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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40화 (40/135)

40화 설국의 전사들 (1)

탁자 중앙에 놓인 홀로그램 슬레이트가 위쪽으로 세계 지도 형태의 영상을 띄워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쭉 둘러앉아 있는 흑성 멤버들과 로키.

“뭐야. 숙소도 완전히 슈퍼히어로 느낌이더니, 이젠 임무 브리핑도 하는 거야?”

파에톤이 피식 웃으면서 그런 말을 꺼내 놓자, 옆에 있던 키건도 같이 히죽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아니, 대장 이미지를 생각하면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무슨 범죄 계획 아니야? 솔직히 빌런 느낌이잖아?”

“…죽을래?”

부르는 단어만 대장이지 아주 못 하는 말이 없다.

“아, 죽는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는 또 언제 죽을 수 있어?”

“…….”

머리가 아프다.

이 녀석이 나한테 협력하는 조건이 화끈하게 죽는 방법을 계속 알려 준다는 거니까 뭐라 그럴 수도 없고.

“조만간 아주 활활 태워서 죽여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아싸~.”

“…….”

한숨을 푹 내쉬면서 홀로그램을 정렬했다.

“빌런이든, 슈퍼히어로든 뭐든 간에. 우린 우리 할 일을 해야겠지?”

지도를 확대해 한반도가 있는 쪽을 커지게 한다.

“일단 이것도 분류는 EX급 게이트 사태인데.”

버튼을 누르자 지도 여러 곳으로 동시에 붉은 점이 켜졌다.

내가 기억하는 설정상의 위치를 표시해둔 것이다.

“여기서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면 돼.”

내가 꺼내 놓은 말에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저번에 EX급 게이트 때 내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대충이나마 예상할 수 있던 녀석들이니, 곧바로 이런 반응이 나올 만하다.

“…지옥이잖아.”

윤겨울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는 웃음이 나온다.

누가 아니래.

“차원종 ‘침공’이잖아. 보통 게이트처럼 우발적으로 열리는 게 아니야.”

그리고 침공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본인들이 원하는 게 있으니까 굳이 다른 차원에 구멍을 뚫고 넘어오는 것이렷다.

그리고 이놈들의 목표가 무엇이냐.

“인신 공양이 뭔지는 다들 알지?”

“뭐?”

“그거 ‘재료’로 쓸 사람들 납치해 가는 게 목표야, 이놈들.”

알기 쉽다면 알기 쉬운 목적이다.

오히려 앞으로 나올 차원종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라인업으로 깔려 있는지 생각한다면, 수수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제물을 도시 몇 개 단위로 뜯어가는 것만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랬겠지.

버튼을 한 번 더 누른다.

내가 혼자 그려 본 적의 대략적인 생김새가 화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윤겨울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 이런 건 진짜 못하는구나?”

쌈박질 빼고 뭐든 못하는 녀석이 뭐라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게 이번 사태의 주적이 될 녀석들인데.”

설국의 전사들.

생김새는 인간이랑 크게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흔히 말하는 ‘야만적인 전사’ 이미지에 크게 부합하는 차림이지.

문제가 뭐냐면.

“얘네 진짜 뒤지게 세거든?”

제압하기는 쉬웠지만 특수한 능력 때문에 고생하게 되는 스테이지 1에 나온 차원종들과 달리, 이 녀석들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미쳐 돌아가는 수준이다.

오히려 단순한 전투 난이도만 따지자면 스테이지 3보다 이쪽이 더 어려울 정도다.

이놈들 한 명 한 명이 현재 거의 모든 길드에서 금이야 옥이야 모셔 가려고 애쓰는 A~S급 헌터보다도 우세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

“단순히 힘 대 힘으로 끌고 가면 이쪽도 사람 무지하게 죽어 나갈 거야. 협회 소속이 아닌 어중이떠중이 헌터들로는 아예 감당도 못 하고 갈려 나갈 걸.”

그리고 그건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려 둬야 하는 내 입장에선 최대한 피해야 할 사태다.

내 말에서 감을 어느 정도 잡았는지, 주변에 다른 녀석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오진환 씨는 항상 사람 구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방법을 생각했겠지?”

그렇지. 말 한번 잘했다.

적어도 내 의도를 따라와 주니 다행이다.

“응. 일단 협회 전체를 미끼로 던져 넣을 거야.”

그래서 이런 때를 대비해서 협회를 멀쩡한 상태로 유지한 채로 내가 주도권을 꽉 잡아 둔 것이다.

각지에서 동시에 사건이 발생한다면, 조직적으로 대응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여부에 따라 난이도는 하늘땅 차이로 갈리니까.

“…….”

미리 나한테 들어서 알고 있던 로키를 제외하고는 전원한테서 침묵이 돌아왔다.

“어쩐지 음흉한 소리가 안 나온다 했다…….”

[그렇지.]

키건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둥둥 떠 있던 수호령님이 낮은 목소리로 수긍했다.

뭐, 말만 들으면 그냥 미친 소리이긴 한데.

그래도 이게 최선이거든.

“정확히는 정면으로 교전을 하는 게 아니라 인원수만 그쪽에 집중하도록 이목을 끄는 거지. 그사이에 우리는…….”

버튼을 다시 한번 누른다.

아까 전의 전사들과는 생김새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녀석이 3명 튀어나왔다.

내 조악한 그림 실력으로도 특징적인 부분은 어떻게든 잡아내는 데 성공한 모습들이다.

“이 ‘전사장’들을 처리할 거야.”

“전사장?”

“각 지역의 침공을 주도하는 우두머리들인데. 이 녀석들만 처리해도 전력을 거의 다 날리는 셈이야.”

인신 공양을 위한 제물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 인신 공양이 무엇 때문에 이루어지는지 생각해 본다면 상대방도 전사장들을 무력화하는 순간 전투를 지속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 전사장을 처리한다는 건 어떻게 할 건데? 잡졸들도 그 정도로 강력하다는 마당에 그런 녀석들을 어떻게 죽일 거냐고.”

“안 죽일 건데.”

“…뭐?”

이 녀석들을 죽일 거였으면 내가 ‘처리’가 아니라 ‘암살’이라고 했겠지.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하면 감당이 안 되기도 하고.

다시 말하지만, 잡졸 하나가 A~S급 헌터보다 우세한 전투력이다. 그리고 단순히 네임드도 아니고 ‘보스몹’ 취급인 전사장들의 전투력은 주인공 캐릭터 여러 명을 붙여 놔야 겨우 감당이 되겠지.

혹시 그런 식으로 싸움이 붙었다가 흑성 중 한 명이라도 사상자가 생긴다면, 앞으로 있을 여정에 어마어마한 차질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안 죽일 거면 어떻게 처리한다는 소린데?”

뭐든 적이면 죽이고 본다는 식으로 살면 쓰나.

사람은 뭐든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법이다.

“노예로 만들어서 골수 끝까지 빨아먹을 거야.”

“…….”

* * *

그래서 일단 팀원을 나눈다.

로키와 파에톤, 키건과 니샤. 이렇게 두 팀.

중요한 것은 인원 배분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에 대한 지시다.

전원에게 단단히 타일러 둔다.

“아무것도 하지 마.”

“뭐?”

“절대로, 진짜로,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뭐 하라 그러기 전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파에톤 쪽에는 귀에 딱지가 얹힐 정도로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이번 스테이지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은 이 녀석의 데스 이벤트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녀석들이 아무것도 안 해 줄 필요성이 있다.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게 있거든.

“우리들은 예외야.”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합승하고 있는 인원들에게 그렇게 말해 준다.

“일단 우리 쪽이 먼저 해결되어야 다른 쪽도 맥이 뚫리니까, 오히려 서둘러야겠지?”

기껏 열성적으로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건너편에 있는 놈들은 서로 눈치를 보느라 내 말에 집중하는 것 같지도 않다.

윤겨울, 그리고 윤봄.

3명의 전사장 중 한 명을 처리할 핵심 듀오다.

“…이 여자가 온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윤겨울이 부루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에 옆에서 한껏 동생의 눈치를 보고 있던 윤봄도 괜히 흠칫거리면서 쪼그라든다.

하여간 괜한 부분에서 소심해 빠진 것은 자매가 아주 똑같다.

“이 사람 유능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야.”

“병원에서 골골대다가 겨우 얼마 전에 일어난 사람이 싸워 봤자 얼마나 잘 싸운다고.”

그 말을 들은 윤봄의 표정이 더욱 시들시들해졌다. 순식간에 몇 년은 늙은 표정이다.

“아픈 사람은 쉬게 해야지 무슨 생각으로 끌고 나왔냐고 저한테 따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올바른 ‘해석본’을 윤봄에게 전해 준다.

바로 표정이 반짝거리듯이 환해졌다.

“…아니거든? 난 그냥 이 사람이 내 발목이나 붙잡을까 봐 짜증밖에 안 나는데?”

다시 표정이 시들시들.

“회복이 제대로 안 돼서 예전만큼 건강해지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겁니다.”

다시 표정이 반짝반짝.

“…….”

무슨 말을 꺼내 놔도 이런 패턴이 반복될 거란 것을 깨달은 윤겨울이 결국 입을 다물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겨울아.”

“…나가 죽어.”

윤봄이 먼저 말을 붙이자, 바로 윤겨울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해석해 줄 필요가 없었는지 윤봄의 표정도 시들지 않았다.

뭐, 이런 느낌으로 서로 거리를 점점 좁혀 가면 화해하는 것도 머지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항상 강조하듯 이 게임의 일정은 지랄 맞게 촉박하다.

항상 느긋하게 있지 말고 당장 행동을 취할 것을 강요하거든.

조종석에 있던 파일럿이 당황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말부터가 그것을 잘 나타낸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갑자기 전방에 이상 기후가 발견되어서…….”

“눈보라요?”

“네? 어떻게 그걸…….”

보지도 않고 질문하는 내 모습에 파일럿이 화들짝 놀라며 수긍한다.

이에 나도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높이 비행 중인 헬기 안에서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어차피 이제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도 못 된다.

“아, 그럼 맞게 왔네.”

“예?”

“이상 기후는 맞는데, 그거 자체는 절대 이상한 게 아니거든.”

적어도 이 스테이지 안에서, 그건 일종의 ‘법칙’ 같은 거다.

적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법칙.

고개를 내밀어 파일럿 옆에 있는 레버를 유심히 살펴본다.

이게 비상 탈출 장치겠지?

“이거 좌석 채로 사출되는 것 맞죠?”

“예?”

“멀지 않은 곳에 협회 주둔지 있을 테니까, 그쪽 가서 도와 달라 그러세요.”

“예?”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하시고.”

세 번째 ‘예?’ 가 돌아오기 전에, 문답 무용으로 레버를 당긴다.

그러자 파일럿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좌석 채로 헬기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너 대체 뭐 하는 거야?”

옆에서 윤겨울이 얼빠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슬슬 이해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어?”

“내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어서거든?”

그 말과 함께.

헬기 동체가 통째로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섬광처럼 날아온 뭔가가 헬기 하단부를 꿰뚫은 것이다.

합금 철판을 두부 자르듯이 관통하고 들어온 것을 보고, 윤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투창?”

그 말대로, 그건 투창이었다.

나무 창대 끝자락에 철을 박아서 만든.

그리고 그게 아래쪽에서 날아와 느닷없이 이 헬기를 때렸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사실을 시사한다.

윤겨울에게서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지상에서 고작 이딴 걸 던져서 우릴 맞춘 거야?”

네, 정답.

지금부터 우리가 때려잡아야 하는 녀석은, 지상에서 이런 조잡한 투창으로 고도 몇 천 미터를 비행하던 헬기를 저격하는 괴물입니다.

난이도 조절은 어디에 팔아먹었냐, 이 찢어 죽일 게임아.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대신 필요한 행동을 취한다.

미리 챙겨 온 낙하산을 꺼내 윤 자매에게 동시에 토스해 준다.

“사용법은 아냐?”

“어? 어어? 나, 나 이런 건 한 번도 안 써 봤……!”

윤겨울이 잔뜩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환경은 기다려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두 번째로 날아온 투창이 다시 헬기를 관통했다. 아까보다 훨씬 격렬한 기세로 날아온 창이 나와 윤 자매 사이의 공간을 관통하며 천장까지 틀어박혔다.

“그럼 지금부터 배워야겠지?”

슬슬 완전히 제어를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는 헬기 안에서,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내 표정을 보고 대충 의도를 파악한 윤 자매의 표정이 동시에 창백해졌다.

잠시 후.

여자 두 명의 비명이 꼬리처럼 길게 이어졌다.

나와 진짜로 하루 이틀 엮여서 이런 매콤함을 처음 겪어 본 윤봄은 아예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모양새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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