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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67화 (67/135)

67화 부화장 (2)

건너편에 있는 중년 남성을 슬쩍 바라본다.

그냥 중후하게 생긴 중년 남자라는 특징 말고는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는 구석은 없는 모습이지만.

이 녀석이 바로 용의 장로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독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겠군.]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한참 뒤에나 가능했겠지.

거꾸로 매달려 있던 아까 전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취급이 천지 차이로 바뀌었다고 해도 좋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장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보고 할 말이 있다고?”

“그거 말이야. 진짜 피우려고?”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시가를 입에 무는 중년 남성에게 그렇게 말한다.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저번에 만났을 때는 안 피웠었잖아?”

상대방의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우리, 만난 적이 있던가?”

화면 너머로는 지독할 정도로 만났었다.

실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어 준다.

“당신이 ‘버린’ 기억 중 하나일 수도 있지.”

“…….”

장로가 나를 보고 있는 시선에 더욱 흥미가 진해졌다.

“…내가 거기까지 얘기해 준 건가? 인간에게?”

“글쎄?”

용은 장수하는 종족이고, 그중에서도 장로쯤 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세월을 관류해 왔을 확률이 높다.

그 세월 동안 인격을 맨정신으로 유지하려면 이런저런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서 게임 안에서 이 녀석의 우호도를 최고치로 높이면 들을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이 녀석이 틈틈이 자기 기억을 ‘지우고’ 있다는 것.

자기 자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데, 뭐 자세한 건 관심 없고.

중요한 건.

그게 내가 지금 상황을 리드하는데 엄청난 이점이 되어 줄 것이라는 점이다.

[…또 나쁜 생각을 하고 있군.]

어허.

나쁜 게 아니라 영리하다고 해 주면 어디 덧나나.

“하지만, 말이 안 되는데.”

장로가 턱을 쓰다듬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좀 더 내밀었다.

인간 모습이라도 파충류의 특징을 띄고 있는 쭉 찢어진 형태의 동공이 묘한 압박감을 주는 모습이다.

“내가 그런 개인적인 사실까지 알려 준 인간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 버릴 이유가 있나?”

그렇지.

속으로 씩 웃으며, 준비해 둔 화제를 말한다.

“그걸 설명하려면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데. ‘저번’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이미 당신을 잘 알고 있다는 거에서 한술 더 떠서, 아예 뭔가를 협업했었다는 투로 미리 운을 띄워 둔다.

“…일이라고?”

“당신한테 들었거든.”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거짓말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가 매몰되어 버릴 정도의 과몰입이다.

그리고 난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용의 장로도 속여 넘길 수 있을 만큼 말이지.

“지금 부화장에 있는 문제 말이야. 딱히 실수가 아니지?”

“…”

“당신도 처음부터 그런 문제가 생겨날 것을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연하지만.

이것도 게임 안에서 얻은 지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포장해 버리면.

나는 용들의 장로가 개인적으로 종족의 가장 취약한 문제점을 ‘스스로’ 털어놓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사실 말이지.”

장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꽤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거든.”

“어떤 점이?”

“그쪽이 타고 들어왔다는 부화장의 균열 말이야.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지만, 인간의 몸으로 쉽게 헤치고 올 장소는 아니지.”

타당한 지적이다.

아무리 구조에 문제가 있다지만, 장로가 직접 짜 올린 술식이다.

측정되는 마력량이 이 녀석들 기준으로 준장애인 수준인 내가 휙 들어올 만한 것은 아니지.

‘…물론.’

딱히 내가 엄청난 트릭을 부린 것은 아니다.

그냥 쉬카펠에게 부화장의 좌표를 찍어 주고 녀석의 아공간 통로를 직통으로 꽂아 달라 그래서 뚫은 것이지만.

그 상황을 모르는 이 녀석 입장에서는, 내가 이런저런 사실을 줄줄이 읊어 대도 신빙성이 생길 만한 ‘실적’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곳의 위치를 알고, 내 술식까지 손쉽게 돌파했다라… 나를 저번에 만났다는 게 거짓말 같지는 않군. 그대가 알고 있는 정보들은… 확실히 내가 직접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는 것들이니.”

그렇지.

여기까지는 반쯤 성공이다.

“그럼, 결국 처음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왜 나는 너를 만난 기억을 지웠지?

“…….”

일단 심호흡한다.

아마 내가 지금 여기서 혀를 굴리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판명 난다면, 당연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얌전히 포기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나는 쉬카펠을 요리할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난 ‘안전망’이야. 당신이 쳐 놓은.”

“안전망?”

“당신도 무서워하는 존재가 있지.”

그렇게 운을 띄우자, 장로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연 뒤쪽에 있는 그 녀석 말이야.”

발카서스가 잠깐 접촉하고 온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힘을 선사받은 녀석을 말하는 거다.

내가 얼마 전에 녀석을 죽이고 뽑아낸 검은색 영혼과도 관련이 있는 녀석이지.

“…….”

장로가 계속 말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억을 날린 것은 나와 한 약속의 보안을 위해서야. 그쪽은 마음대로 네 머릿속을 주무를 수 있는 존재니까. 너 자신도 모르고 있는 편이 더 안전하거든.”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장로가 시가를 뻑뻑 피워 올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깊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내가 그 자에게 숨기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면.”

장로가 침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종족 전체의 존망이 걸려 있는 문제 말고는 없는데 말이야.”

“그래.”

“말해 보게. 너는 누구고, 나는 너와 무슨 약속을 했지? 그 내용이 무엇이기에 내가 그런 짓까지 한 건가?”

좋아.

거의 다 왔다.

“난 구원자야, 용의 장로.”

씩 웃으며 말한다.

“당신의 종족을 구원하러 왔으니, 당신도 약속을 지켜.”

* * *

며칠 전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지휘 탭을 개방하고, 별철을 무더기로 뽑아내서 발더에게 잔뜩 물건을 발주했을 때 말이지.

그때 내가 단순한 무기 말고 조금 특별한 물건 하나를 주문했었는데, 그것의 완성 보고를 하러 온 것으로 기억한다.

“저, 귀인.”

발더가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의 앞에는 거대한 정육면체 형태의 물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일단 주문하신 대로 만들기는 했습니다만…….”

대체 이걸 어디에 써먹는지도 모르겠다는 기색이 잘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그 용도를 전혀 알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어차피 인큐베이터라고 해도 너는 못 알아듣잖아?”

“예?”

멍청한 목소리로 그렇게 반문하는 녀석의 모습이 하도 웃겨서 엄청나게 낄낄거렸었지.

뭐.

사실 지금 와서 보면, 딱히 그 녀석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게 네가 말한 해결책인가?”

용의 장로가 살짝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것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처음 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군. 적어도 우리 세계의 물건은 아니야.”

그거야 다른 차원에 살던 설국 사람들에게만 공유되던 금속으로 만든 물건이니 당연하다.

“거기에… 적용된 술식의 깊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군. 나도 이 정도로 방대한 식을 만들려면 꽤 공을 들어야 할 텐데…….”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동자에는 나를 조금 달리 보는 듯한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뭐.

사실 이거 당신이 진짜로 엄청 공을 들여서 만드는 거니까 당연하다.

미래의 일이지만.

“정말 이것으로 부화장에 있는 알들을 모두 부화할 수 있다고?”

“당연히.”

이게 바로, 내가 이 녀석에게 내건 ‘약속’의 내용이다.

지금 부화장에 있는 알들을 모두 정상적으로 부화하는 것.

이 정도면 종족 전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거든.

“한번 시도해 보지 그래. 손해 볼 것도 없잖아?”

내가 가벼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녀석을 포함한 주변 용들의 표정이 잔뜩 찌그러졌다.

“…장로님, 인간에게 부화장의 통제권을 맡길 생각이십니까?”

용 한 놈이 잔뜩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에 나한테 잔뜩 놀림받던 그 녀석이다.

“고작해야 인간이 장로님도 해결 못 한 문제를 풀어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결정을 물리시는 편이…….”

“니들 말이야.”

피식 웃으며 말꼬리를 중간에 잡아챈다.

“어차피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으면서. 물불 가릴 처지도 아닐 텐데?”

“…….”

“내가 인간이라서 엄청나게 깔아뭉개고 싶은 건 이해하겠는데 말이야. 입장은 좀 알고 이야기하자?”

대놓고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해 주자, 이제 주변 녀석들의 표정에는 명백한 노기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말 자체는 맞는 말이잖아.

부화장에 문제가 생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장로가 억지로 지금 술식을 유지한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알들, 그냥 그대로 둔다면 전부 혼자서 죽어 버릴 운명이었거든.

루드밀라 녀석이 너무 안 깨어난다며 투덜거리던 것도 당연하다. 강제로 모든 알의 ‘시간 진행’을 멈추는 초고급 술식을 퍼부었으니까.

그걸 유지하기 위해 시설 전체의 마력을 끌어온 것이다.

따라서 어디 한군데에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고, 그걸 고칠 엄두도 못 내는 것 또한 당연한 맥락이다.

“…일단 두고 보지. 당장은 우리로서도 방법이 없는 문제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어?”

장로가 침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봐. 이 녀석은 그래도 머리가 좀 굴러가잖아.

“뭐, 보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인큐베이터’의 입구를 연다.

“고작해야 ‘인간’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말이야.”

이어서, 장로와 사전에 말을 맞춰 둔 대로 녀석이 마력을 주변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대한 알들이 한둘씩 들어 올려져 인큐베이터 안쪽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뭐, 이제.”

미심쩍은 얼굴들로 나를 쳐다보는 얼굴들에 씩 미소를 지어 준다.

“잠깐 기다려 보자고.”

* * *

“…인정하지. 모두 정상이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게 말하는 용의 장로에게 피식 웃어 준다.

내가 만든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알들이 모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참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그냥, 열심히 연구했지.”

사실 별것 없다.

이 알들이 깨어나지 못하고 죽어 가는 것은 그냥 ‘적절한 설비’가 없기 때문이거든.

게임 안에서 이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법도 적당히 마력 전도율이 좋은 금속으로 내가 방금 만든 장치를 만들어서 알만 넣으면 끝나는, 그 중요도에 비해 해결법 자체는 대단히 간단한 퀘스트다.

원래 이 장치를 미친 듯이 연구해서 설계를 만드는 것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장로고.

난 지금 그 결과물만 쏙 빼 온 것이다.

“정말… 큰 빚을 졌군. 너한테도 꼭 사례해야겠어. 바라는 것이 무엇이지? 뭐든지 말만 해.”

그리고, 기다리던 수금 타임.

속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아마 지금도 장로한테 정말 어지간한 선까지는 다 뜯어먹을 수 있을 텐데…….’

해결한 안건이 안건이니까 말이지.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이다.

난 이 녀석들을 단순히 ‘우호적인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쉬카펠을 물어뜯을 ‘사냥개 집단’으로 이끌 계획이다.

“이 문제를 연구하다 보니, 커다란 문제점이 보이더군.”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포문을 연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건 내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장치야. 알들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관찰되어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 만든 거지.”

내 말에 장로를 포함한 용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조금 전에 내 태도 때문에 짜증을 내는 것과 별개로, 이 녀석들은 내가 내놓은 ‘실적’ 자체는 술식의 대가들답게 금방 납득한 상황이다.

사실 그런 것 없는데 말이야.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까는 솜씨가 날이 갈수록 느는군.]

어허. 산통 깨지 마라.

“그리고 그 심각한 결함은.”

짐짓 엄격한 표정으로 말한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것들에 불어넣은 것일 확률이 높아.”

그 말 한마디에, 장소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마치.

그게 누구인지 말해 놓기만 한다면, 당장 가서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게 누구지?”

장로가 위압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내가 누구의 이름을 꺼내 놓을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귓전에서 들려오는 수호령님의 타박에 뭐라고 반박하기도 어려울 만큼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품에 한 아름 들고 있는 물건은 그만큼 가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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