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441화
181. 공전절후(2)
진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는 하수 시절.
조법 고수는 각종 약물과 도구 등을 이용해 손가락 끝을 극도로 단련시킨다.
근력을 중시하는 소림사 조법 고수는 손가락으로 청동 향로를 찢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허나 사마외도가 조법을 즐겨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손가락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피부에 독을 바르면 한 수 한 수 생명을 노리는 독랄한 일격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기공을 다루는 게 수월해지는 절정고수부터 조법의 위력은 더욱 막강해진다.
손가락 끝에서 검기를 뽑아 그 날카로움으로 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음양오행으로 대변되는 여러 계열의 내가기공이 더해지면 어떨까?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한때 구음백골조라는 광세절학으로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 있을 정도니.
조법은 실로 무서운 무공이었다.
허나 조법은 이기어검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천령의 절대고수에 올랐을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손가락 끝에서 뽑아낸 검강이 허공을 자유자재로 가르며 적을 찢어발긴다.
날아다니는 귀신의 손톱인 것이다.
그리고 조법을 천망의 초월자가 펼치면 이런 광경이 펼쳐지게 된다.
환신의 손가락이 허공을 그었다.
환신이 얻은 수많은 무공 중 뇌기를 다루는 뇌공도 존재했다.
허나 그 어떤 뇌공도 율약벽의 전뢰신기에는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한다.
또한 전뢰신기의 뇌기를 다루는 부분은 가져올 수 있어도 전자기력을 다루는 부분은 훔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중력과 대등한 전자기력이라 그런가?’
율약벽만의 미묘한 감각으로 전자기력을 다루는 구결이 일종의 암호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환신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하지만 대놓고 독문무공 구결 좀 가르쳐 달라고 말할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았다.
때문에 뇌명조를 자신의 주력 내가기공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약간 손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번쩍!
하늘에 2개의 태양이 떴다.
옥황봉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바로 광자대력기.
환신의 주력 내가기공 중에서도 진기 유동에서 최속을 자랑하는 광자대력기라면 뇌명조를 펼치는 데 부족함이 없겠지.
여기에 천망의 초월자 특유의 시간축 조작이 가미된다면?
-번쩍! 번쩍! 번쩍!
옥황봉에 수천 개의 손톱이 떠 있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구름 위에 둥둥 뜬 채 환신과 묵시흔의 생사결을 지켜보던 율무극이 고개를 돌려 율약벽을 보았다.
“벽아야. 저건 뇌명조 아니냐.”
“맞아요, 할아버님.”
“네가 전수한 것이냐?”
“전 신이에게 한 번도 무공을 전수한 적이 없어요. 훔쳤겠죠, 언제나처럼.”
“후훗, 그래. 무공 하나는 참으로 알차게 훔치는 녀석이지. 할애비도 밑천을 제법 털렸고.”
“무공이란 저렇듯 끊임없이 흘러야 하는 법이에요. 그러니 전 상관없어요. 그리고 뇌명조가 신이에게 넘어가 신이의 방식으로 펼쳐지는 이상 그건 더 이상 뇌명조라 볼 수 없을 거예요.”
율약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광명조(光鳴爪). 광명조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요.”
“빛의 울음이라. 참으로 적절하구나.”
묵시흔은 광명조가 자신의 원영신을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오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광명조의 궤적에 고정돼 있었다.
‘훌륭하군.’
뇌명조는 천하에 손꼽힐 만한 완성도를 지닌 조법이다.
묵시흔이 보기에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했다.
‘벽아의 재능이 참으로 출중하구나.’
과연 린봉귀용의 재능 중 봉황지재라고 할까.
묵시흔 역시 영귀지재의 소유자니 십자건곤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제법 죽이 잘 맞았다.
‘허나 신이의 재능에는 미치지 못하지.’
보라!
자신을 노리고 아광속으로 날아오는 저 기검의 향연을.
양손이 영자로 화해 자신을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오고 있지 않은가.
회피할 구석 따위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런 빈틈을 드러낼 정도로 환신은 허술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영악했다.
근본이 낭인이기 때문일까?
일체의 허례허식 없이 실용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했다.
‘낭인이 그런 구석이 있지.’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자신을 노리고 무시무시한 빛의 손톱이 쇄도하고 있음에도 그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묵시흔이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
말해 무엇 하랴.
그가 바로 고금제일인 묵시흔이기 때문이다.
뒷짐을 지고 있던 묵시흔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화르르르륵!
옥황봉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쾅! 쾅! 콰카캉!
화염의 손톱이 빛의 손톱을 차례로 깨뜨렸다.
‘뭐, 뭐야!’
환신은 재빨리 변초를 가미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묵시흔은 마치 환신의 투로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손톱을 모조리 분질러 버렸다.
영자 변동성조차 모두 그의 예측하에 있었다.
‘……무섭다.’
이것이 고금제일인.
드높은 천공에서 굽어보는 듯한 초수의 우위 아닌가.
환신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돼!’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녹혈루의 난과 2차 쟁투강호 시대를 거쳐 십전비무행의 고난마저 이겨냈다.
환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 모두가 가르침을 줬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야.’
입이 찢어져도 앓는 소리 따위 내뱉을 수 없었다.
‘훔친다.’
묵시흔의 저 완벽하기 그지없는 초식 운용을 훔치는 것이다.
환신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일렁였다.
월안 발동이다.
훔친 것과 동시에 기린지재의 천재성으로 이를 반영해 실시간으로 경지를 높인다.
이것이 환신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환신은 광명조를 연환식으로 펼쳤다.
연환식은 그저 공격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수비 역시 중요했다.
빛의 손톱으로 화염의 손톱을 깨뜨린다.
화염의 손톱이 깨뜨린 자리를 빛의 손톱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일종의 땅따먹기였다.
이와 같은 일이 끝도 없이 벌어졌다.
구름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문류후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름답군.”
“동의한다.”
“응?”
고개를 돌리자 환신에게 당해 영자 세계 밖으로 추방당했던 척무상이 그곳에 있었다.
“돌아왔군.”
“아아.”
척무상의 옆을 보니 광오 반문건도 있었다.
“후훗, 문건. 크게 곤욕을 치렀던데.”
“……닥쳐라.”
“쯧쯧.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겐가? 저걸 보고도?”
반문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환신과 묵시흔은 서로 추수를 펼치는 것마냥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데 저런 호흡이라니.
실로 놀라웠다.
“……대단하긴 하군.”
“문건. 이제 신이는 자네가 죽이기 요원해졌어.”
“들었다. 1만 초 비무를 벌였다지? 내가 있었으면 제대로 뒤를 노렸을 텐데.”
“그럴 줄 알고 자네를 먼저 제거했겠지.”
“……영악한 놈.”
본래 이런 설계는 자객의 전공이다.
헌데 여기서도 환신(과 휘하 양대 군사)에게 밀렸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물 뿐.
“신이는 1만 초 비무에서도 승리했으니 자네도 이제 그만 인정하게.”
“…….”
“완고하긴.”
“신중한 거다.”
반문건의 눈은 환신과 묵시흔에게 고정돼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알지 못했으나 반문건은 묵시흔 역시 몇 번이나 암살을 시도한 전적이 있었다.
‘허나 모두 실패했지.’
환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든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 죽였어야 했나?’
환신과 반문건 최초의 조우.
녹혈루의 난에서 승리하고 승전연을 위해 양번에 모였을 당시 반문건은 환신을 찾아갔다.
당시 환신은 천령의 절대고수에 불과하던 시절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벽옥도로 목을 딸 수 있었다.
묵시흔과 고천이 환신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은밀히 죽이면 그만이니까.
허나 반문건은 환신을 죽이지 않았다.
자객의 예감에 환신이 언젠가 위협적인 사냥감이 될 것임을 알았음에도 그리했다.
‘원칙을 무너뜨릴 수 없지.’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반문건이란 남자는 그냥 피에 미친 살인귀일 뿐이다.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환신. 나는 언제나 너를 노릴 것이다.’
그리 생각한 순간.
“응?”
“호오.”
환신과 묵시흔의 수 싸움은 점입가경으로 흘렀다.
-쾅! 콰쾅! 콰쾅!
광검의 경지에 이른 조법 대결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직접 손을 섞는 환신으로서는 묵시흔의 기예에 경외심을 느꼈다.
‘와, 진짜 이 양반 해도 해도 너무하네. 아무리 초수를 훔쳐도 그보다 더한 걸 계속 보여주고 있으니.’
묵시흔은 그야말로 깨달음의 보고였다.
이를 악물고 초수를 겨루는데 묵시흔이 입을 열었다.
“신아.”
“아, 바빠 죽겠는데 왜요!”
여유가 넘치는 묵시흔의 모습에 괜히 빈정 상한다.
“너는 양극합벽신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음과 양의 양극을 하나로 융합하는 수법 아닌가요?”
“바로 그렇다.”
그때 묵시흔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허면 내가 지금까지 왜 음한지기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예?”
-서걱!
“크윽!”
환신은 자신의 원영신 일부가 뭉텅이로 잘려 나간 걸 깨달았다.
못해도 3푼은 될 것이다.
‘손가락 하나가 잘린 느낌인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칼날.
‘음경이구나!’
음한지기의 은밀한 속성을 이용한 한 수.
묵시흔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다시 뒷짐을 지었다.
“나의 공력은 음양이기에 기원한다. 십자건곤 역시 음양이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지.”
“그렇군요.”
“신이 너도 음경의 유용함을 잘 알 것이다. 나 역시 만주와 북해를 주유할 당시 요긴하게 써먹었지. 그 이후 살황조를 펼칠 때 언제나 음경을 사용해 왔다.”
“그렇군요.”
“허나 살황조의 진정한 위력은 이게 아니지.”
“……아니라고요?”
묵시흔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십자살 일점 교차 묘리는 살황조를 펼치던 시절 이미 설계가 끝났다는 뜻이다.”
“?!”
“자, 본격적으로 놀아보자꾸나.”
순간 묵시흔은 귀신같이 보신경을 펼쳐 환신에게 접근했다.
묵시흔의 좌수에 음기가, 우수엔 양기가 깃들었다.
-번쩍!
묵빛 십자가가 허공을 갈랐다.
환신 역시 양손을 휘저었다.
-번쩍!
회색 십자가가 하늘을 수놓는다.
-번쩍! 번쩍! 번쩍!
회색 십자가와 묵빛 십자가가 수도 없이 창천을 갈랐다.
태산 아래에서 두 천망의 초월자의 싸움을 지켜보던 무림인들 눈엔 하늘이 십자가로 뒤덮인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아! 실로 아름답도다!”
“저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무의 정수!”
남궁천은 팔짱을 낀 채 환신과 묵시흔이 자아내는 십자가의 향연을 응시했다.
‘신이는 이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구나.’
처음 그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환신의 존재는 경이 그 자체였다.
‘신아, 이기거라.’
이겨서 고금제일의 자리를 가져가라.
‘언젠가 천망의 벽을 넘어 네게 도전할 수 있도록.’
바로 그때.
확연히 회색 십자가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급속히 무게 추가 묵빛 십자가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쨍그랑!
허공이 깨지며 환신과 묵시흔은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100만 무림 동도는 그 광경을 보며 일제히 포권했다.
두 무신에 대한 경외의 표시였다.
과연 누가 승리할까?
이 싸움은 영자 세계에서 결판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