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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24화 (24/135)

24화 영입

영상 속의 남자가 거대한 반구 형태의 역장을 생성해 낸다.

이어서 그 위에 무지막지한 수준의 폭격이 쏟아진다. 화면 너머로 봐도 그 위력이 느껴질 정도로 아찔한 폭력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모든 폭격이 끝난 이후로도, 역장은 고고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쓸 만한 놈이란 말이야.”

협회장이 그렇게 말하며 영상을 정지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흑성이란 놈들은 여러 명 봐 왔는데, 이놈은 그중에서도 걸물이야. 다른 하이에나 새끼들이 채 가는 꼴은 못 봐.”

그러니까 키건을 보내서 어떤 녀석인지 확인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친히 행차하여 얼굴을 확인한 것이다.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감히 자신이 누구라고 맞먹으려고 드는 꼴은 대단히 아니꼬웠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 준 배짱이나 실력이나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놈이었다.

그러니, 그놈이 멍청하게도 자신의 아래로 들어오겠다고 먼저 제시한 순간부터 이미 정해 놨다.

이 녀석은 절대 자신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마음에 든 것은 무조건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세상이 바로 나의 장난감 상자이니, 무엇이 자신을 막을 수 있으리오.

“봄아.”

그리고 가장 쓸 만한 ‘장난감’을 호출하자, 옆에 직립해 있던 여자가 자신을 슬쩍 돌아보았다.

“네가 보기에는 어때?”

“실력이 좋으신 분입니다.”

그렇게만 말하고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어 버린다.

협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처음에 데리고 왔을 때는 그래도 괴롭히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완전히 반응이 다 죽어 버렸다.

하지만 이 여자 역시 실력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모든 장난감 중에서도, 이 여자의 발끝이라도 따라올 수 있는 자는 한 손으로 꼽을 수준이니까.

적어도 그가 눈독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라는 것은 분명히 증명된 셈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윤봄을 쳐다보는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 녀석 ‘길들일’ 일이 생겼을 때, 저번처럼 병신같이 굴면 안 된다?”

“…예.”

“혹시 까먹을지도 몰라서 알려 주는 건데.”

그가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동작처럼 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윤봄이 이를 악다물었다.

전신의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 그녀를 엄습하고 있었다.

“너, 내가 말하는 명령에는 ‘절대복종’이 전제인 것 알지? 그러려고 그 비싼 돈을 들여서 네 몸에다가 기계까지 박아 넣었는데?”

“…….”

“그런 성의까지 보였는데 내 말을 들어줄 수가 없으면, 봄아. 슬픈 일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

“너도 네 손으로 직접 동생을 죽이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야?”

윤봄의 몸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아니면 이미 비슷한 일을 한번 해 봐서 별 거부감이 없는 건가? 그렇지는 않지?”

“…….”

“대답해.”

“…예.”

협회장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한 그릇 더 시키고 싶은데…….”

“주는 대로 처드세요.”

숟가락으로 괜히 국밥 뚝배기를 휘적거리고 있는 윤겨울을 보고 있자니 그런 소리가 단번에 흘러나왔다.

네가 뭘 가릴 처지라고 투정을 부리고 앉아 있냐.

녀석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는 모양인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한 술 두 술 떠먹기 시작했다.

“너, 그런데 뭐 사 먹기도 힘드냐? 모아 둔 것도 없어?”

아무리 이 녀석이 거지라도 먹을 돈까지 없는 것은 솔직히 나도 이해가 힘들다.

게임 안에서 궁핍하게 산다는 묘사야 여러 번 등장했지만, 내가 직접 흑성 랭크를 달아보니까 이 정도까지 사람이 가난해지기도 힘든데 말이지.

헌터의 수입은 실적에 극단적으로 의존한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랭크가 높다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소소한 자금이 계속해서 들어오기 마련이니까.

그러자 윤겨울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돈 나갈 구석이 많으니까 그렇지.”

“네가 그런 게 어디 있어? 만날 사람도 없잖아?”

“…….”

녀석이 치켜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당당하게 마주 봐 준다.

뭐. 맞잖아.

“…네가 저번에 나 근무하던 곳에서 물건 훔쳐 갔잖아.”

아, 그랬었지.

이 녀석 도움으로 박물관에서 흑은의 보주를 들고나왔던 것 말하는 것이다.

“결국 잘렸냐?”

“잘렸… 다고 해야 할까. 내 발로 직접 나왔어.”

“어?”

“고용주가 기분 나빠서. 피해 금액이야 안 물어 줘도 괜찮으니까 자꾸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하더라고.”

한숨을 푹 쉬면서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표정에는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때 박물관에서 보았던 샌님 같은 녀석을 떠올린다. 안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녀석한테 이런저런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반응을 보니까 그 이후로도 어지간히 치근거렸나 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하고 나왔어. 그래서 그쪽에 돈 줘야 해. 그쯤 되니까 갑자기 네가 훔쳐 간 유물 값도 얹어서 물어내라던데.”

“그걸 또 다 물어 줬어?”

“…뭐, 내가 잘못한 건 맞으니까. 애초에 너랑 내기해서 진 게 잘못이지.”

그런 구석에서 또 쓸데없이 성실한 건 여전하네.

아무리 흑은의 보주가 실질적인 성능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다지만, 아무튼 유물은 유물이다. 한두 푼은 아니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새삼 뭔가를 깨닫는다.

“어느 정도는 내 탓이네?”

“어느 정도?”

기가 차다는 목소리가 돌아왔지만, 아무튼 그것만으로는 이 녀석이 이 정도로 거지라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도 흑성쯤 되니까 협회에서 돈도 나올 거고, 의뢰를 받아서 직접 뛸 수도 있잖아. 왜 밥까지 굶고 다니는 건데?”

“…….”

재차 질문하자 녀석이 시선을 슬쩍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게임에서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짚이는 구석이 있는 반응이다.

“너 혹시 이상한 거에 돈 뿌리고 다니냐?”

“…뭐래. 그런 적 없는데.”

“마력 보유량 늘리는 환단, 보약, 반사 신경 늘려 주는 시술…….”

내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단어들에 윤겨울의 시선이 돌아가는 강도도 점점 더 심해졌다.

입으로 하는 대답보다 더 확실한 모습이다.

“그런 거 다 사기야. 알간?”

“…네가 뭔 상관인데.”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부정은 안 한다.

윤겨울도 그런 것들이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력을 다루는 일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천재니까.

그런데도 그런 것에 돈을 펑펑 뿌리면서라도 매달리는 이유라면 간단하다.

간절하니까.

당장 배를 곯을 정도로 싹싹 긁어서 돈을 퍼부어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강해지고 싶은 원인도 명확하다.

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얼마 전에 네 언니 보고 왔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윤겨울의 기색이 일변했다.

눈동자가 착 가라앉고, 표정도 싸늘해진다.

“어쩌라고, 그래서.”

“엄청 세더라. 저쪽은 딱 봐도 힘 좀 뺀 상태고, 이쪽은 이를 악물고 달라붙었는데도 팔 한쪽 날아갈 뻔했어.”

윤겨울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뭐, 예전에 이 녀석이 날린 회심의 일격을 간단히 막아 낸 쪽에서 이렇게 말한다면야.

사실상 ‘너보다는 훨씬 강하다’라고 면전에 꽂아 넣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네가 못 이길 정도는 아니던데.”

“…….”

그러니까 이런 문장을 꺼내 놓으면, 윤겨울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겨? 내가? 언니를?”

“내가 너한테 몇 가지만 알려 준다면.”

그렇게 말하자마자 윤겨울의 눈이 가늘어졌다.

[‘윤겨울’의 기적 포인트 수급량이 감소합니다!]

“…….”

뭣이?

감소?

여기서 나한테 비호감을 느낄 요소가 대체 어디에 있다고?

애초에 이미 10포인트인 녀석이 더 줄어들 게 어디 있다고 감소야?

그런 의문이 연속으로 떠오르는 와중에, 윤겨울이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너 대체 노리는 게 뭐야?”

“노려? 뭘?”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네가 나한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기는 해?”

“어?”

“이미 언니를 아는 녀석이 나 같은 거한테 접근할 이유가 없잖아.”

“…….”

아.

애초에 이 녀석이 겨우 10포인트였던 이유가 그건가.

자학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 작용한 것이다.

자신 같은 사람한테 다른 사람이 순한 의도로 접근할 리가 없다는 의심병.

“나도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접근하는 것 같냐?”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니도 다 할 수 있으니까.”

말하는 도중에 목소리가 쪼그라든다.

“나 같은 건 그냥 언니 하위 호환인데…….”

“맞긴 하지.”

“…….”

지체없이 날아드는 수긍에 윤겨울의 표정이 확 찌푸려졌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면서 윤겨울을 마주 본다.

“꿍꿍이라고 했냐? 그래, 말해 준다. 내 목표는 네가 언니를 이기게 만드는 거야.”

“응?”

윤겨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짓을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

“너와의 관계.”

“…어? 뭐?”

“내가 관심 있는 건 윤봄이 아니라 댁이라고요, 윤겨울 씨. 나한테는 윤봄보다 그쪽이 더 가치 있는 인간이니까.”

녀석의 동작이 딱 굳었다.

열심히 음식을 퍼먹던 수저도 멈추고, 마비라도 온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나를 마주 본다.

[‘윤겨울’의 기적 포인트 수급량이 증가합니다!]

“…….”

참 알기 쉬운 녀석이다.

늘어난 것은 얼마 정도 늘어난 거지?

[윤겨울: 1,000p]

…한 번에 파에톤을 따라잡았군.

겨우 자신을 인정해 주는 칭찬 한마디에 이 정도로 사람한테 호감을 느끼는 것을 보고 있자니, 조금 걱정이 될 정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내가 당장 없는 신뢰를 만들어 줄 수는 없어.”

내 연락처와 이름이 박혀 있는 명함을 내민다.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직책이 이름 앞에 붙어 있지만, 요약하면 그냥 SS급 던전 탐사대 지휘관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구미가 당기면 일 하나 같이 하자.”

“일?”

“꺼림칙하면 안 해도 좋지만, 수락하면 내가 윤봄보다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거야.”

“…….”

“물론 그것 말고도. 예전에 내 부탁 들어 줘서 정보 하나 주기로 한 건 유효하니까, 그것까지 듣고 판단해도 좋아.”

거기까지 말하자, 윤겨울이 수저를 문 상태로 명함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격렬한 고민의 흔적이 얼굴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간다. 결정하면 연락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자기를 지나칠 때까지 명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윤겨울을 흘끔 곁눈질로 살펴보고, 그대로 식당 바깥으로 나온다.

뭐.

말은 결정하면 연락해… 라고 했지만.

거절할 리가 없다. 잡혀 있는 인질이 워낙 강해서.

그렇게 생각하며 거리를 걷고 있자, 옆에서 퐁! 하고 모습을 드러낸 수호령님이 말을 걸어왔다.

[또 술수를 부리고 있는 건가?]

“술수는 무슨. 애초에 쟤랑 쟤 언니 관계를 청산해 주는 건 언젠가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이 자매, 서로 오해하는 것이 좀 있거든.

윤겨울은 윤봄을 싫어하지만, 윤봄이 윤겨울을 대하는 감정은 전혀 상반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중간에 껴서 그걸 조율만 해 주는 거고.

그리고 아마… 외부의 압력으로 서로 싸워야 할 일이 생길 확률이 높으니까.

그때를 대비하는 의미도 있다.

협회장이라는 새끼를 내가 알거든. 무슨 수를 써먹을지도.

반드시 윤겨울을 빌미로 윤봄을 협박하고 있을 것이 분명할 테니까.

내가 노리는 것은 그런 생각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글쎄. 지금까지의 전적이 있으니까. 그런 순수한 의도만 있다고 하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일세.]

“…….”

아무리 나라도 이건 반박하기 힘들었다.

[말해 보게. 무엇을 더 꾸미고 있는 건가?]

“있잖아, 수호령님. 내가 왜 굳이 협회의 체면을 지켜 주려 했다고 생각해?”

[응? 혼란이 일어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있지. 실제로 일선에서 뛰고 있는 헌터들은 유능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야. 그 집단은 윗사람이 썩어 있는 게 문제라고.”

당장 그 미치광이 협회장이 ‘필요악’이라는 점에서 그 막장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효율적으로 나쁜 점만 고칠 생각을 해야지.”

[효율적?]

“썩은 부분만 도려내는 거야. 집단 전체를 휘청이게 만드는 것보다.”

그러니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협회장은 끌어내린다. 그것보다 더한 미친놈들도 수뇌에서 끌어내린다.

빈자리에는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을 채워 넣는다.

다른 부분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일 커다란 방해물이 될 윤봄을 제압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고, 윤겨울을 그 수단으로써 삼은 것도 효율의 원칙에 입각한 선택이다.

주인공 캐릭터 중 하나도 키우고, 호감도도 높이고, 협회도 뜯어고치고.

그야말로 일석삼조.

[…그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수법이 음흉하기 짝이 없군.]

칭찬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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