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사망 (2)
윤겨울이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은 끔찍할 정도의 통증이었다.
미처 반응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희미했지만, 거대한 폭발과 함께 그 근처 일대가 통째로 붕괴한 것은 그래도 똑바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녀의 잘못으로.
“…….”
그런 상념이 정신에 끼어들자마자, 멍한 머리에 스파크가 튀듯 의식이 재점화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진환은?
그 멍청이가 조금 전에도 자신을 구하려고 몸을 던지는 모습이 기억 끄트머리에 걸려 있었다.
만약, 만약이지만.
그 남자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다간…….
그녀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빛도 없고, 공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을 보니 지반 아래에 어지간히 깊게도 파묻혔나 보다.
“오진환! 어디 있어!”
“…귀 울리니까 크게 말하지 마라.”
그리고 익숙한 말투가 지척에서 들려오자, 미칠 것처럼 조바심이 들던 감정에 일시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래, 속에 능구렁이 사육장을 차린 녀석이 이제 와서 이렇게 당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목소리만 들어도 무척이나 멀쩡하지 않은가.
“뭐야. 걱정했잖아. 잠깐만 기다려. 주변을 밝힐 테니까.”
“야, 잠깐만…….”
뭐라고 자신을 제지하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을 돌려 간단한 조명을 만들어 내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조명도 없이 어떻게 움직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
거기엔 다리가 통째로 짓이겨진 오진환이 있었다.
딱히 의학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지 않은 그녀로서도, 다시 걸어 다니기도 힘들 수준의 부상이라는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물기가 차오르면서 먹먹해진다.
이 멍청이는.
자신을 감싸려다가 이런 꼴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불 켜지 말라 그랬잖아.”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오는 대답에, 윤겨울이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가 굳이 자신의 부상을 밝히지 않으려 했던 이유야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인의 안위보다는 윤겨울 자신의 기분을 신경 쓰려 하기 때문이겠지.
“집어치워.”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사나운 중얼거림과 함께, 윤겨울이 오진환에게 재빠르게 달려가서 몸을 숙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야말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정작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냥 멋쩍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어쩌려고?”
“…….”
윤겨울은 대답 대신 묵묵하게 오진환을 둘러업었다.
어차피 그녀의 기술로는 지금 이 남자를 치료하는 것은 무리다.
조금이라도 빨리 지상으로 나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꽉 붙잡아. 조금만 참…….”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빈 공기만 성대 안쪽에서 꾸역꾸역 차올랐다. 더 말하려 했다간 미안함에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주제에 무슨 자격이 있다고 이 남자한테 참으라고 한단 말인가.
“야.”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 어기적어기적 업힌 오진환이,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죽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질질 짜려고 해. 그런 표정 짓지 마.”
“…….”
“이 정도야 치료받으면 금방 나아. 땅 팔 시간에 할 일이나 하자고.”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남자가 괜찮다는 듯이 말할 때마다 자기도 정말로 괜찮아지는 느낌이다.
윤겨울은 코끝이 아린 감각을 있는 힘껏 킁킁거리면서 집어넣었다.
그래. 지금은 이러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오진환을 업고 그대로 지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간다.
“…….”
그리고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몸이 무서울 정도로 무겁다는 것.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초인, 그중에서도 최고봉에 속하는 흑성 랭크라면 등 뒤에 사람 한 명 업었다고 이 수준으로 체력이 금방 빠질 리가 없는데.
“이 주변은 원래 보통 물리 법칙이랑 완전히 떨어진 곳이 많아. 아마 이 근처는 마력 공허 지대일 거야.”
마치 자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등 뒤에서 오진환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너도 지금은 그냥 일반인보다 약간 나은 신체 능력일걸.”
어쩐지 숨이 지독할 정도로 차더라니. 그런 거였나.
“그리고 분명히… 시간 축의 흐름도 다르겠지.”
“시간 축의 흐름?”
“이쪽에서는 며칠이나 지난 시간도, 지상 쪽에서는 몇 분밖에 안 지났을 수도 있고. 차원의 틈새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
그런데 이 남자는 이런 정보는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람.
어디에 가건 항상 이런 식이다. 마치 수백 번도 와 봤다는 것처럼 핵심적인 정보를 전부 꿰뚫고 있다.
“…….”
그리고 문득.
그런 남자이기 때문에, 아마 이번에 자신이 실수하지만 않았어도 평소처럼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상황을 끝냈을 거란 생각이 또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번에도 오진환이 그녀의 이마를 찰싹 후려쳤다.
“너 또 땅 파고 있지?”
“…미안해.”
“됐고, 올라가기나 해.”
이 남자가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가슴 안에 퍼지는 먹먹한 느낌이 계속 사그라드는 느낌이다.
“…….”
글쎄. 자신도 놀라운 현상이다.
아무리 힘들고 안 될 것 같은 상황이라도, 이 남자만 옆에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은 믿음이 이미 생겨났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더라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상까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계속해서 걸음을 내디딘다.
이 녀석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
얼마만큼 걸었을까.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 뒤로는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신체적 과부하가 정신을 좀먹는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팔도 뻣뻣해지고,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땀이 호흡과 거동을 방해한다.
시간과 관련된 감각도 없어지고, 출구는 보이지도 않지만.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은 잔해들을 파헤치면서 올라간다.
등 뒤에 업혀 있는 남자만큼은, 자신이 지켜야 하니까.
대체 어느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어쩌면 며칠이 꼬박 지났을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야.”
그리고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오진환이, 급작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뭐야, 지금까지 가만히 있더니.”
“저기 봐, 저기.”
그렇게 말하는 쪽을 쳐다보니.
잔해의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
그간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갈 것 같은 환희가 윤겨울의 전신에 휘몰아쳤다.
완전히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인 몸을 움직여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간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저것도 못 보냐. 너 진짜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평소라면 잔뜩 화가 나서 뭐라고 따지고 들었을 이 남자의 비웃음도, 지금은 그냥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여 줄 만큼 반갑게 들렸다.
이제.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어.
“걱정되네, 정말.”
“응?”
“…너 진짜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윙윙거리듯 작은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려 퍼졌지만, 윤겨울은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접근하느라 그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저기! 바깥에 누구 있어?”
남은 체력을 전부 쥐어짜 내 토해 낸 외침에, 바깥쪽에서 금세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거… 겨울이? 겨울이야?”
식겁한 언니의 목소리다.
윤겨울은 왈칵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아래로 집어넣었다.
이제 됐다는 성취감, 그리고 이 멍청이를 살려 냈다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전부 복합적으로 뒤섞인 탓이었다.
아니, 아니야.
이런 건 이 녀석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
이어서 잔해가 통째로 들려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바깥으로 나서자,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환한 빛이 그녀의 눈가를 두들겼다.
주변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잔뜩 늘어져 있었다.
“빨리… 이 녀석부터…….”
고르기도 힘든 숨을 토하듯이 내뱉으며, 등 뒤에 업혀 있는 오진환 씨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로님, 이건…….”
“…차원의 틈새는 물리 법칙이 현실 세계와는 달라. 시간 축이 비틀리거나 중력이 반전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지. 그에 따른 착란이나 환각이 일어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오진환도 비슷한 소리를 했었지.
아니,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다들 지금 뭘 하는 건가.
당장 이 남자가 크게 다친 상황인데.
“…그래서. 이런.”
“…….”
말을 잇지 못하는 언니의 목소리와 차마 안타까워 쳐다볼 수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용의 장로를 본 윤겨울이 표정을 찡그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녀석 데려가라고!”
“…겨울아.”
입술을 잔뜩 깨문 윤봄이, 천천히 다가와 그녀와 눈을 맞췄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러면서 그녀의 등 뒤를 가리킨다.
“일단 ‘그거’ 내려놔.”
어라.
언니가 오진환을 싫어했던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보고 ‘그거’라고 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
“아니, 아무리 이 녀석이 밉상이어도 말이 좀 심한 것 아니…….”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진 ‘뭔가’가 그녀의 등에 업혀 있었다.
적어도 분명히.
살아 있는 오진환 씨는 아니었다.
“…아.”
이게 뭐야.
이게 뭐지.
이상하네.
스르륵, 하고.
원래 누구였는지 알아보기도 힘든 누군가의 몸을 바닥에 내팽개친다.
“아.”
머리가 핑 돈다.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조금 전에 자신이 나온 지하 속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려 퍼진다.
뭐 하냐니.
당연한 것 아닌가.
“아직 저 아래에 있어.”
“…겨울아.”
“빨리 가서 구해 줘야 해. 그 녀석, 다리를 다쳤다고.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해.”
말하면서 눈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왜 나오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겨울아, 진환 씨는…….”
“아니야. 닥쳐. 아직 저 아래에 있어.”
“겨울아.”
“아직 저 아래에 있다고-!”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으로 언니의 말을 잘라 버린다.
눈물로 잔뜩 가려진 시야에, 한계까지 다다른 체력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거의 기어가듯이 터덜거리며 자신이 나온 잔해 쪽으로 돌아간다.
“…기절시키게, 차마 볼 수가 없군.”
“아직, 저 아래에, 있다고-!”
그러니까, 가야 하는데.
그 멍청이가 죽었을 리가 없는데.
의식이 끊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 * *
[…그대, 이거 뒷감당할 자신 있나?]
아니.
솔직히 이번 사태 끝나면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닐 내 모습이 훤하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윤겨울이 발작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는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은신한 상태다.
‘가장 속기 쉬울 것 같아서 고른 거기는 한데 말이야…….’
다리가 다친 것까지는 진짜다.
스탬피드의 심장 효과로 금방 회복해 버리긴 했지만.
사기를 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진짜에다가 거짓말을 섞어 넣는 거니까.
다만 그 뒤에 나랑 비슷한 체형으로 만들어 놓은 ‘가짜 시체’를, 적당히 저 녀석이 지쳐서 정신 착란을 일으킬 만한 타이밍을 골라서 나와 바꿔치기한 건데.
반응을 보니 속아도 너무 잘 속았다.
‘쓸데없이 연기도 잘하고…….’
사전에 나와 말을 맞춘 대로 윤겨울을 속여 넘기고 있는 윤봄을 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일단 저 사람이 멘탈 케어를 해 줄 테니까 정말 심각한 상황까지는 갈 일이 없겠지.
솔직히 쉬카펠을 잡기 위한 일이니까 저 녀석도 최종적으로는 이해해 주겠지만, 저 정도까지 멘탈이 으스러진 모습을 보니까 아무리 나라도 조금 죄책감이 든다.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하자.’
그보다는.
이런 사기극에 쉬카펠이 넘어올지 말지가 관건이다.
아마,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슬슬 반응이 나올 때가 됐다.
-!
“그렇지.”
건물 안쪽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마력의 격류에, 곧바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차원 순례자가, 제대로 낚였다는 신호니까.