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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39화 (39/135)

39화 전조

“딸아.”

“응?”

“저놈… 아니, 저 후배는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거냐?”

내가 더 알고 싶다.

파에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코웃음 쳤다.

“솔직히, 나도 저 정도인 줄은 몰랐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부녀 앞으로는 이제 당분간 영혼을 더 뽑아내지도 못할 만큼 마력이 고갈된 비석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될 때까지 영혼과의 대련을 반복한 남자는, 비록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상태기는 하지만 멀쩡하게 서 있었다.

비요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전율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저 자리에 대신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서 있기는커녕, 반드시 죽었겠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가정이다.

자신에게 오만하게 들릴 말들을 지껄일 때만 하더라도 분수를 알게 해 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는데, 이런 모습을 직접 보고 나니 그럴 만했다는 납득이 제일 먼저 든다.

이쯤 되니까 자존심은 제쳐 두고 오히려 자신이 저 청년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싶을 지경이다.

대체 젊은 나이에 무슨 경험을 쌓아 왔기에 이런 실력을 갖추고 있단 말인가.

“어. 끝났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그런 소름 끼치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마치 자신은 더 하고 싶었는데 벌써 끝나서 아쉽다는 기색마저 느껴졌다.

“…….”

자신도 흑성을 거쳐 간 헌터계의 초일류 중 하나지만, 그런 자신도 이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인간을 쉽사리 떠올릴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인간 전체 범위 안에서도 두 명 안으로 축약되겠지.

그래서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연무장 바깥으로 나오는 청년에게, 비요른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우리 가문에서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나?”

옆에서 딸아이가 입을 쩍 벌리는 것이 시야 바깥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무시한다.

스트롬블라드의 가주가 남한테 ‘먼저’ 요청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십거리가 될 만한 일이다.

자신들은 항상 들어오는 요청을 거절하는 입장이지 남에게 손을 내밀만큼 아쉬운 사람들이 아니니까.

실제로 비요른 자신도 이런 말을 남에게 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다 잠깐 옆에 치워 놓을 정도로.

이 청년은 탐나는 인재였다.

“…….”

그런 제안을 들은 오진환도 꽤 의외였는지, 살짝 크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제안은 감사드립니다만, 저는 달리 할 일이 있는지라.”

역시 그런가.

비요른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정도의 인재라면 한곳에 묶여 있는 것을 싫어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다시 제안해 보긴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 줄 수는 없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섭섭지 않게 처리해 주지.”

“원하는 것… 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오진환의 시선이 옆으로 쓱 돌아갔다.

물론 그 끄트머리에 있는 것은 괜히 멋쩍게 시선을 돌리고 있는 파에톤이었다.

“…….”

비요른으로서는 잠깐 속에서 천불이 일어나는 광경이긴 했다.

물론.

이제 와서 반대할 명분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 * *

[이름: 오진환

(스탬피드의 심장 효과 적용 중!)

직업: 수호자 (예비), 구원자

스킬: <강체술> <궁사의 집중> <성흔> <무명검>

특성: <위기 감지> <영매>

특이사항: 영혼의 정수 습득(54중첩)]

썩 괜찮군.

고인물 기준으로 권장되는 영혼 노가다가 잘해 봐야 20중첩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번 한 번의 시도로 정말 많이도 빨아먹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숫자다.

이 정도만 돼도 다시 방문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정수는 많이 먹어 봤자 점점 효율이 떨어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 정수라는 것은 정확하게 어떤 효과가 있는 건가?]

‘마력 유통.’

[뭐라?]

‘나 같은 마력 병신도 마력 쓸 수 있게 해 준다고.’

그리고 마력을 돌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이 세계관에서 정말 많은 가치를 가진다.

솔직히 헌터 등급이라는 것도 누가누가 마력을 더 잘 쓰냐를 기준으로 줄 세우기 하는 수준이라서.

스탬피드의 심장으로 기본 내구력과 재생 능력을 끌어올렸다면, 영혼의 정수는 기본 신체 능력 자체를 큰 범위로 뻥튀기해 주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C급 마수랑 싸워도 신체 능력으로 밀리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이 정수를 습득함으로써 최소한 A~B급 마수랑 신체 vs 신체만으로 싸워도 해볼 만한 수준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 마력 자체를 잘 다루는 방법까지 습득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의 전반적인 수준까지 한꺼번에 끌어올릴 수 있겠지.

‘기본 스텟’이라는 게, 바꿔 말하자면 기초 체력이랑 똑같은 거라서 말이야.

그냥 아이템을 섭취해서 살짝만 펌핑 해 놔도 사람이 아예 달라지는 수준이 된다고.

옆자리에 있는 파에톤을 흘끔 바라본다.

게임을 원래대로 진행한다면 이 녀석에게 돌아갈 물건이지만, 그 공백은 내가 다른 물건으로 채워 줄 것이다.

그리고 내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파에톤이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빠가 최대한 많이 뜯어먹고 오래.”

“뜯어먹고 오라니?”

“많이 배우고 오라는 말의 아빠식 표현이야. 아마 당신이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 나도 그렇게까지 칭찬 들어본 적은 없다니까?”

그건 다행이군.

비요른도 분명히 나중에 부를 일이 있을 테니까.

“억지로 너를 분가까지 시켰으니까 책임져야겠지.”

“분가는 무슨 분가야. 누가 보면 오진환 씨랑 살림 차리러 가는 줄 알겠다?”

“맥락상으로는 맞지 않나?”

지금 난 이 녀석과 함께 김진성 씨의 후원을 받아 입주한 ‘아지트’로 향하는 중이다.

살림 차리는 거, 말만 떼 놓고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어,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운전대를 잡고 있던 파에톤이 낄낄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새삼스러운 의문이 생겨난다.

게임 안에서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가 생기면 항상 이 녀석이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탔단 말이지.

“그런데 왜 운전은 항상 네가 하냐? 맨날 자연스럽게 붙잡고 있네.”

“으음… 내가 제일 잘해서? 보통 고기 먹으러 가면 자연스럽게 집게랑 가위 가져가는 사람 있잖아.”

글쎄. 난 다 구워진 것만 집어먹는 사람이라서.

“그래도 다른 녀석들도 운전은 할 줄 알 텐데? 대신하겠다 어쩐다 말이라도 안 해?”

“겨울이는 운전면허 없을걸?”

“…….”

어떻게 무슨 화제가 나오건 그 녀석은 항상 하자가 있는 걸까.

진짜 윤겨울은 전설이다…….

내가 그 압도적으로 저열한 생활력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목적지를 확인한 파에톤이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 다 왔…….”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부잣집 아가씨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크기의 저택이 거기에 있었다.

“…오진환 씨,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도 찾았어?”

“그걸 용돈 취급도 안 할 사람이랑 친해졌어.”

고맙습니다, 김진성 씨. 하루에 세 번 계신 방향으로 감사 인사 올리겠습니다…….

“가자. 너 빼고 이미 다 모여 있어.”

애초에 이 녀석 말고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자는 이유를 거절할 이유가 없거든.

기껏해야 숙박 시설이나 전전하고 다녔을 니샤도 제대로 된 거주지가 생겨서 좋아했고, 키건은 그냥 건물이 이 정도 수준이니까 별말 없이 후다닥 달려왔고, 윤겨울은…….

“…….”

잠깐 눈물 좀 닦고.

아무튼, 파에톤을 데리고 건물 위로 올라간다.

“무슨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본거지 같은데”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파에톤이 그런 감상을 흘렸다.

뭐,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적절한 비유이기도 하다.

최상층 펜트하우스에 도착하자 곧바로 고급 장식으로 도배된 생활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앙에 널브러져 있는 묵직한 갑옷도.

키건에, 윤겨울 심지어 로키까지 달라붙어서 팔다리 하나씩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

얘넨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머릿속으로 피어오르는 사이, 나를 발견한 윤겨울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오진환! 마침 잘 왔어! 와서 좀 거들어!”

“…뭘 거들어?”

“얘 지금까지 4일이 넘도록 목욕 한 번 안 했다잖아! 앞으로 같이 살 입장에서 그 꼴은 못 봐! 오늘 무조건 씻길 거야!”

“씨, 씻기는 씻었, 어.”

“물만 살짝 바른 거는 아무도 씻었다고 안 그래!”

“…….”

키건과 로키의 표정에까지 동의의 기색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진짜인가 보다.

갑옷을 슬쩍 바라본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미네르바를.

[…이 아이도 그 부분만큼은 절대로 양보를 안 해서 말이죠.]

아마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면 분명히 시선을 피했을 것 같은 기색으로, 미네르바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이, 아줌마.

응석 너무 받아 주지 말라고.

“스, 스승님. 구해 줘…….”

니샤가 나를 보고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말했지만, 이번엔 나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결은 중요한 요소란다, 이 녀석아.

“…그새 다들 친해졌나 보네?”

뒤에서 파에톤이 웃음기 섞어 꺼내 놓은 말에 나도 피식 웃으며 수긍한다.

자기 간격 안으로 누굴 들여놓기도 싫어하던 니샤가, 지금은 사람 세 명이 동시에 자신한테 달라붙어 있는데도 발작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집단으로 붙어 다니게 시켰던 것이 효과를 본 모양이지.

“…….”

뭐, 이렇게 잘 회복하다가 분명히 브레이크가 걸리는 구간이 한 번 오기는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또 내가 해결해 주면 될 문제다.

-♪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주머니에 꽂아 둔 핸드폰에서 착신음이 흘러나왔다.

누군지 확인해 보니 김태화다.

피식 웃으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김 실장님?”

<…직함으로 들으니까 정말 어색하네요. 특히 헌터님한테 불리니까요.>

통화 건너편에서 김태화의 멋쩍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협회 일은 좀 할 만하십니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보람찬데요. 덕분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녀석의 목소리는 대단히 밝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맥을 이용해서 협회의 수뇌부 중 한 명이 되도록 밀어 넣은 뒤로는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는 모양이지.

협회 수뇌를 한 자리라도 내 사람으로 채우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아마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부리는 위치에 앉혀 준 이상, 이 녀석의 재능은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개화할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그것 말입니다만, 헌터님.>

김태화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심각해졌다.

<최근 들어 이상 사태가 관찰되는 경우가 극히 많아져서, 아무래도 헌터님에게는 꼭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실용적인 조언을 얻을지도 모르니까요.>

아.

젠장.

한숨을 푹 내쉬면서 한발 앞서 반문한다.

“혹시 이상 기후 현상입니까?”

<예?>

“느닷없이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그럴 이유가 없는데 기온이 엄청나게 낮아지거나…….”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긴.

이거 ‘전조’니까 그렇지.

“김 실장님.”

나도 낮게 깐 목소리로 대답한다.

“접촉 가능한 모든 연락망 항상 활발하게 유지해 두세요. 조만간 큰일이 터질 겁니다.”

<…큰일이라고 하신다면?>

슬슬 열릴 때가 됐다고는 생각했지만.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답한다.

“차원종 습격입니다.”

스테이지 2.

별의 용광로.

그 시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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