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30화 (30/135)

30화 테러 (1)

김동준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협회에서 지금 벌이고 있는 컨퍼런스가 얼마나 병신 같은지도 잘 알고 있었다.

각국을 대표한다는 놈들이 서로 물어뜯으며 벌이는 이권 다툼도,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쓰레기 같은 대책안도.

그리고 무고한 자들의 생명을 원시적인 폭력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 발족한 이 집단에서, 가장 윗대가리에 앉아 있는 놈들이 누구보다도 잔악하고 악마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짐승 새끼들.”

헌터 협회의 수뇌부라는 곳은,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복마전이었다.

머리에 뇌 대신 계산기가 들어가 있는 인간들.

사람을 생명이 아니라 숫자로 보는 족속들.

김동준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저 새끼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려니 두통이 밀려오던 차라, 근처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골목으로 빠진 참이었다.

‘아, 라이터…….’

하지만 품을 뒤적이던 김동준은 가장 중요한 물건을 빠트렸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사실에 짜증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얼굴 옆에서 내밀어지는 손이 있었다.

“불 필요하세요?”

“…….”

어떤 청년이 자신 쪽으로 라이터를 내밀며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얼굴은 뒷골목의 음영에 가려져 절묘하게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고맙네.”

감사 인사를 건네자, 불을 붙여 준 청년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자네는 안 피나?”

“아뇨. 전 확인만 하러 왔어요. 아마 그쪽이 마지막 같아서.”

“뭐?”

“당신같이 정직한 사람은 지금 저 안쪽에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시선 끝에는 헌터 협회 서울 지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말투는 평탄했고, 시선에도 별다른 기색은 없었지만.

청년의 말에 내재되어 있는 ‘뭔가’를 직감적으로 느낀 김동준이 흠칫했다.

“…무슨 뜻이지?”

“혹시 특진에 관심 있으신가요, 김동준 씨?”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의 뜻도 그랬지만.

그는 그것들에 대해 자세히 질문할 수 없었다.

청년의 얼굴 앞으로 느닷없이 푸른색의 화염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책상 업무를 하고 있지만, 한때 현장에서 누구보다 먼저 사선에 뛰어들었던 감각이 김동준에게 고하고 있었다.

저 조그마한 불덩이가, 자신을 수십 번도 넘게 죽일 수 있는 물건이라고.

“아마 당신을 포함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해 주신 분들은, 앞으로 많-이 바빠질 예정이거든요.”

“자네, 대체 무슨 소리를…….”

“뭐, 간단한 이야깁니다.”

청년이 씩 웃으며 김동준을 돌아보았다.

“오늘 이후로 헌터 협회의 간부직은 공석이 많이 생길 거라서.”

그리고 그 눈동자를 들여다본 김동준은,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청년도 사람을 숫자로 보는 인간이다.

다만, 기묘하게도.

협회의 놈들에게는 항상 따라오던 특유의 불쾌함은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 청년이 이어 말한 내용과도 연관이 있었겠지.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 줘야,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지거든.”

“…자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그한테서 그런 질문이 멍하니 흘러나왔다.

위험하다거나, 지금 이 청년을 만류해야 한다거나,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느닷없이 이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이 청년이 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다.

“저요?”

청년이 음영 속에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지금부터 저기 테러할 사람.”

그런 말과 함께, 청년의 앞으로 불덩어리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두둥실 날아간 불덩어리가 건물 외벽에 직격하고.

마치 네이팜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무섭게 건물 전체로 번져 나갔다.

……!

비명. 사이렌 소리. 경적.

아수라장. 아비규환.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지기에는 지나치게 과격한 광경에 곳곳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야, 잘 타네.”

“…….”

김동준의 입에 물려 있던 담배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상식 밖의 광경에 혼이 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발견한 청년이 피식 웃으면서 그것을 주워 올렸다.

“아저씨. 이것도 다 돈이에요, 돈. 사람이 물건 아까운 줄을 몰라.”

“…….”

“뭐, 일단 한 대 물고 있으시죠?”

청년이 씩 웃었다.

방금 저지른 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미소였다.

“다 피우고 나셨을 즈음엔, 세상이 바뀌어 있을 테니까.”

그런 말과 함께, 청년이 불타오르고 있는 건물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 * *

[이름: 오진환

(스탬피드의 심장 효과 적용 중!)

직업: 수호자 (예비), 구원자

스킬: <강체술> <궁사의 집중> <성흔> <무명검>

특성: <위기 감지> <영매>

구원 포인트: 103,401p

기적 포인트: 6,000p]

흐음.

이 정도만 해 줘도,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S급 헌터 정도로는 쳐줄 수 있는 스펙인데 말이야.

물론 내 본체의 성능이야 그냥 재생 능력 덕분에 조금 더 오래 처맞을 수 있는 일반인 정도인데, 가지고 있는 스킬들의 벨류가 어마어마하게 높으니까 말이지.

A급과 B급 헌터는 C급과 D급 여러 명을 혼자서 제압이 가능하고, S급 헌터는 바로 그 A급과 B급 헌터 한 무더기를 장난감처럼 박살 낼 수 있는 전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당장 내 수준도 그렇게 무시할 만한 것은 못 된다.

내가 이 게임 속으로 떨어진 지 고작 한 달도 안 돼서 쌓아 올린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겠지.

뭐, S급이니 어쩌니 해도.

앞으로 튀어나올 적들은 지금까지의 등급 분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파워 인플레를 일으키는 놈들이라. 지금보다 훨씬 더 쑥쑥 클 생각을 해야 하긴 하지만.

어차피 빈약한 기본 스텟을 강화할 기회야 널리고 널렸다. 아직은 때가 아닐 뿐.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S급이 손에 닿지도 못할 별 취급할 정도로 규격 바깥으로 나와 있는 흑성 헌터가 4명이나 이쪽에 있다면야.

나를 포함한 5명이 협회에 싸움을 거는 것도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장, 이쪽도 준비는 전부 끝났어.>

통신기에서 키건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뭐.

기다릴 필요도 없지.

“갈겨.”

<확인.>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내가 발동한 불의 심판을 얻어맞아 활활 타오르고 있는 협회 건물에 연이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C4, 크레모아, 기타 합성물 등등.

키건이 미리 설치해 둔 것들이다.

“…안쪽에 있는 놈들 저걸로 다 죽는 것 아니냐?”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키건이 피식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헌터라는 인종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은 아니지?>

손님이야. 11시 방향.

그렇게 끝나는 통신을 듣고 눈을 돌리자, 흉흉한 기색으로 달려 나오는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음, 뭐.

내 쪽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오는 모습이 인간보다는 맹수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이쪽에는 아예 전차와 비견되는 기본 스펙을 가진 인간이 있다.

“엇차.”

그런 가벼운 기합성과 함께, 헌터들의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파에톤이 대검을 휘둘렀다.

검면으로 휩쓸 듯이 헌터들을 타격하자, 무슨 게임 속 물리 엔진이 버그를 일으킨 것처럼 사람 몸이 휙휙 날아다녔다.

아련한 비명을 지르면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훌륭한 장군의 상이로다. 본인의 시대에 태어났으면 못해도 남자 여럿을 거느렸을 여자일세.]

사실 요즘에도 저런 여자 좋다는 남자가 의외로 있더라고.

강한 여성… 지배… 왜곡된 성욕…….

뭐, 그건 그거고.

파에톤이 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달려 나온 놈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어 준 덕분에, 내 쪽은 건물 안으로 진입하기 훨씬 쉬워졌다.

계획은 간단하다.

착한 놈들은 바깥으로 빼낸다.

나쁜 놈들은 저 안쪽에서 박살 내 놓는다.

그중에서도 ‘꼭 죽여야 하는 놈들 리스트’는 이미 뽑아 놓은 상태다.

그 맨 윗줄에 올라와 있는 놈은 협회장이고.

“안으로 들어왔어.”

통신으로 그렇게 보고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내 화염으로 활활 타 버리고 키건의 폭발까지 연이어 뒤집어쓴 여파로, 건물 안의 보안 장치는 대부분 무력화되어 있었다.

애초에 이걸 노리고 그렇게 큰 걸 터트리라고 지시한 거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그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물 내부로 올라가는 본격적인 출입로에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역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거… 분명히 게임 안에서도 웬만하면 안 깨지는 물건이었지.

이래서야 단숨에 들어가기는 어렵겠는데.

[이 정도야 그대도 뚫을 수 있지 않나?]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불의 심판은 이런 협소한 공간에서 사용하기엔 위력이 너무 강력하고, 무명검은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재사용 대기시간이 굉장히 긴 편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 좋겠지.

팔짱을 끼고 잠깐 기다리자, 건물 안으로 휙 뛰어 들어오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늦었는데?”

“…….”

윤겨울이 잔뜩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비교 대상이 당신이어서야 누군들 안 느릴까.”

“칭찬해 줘도 뭐 안 나와.”

“칭찬이 아니라… 아냐, 됐어. 자기한테는 당연하다는 그런 거겠지…….”

윤겨울이 툴툴거리면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뭐, 이 기회에 이 녀석이 어느 정도로 성장이 진일보했나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야.

보자. 어디 얼마나 잘하나 한번…….

“…….”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윤겨울이 단칼에 역장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뭐야.

얘 방금 마력도 안 쓰고 이걸 쪼개 버린 거야?

나도 조금 작심하고 갈겨 대야 깰 수 있는 물건을?

“…뭘 그렇게 쳐다봐.”

내가 눈만 끔뻑거리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 윤겨울이 부루퉁하게 중얼거렸다.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잘 알겠는데, 나도 나름대로 며칠 동안 엄청나게 노력한 거거든?”

“아니, 생각보다 많이 늘어서.”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장 기준치다.

진짜로 윤봄 씨하고도 할 만하겠는데?

그리고 내 말을 들은 윤겨울의 입꼬리가 일순 씰룩거렸다.

[‘윤겨울’의 기적 포인트 수급량이 증가합니다!]

“뭐래. 당신이야말로 칭찬한다고 해서 뭐 안 나와.”

“…….”

글쎄. 이미 뭐가 나오기는 한 것 같은데.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계획은 기억하고 있지?”

“그 단순한 걸 까먹기도 힘들겠다…….”

윤겨울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반으로 쪼개진 역장 안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사전에 말해 둔 위치로 움직이려는 것이겠지.

녀석이 시야 바깥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 역시 몸을 움직인다.

목적지는 방송 장비가 있는 설비실이다.

“흠.”

그리고 그 안쪽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바라는 물건은 멀쩡한 상태였다.

누군가한테 직통으로 통신을 꽂을 수 있는 보안 처리기기.

그대로 작동시키고, 상대방이 연락을 받기를 기다린다.

<…누구지?>

눈앞으로 화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만면을 사용한 미소를 활짝 짓는다.

이야.

생각해 보니까 저번에는 얼굴 대 얼굴로 직접 마주 보진 않았지.

‘진짜’로 만나서 반가워요, 협회장님.

“오랜만이다, 꼰대 새끼야?”

상대방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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