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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19화 (19/135)

19화 지옥의 하수인들 (2)

게이트의 출현은 항상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동반한다.

애초에 차원종이 넘어온다는 현상 자체가 이계와의 통로가 이어진다는 것이라서, 게이트가 열리는 지점은 국소적으로나마 테라포밍이 일어나는 현상이 관찰되곤 하니까.

이번에 열리는 게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상태로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 댄다.

난 이런 거라도 안 쓰면 멀리 있는 것도 못 보는 일반인이라서 말이지.

육안으로도 관찰될 만한 수준의 마력 격류가 휘몰아치더니, 공간을 통째로 일그러트리는 폭풍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폭풍 중심에 있는 공간이, 마치 가위로 자른 것처럼 쭉 찢어졌다.

“와우.”

게임에서도 이미 본 적 있는 연출이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스케일이 다르다.

하늘이 붉게 물든다. 대기가 달아오르고, 땅바닥은 거미줄 같은 실금이 쩍쩍 갈라지더니 그 위로 불길한 색깔의 마법진이 연달아 새겨진다.

그리고 그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차원종들.

“진짜 좆같이 생겼다…….”

그런 중얼거림이 절로 나오는 디자인들이다.

이런 쓰레기 게임을 만든 놈들의 악취미는 적 캐릭터를 만들 때도 여지없이 발휘되어, 그야말로 뒤틀린 상상력이 듬뿍 들어간 모습들이다.

대부분은 그저 만들다 만 찰흙 인형 같은 형태들이지.

다만 찰흙 대신 아주 정교하게 표현된 인간의 신체가 재료로 사용된 모습이라고 한다면, 대충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게이트 출현 관측됐습니다. 좌표 전송합니다.>

손에 들려 있는 통신기에서 그런 무전이 흘러나왔다.

이번 게이트 토벌 작전에 참석한 전원에게 공유되는 채널이다.

일단 나와 파에톤, 그리고 윤겨울은 이 작전에서 빠져 있던 셈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이쪽 채널에 접근하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듣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능하지.

<수신 양호. 해당 지점으로 이동하겠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 떠다니던 협회 소속의 수송기들이 곧바로 기체의 머리를 똑같은 방향으로 돌렸다.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력들도 곧바로 할 일을 하러 간다는 무전이 연달아 채널에 울려 퍼졌다.

자연스럽게 서로 연계하여 척척 이어지는 대응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깔끔한 조직력이다. 전 세계에서 신뢰를 받으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한다는 것처럼.

“일 잘하네, 역시.”

그런 평가는 게이트에 열린 차원종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공격용 술식과 마력을 담은 화기들이 섞인 포격, 지상에서 각개로 나뉘어 맡은 구역 안에서 체계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헌터들.

EX급으로 관측된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차원종들답게 나름 선전하는 전투력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봤자 1초 만에 죽을 걸 3초로 연장하는 수준의 저항이다.

“역시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길드라도 협회에 못 비비는 이유가 있다니까…….”

물론 초대형 길드 정도 되면 협회도 그렇게 마찰을 빚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그런데도 만약 정말로 싸울 일이 생긴다면 피해는 많이 볼지언정 협회가 질 일은 없을 것이다.

마수와 차원종이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이 험악한 세계관에서도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헌터 협회 그 자체니까.

[확실히 저 정도의 집단이 있는데도 큰 피해가 나왔다면야. 그대가 말한 대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겠군.]

“그래. 그러니까 저 녀석들의 평판을 위해 우리가 해 줄 일이 뭐다?”

따라서 괜히 이런저런 곤란한 사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협회는 지금의 평판을 계속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연이어 다가올 재앙 같은 사태들 속에서, 구심점이 똑바로 박혀 있고 아니고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거든.

[깔끔하고 빠르게 사태를 끝내는 것이지. 두 번 말할 필요는 없네.]

그렇게 나오셔야지.

씩 웃으며 다시 쌍안경에 눈을 들이민다.

게이트가 열린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싶은 수준인데, 그사이에 차원종들은 거의 다 제압당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혼자서만 총기를 사용하고 있는 헌터의 존재다.

다른 놈들은 다 냉병기에 마력을 담아 휘두르는 와중에 혼자서만 온갖 종류의 개인 화기를 통해 주변에 총알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총기는 삼류나 다룬다는 인식과 다르게, 제법 강해 보이는 차원종도 한 발에 한 놈씩 픽픽 쓰러져 나간다.

이 세계관에서 총으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밖에 없다.

뭐.

만나서 반가워요, 키건 드라이스데일.

“이제 곧이네.”

키건의 활약을 포함한 헌터들의 분전 덕분에 차원종은 전멸 직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통신기에서 무전이 흘러나왔다.

<잠깐. 모두 동작 그만. 뭔가 이상해.>

그래.

2페이즈로 돌입할 때다.

* * *

<이놈들 분열한다!>

<젠장! 공격이 안 들어가!>

다급한 감정이 섞인 무전이 연달아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까 전의 침착한 분위기와 상반된 혼잡한 상태다.

<본부, 본부! 지금까지 상대한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차원종이야! 근처에 있는 민간인들 당장 규정 거리 이상으로 대피시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뭐? 누가 그런 일을 미리…….>

그거야 상황이 개판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내가 한 일이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쌍안경을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핀다.

“살벌하네…….”

분열한 차원종들이 헌터들의 포위망을 벗어나 일제히 이 병원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흐물흐물하게 녹아 이제는 거의 육편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건물의 외벽과 도로를 타고 꾸물꾸물 기어오는 모습은 거의 악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겠지.

뭐, 이 근처에 민간인이라고는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

차원종의 먹잇감이 되어 줄 ‘약한 먹이’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놈들이 병원 쪽으로 접근한다! 막아!>

그런 통신과 함께 다시 한번 차원종들에게 일제히 포격이 쏟아졌지만, 대다수의 차원종은 그것을 맞고도 멀쩡한 모습이다.

뭐, 저 상태가 되면 애초에 웬만한 공격 가지고는 끄떡도 안하는 내구력에 재생력까지 보너스로 얹어져 있으니까.

그런 악랄한 조합이기 때문에, 원작에서도 손을 못 써서 그렇게나 사람이 죽어 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아, 들립니까?”

저런 녀석들을 해결해 주려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뭐야? 누구지?>

“흑성 랭크 헌터 오진환입니다. 원래는 여기다 말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잠깐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

<비인가 인원의 통신은 금지되어 있어! 본부, 빨리 조치를…….>

“지금은 원칙 따질 때가 아니잖아, 이 양반아. 애초에 여기 사람들 이쪽에 전부 모아 놓은 것도 나야. 잠깐이면 되니까 닥치고 들어.”

<…….>

하도 당당하게 지껄이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인지, 현장 지휘관처럼 보이는 인간이 입을 다물었다.

내 말에 납득해 준 것이 아니라 기가 차서 잠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발언을 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댁들도 보시다시피, 이 녀석들 맷집이 꽤 좋거든? 통상적인 공격이 아니라 아예 폭격을 쏟아붓는 수준이 아니면 못 잡아.”

통상적인 헌터들이 이 차원종들을 붙잡으려면 꽤 진득하니 오래 싸워서 치명적인 피해를 누적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싸워 주기는 커녕, 사방팔방으로 도망 다니면서 민간인들을 잡아먹고 다녔으니 그걸 막을 수단이 없어서 도시 하나가 통째로 작살 난 것이지.

그래.

이놈들을 ‘한곳에 동시에 붙잡아 둘 수단이 없어서’ 그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병원이라는 한 가지 목표물을 향해 몰려오는 현재의 상황은, 어떻게 보면 이놈들이 알아서 한곳에 붙잡히는 그런 상황이겠지.

“그런데 이 녀석들 전부 다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네. 뭔가 터지는 것 때려 박기 딱 좋게 뭉쳐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들, 비상시에 대비한다면서 정신 나간 무기 많이 가지고 다니잖아. 집속탄이든 네이팜이든 뭐든.”

게임 안에서 호출할 수 있는 협회의 공중 지원은 그야말로 혼이 나갈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좁은 지역에 모든 화기를 집중해서 투사한다면, 저런 무지막지한 내구력을 자랑하는 차원종들도 버티지 못할 만큼.

내 계획도 처음부터 이놈들이 미친 화력광들이라는 것을 전제에 두고 작성된 것이니까.

“그거 이쪽에 전부 다 쏟아부어.”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비명 같은 욕설이 통신기 건너편에서 터져 나왔다.

하긴, 말만 들어 보면 정신 나간 소리 그 자체다.

민간인들로 그득그득 들어차 있는 건물 근처에다가 폭격을 쏟아부으라는데 어떤 지휘관이 좋다고 박수를 칠까.

하지만 말이야.

“이쪽도 미친 인간은 아닌데.”

<뭐?>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 제안도 하는 거 아니겠어?”

씩 웃으며 말을 받아 낸다.

“당신들은 때리는 것만 생각하라고.”

뭐, 직업에도 수호자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사람 지키는 건 내가 할 테니까. ”

* * *

“수호령님, 슬슬 준비하자.”

[그래.]

품에서 미리 챙겨 온 물건을 꺼내든다.

흑은의 보주.

하나만 발라도 꽤 효과를 본 마당에, 하나를 더 바른다면 어디까지 강화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저지를 일을 생각하면 이것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모자라진 않겠지?”

[차고 넘치네. 바닥에 내려놓게. 내가 알아서 사용할 테니.]

요청에 맞춰 보주를 내리고,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좋아.”

딱 봐도 무시무시해 보이는 중화기들이 잔뜩 실려 있는 비행체들이 병원 건물 위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협회는 제법 훌륭한 집단이며, 따라서 EX급 게이트 사태에 현장 지휘관으로 파견된 인재 역시 능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내가 말한 폭격을 제외한 것들 중에서 자신들이 저 차원종에게 피해를 입힐 수단이 없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렸을 거란 의미다.

그렇다면 이어질 판단 역시 명확하다.

차원종들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걸 가만히 손 놓고 바라보느니, 차라리 확신이 없더라도 내 쪽에 걸어 보는 것이지.

<신호에 맞춰 공격 지시하겠습니다. 전원 대기.>

잔뜩 긴장된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하긴, 혹시라도 내 말이 틀린다면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결과가 나올 테니까.

“보자… 거의 다 왔네.”

빠른 속도로 기어오는 차원종들은 이제 내 시야에도 똑똑히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수호령 님, 혹시 시간 필요해?”

[바라는 때에 시작하게.]

그럼 지체할 이유도 없다.

통신기를 잡고 말한다.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요. 이쪽은 끝났으니까.”

<입감 완료했습니다. 20초 후에 전탄 사격 개시합니다.>

그리고 통신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몸을 휙 날린 수호령님의 몸이 통째로 내 팔 안쪽에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팔 끄트머리에 있던 하얀 문신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깜짝이야. 뭐야 이거.”

[작업의 효율을 위한 간단한 조치지.]

바닥에 놓여 있던 흑은의 보주 역시, 흐물흐물하게 녹아 그 눈부신 빛에 스며들었다.

광채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얀 빛이 터지듯이 치솟아 올라 근처를 뒤덮는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빛이 저희끼리 견고하게 얽혀 나간다.

집적하면서 확장되어, 건물이 있는 일대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반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마무리.

단단하게 형태를 갖추고 있는 반구의 중앙으로, 내 팔에 새겨져 있는 문신과 똑같은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수호령님이 내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끝났네.]

“…뭐야. 엄청 간단하게 끝났는데? 확실한 것 맞아?”

[시험해 보면 되지 않겠는가?]

“…….”

아니, 확실하지 않으면 다같이 죽는 마당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수호령님이 헛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통신기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 인원, 사격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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