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445화 (445/447)

기연에 미친 무공천재 445화

183. 대흑신

“으아아아아악!”

끝도 없이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

반중력을 펼치고 싶어도 어째선지 중력자를 움직일 수 없었다.

또 전신이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당연히 보신경도 펼칠 수 없었다.

완전히 무력했다.

‘이런 젠장! 죽을 고생 해서 업적도 100%를 달성했더니 이게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

환신은 자신이 멀쩡히 서 있는 걸 깨달았다.

헌데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과거 묵시흔의 사념체를 만났던 심상계와 같이 온통 흰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흠, 전형적인데.’

“뭐가 전형적이지?”

“에?”

환신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이탈리안 정장을 걸친 소름 끼치는 미남자가 편안한 얼굴로 윙체어에 앉아 있었다.

백색 공간에 검은 정장이라니.

뭔가 이질적이다.

“아, 지금 상황이 전형적이라는 건가? 생각해 보니 그렇네. 하하핫!”

“지금 제 생각을 읽으신 거예요?”

“보면 알잖아.”

“아니, 이건 사생활 침해 아닌가요?”

“하하하! 그냥 들리는 거니까 좀 봐줘.”

“…….”

검은 정장 남자의 말에 환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망의 초월자인 환신의 정신은 천주를 통해 보호받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색 공간에 내던져진 이 순간조차 심혼에 쌓아 올린 천주 ‘영겁’은 건재했다.

헌데 검은 정장 남자는 천망의 초월자인 자신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온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는 천계의 대신조차 불가능했다.

‘이런 게 가능한 건…… 대군단뿐이지.’

하나의 세계가 아닌, 외우주의 악신으로부터 와류우주 전체를 수호하는 집단.

대군단에 소속된 존재가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그중에서도 환신 자신과 인연이 깊은 존재는 오직 한 명뿐.

검은 정장 남자는 씨익 웃으며 윙체어에 편하게 몸을 기댄 채 말했다.

“그래. 내가 이 세계에서 말하는 대흑신. 대군단의 주인이야.”

환신은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대흑신!’

대군단의 주인이자 외우주의 악신으로부터 와류우주를 수호하는 존재.

검은 황제, 대흑신, 야훼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자.

만물의 아버지.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업적도 100%를 달성하면 혹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기분이 묘하지?”

“……제 생각 좀 그만 읽으시죠?”

“볼텍스 우주의 모든 존재는 나의 아이들이라고 보면 돼. 신이 너도 예외는 아니야. 어쩔 수 없으니 차라리 생각한 걸 그냥 입으로 내뱉어. 그게 속 편할 거다.”

“뭐, 좋습니다.”

“그보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거야? 거기 앉아.”

대흑신이 가리킨 곳을 보자 그곳에 회색 소파가 있었다.

“……언제 이런 게.”

“자자, 빨리 앉으라고.”

“예, 예.”

환신은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환신은 힐끔 대흑신을 응시했다.

“저, 근데 왜 정장이죠?”

“왜 무복이나 전포가 아니냐고? 그야 신이 네게 가장 익숙한 차림새가 이거기 때문이지. 만약 신이 네가 벼룩이었으면 난 벼룩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거야.”

“아하.”

“신이 네 정신이 강호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았다는 증거기도 하고.”

“제가 여기 떨어진 지 고작 3, 4년인데 그렇게 빨리 본래 세계를 잊을 순 없죠.”

“맞아. 또한 그게 신이 네게 기대한 부분이기도 하고.”

환신은 대흑신 쪽으로 바짝 다가가 물었다.

“전 아직도 의문이에요. 대체 왜 제가 이 세계에 떨어진 거죠?”

대흑신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신아. 제천을 플레이한 인간들 중 업적도 99%에 도달한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거라고 생각해?”

“글쎄요. 제법 되지 않을까요?”

대흑신은 검지를 들었다.

“한 명.”

“한 명이요?”

“그래. 한 명. 너 하나야.”

“……저 하나라고요?”

“그래. 너 하나.”

“…….”

대흑신은 깍지 낀 채 환신 쪽으로 몸을 내밀며 말했다.

“늦었지만 축하해. 신이 너는 무려 1억 명이 벌인 레이스의 최종 승자야.”

“자, 잠깐! 제천을 플레이한 사람이 1억 명이나 된다고요?”

“어. 불법 다운로드까지 포함하면 그 정도 될 거야. 그중 중국 지분 절반 정도 돼.”

중국이 중국 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 레이스에서 승리한 대가로 이 세계에 내던져진 거고요?”

“그렇지.”

“이런 젠장!”

환신은 화를 버럭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1억 명이 벌인 레이스의 최종 승자가 된 건 기쁘다.

하지만 그 대가라는 게 맨몸으로 다른 세상에 내쳐지는 거라니.

이 무슨?!

대흑신은 정색하며 말했다.

“신이 네가 원한 거잖아.”

“……뭐라고요?”

“신이 네가 원한 거라고.”

대흑신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앞에선 솔직해도 돼. 그 당시 넌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어.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잖아. 방구석 게이머가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존재. 그 방편이 네겐 게임이었고. 안 그래?”

환신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려 10년이다.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제천에 푹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현실 도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

부모조차 자신에게 무관심한, 버림받은 그 느낌이 싫었다.

그래.

대흑신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도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도피처로 선택한 게 제천이라는 게임이었을 뿐이고.

“난 네 바람을 들어준 거뿐이야. 자, 솔직히 말해봐. 이 세계에 와서 좋았어, 싫었어?”

환신은 자신의 속마음을 직시했다.

수많은 고난이 있었다.

태음칠절맥으로 하루에 일곱 번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지.

죽을 고비 따위는 셀 수 없이 넘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참으로 충실했다.

이 세계가 싫냐고?

그럴 리가.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좋았어요.”

“거봐. 솔직하니까 좋잖아.”

“하아.”

대흑신 앞에선 아무것도 감출 수 없었다.

진이 쏙 빠진 환신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째서 제게 진실을 알려주시는 거죠? 그것도 이렇게 직접 행차해서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명 등 볼텍스 우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 내겐 너와 보내는 이 시간조차 그저 무수한 특이점 중 하나일 뿐이야.”

“뭔가 어렵네요.”

“그냥 넘어가. 그리고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 없어. 너는 그만큼 특별하니까.”

“뭐, 좋아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거죠?”

“약속했잖아. 업적도 100%를 달성하면 보상을 지급하겠다고.”

“아!”

환신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을 떠올렸다.

갑자기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지.

-업적도 100%를 달성하십시오. 성공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진짜 주는 거였어요?”

“물론. 자, 그러니 말해.”

대흑신은 유혹하듯 속삭였다.

“네가 원하면 본래 세계로 보내줄 수도 있어.”

“……진짜요?”

“아아.”

환신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 힘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물론.”

“제가 가서 깽판 치면 어쩌려고요?”

“네 명운은 아직 본래 세계와 연결돼 있어. 원하는 대로 세계를 변화시킬 자격이 있지.”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국가는 물론이고 체제를 전복해도 상관없어. 에너지 생명체인 천망의 초월자에게 물리력 따위 통하지 않아. 재래식 무기는 원영신을 소실시킬 수 없고 핵병기는 파공축지로 피하면 되지. 무량겁을 펼치면 애초에 공격을 맞히지도 못해. 한마디로 무적인 거지. 원한다면 전 세계 국가수반을 모두 죽이고 네가 지구 유일 황제가 될 수도 있을 거야.”

“…….”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업적도 100%를 달성하기 위해 겪은 고통을 보상받는 거지. 자, 말해봐. 그걸 원해?”

악마의 그것보다 달콤한 유혹.

환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환신을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전 그걸 원하지 않아요.”

“진심이야?”

“예.”

환신의 얼굴에 점차 확신이 깃들었다.

“내가 업적도 100%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었다고 그 고통을 타인에게 강요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죠.”

대흑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게 내가 신이 너를 선택한 이유지.”

“아무튼. 그럼 제가 원하는 소원은 뭐든 들어주시는 거죠?”

“그래. 뭐든 말해봐.”

환신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끊어주세요.”

“뭘?”

“본래 세계와 이어져 있는 제 명운을요.”

“겨우 그거야?”

“겨우 그거라뇨!”

환신은 버럭 화를 내며 강변했다.

“전 이 세계가 좋아요. 정말로요. 지금까지 고생고생 해가며 쌓아 올린 힘을 누구나 인정하고, 또 존중해 주잖아요. 대흑신의 말씀대로예요. 전 현실을 도피했어요. 그 결과 이 세계에 내던져 졌죠. 강호를 종횡하며 깨달았어요. 이 세계의 1년은 본래 세계의 100년보다 가치 있다고요. 이 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3년 이상이에요. 이곳에 저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죠. 그중에는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저에게 아낌없이 모든 걸 내주는 사람, 저를 진정을 아껴주는 사람, 그리고 저를 진정으로 증오하는 사람까지 있어요. 모든 인연이 이 세계에 있어요. 그 인연이 환신이란 하나의 인간을 만들죠. 그걸 버리고 떠나라고요? 그런 바보짓이 세상에 또 어딨어요.”

대흑신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맞아. 문명이 고도화되고, 통신이 발달될수록 인간은 인연의 가치를 소홀히 하지. 대신 얇고 피상적인 관계에 쓸데없이 몰두해. 신이 너는 그 허울을 모두 던져 버리고 진정 깊은 인연을 선택했구나.”

“맞아요.”

“좋아. 네 소원, 접수했다.”

대흑신은 왼손 검지와 엄지를 들어 무언가를 잡았다.

“……어?”

그곳에 금색 실이 있었다.

어느새 대흑신의 오른손엔 은색 가위가 들려 있었다.

“이 실은 네 명운. 이 가위는 명운을 자르는 가위지. 너와 본래 세계를 연결하는 명운의 실을 자르면 넌 완전히 이 세계에 예속돼.”

“아.”

“다시 한번 물을게. 정말 이걸 원하는 거 맞지?”

“예.”

“좋아. 그럼 끊는다.”

대흑신이 명운의 실을 자르려던 그때.

환신의 머릿속에 전류가 번뜩였다.

“헉! 자, 잠깐만요!”

“응?”

“실을 자르기 전에 부탁이 하나 있어요.”

“흠, 뭔데.”

“……콜라. 명운 끊기 전에 콜라 한 병 정도는 괜찮잖아요.”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환신의 모습에 대흑신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핫! 이 와중에 콜라라니! 진짜 신이 너답구나. 좋아.”

환신은 어느새 자신의 손에 콜라가 들려 있는 걸 깨달았다.

“자, 시원하게 들이켜라고.”

“예!”

환신은 망설임 없이 콜라를 마셨다.

“크으, 이거지!”

세상에 이보다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건 달리 없을 것이다.

“충분히 즐겼어?”

“예!”

“그럼…… 끊는다.”

대흑신은 가위로 금색 실을 잘랐다.

-뚝!

환신은 눈을 꾹 감았다.

아무 변화가 없자 조용히 눈을 떴다.

“응? 뭐 크게 변한 게 없는데요.”

“후훗, 본래 세계의 네 이름,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 봐.”

“내 이름……. 어?”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본래도 가물가물했는데 지금은 무언가로 잘라낸 것마냥 완전히 사라졌다.

자신의 얼굴, 부모님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로써 신이 너는 완전한 이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 너의 명운은 오롯이 이 세계에 속하게 될 거야.”

대흑신의 선언에 환신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째서일까.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벽 누나.’

이젠 좀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대흑신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세계의 비밀과 신이 네가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해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