
그것이 철린이 환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히히히히힝!
철린은 철갑마왕과 함께 은색 광선이 되어 사라졌다.
가장 치명적인 순간 그의 돌격이 환신의 뒤를 노릴 것이다.
그 순간 문류후와 천절이 각각 창과 권을 내질렀다.
-콰르르르릉!
“이런 빌어먹을!”
“크흐윽!”
문류후와 천절은 기겁해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펼친 광검의 물결은 축퇴환으로 빨려 들어가 일체의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자칫 절대 권역 안에 발을 잘못 내디디면?
원영신까지 빨려 들어가겠지.
축퇴환에 휘말리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율무극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정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무섭구나. 신아.’
저게 바로 고금제일인 묵시흔이 대적자로 선택한 남자인가.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신아, 네가 부럽구나.’
스스로 묵시흔에게 도전할 자격을 얻고자 하는 환신의 모습이 말이다.
자신은 차마 그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어 가슴에 말뚝처럼 박혀 있었다.
‘허나 호락호락 끝낼 순 없지.’
아직 1만 초까지 멀고도 멀지 않았는가.
율무극은 빠르게 중군에 합류했다.
“벽아야!”
“예, 할아버님!”
율약벽의 동공에서 자줏빛 광채가 번뜩였다.
그녀의 원영신을 중심으로 기이한 파동이 뿌려졌다.
-웅! 우웅! 우우웅!
그 파동은 오롯이 환신에게 집중됐다.
전뢰신기상의 이화접목 수법.
마찰여의가 전개된 것이다.
환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축퇴환의 회전이…… 느려지고 있었다.
환신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마찰여의의 공능으로 축퇴환의 회전을 느리게 만들었다고?’
실로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그녀는 참으로 지음이라 부를 만한 존재였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벽 누나를 실망시킬 순 없잖아?’
아니.
모든 걸 걸고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천망의 초월자들!
저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절대로.
환신은 양손을 활짝 펼쳤다.
-스르릉!
일광금륜과 월광은륜.
일월쌍륜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가보자고!’
환신의 신형이 전면으로 쏘아졌다.
-콰르르르릉!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환신과 천망의 초월자들이 전력으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