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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35화 (35/135)

35화 로키 (2)

형상변환이라는 능력이 있다.

자기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것 말이지.

로키는 그런 능력에 아주 능숙한 캐릭터다. 애초에 별명 자체가 그런 능력에 따라온 것이기도 하고.

김진성 씨 같은 거물에게 신상을 털어 달라고 한 이유도 거기에서 기인한다.

마음대로 모습을 바꿔대는 특성 때문에, 이 녀석이 지금 어딘가에 있을지 얼추 특정해 내는 작업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의 정보력이 필요하거든.

그나마 내가 그런 선택지를 압축할 수 있는 조건들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 조건이 뭔데?”

잠자코 내 설명을 듣고 있던 파에톤이 질문했다.

“그냥… 그 녀석이 활동하는 지역은 무조건 험악한 소문이 퍼지게 되어 있거든.”

그것도 보통 험악한 소문이 아니라, 거의 도시 전설 수준의 뭔가가 퍼지게 되어 있다.

녀석이 어떤 인간인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고.

이 세계관에서 능력에 따라 다른 사람에 비해 특이한 개성을 가진 녀석들은 더러 있지만, 로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지.

“형상변환자는 지금까지 몇 명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들 그럭저럭 멀쩡한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야. 오진환 씨 말만 들으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보통 미친놈이 아니야.”

“…….”

내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놓자, 파에톤이 난감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남의 험담을 꺼내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지만, 나로서도 이 부분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아주 단편적인 부분 하나만 말해 보자면.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협회에 시비를 걸었다고? 그런 짓을 왜?”

“고통스럽게 죽고 싶어서.”

“…뭐?”

파에톤이 뜨악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말이야, 그게? 마조히스트라도 되는 거야?”

“넓은 의미로 보면 그렇지.”

그놈이 형상변환 능력을 개발하면서 같이 따라와 버린 두 가지 특성이 문제다.

먼저 거의 불사에 가까운 재생 능력.

나머지 하나는 모든 자극에 대한 감각 기관의 둔화.

“아예 감각 수용을 못하는 건 아닌데.”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간다.

“남보다 뭐든 아주 미약하게 느껴. 그나마 가장 선명하게 느끼는 게 통증이고.”

그래서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라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재생 능력이 있으니 부상을 금방 회복해 버려서 리스크도 없다.

“그래서 일단 강력한 능력자를 다수 보유한 헌터 협회에 시비부터 걸고 보는 거야. 고통스러워질 수 있는 가장 화끈한 방법 중 하나잖아?”

“…….”

설명이 여기까지 이어지자, 마침내 파에톤도 할 말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런 사람을 굳이 동료로 받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왜긴 왜야. 너 살려야 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파에톤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 다 왔다.”

파에톤이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를 확인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 맞아?”

이어서 그런 질문이 흘러나왔다.

뭐,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닌 게.

주변에 펼쳐진 광경이 보통 살벌한 것이 아니다.

차단선으로 둘러싸인 도로. 완전무장 한 채 이동 중인 병력.

한가하게 사람이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랑은 거리가 멀겠지.

“아니, 여기 맞아.”

하지만 난 분위기를 보고 오히려 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놈이 있을 법한 상황이라면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오히려 자연 발생지나 서식지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지.

“그럼 일단 이 사람들부터 깨워야겠지?”

파에톤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본다.

커다란 6인승 밴에는 저번에 협회 테러할 당시 모였던 멤버 전원이 탑승해 있었다.

그러니까, 그놈을 제대로 잡으려면 이 정도 멤버는 있어야 해서 전부 끌고 온 건데…….

“…운전하면서 무슨 수면 결계라도 만들었어?”

자기네들끼리 뒤엉켜서 코를 골고 있는 모습이 무슨 융합체라도 된 모습이다.

탈 때까지만 해도 좁아터졌다며 툴툴거리던 윤겨울과 키건까지 반쯤 죽어 있었다.

두 놈 다 거의 니샤의 갑옷 밑에 깔린 상태로 끙끙거리면서도 잠에서 깰 생각을 안 한다.

“다들 사이가 좋으니까 그런 게 아니겠어?”

파에톤이 그렇게 말하자 나도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부터 사이가 좋아져야 하는 녀석이나 픽업하러 가자고.

* * *

“그쪽은 포위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확성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진 소리를 듣고 건물 창문 바깥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사람이 곧 눈에 들어왔다.

흔하다면 흔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

무장한 범죄자가 인질들을 잡아 놓고 요구 사항을 들이밀고 있는.

특이점이라면, 그 ‘요구 사항’이 무척이나 기괴하다는 것이다.

“아. 아. 인질범이 전합니다.”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이 주변을 쓱쓱 둘러보면서 상황을 확인하더니, 이내 자기도 확성기를 꺼내 들며 말한다.

영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 같은 무기질적인 목소리였다.

“그렇게 누구 코에 붙이기도 힘든 찌질한 무기들이랑은 이야기가 안 통하니까, 최소한 전차포라도 쏴 줄 것 아니면 말 걸지 말아 주세요. 이상.”

“…….”

그 당당한 요구에, 이 상황을 진압하러 온 책임자조차 잠깐 할 말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곧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것처럼 그 사람이 다시 건물 안으로 쓱 들어가 버리자, 옆에 있던 파에톤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니까… 지금 저 사람의 요구 사항이 정확하게 뭐라고?”

“가능한 강력한 화력으로 자신을 죽여 줄 것. 본인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갖춰지지 않으면 1시간에 한 명씩 죽이겠대.”

“미친놈 아니야?”

“미친놈 맞아.”

윤겨울이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끼어들자, 쓴웃음을 지으며 답해 준다.

“인질 죽이겠다는 건 진심이 아니겠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저놈을 알거든. 저건 그냥 떼쓰는 거야.”

정기적으로 화끈하게 자신의 머리통을 날려 주던 협회는 지금 내가 썩은 물을 싹 갈아 준 덕분에 재정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저 녀석이 시비 걸어도 지금은 신경 쓰지 못할 확률이 높지.

저 녀석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대체할 것을 찾고 싶어 할 테고.

그리고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폭력을 만들어 줄 만한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 낼 수단으로써, 본인이 낸 결론이 바로 저 인질극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꼬셔 내기도 쉽지.”

바로 차단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당신들 누구야?”

“이런 사람들인데요.”

제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검은 별이 박혀 있는 헌터 ID카드 5개를 늘어트려서 보여 주자 모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나만 불러도 세계구급 유명 인사인 인간들이 5명이나 붙어 있으니 느끼는 압박감이 심한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확성기를 잡고 있던 책임자에게 접근해서 그걸 빼앗아 들기까지 걸린 시간이 몇 분이 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 아. 인질범에게 전합니다.”

이전 책임자와는 전혀 상반된 느긋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불러낸다.

협상 대상이 바뀌었으니 일단 흥미를 가지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런 조치가 제대로 먹혔는지, 다시 한번 사람의 머리가 창문 바깥으로 빼꼼 내밀어졌다.

“뭐야? 전차포를 벌써 준비해 왔어?”

“전차포는 없지만, 대신 흑성급 헌터 5명은 있는데요. 잠깐 이야기 좀 해 보시겠습니까?”

뭐, 다행이지.

비록 상대방이 저 미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이쪽은 그런 사람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수단이 있으니까.

10년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몰아서 받은 것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표정만 봐도 확언할 수 있는 사실이다.

* * *

“진짜 해 주는 거지?”

눈앞의 소녀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그렇게 말했다.

마치 오랫동안 가져왔던 숙원을 풀어 주겠다는 사람을 목전에 둔 기색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아마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을 정도로 화끈한 방법으로 머리통을 날려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자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만 모른다면.

“…….”

실제로 나와 로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녀석들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다들 분위기가 별론데? 혹시 지금 모습이 어린애라서 그런가?”

그런 말과 함께, 이내 로키의 모습이 급격하게 변환되기 시작했다.

골격부터 시작해서 신체 전부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잠시 후, 작은 소녀는 험상궂게 생긴 거구의 사내로 변해 있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때릴 맛이 나지?”

실제로 그렇게 모습이 바뀌자마자 내 주변에 있는 녀석들의 기색도 일변했다.

단순히 모습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녀석들도 무슨 카드를 쳐서 흑성을 딴 놈들이 아니거든.

무엇이 이상한지 정도는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마력 패턴까지 아예 바뀌었어.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파에톤이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력 패턴은 헌터들에게 있어 일종의 지문 역할을 하는 것이라, 아무리 형상변환자가 마음대로 모습을 바꾼다고 해도 고유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기 마련이다.

형상변환자 중에서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녀석뿐이겠지.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럼 모습을 바꾸면… 그 사람이 쓸 수 있는 기술도 모조리 흉내 낼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

내가 수긍하자 다시 침묵이 주변에 쭉 깔렸다.

다만 이번에는 충격을 받아 다들 입을 다물었다는 기색이 다분했다.

“그건 그냥 형상변환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잖아? 헌터 누구를 데리고 와도 그런 짓은 못해.”

다른 놈도 아니고, 뒷세계에서 구르면서 별의별 기괴한 능력까지 다 봤을 키건까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말 다 했지.

로키가 주인공 놈들 중 유일하게 한 번 엔딩을 보고 해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녀석을 제대로 굴릴 수 있는 게임 지식이 있기만 해도 게임 난이도가 괴멸적으로 쉬워지니까.

나처럼 게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을 다 쓸 수 있는 놈이거든.

페널티로 위력이 원본에 비해 약하다거나, 원래 주어지는 효과가 없다거나, 뭐 그런 제약들이 덕지덕지 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미치도록 강력한 특성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녀석이 존재함으로서 오히려 더 부각되는 것이 바로 이 게임의 쓰레기성이다.

아니, 이런 놈이 있어도 해피 엔딩 보는 게 거의 불가능이었다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휘휘 젓는다.

아무튼 이 녀석을 파티에 영입해야 하는 이유도 다른 녀석들도 그럭저럭 납득했겠지.

“뭐, 잡담은 그만하고. 입 바깥으로 뱉은 약속은 지켜 줘야겠지?”

“누가 아니래! 기다리다 죽겠으니까 빨리 날 죽여!”

“…….”

조금 괴상한 기벽만 아니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조금 괴상한 수준이 아닌 것 같네만.]

퐁! 하고 모습을 드러낸 수호령님이 투덜거리는 것을 들으며, 사전에 말해 뒀던 스킬 콤보를 준비한다.

“미리 말했던 대로 하자?”

그 말을 들은 파에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곁눈질을 하더니, 이내 한숨을 쉬면서 앞으로 나섰다.

이어서 녀석이 등에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뭐, 이 게임에서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버프를 몰아 받았을 때의 효율은 이 녀석이 제일 좋거든.

게임 안에서 자주 써먹었던 조합을 상기하며 주변 녀석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먼저 대검의 검면을 타고 흐르는 검은색 기운은 니샤의 버프고, 이후로 나 역시 수호령님을 활용한 공격력 향상을 파에톤에게 적용한다.

이어서 대검이 뒤로 한껏 당겨졌다.

한계까지 에너지를 모아 둔다는 느낌이었다.

“그럼, 한다?”

“빨리 해!”

세상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파에톤을 쳐다보는 로키에게, 거의 자연 재해를 연상케 하는 기세로 대검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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