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제안
“대단히 흥미로운 구조군요.”
협회의 검시관이 그렇게 말하며 이프리트의 사체를 들쑤셨다.
고인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애초에 자기 수틀린다고 건물을 폭파하고 사람들을 죽여 댄 놈이다.
굳이 애지중지 모셔 줄 필요도 없다 그거지.
“아주 복잡한 술식이 여러 개 겹쳐져 있어요. 저도 이런저런 차원종을 봐 왔지만… 이 정도로 정교한 마력 각인은 처음 봅니다. 협회의 기술로는 도저히 분석이 불가능한 수준인 것 같은데요.”
뭐, 이프리트도 흔한 쉬카펠의 ‘실험체’처럼 이것저것 조정된 상태겠지.
그리고 녀석이 만들어 낸 술식은, 내가 알기로 이 세계관 전체를 뒤져도 용의 장로 정도는 되어야 독해가 가능할 거다.
그보다, 내가 알고 싶은 부분은 다른 건데.
“혹시, 신경 중추에 붉은 보석 같은 것 박혀 있거나 하지 않나요?”
내 말을 들은 검시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무리 봐도 그런 물건은…….”
흠.
역시 그런가.
싸울 때 왠지 예상보다도 더 뜨뜻미지근한 전투력이어서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말이야.
쉬카펠이 이 녀석을 제대로 써먹을 생각이었으면, 그걸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 보석이 뭔데 그러나?]
‘뭐, 그냥.’
머리를 긁적거리며 수호령님에게 답한다.
‘현자의 돌이라고 하면 대충 알아듣나?’
[…그렇게 가볍게 말해도 될 만한 물건이 아닐 텐데 말이지.]
뭐, 이름값만 놓고 보면 그렇지.
이 세계관에서 현자의 돌이라고 한다면 초월급의 마력 노심에 가까운 물건이다.
쉬카펠도 몇 개 밖에 들고 있지 않은 귀중품이기도 하지.
‘아무튼 그렇다는 건…….’
이 녀석이 그것도 없이 나와 싸우러 왔다는 것은, 쉬카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독 결정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나로서는 호재인 부분이었지. 덕분에 이 녀석을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서.
곧 일어날 상황에서 그 부분은 대단히 유용한 카드로 쓰일 것이다.
시계를 확인한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거든.
-!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 맞춰, 방 정중앙에 공간이 찢어지듯 포탈이 열렸다.
식겁하는 검시관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손을 저어 주는 사이, 그 안쪽에서 쉬카펠이 헐레벌떡 튀어나왔다.
‘…헐레벌떡?’
내가 예상한 그림은 이 녀석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나오는 거였는데 말이야.
어째 여유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너, 다친 곳은 없어?”
“…….”
거기에 이상할 정도로 사려 깊은 질문까지 이어서 튀어나왔다.
글쎄.
이건 상상도 못 해 본 그림인데.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보기에는 목소리에 담겨 있는 기색이 너무 진심이다.
“저 멍청한 놈이 나한테 말도 없이 튀어 나가서 말이야. 그쪽한테 민폐를 잔뜩 끼친 모양이라서.”
쉬카펠이 그렇게 말하며 검사대 위에 올라와 있는 이프리트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던 부하인데. 취급이 좀 너무하다.
“…그것 때문에 이것저것 피해를 보긴 했지.”
사실 내가 손해를 본 것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이놈 때문에 사람이 죽었거든.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말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너는 약속도 못 지키냐?”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아래에 응축된 감정은 나도 조금 놀랄 정도로 험악하게 벼려져 있었다.
내가 이 녀석에게서 ‘협력’을 요청한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한 문장으로 축약된다.
당분간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 것.
결국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의 최종 목적은 거기에 닿아 있어서 말이야.
이 녀석이 ‘수집’을 위해서 하는 온갖 반인륜적 행위를 잠깐만 정지해 두라고 한 것이다.
그 대가로서 나는 이놈한테… ‘최고로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해 주기로 했고.
그리고 그런 거래 내용에서, 이 녀석이 자의로 했건 하지 않았건 아무튼 피해를 본 내용이 나온 것이다.
이 녀석도 나름대로 잡아떼려고 하겠지만, 그럼 나도 그 점을 토대로 최대한 많이 뜯어먹을 방법을…….
“미안! 사죄의 의미로 바라는 건 무조건 다 해 줄게!”
…이것저것 준비해 왔는데, 어째 써먹을 틈도 없어 보인다.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쉬카펠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 이게 뭔가 싶은 느낌이다.
물론 미친년답게 사람이 죽어 나간 상황에 대한 진지한 사죄라기보단 그냥 ‘내 기분이 나쁘니까’ 그걸 풀어 주려고 말한 느낌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 녀석에게는 극히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반응이다.
‘아니지.’
지금 나와 쉬카펠의 관계는, 내가 주도적으로 이런저런 미끼를 던진 것에 이 녀석이 호응하고 있는 덕분에 겉으로는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박제 뜨고 싶어 하는 이 녀석의 목줄을 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적대 관계이다.
이 녀석도 그걸 어렴풋이는 알고 있을 테고, 따라서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나를 당황하게 하기 위해서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이런 건 어때?”
하지만, 이 녀석이 뒤이어서 꺼내 놓은 말은.
그런 가설조차 싹 날려 버릴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인 것이 틀림없었다.
“…너 제정신이냐?”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 사실을 반증한다.
* * *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아까부터 종일 그 소리만 하고 있군…….]
아니, 그렇잖아.
그 녀석하고 나는 적대 관계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나한테 득이 되는 제안을 할 리가 없다.
조금 전에 쉬카펠이 나한테 던진 제안은 그런 면에서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 옳은 생각인데…….
“…딱히 다른 곳으로 이용될 건더기도 없어.”
더 커다란 문제점이 이거다.
내가 그 제안을 덥석 문다고 해서, 딱히 악용될 만한 소지도 없다.
‘일단은 그쪽에서도 말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이프리트 대신 ‘더 재미있을 만한 녀석’을 준비해 놓겠다는 말.
본인이 수집한 물건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주석까지 붙어 있었다.
쉬카펠은 내가 아는 한 이 세계관 안에서 가장 머리가 잘 굴러가는 녀석 중 하나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까지 내가 한 것만 봐도 이쪽의 생각을 대충 알고 있었을 거란 이야기지.
그런 면에서, 녀석이 꺼내 놓은 말이 무슨 의미냐.
녀석이 일으킬 스테이지 4의 ‘내용’을 내가 이미 예상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 난이도를 올리겠다는 소리겠지.
다만.
그것 이상으로, 녀석이 내가 이 상황을 돌파할 경우 주겠다고 제시한 ‘보상’이 너무 압도적이다.
수지타산이 아예 맞지 않을 만큼.
“분명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텐데…….”
[확실히, 있긴 있지.]
수호령님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주변을 부유하는 도깨비불 쪽으로 고개를 다급히 돌린다.
“그게 뭔데?”
[호의에서 비롯된 제안일 가능성일세.]
“…….”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녀석하고 나하고는 지금 적대 관계라고 내가 지금까지 누누이 말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수호령님이 아예 대놓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글쎄. 이번에는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건데 말일세. 그 쉬카펠이라는 마법사, 딱 봐도 제정신은 아니지 않나?]
“그렇지?”
[그럼 본인의 안위보다 ‘흥미로운 일’ 쪽에 좀 더 역점을 둘 가능성도 있단 얘기네.]
“…그러니까.”
스테이지 4의 난이도를 올려 놓는 것은 자기가 그냥 더 ‘재미있는’ 것을 보기 위함이라는 건데.
“그럼 그냥 거기서 끝나야 하는 것 아니야? 그 녀석 성격에 그걸 보여 줬다고 갑자기 뭔가 더 해 줄 것 같진 않은데.”
애초에 그 ‘보상’의 내용도 그냥 고맙다고 던져 줄 만한 그런 것도 아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가설이 있지.]
“뭔데?”
[그 여자가 그대에게 가진 호감의 정도가 생각 이상으로 아주 높다는 거지. 거의 홀린 수준으로.]
“…….”
눈을 가늘게 뜨고 수호령님을 노려보자, 수호령님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농담 아닐세. 그대는 이미 여러 명 후리고 다녔지 않은가.]
사람을 무슨 난봉꾼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 한숨만 푹 내쉬어 주고, 손아귀에 쥐고 있는 붉은색 돌을 이리저리 굴린다.
현자의 돌.
원래대로는 이프리트의 체내에 들어갔어야 할 물건이다.
이건 ‘사과하는 성의’를 보여 주겠다며 쉬카펠이 넘기고 간 물건이지.
물건의 가치를 생각하면 꿍꿍이가 어찌 되었건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도 일단 줬으니까 써야지…….’
쉬카펠이 스테이지 4의 보스로 세울 녀석이 누구인지는 이미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녀석을 효과적으로 때려잡기 위해서는 이걸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고.
그런 면에서.
“이것도 진짜 능력이다…….”
분명히 전속 관리인이 붙어 있을 텐데도 폭격 맞은 꼬락서니의 방을 보고 있으니 그런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런 절망적인 생활력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어……?”
초췌한 표정으로 건물 안쪽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오던 엘프 여왕이, 내 모습을 보고 당황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새하얀 피부에 올라와 있는 다크서클이 인상적이다.
“지낼 만한가 해서 체크하러 와 봤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어질러진 옷가지, 먹다 남은 인스턴트 음식들, 봉지에 대충 정리된 쓰레기들.
굳이 숨어서 휴가를 보내지 말고, 엘프들의 숲에서 언제든지 넘어올 수 있도록 이쪽 차원에 거처를 마련해 줬더니만.
그야말로 절찬리에 나태한 문명인의 삶을 즐기는 모양이지.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일을 이것저것 맡겨 놓고 가서 바빠 죽겠는데, 무슨.”
입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시선을 쓱 피하는 것을 보니 본인도 강하게 부정은 못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경과는요?”
“이제 마무리만 남았어. 며칠 안에 보여 줄 수 있겠네.”
“다행이네요. 새로운 일거리를 들고 왔거든요.”
“…….”
엘프 여왕이 죽일 것처럼 나를 쏘아보는 것을 무시하고, 현자의 돌을 그 사람에게 내밀어 준다.
그리고 그걸 보자마자, 나를 쏘아보던 여왕의 눈동자가 금세 휘둥그레졌다.
“…당신, 그냥 인간 주제에 대체 이런 물건을 어디서 계속 구해 오는 거야?”
“물건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도 구해 올 건데요.”
“사람?”
“아주 능력 있는 대장장이가 올 거예요.”
별의 용광로에서 직접 초빙해 온 설국의 왕자님이니까, 능력에 대해서는 별로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장장이까지 불렀다고? 이번엔 또 뭘 부탁하고 싶은데?”
“이번에도 무기인데. 거기에다가 그걸로 좀 특별한 기능을 덧붙여 주셨으면 해서요.”
그렇게 얘기하며 현자의 돌을 고갯짓으로 가리키자, 그것이 곧 엄청난 업무량의 시작이 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여왕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무슨 무기?”
“활.”
그렇게 운을 띄우자마자, 여왕의 표정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엘프에게 있어 ‘활’이라는 것은 단순한 무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니까 그런 것일 테다.
뭐.
그래도 고생 좀 해 달라고.
스테이지 4의 핵심으로 굴려야 할 말은, 바로 ‘총’이 아니라 ‘활’을 든 키건이니까.
물론 작업을 끝마친 여왕님이 반쯤 죽어 있건 어쨌건, 그쪽에는 곧바로 키건의 활 제작을 이어서 맡겨 놓은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